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출옥(예정) 보고서.{복사복제용}{削.豫}
페이지 정보
작성자 inf247661 작성일25-01-13 17:45 조회12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지만원 메시지 487] 지만원의 출소 보고서(2025.1.12(월).
5.18 전선의 승리! 국적과 인간 품위가 실종된 회오리 시국에 저는 대한민국 최고령 수형자라는 기록을 달고 2년간의 옥살이를 이겨낸 후, 1월 15일 11시에 만기 출소합니다. 통상 노인들은 감옥에 2~3일만 있어도 우울증에 걸린다 합니다. 80대의 고령자인 저를 2년 동안 감옥에 살라는 것은 감옥에서 우울증에 걸리고 속이 터져 죽으라는 반인륜적 행패였습니다. 오죽하면 교정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지구 교정청에서 한 개인인 저를 위해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 두 차례씩이나 나가 브리핑을 하면서 “유공자입니다. 최고령입니다. 형평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남은 3개월 반이라도 만기 전 출소를 시켜주십시오. 단 1개월 반만이라도 혜택을 부여해 주십시오.” 두 차례씩 읍소했겠습니까? 하지만 냉혈기관인 법무부는 “ 그 사람 내보내면 또 5.18 비방할 것 아니냐”면서 거부하였습니다. 오죽하면 교정간부들이 “소신도 감옥에 가둡니까?” “영치금 조금 넣었습니다.” 이런 동정을 다 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악마의 피가 흐르는 이 붉은 골리앗들과의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하였습니다.
제1의 승리, 오죽 제가 무서우면 이런 짓을 했겠습니까?
제가 감옥에 온 것 자체가 승리입니다. 제가 얼마나 무서우면 5.18재갈법을 만들고, 5.18진상규명법을 만들었겠습니까? 오죽하면 전라도 사람 107명으로 5.18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5.18유공자인 송선태를 위원장으로 앉히고, 4년 동안 519억 원의 국가 예산을 탕진하면서 한 개인 학자가 쓴 [5.18작전 북이 수행한 결정적 증거 42개] 내용을 불법화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겠습니까? 국가가 한 개인의 학술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런 위헌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은 국가가 5.18세력의 노예가 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학설은 다른 학설에 의해 도전받고, 학문의 공간에서 자유경쟁에 의해 우열이 정해지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곧 학문의 자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학문의 자유를 침범하기 위해 진상규명법을 만들고, 이해 당사자인 광주 사람들 107명을 뽑아 그들에게 한시적인 공무원 직급을 부여한 후 이론으로 연결된 42개 증거를 살라미식으로 잘라내 각각에 대해 OX식으로 난도질을 가하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해체하기 위해 광주인 107명에 임시공무원 직급을 부여해 OX를 치게 하는 야만과 다를 게 없는 만행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야만의 짓을 하겠습니까? 따라서 5.18조사위가 만든 1,246쪽의 보고서는 저에 의해 발간금지 가처분 신청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법무부입니다. 제가 소송한 피고(채무자)는 국가이고, 국가는 법무부 장관이 대표합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그 변호인이 법무법인 ‘덕수’입니다. 덕수는 옛날 이정희가 활동하던 붉은 민변의 골수입니다. 법무부가 빨갱이집단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니까 법무부가 제 가석방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가 공산주의자들에 장악돼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를 감옥에 넣은 자들은 현 검찰총장인 심우정, 국보법을 위반하여 1심에서 3년 선고를 받고 복역했던 이홍구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그리고 장성학, 장윤선, 김예영, 김태호 등 우리법, 광주일고 판사들입니다. 김명수가 이런 사람들만 조직적으로 뽑아 제 사건을 맡도록 한 것입니다. 빨갱이 판검사들이 총동원되어 저를 감옥에 넣은 것입니다. 이 사실 자체로 저들은 법률과 논리에서 패배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충성하기 위해 모두가 무서워하고, 힘겨워하는 5.18의 진실을 22년 동안 연구해서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대한민국에 충성한 것이 범죄라 하면 이 나라는 북의 나라입니까? 남의 나라입니까? 제 책에는 42개 증거와 그 각각에 대한 해석이 있습니다. 허위사실은 단 1개도 없습니다. 정황증거 하나하나에는 논리가 없습니다. 정황증거가 많으면 논리가 생기고 논리가 생기면 사실정보가 됩니다. 법률에서는 [사실]과 [해석]의 구분을 중시합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허위사실이고, 사실을 해석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해석]에는 죄를 부과할 수 없습니다.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표현은 [해석]입니다. 그 해석이 광주의 기분의 상하게 한 것이 범죄라서 저를 감옥에 보낸 것입니다.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의 국가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 날치기 패악 수단말고는 저들이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2의 승리, 제가 건재하는 사실이 저들에겐 공포입니다.
저들은 제가 억울하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저를 감옥에 넣어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다가 화병 걸리고 우울증에 걸려 죽으라라고 예상하면서 날치기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이 아니라 5.18의 대명사입니다. 제가 쓰러지면 국민 모두가 영원히 전라도의 노예가 됩니다. 필사적으로 제가 저를 달래야만 했습니다. [나를 위한 위로곡]이라는 500여 쪽의 회상록을 집필하였습니다. 수많은 자아를 찾아냈고, 그 속에서 하늘의 뜻과 운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5권의 책을 집필했고, 500개의 시사 칼럼을 홈페이지[시스템 클럽]에 게재했습니다. 잠자고 운동하는 시간만 빼고 늘 글을 썼습니다. 사과박스 2개를 포개서 책상을 만들고 플라스틱 통을 거꾸로 놓아 걸상을 삼았습니다. 볼펜을 눌러가면서 여러 번의 퇴고 과정을 거쳐 글을 써서 내보냈습니다. 이러는 동안 저는 더 건강해졌습니다. 일도 더 많이 했습니다. 제가 건재한다는 것을 저들에게 보여주여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저들에겐 공포일 것입니다.
저를 감옥에 넣지 못해 환장했던 5.18기념재단의 전 상임이사 김양래는 작년 9월 5일 하늘이 데려갔지만 그에게 매 맞고, 수모받고, 옥살이하는 저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더욱 건강해져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출옥합니다. 이것이 워즈워드가 말하는 하늘의 연자매가 돌려지는 섭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쓴 다섯 권 중 세 권은 이미 발행되었습니다. [다큐소설 전두환], [일본의 의미] [다큐소설 여로]입니다. 제 독방은 자료창고가 되었습니다. 출소해서 곧바로 발행할 책은 [나를 위한 위로곡]과 [5.18연구의 마침표]입니다. 이들 중 특히 [다큐소설 전두환]과 [나를 위한 위로곡]은 매우 특별한 책입니다. ‘만일 이 두 권의 책을 쓰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을까?’ 아슬아슬하게 생각되는 귀한 책이기도 하고, ‘제가 감옥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원히 쓸 생각을 못했을 귀한 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고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라틴어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의 의미에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책들이 수많은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면 우리는 더욱 신념이라는 콘크리트를 통해 더욱 굳건히 뭉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2의 승리인 것입니다.
제3의 승리. 두 개의 결정적 증거 탄생
저들이 저를 감옥에 넣은 혐의는 크게 두 개입니다. 하나는 [북한군 개입] 주장이 허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5개의 광수 얼굴이 광주의 10대 얼굴인데 제가 북한 얼굴이라 지정한 것이 15명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혐의를 찍소리조차 못하게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 2개가 나타났습니다. 스카이데일리의 보도, Knews의 보도 그리고 조선일보 보도 내용입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증언
스카이데일리는 2024. 6.17 및 7.8. 2회에 걸쳐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증언을 보도했습니다. 아래는 그 요지입니다.
[5.18은 북한이 통일 목적으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북한 특수군 490명이 광주에 와서 전사했다. 불과 몇 명의 하사관을 빼고 나머지 모두는 소위, 중위, 상위 등 위관급 장교였다. 이 490명의 사망일은 모두 1980. 6.19.다. 안기부는 490명에 대한 성명, 계급, 출생연월일, 출생지, 입대 연월일, 사망일, 소속등을 확인해 탈북자 단체를 통해 이미 공개했다]
490명의 거의 전부가 위관급이라는 사실은 1968.1.21. 청와대에 침투했던 김신조급 특수부대를 의미합니다.
저는 연구에서 북한 특수군 475명이 전사했다는 사실까지는 밝혀냈습니다. 이 475라는 숫자는 북한문헌 4개에도 줄곧 나타나있고, 북한이 제작한 기록영화 내레이션에도 등장해 있습니다. 490-475=15. 이 15명은 1980. 5.24. 북괴가 광주에서 사라질 때 중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북에 가서 6월 19일까지 다 사망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제 책에는 특수군 600명이 왔다가 475명이 교도소 야간 공격에 사살됐고, 심리전을 위해 군인과는 별도로 남녀노소 아이들로 구성된 또 다른 600여 명의 민간 부대가 왔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화룡점정,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증언이 제 연구에 마지막 눈을 그려준 것입니다.
국민들은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증언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체 내용이 궁금합니다. 그 전체의 그림을 알기 위해서는 제가 쓴 책들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제가 쓴 책들도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김대중의 대북 비밀특사 김경재 전 의원의 증언
2023. 5.19.자 Knews는 김경재 전 민주당의원의 증언을 보도했습니다. 권영해 증언과 같은 내용입니다. 김대중은 2006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 물밑 접촉을 위해 당시의 심복인 김경재 의원을 1999.12.에 8박 9일 동안 북에 비밀특사로 보냈습니다. 북한 노동당 고위급인 김학철은 김경재 의원을 490명이 안치됐다는 ‘인민군 애국 열사 묘지’로 안내하면서 5.18은 통일을 위해 북한이 주도한 군사작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북이 고난의 행군으로 사정이 어려우니 현찰 달러는 시급히 지원해 달라는 요지의 말을 전했다 합니다. 5.18이 북한의 군사작전이었다는 사실이 남한에 알려지면, 전두환은 영웅이 되고, 김대중, 김영삼, 광주, 전라도는 역적이 되는 무시무시한 협박이었습니다. 이렇게 당하지 않으려면 돈을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김경재로부터 보고 받은 김대중의 얼굴이 어떠했겠습니까? 이후 김대중은 국민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김정일의 개가 되었습니다. 박지원을 시켜 국민 몰래 4억 5천만 달러를 주었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이 밝혀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박지원만 옥살이를 했습니다. 이후 김대중은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 관광사업, 개성공단 등 봉이 김선달식 사기 사업을 명분으로 국민 주머니를 털어주었습니다. 삼성 등 기업체들을 닦달하여 북을 지원하라 하였고, 쌀과 비료를 50만 톤, 30만 톤 단위로 마구 퍼주었습니다.
권영해와 김경재에 이어 전 국방장관 이정린 장군도 같은 증언을 하였습니다. 이 증언들은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2020년 미국이 비밀해제되어 한국 정부에 이첩한 CIA보고서 9개의 내용과도 일치하고, 1985년의 미 헤리티지 재단 보고서와도 일치합니다.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출처 : ‘지 만원’의 시스템클럽 “최근글 게시판” www.systemclu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