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 | 대기시간을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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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7:03 조회12,6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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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설비 같은 플랜트 제품은 구성품 단위로 생산되고, 모두가 모양과 규격이 다른 주문생산품이다. 육중한 철물들로 이루어진 이들 제품을 제작하는 업체들은 3D업종이라 생산시설을 한국에서 동남아 후진국들로 이동시키고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공장에는 육중한 철물을 재단하고 용접하는 과정에서 소음과 분진과 쇳가루가 어우러져 시계가 막히고 숨쉬기가 고약했다. 하지만 행정을 보는 사무실은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으며 평균적인 회사에 비해 화장실이 깨끗하고 사원들은 늘 웃는 얼굴로 상호간의 예의가 바르며 무언가를 늘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었다. 회장은 사장을 통해 간접 경영을 하고 있었으며,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공대를 나와 그 공장에서 40년간 기초 바닥부터 일해 왔으며, 사장과 공장장과 전무 상무들도 모두가 전문성과 인격에 대해 사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기업은 매년 수십억 대의 순 이익을 냈고 그 수익규모에 대해 회장은 만족스러워 했다. 그 회사는 필자가 가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이른바 빅3라는 컨설팅 업체들로부터 진단을 받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진단됐다 했다. 필자가 쓴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를 읽은 회장이 어느 날 필자를 만나자 하더니 회사 운영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혹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니 관찰을 좀 부탁한다고 했다. 필자는 경남과 전남에 산재해있는 공장들을 관찰하고 3개월 만에 관찰한 내용을 소설책처럼 재미있게 써서 건네주었다.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은근히 자랑됐던 회사에는 많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기업은 본사가 보유한 공장과 6개 정도에 이르는 협력업체가 보유한 공장들이 있었고, 협력업체에 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도급을 주었다. 예를 들어 연간 60억 원어치의 도급을 주는 업체에 가는 그 60억이 과연 적정한 액수냐,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원청 업체도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고, 도급을 받는 협력업체도 빠듯한 액수를 겨우 받았다고 생각했다.
큰 그림부터 살펴보면 임금은 RT(낮 정상근무시간)와 OT(야근)의 두 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본사 공장 근로자들에 지급된 급료를 보니 RT가 100억이면 OT는 65억 정도가 나갔다. 협력업체들의 자료를 보니 RT가 100억이었다면 OT는 80억-120억 규모였다. 60% 내지 120%의 임금이 야근수당으로 나간 것이다.
낮에 지급된 100억은 합리적인 액수인가? 정규 근로시간인 낮 8시간동안 근로자들은 일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고, 기껏 해놓은 일을 부숴버리고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작업 명령을 기다리면서 대기했고, 한 공정이 끝나고 다음 공정으로 들어가려면 품질관리 요원들로부터 OK사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QC요원을 기다리느라 대기했고, 자재 창고로부터 필요한 자재가 수송되는 동안 대기했고, 간부 회의에 참석한 공장장이 내려와 작업지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가 끝날 때까지 대기했고, 설계도면이 변경되면 도면을 기다리느라 대기했다.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수많은 근로자들이 낮 시간의 60% 정도를 대기시간과 재작업시간으로 보낸 것이다.
대기하는 시간에도 사람들은 일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대기하는 시간에도 임금은 나가야 했다. 낮에 하지 못한 일은 밤에 할 수밖에 없었다. OT는 야간, 심야, 철야 작업으로 분류되며 시간당 급료는 RT비용의 1.5-3배에 해당했다. 시간당 급료가 싼 낮에는 대부분 대기하는 시간과 재작업시간으로 메우고 시간당 급료가 1.5-3배로 비싼 야간작업비용을 지불하면서 밤일을 시키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었다. 밤에 작업을 하게 되면 사람은 피로해지고 피로해진 만큼 불량도 많이 나고 생산성도 떨어졌다. 기업도 손해를 보았고, 근로자들도 밤일로 고생을 해야 했지만 간부들은 이를 숙명으로 알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라”, 이 명령은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기시간을 단축하라”, 이 명령은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진다. 명령을 보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게 시스템 개념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대기시간’이란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작업 여건이 마련되지 못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다.
1990년대, 삼원정공에 이어 삼성이 초 관리를 강조했다. 1992년 당시 담배 한 대 피우는 데 900원, 커피 한잔 마시는 데 1,800원이 사라진다는 것이 한국식 시간관리 개념이었다. 시간이 돈이니 촌음을 아껴 쓰라는 것이 초 관리의 기본 철학이다. 이 철학은 1990년대에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초 관리 개념에는 시스템 개념이 전혀 없다. 따라서 초 관리 방식을 가지고는 절대로 공장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없다. 하지만 대기시간을 단축하려면 대기시간을 유발하는 원인부터 따져가게 만든다. 간단한 몇 가지 요소만 따져 봐도 대기시간이 허술한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을 직감케 한다.
영업활동이 대기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고객 측에서 받아오는 설계개념과 기술자료에 하자가 내포돼 있으면 대기시간이 길어진다. 고객 측에서 간과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빠트린 게 무엇인지, 영업단계에서 자세히 챙기지 않은 채 기술자료들이 설계 부서로 넘겨지면 설계에 에러가 생기게 되고, 이는 곧장 공장의 대기시간으로 연결된다. 잦은 설계변경, 틀린 설계는 수많은 재작업을 유발하고 이는 엄청난 대기시간을 유발한다. 설계가 요구하는 재료의 종류와 수량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방대한 작업이다. 주문을 해서 납품돼 오는 데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주문한 품목과 수량에 단 한 가지의 오류라도 발생하면 작업이 몇 개월씩 지연된다.
문서를 작성하는 시간, 결재를 기다리는 시간들도 공장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 3층에 있는 과장이 2층에 있는 부장, 1층에 있는 이사의 결재를 받으려고 때로는 1주일씩 소비하기도 한다. 품질검사도 대기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외부 벤더에서 부품과 재료를 주문했을 때, 일일이 품질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업무량이 매우 방대하다. 납품돼 오는 기다란 원통에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창고에 입고될 때 발견되지 못하고 제작 시에 발견되면 제작이 시작될 때에 원통을 재 주문해야 한다. 이 역시 대기시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침 회의가 대기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간부들이 아침마다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사장은 흐뭇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아침 회의가 끝날 때까지 근로자들은 작업지시를 받지 못해 대기한다. 용접공이 불량을 일으켜도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에러도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
기업을 시너지 체제로 바꾸는 것은 학교를 다니고 강연을 듣는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어깨 너머로 얻어들은 지식이나 경영학자의 코멘트 몇 마디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한다. 외부의 시스템 전문가가 설계해주고 실천을 위한 리더십까지 만이라도 담당해 주어야 한다. 단언하건대 한국기업에서 내부인력을 가지고 선진기업에 맞먹는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자의 조언에 따라 이 기업은 본사가 소유했던 대규모 공장도 불하하여 도급제로 거래했고, 본부가 움켜쥐고 있던 도면작성, 강도계산, 자재소요 등 기술부도 독립시켜 도급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본부에는 총무, 영업, 프로젝트관리 팀, 조달부만 데리고 있기로 했다. 이렇게 하고 나니 수많은 애로를 쏟아냈던 공장으로부터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일을 열심히 하라, 정확히 하라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도급제로 하니 이제는 그들이 주인이요 사장들이었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을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1년 후 회장이 들려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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