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캐나다 참전용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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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핸섬이 작성일23-06-08 09:48 조회2,525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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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한 노신사가 현대자동차를 구매하려고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신사는 구매계약을 하면서 딜러에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딜러는 이 말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노신사가 차를 찾기로 한 날 현대차 딜러가 준비한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노신사는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지금부터 현대차 딜러가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알아 보겠습니다.
캐나다의 노신사 도널드 엘리엇씨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Toronto에 있는 현대차 "미시소거(Mississauga)' 점을 방문해서 구매 상담을 합니다.
엘리엇씨는 자신을 맞아 주던 동양인 딜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에게 "혹시 한국인 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동양인 딜러가 "한국인 맞다"고 하자 엘리엇씨는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그럼 내 이야기 좀 들어 보겠소?"
캐나다에서 쭉 살아온 엘리엇씨가 왜 한국이란 말에 반가움을 느낀 걸까요?
"멀고도 가슴 아픈 나라"
그의 입에서는 가슴 아픈 사연이 흘러 나왔습니다.
"큰 형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보지도 못했고 이제는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수없어 가 볼수도 없습니다."
60년 전, 머나 먼 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떠난 형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어려운 형편에 형의 묘지 조차 찾지 못한채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 버린 것인데요.
하지만 그는 한국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자신의 형이 피를 흘리며 자유를 지켜준 나라라며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당시 큰 형이 20살이었으니 어린 엘리엇씨가 한국을 방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다해도 어렸을 적 형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는데요, 그 그리움이 한국인 딜러를 보자 터져 나왔던 것 입니다.
이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한국인 딜러 신상묵씨는 뭔가 자신이 도울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한가지를 물어 봤습니다.
"형님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Roy Duglas Elliott 입니다."
자동차 계약도 끝났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지만 신상묵 딜러는 손님과 고객사이가 아닌 한국인으로서 정말 그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는데요. 차랑 출고까지 남은 시간 3일 72시간 안에 정보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거기 Roy Duglas Elliott씨의 묘비가 있습니까?"
엘리엇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큰 형님의 성함과 1953년에 전사하셨다는 것에 집중하여 일단 서울에 묘지가 있다는 말에 인터넷부터 전화까지 돌려가며 수소문 했지만 도무지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이름 하나만 가지고 묘비를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쉬울리가 없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차가 나오는 날 오전이 되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신상묵 딜러는 혹시나 하고 부산 유엔 기념공원 사이트에들어가 보았는데요. 그곳에는 유엔군 전몰용사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이 리스트를 확인하던 신상묵 딜러는 심장이 벅차 올랐습니다.
마침내 그토록 찾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Roy Duglas Elliott"
사이트에는 묘비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는데요. 곧바로 사진을 현상해서 액자에 넣었습니다.
차를 찾으려온 엘리엇씨에게 딜러는 액자를 선물하며 형의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엘리엇씨는 액자를 꼭 껴안더니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60년만의 큰 형님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그 감정은 누구도 감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엘리엇씨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이에 신상묵 딜러는 이런 말을 건네었습니다.
"당신의 큰 형님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이 사연이 신상묵 딜러의 페이스북에 올라오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고마운 마음을 공감하며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되었고 한국 정부에서도 그의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요.
곧 엘리엇씨에게 또 다른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가 보훈처에서 엘리엇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감사함을 전한 것입니다.
"형님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희생한 용사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신상묵 딜러..
이들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캐나다는 6.25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2만7천여명을 파병 516명이 전사를 했고 30여명이 실종 1,200 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R.D.엘리엇 상병이 속했던 캐나다 제2보병 대대는 1951년 4월 가평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운 부대.
중공군이 캐나다군이 위치한 곳을 주요 공세 목표로 지정하면서 캐나다군이 많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군은 절대 그곳을 뚫려선 안된다며 끝까지 사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캐나다군이 한국에서 수행한 작전 중 가장 위대한 전투 입니다.
낮선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당신들이 있었기에 한국은 아픔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모든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나라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 호국영령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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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우리 '대한민국' 땅에 1950.6.25 사변 발발 후 만 3년 1개월 2일간 참혹한 전쟁 기간에 UN군으로 피흘려 도와준 'U.N./ Cem'이 있다는 걸 아시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 '부산 남구'에 거주하시는 분들을 제외코는요. ,,. 더우기 그 'U.N.군 공동 묘지'를 엄동 설한 혹독한 겨울 추위에 곡괭이질도 않될 얼음판같은 토지에 '아이젠하워' 가 '당선자 자격 신분'으로 한국전 진행 실태 확인 차 온다는 긴박한 상황 아래에서 그 시뻘겋게 로출된 모이 위에 시퍼런 잔듸를 덮어서 곱게 단장하라는 미8군사령부 공병참모부 요구를 모두가 불가능한 공사 주문 요구이며, '무덤에 시뻘건 흙'이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하거늘 '시퍼런 잔듸'를 덮어 단장하라는 공사 요구야말로 '미친 요구'라면서 돈이 얼마건 불가능한 요구 _ 거부, 입찰 불능! ,,. 다만 현대건설 '정 주영'사장은, '미제8군사령부 공병참모부 통역장교'로 근무하는 동생'정 세영'으로부터 지나가는 소리로 말하는 걸 듣고는, 정색하고 "그 공사를 내가 맡아할 터이니 상급자에게 긴급 건의하여 승락받아 통보해 달라!" ,,. 동생은 기막힌다는 표정으로 "이 엄동 설한, 얼어붙은 땅인데, 게다가 시퍼런 잔듸는 어디있으며, 무모한 주문을 어떻게 시한부 완공하려고 그런 불가능한 주문을 수주받을려고 그러세요? 저 까지 모가지 날리게 하려나요? 미국 대통령 당선자 '이이젠하워'앞에서요?!" ,,. 그러나, '정 주영' 사장님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 그게 바로 '세계 최초인 U.N.군 공동 묘지 공원!' ,,. 부산 남구 용호동? ,,. 이로부터 '아이젠하워' 및 UN군사령부, 미제8야전군사령관들로부터 찬탄을 받으면서; "이토록 은혜를 아는 나라 국민들이라면 얼마던지 더 도와줘야겠다! ,,." 극찬을 받으면서 '정 주영'은 공사를 무더기로 수주하면서 유명세를 받기 시작! ,,. 저는 부산 살 적에 처음 알았읍니다. 'U.N.군 Cemetry!' ,,. ///////./ 아이디어가 놀라울 따름. ,,. 이런 분이 '앵삼이'롬에게,,. '서울 국군 모이 동작동'에서 '앵삼이' 송장 파내, 構內에서 構外 밖으로, 던져 버려야! ,,. 나쁜 롬같으니라구!,,. 빠~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