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이재명> 1. 故 이재선의 운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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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22-01-21 22:52 조회2,135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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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이재명> 1. 故 이재선의 운명의 시작
이재명의 형 이재선은 공인회계사였다. 공인회계사 시험은 상당한 레벨의 실력을 요구한다. 이재선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수재였고, 공인회계사에 걸맞게 중산층 이상의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이재선은 1995년에 '성남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고, 김병량 시장 때에는 시정인수위원회에 인수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재명은 이런 사람을 향하여 정신병자라고 했다.
이재선은 전문직 직업의 지식과 사회활동 참여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언론에 기고 활동도 벌였다. 이재선은 정의감에 충만하고 비판적 시각을 갖춘 기고가이자 논객이기도 했다. 그의 비판은 이재명 성남시장이라고 해서 비켜 가지 않았다.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가짜집회 사주사건'이 발생했다. 이재선은 성남시청 게시판에 "이재명 성남시장은 시장 자격이 있는지요?"라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때가 2012년 2월이었다.
성남시의 '가짜집회 사주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성남시청 정문 앞에는 '대장동' 주민들이 매일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재명은 이 집회를 막기 위해 관변 단체에게 가짜 집회 신고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새마을회 손국배 회장이 이를 거절하자 성남시는 임기가 남은 회장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논란이 일어났던 사건이다. 이재선은 이를 보고 성남시청 게시판에서 이재명의 실정을 비판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성남시의 실정을 비판하는 이재선의 기고는 계속되었다. 시설관리공단 유동규 본부장의 전문성 문제, 공무원 선거개입 문제, 5천억 개발이익 홍보의 근거 사유, 백아연 가수의 조직적 지지 문제, 백종선 수행비서 문제, 경기동부연합 문제, 대장동 문제 등등, 이재선이 지적하는 문제는 대부분 이재명의 아픈 곳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이재명이가 이재선의 지적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의 대장동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재선은 5월 말까지 약 78개의 민원성 글을 시청 게시판에 올렸지만 이글들은 전부 삭제되거나 블라인드 처리되었다. 공무원들은 이재선의 면담 신청마저 거부했다. 시청에 항의 전화를 하던 중 이재선은 이재명의 1호 수행비서라는 백종선과 통화하게 되었다. 백종선은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유동규가 휴대폰을 창밖으로 던지기 직전 통화했다는 인물이었고, 이재선이 지적했던 'k팝 가수 플래카드 사건'의 가수 백아연의 부친이었다.
'k팝 가수 플래카드 사건'은 이렇다. 백종선의 딸 백아연이 2012년 SBS 방송국의 'K팝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시청자 문자투표 비중이 큰 프로그램이었다. 성남시 각 주민센터와 청소년수련관 등에는 주민자치위원회 이름으로 응원 플래카드가 걸리고, 산하기관 사이트에는 백아현 홍보글이 게시되었고, 이재명은 SNS에 백아연과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성남시의 조직적 응원이 있었다. 이재선을 이것을 예산 낭비와 불공정으로 지목했다.
이재선이 백종선과 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이재선은 이점을 지적했다. "공무원이면 누가 이런 일로 아부하려고 해도 이런 일을 말려야 되는 게 아닌가요" 여기에 백종선은 발끈했다. <굿바이 이재명>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신의 딸을 거론했다며 흥분하여 이재선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이재선은 그날 백종선으로부터 문자 1개를 받았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재선은 미친 사람' 이야기를 가장 먼저 거론한 사람도 백종선이었다. 이재선과 백종선이 통화한 이후 백종선은 이재선에게 전화로 욕설을 퍼붓고 문자 폭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재선이 전화를 받지 않자 집 전화로, 그 다음에는 부인 박인복의 전화로 백종선은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댔다. 부인 박인복과의 통화에서 백종선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거 알아? 이재선의 글을 분석한 결과 미친 사람으로 판명된거, 알아? 아느냐고?"
백종선이가 이재선을 '미친 사람'으로 판명했다고 했을 때가 2012년 5월 19일이었다. 이때는 이재선이나 박인복도 이 말의 뜻을 몰랐다. 이때부터 백종선의 언어폭력은 더욱 집요해졌다. 5월 20일 하루에만도 백종선은 이재선에게 전화, 음성메시지, 문자를 107통이나 날렸다. 이때부터 이재선은 이재명 측근과 이재명으로부터 언어폭력 공격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재선이 나중에 문제가 되는, 어머니 집을 방문했던 이유도 이 언어폭력을 저지하기 위하여 어머니를 빌어 이재명과 통화를 시도하려는 이유였다.
이재선이가 이재명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2월, 이로부터 3개월 만에 이재명 측에서는 이재선을 정신병원으로 보낼 준비를 완료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제입원 의도를 이재선이 눈치채게 된 것은 6월 초 쯤이었다. 이때부터 이재선은 홀로 외로운 투쟁을 시작해야 했다. 그건 전부를 상대로 해야 하는 승률 제로의 싸움이었다. 이재명과 측근들과 성남시청의 공무원들, 그 권력과 그리고 형제들, 그를 둘러싼 성남시라는 온 세상이 이재선의 적들이었다.
성남시는 이재선의 '뻐꾸기 둥지'였다. 1975년에 아카데미상을 석권했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 맥 머피는 범죄자로 수감생활을 편하게 해 볼 요량으로 정신병원을 선택하게 된다. 정신병원이라는 미친 세상에 홀로 떨어진 정상인, 간호사 래치드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그곳, 그건 성남시라는 마계였고, 이재선은 거기에 홀로 떨어진 정상인이었다.
맥 머피는 절대권력에 저항하다 병원에서 사라졌다가 며칠 만에 병실에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을 몰라본다. 간호사 래치드는 반항하는 맥 머피에게 뇌 절개수술을 시술하여 맥 머피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또한 정상이었던 맥 머피의 친구는 맥 머피를 베개로 질식사 시키고 병동을 탈출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탈출한 친구일 수도 있고, 죽어서 자유로운 영혼이 된 맥 머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재선이었다. 이재선은 죽어서야 그를 옥죄던 '이재명'이라는 뻐꾸기 둥지에서 훨훨 날아갈 수 있었다.
이재선은 불의를 못 참는 논객이었다. 나 또한 논객을 자처하는 사람이다. 논객은 허위와 왜곡에 저항해 싸워야 할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다. 나 또한 고 이재선 씨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위해 이 글을 썼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는 이재명과 성남시가 어떻게 이재선을 옭죄어 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천천히 이재선이 무너져 갔는지에 대해 쓰고 싶다.
이재명 욕설에 관한 민주당의 거짓말
https://www.nongak.net/board/index.html?id=nca123&no=50759
비바람
댓글목록
한글말님의 댓글
한글말 작성일
그 예리한 분석과 글솜씨.. 고맙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한데 글씨가 작고 흐려서 이대로는 읽을수가 없어서 수단을 썼습니다.
全文을 copy, 한글판에 옮겨서 맑은고딕 크기 11에 진한 검정색으로 읽었습니다.
눈 좋은 사람들이야 문제 아니지만, 나처럼 눈이 흐린 사람들도 읽기 쉽게 조금 크고 획이 굵고 진한 색.. 이었으면.. 싶네요.
하지만, 이것이 어려우면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나름으로 이렇게 옮겨서 내눈에 맞춰 읽으면 되니까요.
벌써부터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ctrl 키를 누른 상태로 마우스휠을 돌리면 글자를 크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