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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 | 기업 내부자 시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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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6:51 조회12,5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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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느 건설컨설팅 회사를 컨설팅한 경험이 있다. 컨설팅 기간은 4개월, 그러나 컨설팅을 필자에게 맡기기 전에 기업 대표는 여러 달을 두고 망설였다. “박사님은 건설 분야에 경험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서울공대를 나와 지금까지 30여 년간 건설업체에 종사해 왔는데도 건설을 잘 모릅니다. 4개월이면 건설이 무엇이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같은데 어떻게 기업에 유익한 결과를 내주실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필자는 말문이 막혔다. “저는 자신이 있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군요. 경험이 많고 이론이 없으면 사회를 진화시키지 못합니다. 반면 이론이 있으면 남의 경험으로부터 발전방안을 발굴해 냅니다. 저는 패러다임을 보지 세세한 것을 보지 않습니다. 건축도면을 심사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시설도면을 심사하는 사람은 건축도면을 심사하는 사람과 어떤 식으로 협력하는지를 알면 되는 것이지 제가 건축도면이나 시설도면을 보는 법을 배울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시스템만 보면 됩니다. 시스템에 관한 문제들은 경영이론을 아는 전문가에게는 잘 보여도 내부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컨설팅을 시작하자 필자는 불과 한 달 만에 기업의 문제점과 방전방향을 요약하고 파워포인트로 브리핑 차트를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해주었다. 대표이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머지 3개월 동안은 간부들의 생각을 바꾸어주고 설득시키고 보고서를 읽기 좋게 소설식으로 작성해 주는 데 사용했다. 그 기업의 대표는 소설식으로 되어 있는 컨설팅 리포트를 여러 차례 읽었다 한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고 한다. 결국 과제가 끝난 몇 달 후에는 필자가 제안한 대로 조직을 바꾸는 등의 조치들을 취했다고 한다. 


각 공사현장에는 팀장이 있었고, 그 아래에 건축전문가, 설비전문가, 전기전문가, 소방전문가, 토목전문가들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본부에는 각 건설 현장들에 파견돼 있는 현장팀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전무급의 프로젝트 관리실이 있었고, 이와는 별도로 토목도면, 건축도면, 전기도면, 설비도면들에 하자가 없는지를 검토하는 또 다른 전무급의 도면검토실이 있었다. 필자는 건설현장에 나가 시설분야를 관장하는 감리자에게 애로나 문제가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현장에 온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더니 3개월이라고 답했다.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필자는 DN(Deficiency Notice)이나 NCR(Non Conformance Report)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DN이란 시공사가 잘 못 시공한 부분에 대해 시공자에게 시정을 요하는 리포트이며, 이는 시공사가 수용하기만 하면 더 이상의 잡음이 없는 것이다. NCR은 시공사에게 여러 번 잘못을 지적했는데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발주자(물주)에게 리포트를 내는 것이며, 이는 시공사에게 매우 불리한 리포트이다. 


그는 DN(Deficiency Notice)을 가져왔다. 불량 부분이 사진에 담겨져 있었고, 지적사항이 영어와 기호로 쓰여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필자는 팀장에게 DN을 내밀며 “팀장님, 나는 이걸 읽지 못합니다. 팀장님은 이게 무엇인지 읽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팀장은 그의 경력이 건축 전문가이기 때문에 시설분야의 설계부호와 용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필자는 재차 물었다. “팀장님, 이 DN내용을 보고받거나 의논한 적 있나요?” “없습니다”. “그러면 설비담당 감리사는 팀장이나 다른 여타의 팀원들과 아무런 의논 없이 혼자서 일했다는 거 아닌가요?”


일사백사라는 말이 여기에 맞는 말이었다. 바로 이 한 가지 사실은 이 회사가 건설현장으로 내보낸 팀의 팀원들이 시스템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나 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해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현장에 팀원으로 나온 다른 분야의 감리사들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설비담당 감리사처럼 “나 홀로” 식으로  일했다. 팀장이란 팀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인 행정업무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필자는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설비담당에게 DN의 내용을 다른 팀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보라고 주문했다. 그가 알기 쉽게 설명을 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건물의 각 층 천장 속을 지나는 아름드리 굵은 파이프들을 1층 천장에서부터 5층 천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시공사가 가지고 있는 설계도면에는 서까래와 같이 짧게 토막 난 파이프들을 나사로 이어서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위 설비담당 감리사가 이를 용접으로 연결하도록 바꾸었다는 것이다. 용접용 원통은 국산이지만, 나사로 잇는 원통은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국산을 사용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수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서 감리회사 직원이 시공사 직원에게 그렇게 바꾸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설명을 하자 팀장과 다른 팀원들로부터 질문들이 쏟아졌고 위 시설담당 감리사는 곤욕을 치르게 됐다. 


천장은 비좁은 공간이다. 각층 천장에 올라가 용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A급 용접사를 구하는 일도 번거롭고, 용접사가 전날 술을 먹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접결과가 합격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Leak 테스트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담당 감리사는 평상 압력의 1.5배의 압력으로 뜨거운 물을 통과시켜 놓고 파이프가 새는지 안 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으로 시공자 측과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이는 전혀 타당해 보이지 않았다. 설계자의 의도가 현장사람들에 의해 변경된다는 것은 이른 바 군기문란행위였다. 한동안 이런 저런 지적과 아이디어가 나왔고 토의가 진지하게 진행됐다. 토의 결과 시설담당이 혼자 결정한 사항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토의를 하면 이렇게 중요한 잘못이 노출되는데 위 기업에서는 현장요원들 사이에 토의문화가 일체 없었다. 그들은 팀제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사실에서 그들이 말하는 팀제는 말과 무늬뿐이었고, 일하는 방법은 팀제와 거리가 아주 멀었다. 아직도 많은 한국 회사들에서는 말로만 팀제이고 무늬만 팀제이지 팀제를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어서 필자는 감리팀이 시공 내용에 대한 지적(DN)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을 열심히 잘 한 것이냐고 물었다. 감리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필자는 DN이 많으면 그 만큼 재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물주(발주자) 입장에서 보면 납기와 원가가 많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DN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가가 올라가고 시공기간이 길어진다. 그런데 이 기업은 발주자에게 이렇게 선전했다. “우리는 시공사에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물주에게 비용과 공기를 30% 정도 절감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지적사항(DN)이 많다는 것은 현장에 파견된 팀의 QC 활동이 일본의 QC에서처럼 “예방 지향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예방을 하려면 모든 팀원이 참여하여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지혜를 합치고, 일하는 방법에 대해 지혜를 합쳐야한다. 그리고 시공자가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예방 내용을 설명해주고 예방 방책을 의논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공기와 원가를 대폭 절약할 수 있고, 고객과 시공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시너지로 일하지 않고 있다는 사례들을 많이 찾아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현장감 있게 생생히 설명했다. 단 한 달 동안의 관찰 후에 제시한 지적과 대안들은 30여 년간의 건설 분야 종사자들이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건설계에서 가장 유능하다는 사람들을 스카우트 해다가 몸체를 불려온 대한민국의 A급 기업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기술자들의 집합소일 뿐 전무도 상무도 경영을 알지 못했다. 아마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러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리회사의 본부에는 도면검토실이 있다. 그야말로 1급 기술자들이 들어앉아 타 설계회사에서 그려온 도면을 검토하는 곳이다. 도면을 검토하는 사람은 좁은 공간에서 현장을 상상한다. 하지만 현장의 모두를 다 상상하는 사람은 없다. 누락이 있고 오류가 있다. 에러는 현장에서 발견돼야 하고, 발견된 것들은 도면검토 기술자들에 전해져야 한다. 이른바 피드백 시스템인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똑 같은 에러가 반복해서 반영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도면검토의 시각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근무하는 기술자가 많은 착안점과 아이디어들을 현장 수첩에 메모했지만 이를 필요로 하는 부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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