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의 방송, 제1부1편 고증학으로는 현대사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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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2-02-04 16:21 조회2,337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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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로서의 5.18: 제1부 현대사 리터러시
1편
2022.
2. 4, 이승만TV (진행자 이동욱)
구독자 9.83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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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는 이승만TV시청자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3년전, 이승만서거 53주기
특강으로 “망명인가? 추방인가?” 1, 2편, 그리고 “거인의
위대한 황혼” 1, 2편을 통해 여러분과 만난 적이 있는 이동욱 기자입니다. 현재 저는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의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00:42
오늘부터 이승만TV를 통해 여러분들께 “현대사로서의 5.18”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하려는 강의의 목차는 대략 이와 같습니다.
제1부는 현대사 리터러시가 되겠구요, 제2부 5.18 리터러시, 그리고 제3부는 5.18전사 8.15에서부터
5.18까지, 제4부는 5.18통사, 5.18~5.27일을 중심으로진행하구요. 제5부는 5.18 후사로서 5.18 이후 현재까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하나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01:26
현대사로서의 5.18은 이렇게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제1부 현대사 리터러시는 제목으로 리터러시 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많은 현대사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안내서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리터러시(Literacy)”라는 것은 문장 해석 능력, 줄여서 문해력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따라서 “현대사 리터러시”라고 하면 현대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역사학자도 아닌 기자가 이런 제목의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기자로서 현대 사회의 여러 골목들을 누비다 보니까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02:17
제2부는 5.18 리터러시가 되겠습니다.
5.18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와, 이를 위해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5.18 과 같은 사건을 재난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를 정치적 재난으로서의 5.18이라는
주제로 한 차례 정도 말씀드리겠습니다.
특히 5.18에 대해서 잘못 알려져 있거나 잘못 이해하는 내용들에 대한 수정을 중심으로 해서 한 4~5회분량 정도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제3회부터는 여전히 리터러시에 속합니다만은 북한군 개입설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에 대한 문제를 정식으로 다뤄 보겠습니다.
03:07
제3부 5.18전사, 이렇게 해서 제2부에서 5.18의 개괄적인 이해를 위한 준비작업이 끝나면 이로써 제3부에서 5.18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재인식을 위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03:25
그 첫번째로, 8.15건국에서부터 5.18까지 이른바 5.18 직전까지의 5.18전사를 제3부에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앞전 자죠. 5.18의
이전 역사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8.15라는 숫자를 뒤집으면 5.18이 됩니다.
03:51
저는 5.18 전사를 연구하면서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하면 대한민국이 뒤집어질 수도 있겠다 하는 경각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5.18 전사를 마치면 제4부에서 5.18통사로써 5월18일부터 27일까지의
이른바 광주민주화 항쟁기간을 중심으로 해서 79년부터 80년 6월초까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생각입니다.
04:28
지금도 현재 저희 위원회에서는 70여명의 조사관들과 함께 단일 사건이 한 200여개가 되는데, 이 모든 것을 낱낱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들의 생존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최선을 다해 이들과 접촉하며 사실여부를 찾아내느라 시간에 쫓기는 중입니다만은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04:57
이 사건이 끝난 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를 포함한 여러분 모두가 이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취급해 왔으며, 정치권은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를
제5부 5.18 후사로써 말씀드려보겠습니다.
05:15
제가 이 작업을 완성한다면 비로서
우리가 후세에게 전해줄 제대로 된 5.18의 이야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이 방송의 시청대상자가 주로 보수층이기 때문에 보수진영의 인식을 많이 염두에 둔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05:35
그러나 때로는 진보진영의 결함도 가감없이
지적하며 균형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진영을 떠나 함께 잘 살아가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05:49
만약 제가 이렇게 설명드린 경로대로
해서 제5부를 마치게 되면 비로서 전인미답의 고산준봉을 시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등정하는 셈입니다. 저로서는 현대사로서의 에베레스트산을 올랐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5.18을 중심으로 해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리해 보면 과연 역사란 오늘을 비치는 거울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될
것입니다.
06:21
5.18과 대한민국 역사라는 어제 이전에 이야기가 잘 닦여진 청동 구리거울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06:34
비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역사를
통한 정체성의 확립과 국민적 결속은 이런 노력을 통해야만 비로소 가능하지 않나 싶어서 애를 써보는 중에 이승만학당의 이용훈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이렇게나마 여러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07:00
이 자리를 빌어 이영훈 교장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제1부 현대사 리터러시, 그 첫번째 편을 시작하겠습니다.
제1부 현대사 리터러시의 오늘의 주제는 ‘고증학으로는 현대사를 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입니다. 고증학이라는 방법론의 한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역사의 시대 구분을 한번 보시죠.
고대에서부터 중세, 근세, 근대, 그리고
현대를 넘어서 나중에 현대 후기까지 등장합니다만 잘 아시다시피 역사를 시대로 구분할 때 옆에 PPT에
나오는 글처럼 고대와 중세, 근세, 근대 그리고 현대로 나눕니다.
07:55
그런데 이 현대라는 시기의 구분은요
지역별로 상이합니다.
아시아의 지도가 나와 있는데 여기에서
보시면 한국과 일본은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가 붕괴된 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를
현대라고 정의하는 반면에,
이 중국은요1949년 10월 1일 국공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부터를 현대라고 합니다. 대만은 45 년 10 월 25 일 중화민국에 편입된 이후를 현대라고 부르죠.
또 베트남의 경우는요. 월남전을 겪던 시기를 근대로 밀어놓고, 1976년 7월 2일 남북 베트남의 통일이후를 현대로 시기 구분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럽도 국가들로 약간씩
상이합니다.
유럽 지도가 나와 있는데요.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같은 경우 다 다릅니다.
이탈리아는 1946년 6월 12일
이탈리아공화국 성립 이후로 기점을 잡는 반면에, 프랑스는 1958년
10월 4일 제5공화국
성립 이유로 하고 있구요.
독일은 2차대전 이후를 현대로 잡고 있으면서도 동서 통일 이후를 현대후기 라는 기준으로 삼고 있죠. 아마 우리가 남북통일이 되면 국가체제의 규모와 형태가 변함에 따라서 또 다른 시기 구분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냉전시대의 지도 이미지가 나오고 있네요.
09:41
그러나 보통 현대라고 할 때는 저처럼 2차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던 시기를 말하고, 1989년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시점부터를 현대 후기라고 구분짓고 있습니다.
10:03
그런데 학문적으로 특정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짓는 현대사와 달리 현실에서의 현대사는 저희 경험상 사건 관계자들과 그 이웃들, 증언 자나 목격자들이
생존 중인 시기로 구분하는 편이 훨씬 더 실제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10:23
이 문제를 왜 거론하느냐? 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지 3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사건 발생 41년째가 거의 넘어가는 시점인데 진보진영의
연구활동에 비하면 보수진영의 연구성과는 너무나 극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의문을 가져 왔었습니다.
10:49
그 이유를 추적해 보면 사건에 대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태도의 차이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보수진영은 주로 폭동이나 내란으로
평가해 온 측면이 강하지요.
그러면서 진보진영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이 사건을 격상시켰다고 보고 이것이 곧장 감정과 연계되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상반된 견해차이를 지금껏 좁혀 오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 결과 의도적인 외면으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이런 상태인데 현실을 들여다 보니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11:37
역사계 역사는 200년이 조금 넘습니다만 특히 우리나라 역사 교육은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고증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진시황에 의해서 분서갱유로 수많은
고서들이 불태워졌죠. 그 당시 학자들이 이제 옛날 역사를 찾기 위해서 타다 남은 책들을 모아서 문헌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과거사를 연구하던 방법론이었죠.
고대나 중세 혹은 근세가 연구대상일
경우 생존자가 있을 수 없고 또 사건 현장도 보전이 어렵기 때문에 고증학의 중요한 방법론일 수 있지만 사건 관계자들이 생존해 있고 동시대 살아
있는 여러 사람들이 사건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을 때는 고증학적 방법론 만으로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서,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해서 각종 문헌을 모으고, 신문 기사를 모아서 진상을 규명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파악하고 있는 진실과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겁니다.
저런 보수진영의 5.18을 연구하는 자세는 문헌이나 기록에만 의존하는 고증학적 방법론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서 선택된 진실만을 가지고 역사인식을 하는 거죠.
13:11
5.18을 연구하는 분도 극히 드물지만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해외여행은 아주 자주 갔지만, 광주는 간 적이 없는 분들이 허다 합니다. 그래서는 우리가 진실된
역사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은 자기 기분에 맞는 문헌자료만을
선택해서 있고 자기의 기억을 반복해서 되새기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서 진보쪽은 지나친 감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여전히 고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보복성 비판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죠.
이와 동시에 진보쪽에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5.18로 인해서 고증학적 방법론을 넘어서 약진하는 중입니다. 피해자
중심의 역사기록을 위해서 분투하다 보니까 인물 중심, 현장 중심의 실제성이 가미되기 시작한 겁니다.
14:16
이에 비해, 보수진영의 고증학 혹은 훈구학이라고도 하는 이 방법론은 조선시대에서 조차도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문헌의 정통성
만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폐단이 매우 컸지요.
그래서 그 반동으로 조선 중기가 넘어서면
실사구시의 학문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이 실사구시 라는 말을 훈독하면사실에서 옳은 것을 구한다 라는 뜻입니다.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찾는다는 것이죠. 근대 문명은 이 정신에서
출발한 겁니다.
보수나 진보 모두 현대사 관련해서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5:06
정치, 예술 그리고 종교 등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바 있지만 이들의 영역은 은근히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관계의 하에 작동합니다.
대중 선동이 대표적인 결과물인데요. 수천년간 정치나 예술 그리고 종교가 인류를 얼마나 구원했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 회의가 들 만도 하죠. 물론 험난한 삶의 여정에 많은 위안이 되어준 것만은 사실입니다만은 그렇다고 구원까지는 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15:45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해 온 것이 무엇이다 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는 현재 20세기와 21세기, 2 세기를
거치면서 경험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어느 정도 알 만하지 않을까요?
인류 문명의 발달, 인간 수명의 연장, 영아 사망률의 감속, 이런 것들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고 말이죠.
16:20
자
3년전부터 시작된 바이러스 코비드-19가 인류 전체의 명줄을 쥐고 흔들어댔습니다만은 인류는
정치나 예술이나 종교로 그와 대응하지 않고 의학으로 대처하면서 인류 멸종의 위기를 넘기고 있죠. 그렇습니다. 바로 과학기술이 인간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돼 온 겁니다. 그 저변은
다름 아닌 실사구시의 정신이었던거죠.
5.18과 같은 현대사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탐구해야 하는 영역 입니다. 사실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석해 갈 때 비로서 진실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17:05
이것은 종군위안부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적응되는 방법론 입니다.
감정이 기준이 되어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면 엉터리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진영의 집단 환상을 극단적으로 미화시킨
결과물이 이 소녀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7:29
5.18도 마찬가지로 이성을 바탕으로 접근해서 들여다 보아야 이
비극적인 사건의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흔히 광주사태라고 표현하면 기분 나쁘다고
상대를 공격하고, 5.18을 폄하했다, 왜곡했다 라고 이야기하고, 폭동이라고 하면 죽일 듯이 달려 들고 하는 그런 일은 이제는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나 합니다.
5.18은 사실 여러 가지 성격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는 현대사의 대형사건 입니다.
발생한 지 이제 42년째 접어든 이 우리가 모두 좀 차분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분노, 적개심, 증오감 이런 것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내려놓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8:25
5.18의 항거 방식은 무장항쟁으로 귀결됩니다.
여기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무장항쟁이
격화되는 과정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폭동의 단계는 부정하는 것도 모순이지요.
오히려 여러분들께서 당당하게 그래
폭동이다, 폭동으로 무장항쟁을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이제는 부끄럽거나 불명예스러운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우리 법에서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해 놓고 있지 않습니까?
부디 감정을 내려놓고 이성으로 이
사건을 풀어가야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진실의 역사를 물려줄 수 있을 겁니다.
19:09
5.18도 관련자들이 여전히 살아있고 재해석되어야 할 또 재조사 되어야 할 사건과 증거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도
특정 시각에 편중된 채 기록된 문헌들 만으로 이 사건을 이해하고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분열된 역사, 서로
다른 역사를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 주게 되는 겁니다.
19:33
여러분! 이 분열된 역사, 서로 결이 다른 역사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동고동락하며 함께 잘 살기 위한 결속을 위한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서로 치고 받고 그리고 총질을 하며 싸우는
내전으로 갈라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조짐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전라도 비하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해졌습니다.
20:02
도대체 전라도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듯이 도처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 많은 언론 매체 어느 한 곳도 정색하고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죠.
그렇다면 전라도를 떼어놓고 대한민국만이
성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는 5.18 도 현대사이고 현대사는 문헌이나 주의 주장 만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합니다.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사실 관계를 잘
따져서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운동으로 기억할 수 있는 현대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50
현대사는 이처럼 문헌의 축, 인간의 축 그리고 현장의 축에서 측정되어서 한 공간에서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고 그 지점이 현대사를 기록되는
사건의 진실이 머물고 있는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사구시적 역사 연구 방법론이자 현대사
연구 방법론일 것입니다. 저와 같은 기자나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들이 진상을 밝힐 때 쓰는 방식이죠.
21:21
종군위안부의 문제도 만약에 아직 남아
있다면은 그 위안소의 현장을 보존하고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겠죠. 위안부의 수기나 일기, 각종 자료들도 진실의 한 지점을 가리키는 중요한 나침반 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거의 다 돌아가셨지만
생존했을 때의 정확한 증언들이 모아져서 그 진실이라는 한 지점을 찾아낼 때 비로서 우리는 위안부의 진실을 역사로 기록할 수 있을 겁니다.
21:51
5.18도 마찬가지 방법론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념과 사실이 충돌할 경우에 주저없이 사실을 선택하고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22:06
오늘은 5.18과 관련한 많은 분들이 안고 살아온 가슴에서 싸인 상처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라고 합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우리의 정신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을 의미합니다.
5.18로 인해서 그 당시 살았던 모든 한국인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폭도들이 일으킨 폭동에 불과하다고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조차 사실은 5.18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그 역시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갖고 사는 겁니다.
먼저 광주에 계신 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상처를 이전에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폭동이라고
한다면 불끈해서 싸우려 들지 마시고, 그래 폭동으로 무장항쟁 해서 이 나라 민주화에 기여했다 어쩔 거냐? 너는 그때 뭘 했냐? 라고 당당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그 상처를 매년 분노로 되새김질을 할 때마다 우리는 사실상 퇴보하는 겁니다.
23:21
그리고 우리 후세들에게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분노의 상처를 되물림 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그 일은 멈춰야 합니다. 지금…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의 무릎팍을 한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무릎팍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겹쳐져 있습니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배우고 달리기를 해 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모두는 수많은
좌절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거죠.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며 무릎팍이 깨져서 울지만 PTSD 그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에 갇혀서 평생 걷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24:12
그런데 이제는 달리기도 하고 아예
펄펄 날아다닐 정도로 뛰어 다니죠. PTSD만 있는게 아닙니다. 화면에
보시다시피 PTG(Post-traumatic Growth, 포스트 트라우마틱 그로우스)라고 합니다. 외상후 성장입니다.
인생은 PTSD 많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PTG도 있습니다. 외상후 성장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광주에 계신 분들도 이제는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서 당당하게 살아 가셔야 합니다. 광주의 희생으로 권력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지금의 현실을 자랑스럽게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자랑스러움이 너그러움과 여유로
회복되었을 때 비로서 광주에 북한군이 왔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엽게 보일 겁니다.
25:10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설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군사독재 정부 시절을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게 딛고 오늘처럼 성장해 왔듯이 말입니다.
제가 5.18을 조사하던 중에 그 당시 무기고를 털어서 총을 들었던 분들의 절규가 제 가슴에 깊숙히 남아 있습니다. 대학생 놈들이 불싸 지르고 도망갔는데 그 불을 우리가 피로서 겪었소 하는 절규입니다. 저는 인터뷰 속에서 이 말을 듣고 수많은 이야기가 이 속에 담겨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그
당시 광주현장에 있었던 대학생이든, 무장시위대든, 계엄군이든, 온 김밥을 말아 이고 나르던 아주머니들이나 시신을 해 짚으며 사인을 기록하는 군의관이나 헌혈 대열에 들어섰던
여학생들이나 말없이 식어가는 시신으로 남았던 그 영혼들의 마음속에는 악의가 아니라 선의로 항쟁했고, 진압했고
충돌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광주에서 비극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도 그 선의의 마음으로 염려하고 걱정했던 겁니다.
선의를 기억하고 발굴해야 합니다. 이것이 5.18에서 발굴해야 할 우리 모두의 귀중한 유산입니다.
26:43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과 함께 후원하기 화면 표시]
27:03
[끝]
댓글목록
해머스님의 댓글
해머스 작성일
518진상규명조사위의 비상임위원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이를 발표했는지?
그 숨은 의도가 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모양새는 그럴 듯해 보이나,
1) 북한군은 안 왔다고, 2) 탈북 동포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머리 속에 고정되어 박혀
조사에 임하는 태도가 편견과 예단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이동욱 조사위원!!
그는 그러한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는데,
과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루어질까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