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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평화 공존체제는 한국의 고르바초프만이 열 수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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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4:25 조회12,1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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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공존체제는 한국의 고르바초프만이 열 수 있다(4)

평화 공존은 선언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보장된다. 평화 공존 시스템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유엔 감시하의 상호 군축’이고, 다른하나는 ‘유엔이 보증하는 평화 협정’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남북한 안보에 대한 유엔의 보증’이다. 이 세 개의 요소는 얼른 보아 민족자주 정신에 위배되는 것 같지만 우리의 민족 목표를 수행해가기 위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은 가장 훌륭한 주체 정신이다. 경영이 무엇인가. 남의 힘을 활용해서 목표를 달성시키는 기술이 아니던가. 모든 것을 자기 힘만 가지고 해결하려는 사람이 가장 못난 사람이다.

위 세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엔 감시하의 상호 군축’ 이다.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사람들이 왜 군축을 회피해야 하는가. 많은이들이 군축의 전제 조건으로 신뢰구축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군축이 이뤄져야 신뢰가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몫을 존중해 주고 신뢰를 쌓아 가면서 평화롭게 살자는 두 사람이 각기 허리에 권총을 차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것이다. 서로를 믿게 하려면 그 권총을 풀어 제3의 공정한 심판관에게 위탁시켜야 한다. 이와같이 군축 없는 평화는 말뿐인 평화다. 누가 권총을 허리에 찬 사람이 말하는 평화를 믿어 주려 하겠는가.

많은 이들이 평화협정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군축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별로 없었다. 한편으로는 평화협정을 논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군축을 금기시해 온 것이다. 바로 여기까지가 평화론자들의 한계였다. 군축 없는 평화협정은 사문서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휴전선에 배치해 놓고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면서 평화협정에 서명한들 그 서명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따라서 군축은 평화 협정의 전제 조건인 것이다.

거꾸로 평화 협정 역시 군축의 전제 조건이다. 평화에 대한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데 누가 감히 군축을 단행하겠는가. 군축과 평화 협정은 서로가 서로의 전제 조건인 것이다. 수학적 논리에 따르면 군축과 평화 협정은 두 가지 문제가 아니라 동전의 앞뒤를 구성하는 하나의 문제이다. 어느 것이 먼저고 나중인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하나의 문서에 평화와 군축이라는 두 가지 합의 내용이 나란히 들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핵무기는 없어야 한다. 화생 무기도 없어야 한다.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을 기습 공격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일본처럼 수세적 방어 능력(Defensive Defence)만 보유해야 한다. 이것이 한반도 군사력에 대한 ‘합리적 충분성’ (Reasonable Sufficiency)이다. 바로 이러한 신뢰의 바탕에서 남북한은 평화 공존 시대를 열어야 한다.

첫째.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공식화하고, 둘째, 평화 협정서에 남북한 당국이 서명하고 유엔이 이를 보증하며, 셋째, 약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남북한의 안보를 유엔이 보장해 주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약간의 변화가 아니라 엄청난 변화다. 이 엄청난 변화를 지난 반세기 동안 불신을 키워 온 남북한 당사자들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협상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여기에 주변국들과 유엔의 중재와 보증이 필요한 것이다.

한반도 통일 모델은 위와 같은 평화공존 단계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평화 공존 단계를 먼저 이룩한 후에야 비로소 연합 단계와 연방 단계 그리고 정치적 통일 단계를 유도해 낼 수 있다. 지금은 대결 상태다. 대결 상태에서 곧바로 통일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전쟁을 의미한다. 흡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결 상태에서 평화 공존 상태로 옮겨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혁명적인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고르바초프에 버금갈 수 있는 위대한 정치가에 의해서만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이다. 누가 과연 주변 국가들과 남북한 당사국 그리고 유엔을 움직여 유엔에 의한 상호 군축과 유엔에 의한 남북한 안전보장 그리고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시키는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일단 평화 공존 단계에 들어서기만 하면 연합 단계, 연방 단계 그리고 정치적 통일 단계는 자연 발생적으로 수십 또는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진전하게 될 것이다. 대결 단계에서 평화 공존 단계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역량이 99라면 평화 공존 단계에서 연합/연방 그리고 정치적 통일 단계에 이르기 까지 필요한 역량은 불과 1 이면 족할 것이다. 남북한 주민이 유엔이 보장하는 평화 공존 속에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면 정치적 통일은 언제 이뤄져도 상관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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