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의 거짓말을 반박한다. (류영선 사망, 33930글의 내용과 관련됨)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2-03-22 19:21 조회2,174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이동욱의 거짓말을 반박한다.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식
이동욱 5.18진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은 유튜브(이승만TV, 2022. 3.12, 이동욱 기자의 현대사로서의 5.18: 제1부 6편 청주 유골 441기는
누구? 누가 보수를 등쳐 먹는가?의 방송내용중에서)를 통해 5.18의 실상을
규명한답시고 왜곡된 거짓말을 하고 있기에 그의
거짓말을 밝히고자 한다.
그는 류낙진의 동생 류영선이
5월 17일 예비검속된 조카 유소영을 찾아 나섰다가 5.21일 도청앞 집단 발포 때 계엄군의 총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소위 진상규명위원이란 자가
이런 거짓말을 유튜브를 통해 전파하고 있으니 이 자는 5.18특별법에 따라 처벌해야하지 않을까? 실제 유영선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류영선 (유영선)은 어떻게 죽었는가?
반체제 간첩활동으로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감금되어 있던 류낙진의 동생인 류영선은 5월 27일 새벽에 금남로1가 YWCA 빌딩
3층에서 계엄군의 투항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계엄군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즉사하였다.
사태가 종료되고 나서 처음에
발표된 국가안전기획부 자료에는 <유영선 23세 회사원, 거주지 광주시 신안동, 사망일자 미상, 총상 사망>으로만 기재되어 있으나,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사망원인을 분석한 자료(월간조선 2005년 1월호 부록)에
의하면 유영선은 27세 회사원으로 27일 YWCA에서 M16에 머리를 맞아 죽은 것으로 밝혀져 있다. 유영선은 1953년 생으로 당시 27세였으며 전남대 화학과 3학년 복학생이었다. 그의 시신은 5월 28일
상무관에서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김기준 지휘하에 의사 박규호, 배학연이 검시하여 안두부관통 즉 총알이
눈을 뚫고 들어가 머리를 관통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1999년 12월 검시보고서)
1. 다음은 유영선의 형수(신애덕, 류낙진의 처)의 증언이다.
26일 아침 전남대학교에 다니던 삼촌(유영선) 친구가 같이 시내에 나가자고 데리러 왔다.아침에 나간 삼촌에게서
오후 3시쯤 되어서야 전화가 왔다. 막둥이를 YWCA 앞으로 보내라고 하면서 같이 있는 사람들 준다며 담배 한 보루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막둥이를
급히 보냈다. 막둥이가 YWCA에 가서 보니 삼촌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뭔가 쓰고 있더라고 했다. 막둥이를 본 삼촌이
"오늘 전투가 있을지도 모르니 집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그리 알고 너도 오늘은
절대 시내에 나오지 마라. 삼촌이 타고 온 자전거 타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했다 한다.'
[증언 자료] 일가족, 분단과 독재의 칼날을 헤치며/유영선 > 온라인 자료실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jnu.ac.kr)
2. 당시 YWCA 안에서 최후까지 저항했던 고등학생 김향현 18세 대동고등학고
3학년생의 수기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2층으로 재빨리 올라갔다. 2층에서도 마찬가지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계엄군들은 총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서는 집중사격을 가했다. 위험을 느낀 나는 다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양장점 앞에서 내다볼 수 있게 된 창문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광주경찰서가 아주 잘
내려다보였다. 계엄군들이 우리가 있는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집 있는 쪽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한 뒤 어차피 죽을 목숨 싸우다나 죽자고 마음을 다졌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총구만 내놓고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알은
금방 바닥이 나버렸다. 저들은 총소리가 나거나 사람의 그림자가 얼씬거리면 그쪽을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어댔다. 내게도 사정없이 총알이 날아왔다. 다행히도 나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은
시멘트 벽을 뚫었고 순간적으로 놀란 나의 이마에 시멘트 조각이 총알 대신 와서 부딪혔다. 커다란 혹이
금방 생겼다.
실탄이 없어
응사할 수 없게 되자 실탄을 구하러 2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꽝' 하는 폭음이 터졌다. 깜짝 놀란 나는 3층 복도에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소대장님, 소대장님" 하며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소대장님이 죽었다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폭음소리로 봐서
수류탄이 터진 것 같았다. 그 소대장이란 사람은(이름 모름) 그 굉장한 폭음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증언 자료] YWCA 최후항전/김향현 > 온라인 자료실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jnu.ac.kr)
유영선은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소대장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최향현이 창밖의 계엄군을 향해 총을
쏘지만 않았어도 유영선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총을 쏜 후 총알을 가지러 아래층(2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창밖의 계엄군이 최향현이 사격을 한 곳을
향해 총을 쏘았기 때문에 이 총에 유영선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거의 동시에 수류탄이 폭발했을
것이다.
3. 천영진 20세 전남대학교 학생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가 김인순씨는 밤색 파카를 덮고, 나는 그냥 티셔츠 차림으로 도청바닥에서 잠을 잤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계엄군이 진주한다고 했다. 우리는 M1소총과 10발 정도의 실탄을 지급받고 10∼20명씩 조를 편성해 인솔자를 따라 YWCA로 갔다. 외곽에서는 벌써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조에는 도청에서 만난 이연과 식사를 하면서 만난 한정만이 끼여 있었고, 그중에 예비역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가 우리 조의 소대장이었다.전남대학교에 다닌다는 작업복 차림의 학생(전용호)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잡히지 않고 도망쳤으며
뒤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방을 배정받은 나는 총을 벽에 세워놓고 나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4. 투사회보 제작을 지휘했던 전용호와 김상집은 총격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YWCA를 빠져나와 녹두서점으로 대피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어찌 보면 도피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이동욱기자는 5.18에대하여 명확한것도 모르면서
좌파줄에서서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시키려는 반역자!
이런자들은 5.18의진실을 밝혀 처단해야합니다.
5.18은 이미들통나 답까지.책으로!
정치권자들의 치사하고 파렴치한 문제점을
김용삼기자분께서 명확히 공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