돼지눈엔 유신독재 부처눈엔 유신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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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주훈장 작성일22-10-15 06:36 조회3,0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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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눈 돼지, 부처눈 부처, 50년전 구국결단
박정희 대통령님 10월 유신, 고3시절에 유신반대 똥폼 잡았던 것을 반성하며 쓴 의병 칼럼입니다
부처눈엔 유신혁명, 돼지눈엔 유신독재인 것입니다.72년 10월 17일 半100년에 의병이 반성의 칼럼을 올렸습니다. https://youtu.be/7-aHPQ2NlrE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님이 결행한 10월유신이 50년 맞이 했습니다. 특별기고 [의병칼럼] : 故 박정희 대통령님 영전에 삼가 속죄를 위한 각오를 올립니다 의병 신백훈 올림>
제목 : 돼지눈엔 유신독재 부처눈엔 유신혁명
공자가 1972년도 한국대통령이었다면 10월 유신을 했을까요?
정답은 YES입니다. 만약에 공자님이 1972년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있었다면 10월 유신 같은 비상조치를 반드시 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 첫째는 당시 대한민국의 처한 냉정한 국제정치상황에서 미국의 안보 울타리가 제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수출경제를 하기 위해서는 지구촌 선진국들 상대로 경쟁하는 중화학 공업을 일으킬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공자와 맹자의 철학의 요체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고, 정치의 목표는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필자와 같은 천학비재(淺學菲才)한 백면서생의 말이 아닙니다.
공자님을 인류사회에 위대한 성인(聖人)이신 것으로 논증(論證)한 것은 맹자님의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맹자는 “공자(孔子)는 성지시자야(聖之時者也)시니라, 즉, 그 시대, 그 상황에 적중한 판단 하고 실천하신 분이시다. 상황에 맞는 최선의 행동하신 분이다.”라고 했습니다. 처세가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공자는 어느 때든 그때, 그곳에 딱 알맞게 하는 분이기에 높이 받들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공자보다 위대한 인물은 없었다”라고 맹자는 단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 孟子(맹자)는 『孔子(공자)의 道는 주어진 시대적 상황에서 最適(최적)의 진리를 발견해 내는 것』이라고 말했고, 그런 정신을 「時中(시중)」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입니다.
정도(正道)에는 상도(常道)와 권도(權道)가 있다
공맹철학에서 강조하는 정도(正道) 즉, 바른길이란 것은 상도(常道 : 평상시의 마땅한 도리)와 권도(權道 :비상시의 적중한 도리)2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평상시에서 상도(常道)로 해야 하고, 응급상황이나 비상시에는 권도(權道)를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것이 유교철학입니다. 이 점을 먼저 이해 바라는 바입니다. 그런 적중한 판단과 행동 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답으로 공자님은 호학(好學)을 최고로 하였습니다. 즉, 공부를 열심히 하여 교양 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 중에서 안연(顏淵)을 수제자로 칭찬한 것은 안연(顏淵)의 호학(好學)의 자세였습니다.
권도(權道)가 정도(正道)임을 설명하는 맹자의 논리는 참으로 명쾌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친하게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이다,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구해주는 것이 권(權)이다."( “男女授受不親,禮也;嫂溺,援之以手者,權也。”《孟子·离婁上》.10) 라고 명언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평상시의 예는 남녀가 서로 친근하게 주고받지 않는 것인데(여자 손을 잡는 것은 성희롱), 이것은 보편적인 원칙이며, 특수한 상황에서의 형수의 손을 잡아서 구해내는 것은 바로 특수한 도덕적 행위의 표현인 권도를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논증(論證) 것입니다. 이 주장에 반대의견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권도(權道)의 권(權)은 저울추 권(權)으로 정확히 판단한다는 의미
그 권도(權道)를 잘 앞장서 하신 분이 공자라는 것입니다. 형수의 손을 함부로 잡아서는 안되는 게 상도(常道)입니다. 그러나 형수가 물에 빠져있고, 상어나 악어가 공격하는 그야말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찰나적 순간입니다. 이때는 구해내야 하는 것이 권도(權道)입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요, 투표요, 선거입니다. 대한민국이 당시에 세계 정세속에서 닉슨독트린, 김일성의 도발, 김영삼 김대중의 민주화 요구 속에 망국의 절망 속 위기속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물에 빠진 형수의 손을 절대로 잡아서는 안된다는 윤리 타령만 하는 김영삼, 김대중에 대해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하는 권도를 실천한 것이 권도(權道)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공자님이 대한민국 지도자였어도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을 그대로 했어야만 공맹(孔孟)이 강조하는 정치의 정도(正道)인 것입니다.
술로몬 재판을 지헤롭다 하는 것은 그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고 솔로몬 왕도 권도로서 재판을 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10월 유신은 물에 빠져 악어에 물리고 익사할 형수를 구해내듯이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망국의 위기에서 구국의 결단을 해낸 슬기와 용기를 지닌 지도자의 결단에 당시의 국민들은 91.5% 절대적 지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때의 지도자 박정희와 당신 투표권 가진 국민들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는 자유와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현재의 국민들은 절감해야만 하겠습니다.
고3 학생이던 시절 맞이한 10월 유신에 “박정희를 미워했다”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10월 유신’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선생님이 강조한 ‘한국적 민주주의’에 대해 엄청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에 서구식, 한국식이 따로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당시 91.5% 이상 국민이 국민투표로 찬성한 것을 보고, 투표권도 없는 어린 주제에 무식한 꼰대들이 투표한 것이라면서 비난했습니다.
이제 고교졸업하고 20세가 되어 대통령 선거를 손으로 투표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못하게 만든 ‘10월유신’과 박정희 대통령이 정말 미웠습니다. 그런데 그게 청년 시절의 철부지였다는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게 정말 쪽팔리게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생을 박정희 대통령님에 대한 속죄(贖罪)의 의미로서 의병(義兵)으로 활동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님의 위대한 3가지 혁명 권도(權道)
70세 늙은 의병이 솔직하게 반성을 합니다. 박정희를 미워했었고, 유신에 반대입장.
민주화 투사 김영삼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탄핵시기를 맞아 세상에 이런 일이, 이게 왜 이러지 하면서 제대로 공부해서 깨달았습니다. 나 같은 바보 멍충이 국민 때문에 엉터리 탄핵 정치가 버젓이 대한민국을 좀먹고 망국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깨달았고 진정 반성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10월유신이 없었으면 박정희 혁명도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박정희는 구국혁명을 3번이나 했습니다.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입니다. 이제는 확실하게 이해를 합니다.
1차는 5,16 혁명으로 망국위기, 공산화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2차는 한일국교정상화 혁명으로 실사구시적인 경제발전 기초를 다진 결단이었습니다
3차는 10월 유신 혁명으로 경제부국의 길을 완성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과 역사는 영웅 박정희대통령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장군이요 경세가요, 행정가요, 공자님처럼 국민교육을 장려한 교육가였습니다.
1968년 제정한 국민교육헌장! 노무현 정권이 페지한 것을 부활 시켜야 합니다. 공자의 리더십은 국민을 우선 잘 살게 해야 하고, 그다음은 가르쳐야 된다고 했습니다. 공자의 주장을 현대사에서 실천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올바르고 합당한 평가로 감사와 존경 드려야 합니다.
이 나라가 잘못되고 현재 자유대한민국파와 주사파들로 양분된 데는 저 같은 똥폼잡는 어리석은 국민 때문이었음을 철저히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반성과 속죄로 의병생활을 하겠습니다.
돼지눈으로 보면 유신 독재, 부처의 눈으로 보면 유신혁명.
세종대왕 시절에 노비가 대폭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종이 과연 성군(聖君)이냐는 비판적 학설도 있습니다. 그럴 수가 있냐 백성을 누구 보다 아꼈다는데 전쟁포로를 노비로 쓴 것도 아니고 자기 백성끼리 노비로 삼는 것이 증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철부지 저는 세종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현시대의 경제학의 석학 좌승희 박사가 “당시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같은 민족을 노비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조선농경사회는 토지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경제 번영의 길이었다. 조선은 문인정치로 남을 침략할 능력도 없었고 중국의 침략을 막기위에 노예를 바치는 형편에서 조선농업의 생존을 위해 동족을 농노로 활용하는 제도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현실을 볼수 있어야 한다. 농업 노동력의 대부분인 조선시대의 상황에서는 안정적 직업인으로서의 정책이 현재 관점으로는 노비가 되는 것이다.” 라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남긴 교훈 돼지눈이냐, 부처의 눈이냐의 차이로 보면, 공자님과 같이 당시의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돼지의 눈, 즉, 정치인들의 권력쟁취욕에서 보면 유신독재여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반대한 것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는 당시의 국민들은 국제정세와 한국의 중화학공업을 보는 시각으로 찬성하였기에 유신혁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국민, 특히 청년들은 부처의 눈으로, 공자의 권도로서 박정희 10월 유신을 바라다 보고 제대로 이해(理解)를 해야 주사파에 농락당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구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님!
그 위대한 결단의 권도(權道) 3가지 혁명을 하여 이 나라를 구하고 잘살게 해주신데 대하여 너무 늦게 늙어서야 감사를 절절히 올립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
10월 유신에 대하여 청년들에게 잘 알려줘야 하겠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10월 유신에 대한 이해를 잘 할 수 있는 [숨결이 혁명 될 때]를 꼭 읽어보게 하시면 됩니다. 의병은 이 책을 40권 구입 선물 하였습니다. 속죄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반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호학서당 대표 신백훈 올림 유교철학박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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