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자정 무렵이면 승세(勝勢)와 패색(敗色)이 뚜렷해질 것이다. 그때 각 후보는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선두를 다툰 윤석열·이재명 후보 중 한 사람만 승자 자리에 설 수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침통한 얼굴로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 사과할 것이고, 유권자들 가슴엔 후보 가슴보다 더 삭막한 바람이 불어갈 것이다. 심상정 후보는 담담할 것 같다. 무슨 말을 할지도 짐작이 간다. 안철수 후보 속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 그가 승리할 확률은 무(無)다. 그렇다면 승패가 어떻게 갈릴 때 웃을 수 있을까.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토론회가 열린 지난 3일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토론회가 열린 지난 3일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누구나 패자가 되는 순간,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에 된다. 다른 길이 있었다는 후회가 절실할수록 생살을 깎아내는 고통에 휩싸일 것이다.

이재명 후보에게 지금 선택과 다른 선택이 있을까. 본인과 관련해서 대장동 의혹,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가족 간 대화에다 아내 문제까지 겹겹의 파도를 맞고 있다. 이 후보는 TV 토론에서 자신은 ‘문재인 정권 후계자는 아니다’라고 했다. 문 정권의 실패 책임까지 걸머지진 않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문 대통령이 남긴 부채(負債) 상속은 떠맡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친문(親文) 표(票)는 지켜야 한다. 이 딜레마는 반복되는 말 뒤집기와 부인(否認)과 사과(謝過)를 피스톤처럼 오가야 하는 이 후보의 원죄(原罪) 비슷하다. 다른 선택이 없다.

갈림길을 만나면 주저하고 망설인다. 한 길을 고르는 것은 다른 길을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앞에 갈림길이 놓여 있다. 설 직전 여론조사 10건 가운데 윤 후보가 이 후보를 5~10% 앞선 조사가 4건, 두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조사가 6건이었다. 갈림길에 서 있는 화살표(→) 표지판이 윤 후보를 더 갈피 잡기 어렵게 만드는 모양이다.

국민의힘 내부엔 자기네 힘만으로도 집권 가능하다는 자강파(自强派)가 있다. 그들은 앞으로 윤 후보 상승 흐름이 더 가팔라지리라고 표지판을 읽는 듯하다. 안철수 후보를 난로(煖爐) 정도로 여기고, 봄바람이 불어오니 난로 없이도 견딜 만하다고 한다. 그들은 윤석열 46% 이재명 38%로 나타난 지난 1~3일 여론조사 결과를 응원군(應援軍)으로 여긴다.단일화론(單一化論)을 펴는 이들은, 여론조사 바탕에는 이재명 지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샤이(shy) 이재명’이 3%가량 얕게나마 깔려 있다면서 형세를 백중지세(伯仲之勢)로 본다. 단일화론자는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에 막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오세훈 서울 시장을 보라고 한다. 민주당이 180석을 장악한 국회에 맞서려면 단일화를 통해 정권 기반을 넓히고 승부 격차를 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 후보 지지도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 평가와 한 묶음으로 변화한다. 문 대통령 긍정 평가는 40%대 초반이다. 야당 후보는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국민 비율과 연동(連動)돼 오르내린다. 정권 교체 지지 비율은 50%대 중반이다. 최근 여당 표는 결집(結集)이 빨라지는 데 비해 윤 후보는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국민의 10% 이상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안철수 표다.

후보 단일화는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어떤 조건으로 흡수하느냐를 결정하는 1997년 김대중·김종필 유형과, 누가 후보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유형이 있다. 1997년 DJ는 JP 지지 세력인 3~5%를 얻기 위해 후보 자리 말고는 모든 것을 내놨다. 양당 공동 정부 협약(協約)에서 JP는 완전한 갑(甲)이었다. 그러고도 이회창 후보를 1.5%포인트 차로 간신히 이겼다.

2002년 노무현은 여론조사에서 번번이 정몽준에게 뒤졌는데도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받아들였다. ‘죽겠다고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즉생(死則生)’의 각오였다. 그때도 이회창 후보와 표차는 2.3%포인트였다. 대선은 간발(間髮) 승부다.

단일화 동력(動力)은 절박함이다. 윤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이번에는 철수(撤收)할 수 없다’는 절박한 처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쪽이 승리에 대한 절박함이라면 다른 쪽은 정치 생명에 대한 절박함이다. ‘윤(尹)으로 가는 윤일화(尹一化)’든 ‘안(安)으로 가는 안일화(安一化)’든 단일화 열차를 놓치면 한(恨)이 될 것이다. 윤과 안은 3월 9일 혼자 웃기 어렵다. 함께 웃고 함께 울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여 있다. 햇볕 아래 눈사람처럼 녹아 사라지는 단일화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