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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 | 노동폭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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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4:49 조회11,9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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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운동은 목사집단인 ‘도산’(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로부터 출발했다. 1964년3월, 혁신계 교회 목사 300명이 ‘도산’을 구성하여 도시산업 근로자에 대한 선교를 한다는 구실로 성경 교리를 소위 ‘해방신학’,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근로자들을 의식화시키고 선동하여 노사분규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69년9월의 제일물산, 72년3월의 동일방적, 77년5월의 남영나일론, 79년8월의 YH, 80년4월의 ‘반도상사’ 들에 대한 분규들이 대표적인 사례들로 꼽힌다. 이를 배후 조종한 사람들은 지금도 재야의 거물들로 자리 잡고 있다. “도산이 오면 기업이 도산한다” 대다수의 경제인들은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노이로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드디어 박정희 정부가 칼을 빼들자 이들은 지하로 잠수했다. 1976년11월에 영등포에서 ‘사회선교협의회’가 결성됐고, 이를 중심으로 제조업체들에 지하조직을 은밀한 방법으로 심기 시작했다. 1981년 말에는 경기지역에 비밀 지하 교육기관인 ‘다락원’을 설치하여 위장취업자들에게 4개월 코스로 합숙훈련을 시키면서 소위 ‘도산이론’을 무장시켜 주었다. 1개기에 30-40명, 82년 말까지 1년간 배출된 200여명의 전문세포들은 구로, 인천, 부천, 성남 지역의 문제 많은 기업체로부터 ‘위장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위장취업자들은 선량한 근로자들을 끈질기게 포섭하고 선동하여 ‘기존의 노조’를 ‘어용노조’로 몰아붙이고 ‘민주노조’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수많은 직장을 폐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선량하고 순진한 노동자들이 소모품으로 희생됐으며 심지어는 ‘인간불화살’의 신화를 만들어 내는 데 제물로 이용됐다. 핵심세포들에 의해 포섭-훈련된 급진 노동 해방군은 83-88년간 2,696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80년대 후반을 민주화가 꽃피는 시대, ‘혁명’을 실천할 결정적인 시기라고 판단하여 노동자들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전력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근로조건 향상, 인금인상 등 순수한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노조를 어용노조로 매도하면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며 사용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사장실을 점거하여 협박하고 린치하고 파괴하고 방화하고 분신자살자를 만들어 내는 등 온갖 불법 투쟁을 연출해 냈다. 학생을 선봉대로 하고, 노동자 및 농민을 전투조직으로 하는 연대투쟁을 통해 수많은 기업을 무너트렸지만, 당시 국민들은 이를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민주노조’는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같은 것이 아니라 자본가를 몰아내고 노동자에 의한 기업지배를 목표로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통일노동’을 내세워 반미-친북 노선을 선포하면서 386정치세력과 연대하여 기업을 전복하고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장으로 있는 인명진 목사는 당시 영등포 도산에서 위장취업자를 양성하고, YH 사건을 현장 지휘했던 혐의로 감옥을 갔던 사람이며, 손학규와 경기지사 김문수 역시 대학생 신분의 위장취업자였다. 위장취업 제1기생인 손학규는 2006년11월24일 한국발전연구원에서 이런 강연을 했다.


“저는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설가 황석영씨와 같이 구로동 수출공단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거기에 취직을 하려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이 사회를 뒤엎을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공장에 취직해서 다니다가 친구에게 들킬 형편이 되어서 다른 공장을 찾고 있던 중에 박형규 목사님께서 노동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빈민운동이라고 해서 청계천 판자촌에 가서 살았습니다. 지금 뉴라이트의 기수가 되어 있는 김진홍 목사님도 같이 일을 했습니다.”


이들 대학생 위장취업자들의 쇠뇌공작에 의해 순진했던 노동자들이 섬뜩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공존관계가 아니라 적대관계다".


"사용자를 폭력으로 타도하고, 계급해방(노동해방)을 이룩하자".


"사용자는 쓸어버려야 할 한 줌의 적이다.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자".


"구걸하여 얻느니 싸워서 빼앗자".  

 

위장 취업자들은 순진하고 어린 노동자에게 처음부터 자본론이니, 계급투쟁론이니, 민중운동사니 이런 어려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상적이고 정열적인 그래서 20대의 노동자이면 누구든지 공감하기 쉬운 감성적인 내용을 가지고 입맛을 들이게 했다. 현장 근로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수집-정리하고 기업주와 기존의 순수한 노조집행부의 약점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공분을 갖도록 했다. 1970년11월13일,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22세의 한 가난한 노동자 전태일을 희생양으로 삼아 분신케 한 후, 그의 죽음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태일 수기”를 제작하여 전태일을 노동계의 영웅으로 미화시킨 후, 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일반 국민에게는 군부독재에 대한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활용했다.

                              

1976년 4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김일성 비밀교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전태일의 분신자살! 이것이 얼마나 좋은 선동 자료입니까? 물론 청계천 피복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조직이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태일을 영웅으로 만들고 추모사업회도 가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더 단결할 수 있고, 그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그 정신을 본받게 됩니다.”


청계천의 길이는 5.8km,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평화시장 근방 700여m 구간에는 지금도 '전태일거리'가 화려한 동판과 조각들로 장식돼 있고, 전태일 동상도 건립돼 있다. 파괴될 대로 파괴된 채 흙에 처박혀 천대받고 있는 이승만 박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과 비교가 되는 것이다. “위인 전태일”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다.


1969-1970년에 평화시장에 있었던 재봉 일은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가장 안전하고 편한 직종에 속했다. 1990년까지도 구리시에는 원진레이온이 있었고 거기에서 일 한 사람들은 뼈가 녹고 살이 썩었다.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또 어떠했으며 국가를 위해 싸우다 고엽제에 노출되어 처참하게 죽어간 장병들은 또 누구인가?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오직 전태일만이 영웅이요 열사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태일 외에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노동의 새벽’,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빼앗긴 일터’ 등 노동자의 삶을 비참하고 절망적인 내용으로 노래한 소설, 수기, 시 등을 읽게 하여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투쟁의 눈을 뜨게 한 다음, 서서히 근로기준법, 노동조합관계법 등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어제까지도 "열심히 일하고 알뜰히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순진한 근로자들이 "1,000만 노동형제의 해방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는 노동전사"로 둔갑했다. 마치 자기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영웅이라도 되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순진하고 못 배운 젊은 근로자들에게는 소영웅심을 불러일으키고, 일반 대중에게는 자본가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 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위장취업자들은 순진무구한 근로자를 골라 “인간 불화살의 투사”로 만들었다. 풍물이패를 동원하거나 중요한 소식이 있다는 등의 기회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몇 명의 몸에 신나나 휘발유를 뿌리고 칼을 높이 들게 하여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 후, "개돼지로 사느니 차라리 죽자", "내 한 몸 불살라 천만 노동형제를 해방시키자" 등 끔찍한 구호를 외치게 했다. 그리고 소매치기꾼들이 하듯이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한 후 누군가가 성냥불을 그어 던졌다. 바로 이것이 인간 불화살인 것이다. 1970-80년대에 발생한 인간 불화살이 된 노동자는 17명, 그 중 전태일이 제1호인 것이다. 이 17명의 불화살 중에는 위장취업한 대학생은 단 한명도 없다. 모두가 위장 취업한 대학생들이 점찍은 가난하고 순진한 노동자들이었다. 결국 분신한 노동자들은 꼬임에 빠진 희생양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이념적 특성이 있었다.


1) 계급투쟁: 노동자와 사용자는 공존관계가 아니라 적대관계다. 사용자를 폭력으로 타도하고, 계급해방(노동해방)을 이룩해야 한다. 사용자는 쓸어버려야 할 한 줌의 적이다.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자. 구걸하여 얻느니 싸워서 빼앗자.  


2) 폭력투쟁: 공권력은 제도폭력이다. 기업주 및 관리계급은 보조 폭력이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의 폭력은 정당한 것이다. 지배계급과 자본가는 절대로 그냥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역사발전을 위해 노동자의 폭력 사용은 필연적이고 정당하다.


3) 연대투쟁: 노동자는 순수한 노동운동이 아니라 혁명세력의 주력군이다. 혁명세력은 학생, 농민, 교사, 도시빈민 등의 민중세력들과 연대하여 투쟁한다. 노동운동의 지도자는 재야단체에 의해 발굴되고 교육된다. 1989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금성사 등의 대규모 분규에는 수 백 명의 재야인사들이 현장에 가서 배후조종을 하고 분위기를 띄웠다.  


4) 정치투쟁: 노동자의 권익의 차원을 넘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 ‘노동해방’을 목표로 한다. 노조는 재야 혁명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주력군이다. 살아 있을 때에는 노동전사, 노동투사요 죽으면 노동열사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무서운 투쟁전술이 개발돼 있다.


1) 조직화 전술: 먼저 운동의 씨앗(핵)이 되는 세포(소련어로 '야체이카')를 발굴한다. 이는 재야단체가 주도했다. 70년대의 ‘도산’, 80년대 중반까지의 위장취업 등은 모두 은밀히 전개된 지하활동이었다. 그러나 1987년 6.29 선언으로 민주화의 물결이 사회의식을 지배하면서부터 노동상담소, 민족학교, 민주시민학교, 자주학교, 노동자대학 등 의식화 교육기관들을 공공연히 차려놓고 혁명 인자들을 유인했다. 배우고 싶어서, 또는 자문을 받고 싶어서 학교나 상담소를 찾아간 순진한 근로자들을 감언이설로 현혹시켜 인자들을 모집한 것이다. 저들은 이런 방법을 ‘거미줄작전’이라고 자랑한다. 거미줄(상담소 및 학교)을 쳐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작전이라는 뜻이다.    


1989.6.30일 당시 재야단체가 운영하는 노동상담소는 72개, 민족학교 등 지하 의식화교육기관이 52개였다. 노동상담소는 서울 20개, 경기-인천 33개, 부산-경남 11. 대구-경북4, 광주-전남 4개였다. 의식화교육기관은 서울 18, 부산-경남 8, 인천-경기 9, 대구-경북 1, 대전-충남 1, 광주-전남 5, 강원 3, 충북 4, 전북 2, 제주 1개였다. 이들 조직들은 공단지역에 자리를 잡고 매일 수천 명씩의 근로자들을 ‘노동해방’이라는 달콤한 선동으로 의식화시켰다.


이런 노동운동은 세포조직인 단위조합에서 지역별, 업종별 조직으로 확대됐고, 드디어 1990년1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 결성되었다가 다시 1995년 11월에 오늘의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확대되었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노동조합 연맹체가 바로 오늘날의 ‘민노총’인 것이다.        


2) 위장전술: 처음부터 자본론, 계급투쟁론, 민중운동사 같이 어려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상적이고 정열적인 20대의 노동자이면 누구든지 공감하는 쉬운 내용을 가지고 입맛을 들이게 했다. 현장 근로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수집-정리하고 기업주와 기존의 순수한 노조집행부의 약점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공분을 갖도록 했다.


민족모순, 계급모순, 민중민주주의 등 모순을 증폭하여 사회적 적개심을 고취시켰고,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계급이론을 주입시켰다. 독서서클, 애인 만들어주기, 친목서클 등을 통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갔다. 현 사회를 문제  투성이로 보고, 정부를 타도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마치 자기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영웅이라도 되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소영웅주의라고 표현하면 저들은 가장 싫어한다.


이러한 의식화 작전과 병행하여 저들은 노조의 민주화, 권익향상 등을 바라는 순수한 근로자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그리고 사회로부터 용공분자라는 명시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해 ‘노조의 민주화’, ‘참노동’, ‘노동해방’ 등의 명분 있어 보이는 구호를 내걸어 오고 있다.


3) 투쟁확대: 이들은 기존의 순수한 노조를 어용노조로 매도하면서 대부분의 일반 근로자들이 좋아할 구호를 만들어 투표를 통해 기존의 노조 간부자리를 장악해 나갔다. 일단 노조가 장악되면 재야 세력과 연대하여 극한투쟁을 전개했다. ""김XX 개새끼 불고기 해먹자", "사람 잡은 김XX 새끼 X를 잘라 버리자"(89년 5월 대우조선 분규에서) 등의 구호를 내걸고, 사용자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목을 매달거나 태우고, 사용자의 관을 만들어 파묻고, 사용자를 화장실에 가둔 채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고, 사용자를 크레인에 묶어놓고 날이 선 칼로 배를 긁어가면서 약간씩의 피를 내면서 하루 종일 욕하고 협박하는 등 그야말로 살벌하고 섬뜩한 투쟁을 벌여 왔다. 


한편 순진무구한 근로자를 ‘불화살’로 내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풍물이패를 동원하거나 중요한 소식이 있다는 등의 기회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몇 명의 몸에 신라를 뿌리고 칼을 높이 들게 하여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 후, "개돼지로 사느니 차라리 죽자", "내 한 몸 불살라 천만 노동형제를 해방시키자" 등 끔찍한 구호를 외치다가 누군가가 그어 댄 성냥불에 의해 불화살이 됐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 역시 이런 노동운동계와 한편이었다. 1988년7월8일 그는 국회 대정부 질문의 기회를 이용하여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들(노동자, 농민, 도시서민)의 고통이 돈과 힘을 한 손에 모아 쥔 소수 특권 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기인된 것이라면 그들은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돼야 합니다…지금 우리 경제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경제 민주화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으십니까.…재벌은 해체돼야 합니다. 재벌 총수와 그 일족이 독점하고 있는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 노동자에게 분배합시다. 매수와 분배 모두 2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 정도면 노동자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집 없는 서민들, 중소 상공인, 농민들을 위해 부채 탕감과 아울러 토지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분배합시다…지금 제가 하는 주장은 공연히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 . ."


1988년12월26일 그는 현대중공업 파업현장에 가서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5월4일 현대중공업의 총파업 현장에 국회의원 자격으로 분규를 해결한다며 내려가 다음과 같은 말로 노동자들을 선동하였다. "노동자가 하루 놀면 온 세상이 멈춥니다.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노동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노동자가 모두 염병을 해서 자빠져 버리면 우리사회는 그 날로 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경제. 사회관계 등 모든 것을 만들 때 여러분이 만듭니까.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대표가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우리 다 함께 노력합시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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