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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 | 불화살 수기 (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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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4:47 조회12,4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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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화살 수기 (강민우)


1990년3월20일, 도서출판 ‘사상연’(現思硏)은 ‘진터골 이야기 3부’ 시리즈에 1,000만원 원고료 현상공모에 의해 선정된 “너는 불화살”이라는 수기를 실었다. 1980년대 당시의 노동운동이 무엇이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어서 간단하게 요약하여 소개한다.

          

노상에서 채소 몇 점씩을 놓고 파는 노모를 모시고 살던 한 순진한 청년 강민우가 취직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소위 "선진노동운동가"로 훈련된 위장취업자 최성일에 포섭되어 세상을 보는 그의 시각과 카리스마 그리고 철두철미한 리더십에 현혹되어 노동해방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자는 뼈 빠지게 일하고 과실은 사장 혼자 가져다 호강하는 세상을 바꾸어 보자는 투쟁에 나선 것이다. 그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확실히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를 만나고부터였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사고방식이 바뀌자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성일, 그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만해도 내게 있어 세상은 살만한 곳이었다. 나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줄로 알았다. 남들만큼 배우지 못한 대신 부지런히 일하면 내게도 분홍빛 미래가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최성일은 그가 포섭한 순진한 노동자들을 이렇게 의식화시켰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 피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민주제단에 피를 바칠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노동해방은 쟁취될 수 있고, 노동자가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과 옛날 노예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옛날 로마 사회에서나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들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억눌려 지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죽지 않을 정도의 먹이를 받아가면서 지배계급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 짐승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수 양반들은 손 하나 가닥하지 않고 온갖 부귀를 누렸습니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비들이 희생을 강요당했습니까? 귀족과 노예가 서로 타협하고 화해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귀족들이 자기 것을 나누어 주면서 노예들을 해방시켜주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귀족에게 타협한 노예라면 그건 타협이 아니라 굴종입니다. 자본가가 그런 귀족이고 노동자가 바로 그런 노예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타협은 없습니다. 오직 투쟁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자본가를 상대로 싸워서 뺏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빨갱이 공산당 이론하고 무엇이 다르냐, 이렇게 질문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자본가와 파쇼정권이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논리입니다. 여러분들은 국민학교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노동자 없으면 자본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노동자는 우리의 정당한 몫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걸 공산당으로 몰아붙이는 건 착취와 억압을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회사에 요구한 20% 임금인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최성일은 해직노동자 복직, 무노동유임금 등, 또 다른 조건들을 내세워 끝없이 회사와 투쟁을 벌였다. "투쟁 없는 노조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투쟁 슬로건이기 때문이었다. 투쟁이 없으면 노동자들이 안이해지고, 안이해지면 혁명이 주저앉기 때문인 것이다. 최성일이 지명한 집행부장 이근배는 임금인상 협상에서 100%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최성일은 협상에 만족해하는 그에게 무노동 유임금을 위해 투쟁을 선포하라고 닦달했다. 이근배가 최성일의 끝없이 부당한 투쟁 지시에 견디다 못해 저항을 시작하자, 최성일은 그를 자본가의 앞잡이요 그가 이끄는 노조를 '어용노조'라며 공격했다.


세가 불리해지자 최성일은 ‘불화살’이라는 최후의 비상수단을 연출한다. 분신자살이라는 충격요법으로 사태를 뒤집어보자는 마지막 카드였다. 그는 그를 따르는 핵심 멤버들에게 분신자살은 하지 말고, 몸에 신라를 뿌리게 한 후 분신자살 하겠다는 협박을 해서 얻을 것을 얻어내자고 꾀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말을 믿고 자신들의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신라를 바가지에 퍼서 머리 위로부터 뒤집어썼다. 사장실로 쳐들어가 사장 및 간부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도중 누군가가 성냥을 그어댔다, 신라를 뿌린 3명의 추종자들이  동일산업 사장실에서 일순간에 불에 타 죽었다. 그리고 최성일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더 이상 그의 추종자들을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쌓아올린 혁혁한 공적으로 인해 그는 노동운동권에서 더 높은 간부가 되었다. 최성일에 포섭된 사람들은 순수한 의협심으로 낚시에 걸려들어 이 나라를 공산화시키는 데 이용된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최성일이 없었다면 직장 노조도 형성될 수 없었고, 위기를 맞을 때마다 흩어지는 노동자들을 다시 장악할 수도 없었다.


지도자 없이는 극렬노조를 형성할 수 없다. 그런데 직장에는 이렇게 철저하게 의식화된 지도자가 없다. 그래서 극렬 노동운동의 지도자는 '도산‘으로부터 훈련을 받아가지고 위장해 들어오는 것이다. 극렬운동의 지도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추종자를 만들어 내고, 이들이 군중에 섞여 군중심리를 이끌어 내면 수많은 군중이 순간적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수많은 각종의 소요사태 역시 수많은 최성일에 의해 연출됐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수많은 최성일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고, 그 결과 기업들이 도산됐다. 기업을 도산시키는 세력이나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나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수많은 직업적 최성일이 수많은 강민우와 전태일을 만들어 내고, 이들을 순간적으로 희생시켜 현장을 극화하고, 유언비어 등을 통해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다수의 군중을 끌어들이는 수법인 것이다.  


민주노총의 목표는 임금인상이나 작업환경 개선과 같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든 투쟁의 이유를 찾아내 투쟁을 계속하여 기업을 말살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투쟁 없는 노조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저들의 슬로건이요 사상이었다.  임금인상 100%를 얻어내면 그 다음은 "해직자 복귀", "무노동 유임금" 등 회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파업을 했다. 이들의 목표는 기업파산이었다. 기업이 파산하면 위장취업자는 그들의 세계로부터는 영웅 칭호를 받지만, 그에게 놀아난 순진한 동조자들과 군중심리에 말려들어 붉은 띠를 머리에 둘렀던 대다수 노동자들은 부모를 봉양할 일자리 자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들은 위장취업자의 동지가 아니라 부나비처럼 놀아난 소모품들이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그 많은 노동자가 어떻게 다 주인이 된다는 말인가! 달콤한 말에 현혹되어 놀아나는 노동자는 결국 소수의 노동운동의 간부들을 출세시켜주는 소모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해서 대통령으로 뽑아주었는데 어째서 청와대와 국회에는 소수만 들어갔으며,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어째서 하루가 다르게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가?


안양1번가에 소재했던 ‘삼덕제지’는 화장지 등을 만드는 역사 깊은 회사이며 주인인 전모 회장은 자수성가하여 재산을 모았다 한다. 그런데 2003년7월 직장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면서 근 1개월간 공장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요란한 소음을 내며 ‘오너가 다이너시티를 타고 다니고 룸살롱에서 고급주를 마신다’는 등의 비난과 함께 오너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조건들을 내세우며 데모를 했다. 오너는 이런 노조가 너무 싫어 은밀히 재산을 정리하고, 자신이 60년 동안 경영하던 제지공장의 터 4,364평은 노조가 손쓸 틈 없이 전격적으로 안양시청에 기증하고, 영원히 한국과 이별을 했다. “나는 육신만 이 나라를 등지는 게 아니라 영혼까지도 등지고 간다”는 쓰디 쓴 말을 남기고! 신나게 꽹과리를 두들기던 근로자들은 졸지에 일자리는 물론  데모할 공간마저 잃어 버렸다. 돈 가진 사람은 수모를 당했고, 노동자들은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다. 서로 살자는 게 아니라 서로 죽자는 것이었다. 직장 근로자들은 부나비 같이 달려들다 희생이 됐지만 이들을 이 지경으로 내몬 민노총 간부들은 오늘도 바위처럼 건재하고 있다. 1970-80년대의 뒤안길에는 바로 이러한 비극들이 있었던 것이다. 펄벅의 메뚜기 떼가 들판의 곡식을 무참하게 쓸어갔듯이, 1970-80년대의 도산과 도산이 이끄는 노동운동은 기업을 마구 베어버렸던 것이다. 바로 이런 시기에 10.26이 있었고, 12.12가 있었고, 5.18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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