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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7:44 조회15,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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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시대가 시작됐던 1993년, 당시 우리사회에는 한국병, 의식개혁, 신바람 등 세 가지 키워드들이 유행했다. 이른바 군사정권이 노태우를 끝으로 마감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먹이사슬, 안전불감증, 투기, 일확천금주의, 배금주의, 극도의 이기주의 등을 종합적으로 일컫는 이른바 한국병이 창궐했으며, 이 병은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바람에 증폭되어 근로자들까지 전염시킴으로써 근로정신과 근로문화를 파괴했다.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은 이 무서운 사회병리증후군(Social Pathology Syndrome)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식을 개혁하고 모두가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신바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이 이렇게 치고 나오자 학자들을 포함한 일군의 식자들이 그 뒤를 이었으며 이 중에는 W이론도 끼어 있었다.  


이런 정신주의(Spiritualism)는 전후 일본에서도 유행했다. 근로자들은 근로환경과 대우에 대해 경영진에 불만을 표시했고, 경영진은 근로자들의 정신이 해이해 있다며 못마땅해 했다. 이 때 품질이론의 대가로 일본에 초대된 데밍 박사는 품질과 생산성을 정신력으로 향상시키라고 하는 것은 화살로 전투기를 쏘아내리라는 것과 같이 무모한 주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시스템적 접근방법(Systematic Approach)을 강론했다.


결론적으로 일본에서는 40여 년 전에 금지됐던 처방이 뒤늦게 한국에 자생하여 낙후된 경영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되었고, 모든 정부기관, 거의 모든 기업이 엉뚱한 만병통치약을 복용하느라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던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경영학 지식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 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증거였던 것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에 도전장을 냈다. 현암사를 통해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라는 책을 낸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신선한 충격이라며 KBS의“인생 이 얘기 저 얘기”에서 한 시간 정도 방영됐고, 그 후 필자는 많은 대기업들과 정부기관들에 시스템전도사로 초대되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금은‘시스템’이라는 단어가 국민 대부분에 매우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시스템’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생소하게 들렸다. 모두가 시스템이 한국말로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그럴 때마다 대답하기가 참으로 난감했다. 사전을 찾으면 체계, 조직 등등으로 막연하게 번역돼 있지만 아마도 우리말에 가장 가까운 말로는‘장치’라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 때 필자는 시스템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했었다. 시스템이란 두 개 이상의 객체가 연합하여 상호간의 논리적 연관성을 가지고 특정 목적을 수행하는 유기체다. 가장 대표적인 유기체는 인체다. 인체에는 수많은 장기가 있다. 이들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성을 가지고 대뇌에서 일일이 참견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면서 건강을 유지한다. 인체는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진 정교한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만든 시스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시스템은 "순번대기번호표 시스템"이다. 과거 수십 년간 은행 객장에는 질서가 없었다. 그런데 1990년 "순번대기번호표"시스템이 등장했고, 그 간단한 시스템이 등장하자 수십 년간의 무질서가 순간적으로 치료됐다. 은행에 보이지 않는 손이 설치된 것이다.


이 간단한 시스템 하나 설치하면 될 것을 가지고 우리는 과거 수십 년간 애꿎은 국민의식만 탓했다. 지금 와서 보면 과거의 무질서함은 의식 탓이 아니라 시스템 탓이었다. 의식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의식을 훌륭하게 가꾸고 싶으면 의식이 그렇게 가꿔지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은행객장에는 이래라 저래하고 지시하는 "보이는 손"이 없다. 보이는 손이 없어도 질서가 유지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시스템이란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스템은 조직사회를 경영하는 경영의 도구다. 목수에게 연장이 필요하듯이 모든 단위의 경영인들에도 경영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순번대기번호표 시스템은 1990년 일본에서 수입됐다. 그러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낸 그 외의 시스템들은 얼마나 많고 얼마나 훌륭한 것일까? 매우 안타깝지만 많지도 않고 훌륭한 것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왜일까? 어제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건만 우리 사회에는 문제를 발굴해내고 문제로부터 해결책을 찾아내는 노력이 시원치 않다. 어제로부터 배울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선진 국민은 그 문제가 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문제로부터 교훈을 추출해내고, 다시는 유사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사구시적 대책을 마련한다. 이들에겐 어제의 문제가 곧 오늘의 지혜인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한국인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부터 생각해왔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으려고 문제를 은닉한다. 그런데 어떻게 문제로부터 교훈이 도출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도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노력들과 에너지들이 왜 해결책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연연세세 중간에서 증발되고 마는가? 그들의 문제 발굴 노력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격려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3만 여개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부속들을 일렬로 나열하면 상호간의 유기성이 형성되지 않는다. 이들을 유기성 있게 연결할 때에야 비로소 자동차라는 살아있는 시스템이 탄생한다. 이처럼 경영상에 나타나는 잡다한 문제들도 상호 유기성 있게 연결돼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스템 개념이 있는 사람이 관찰하면 해결책이 나오도록 문제를 형성할 것이고, 그것이 없는 사람이 관찰하면 의미 없는 항목들만 나열할 것이다. 수많은 곳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지만 이것이 해결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시스템적 접근(system oriented analysis)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시스템설계로 마무리된다.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연구는 아무런 의미다 없다.


시스템은 왜 중요한가? 괴력의 에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자동차라는 시스템은 괴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 자동차를 만든 사람들이 수백 명 단위로 모여 힘을 쓰면 별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괴력을 내려면 괴력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그 시스템으로 하여금 괴력을 발휘케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군사력으로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 때문이지 군인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많은 경영인들은 시스템을 통한 경영은 시도하지 않고 인위적인 통제와 감시로 일을 시키려 한다. 우리 기업들이 시너지를 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스템을 만들려면 학문적 이론(Theory)이 필요하다.“이론 없는 경험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한다.”품질이론의 아버지 데밍 박사가 들려준 말이다.“경험이 많다는 것은 고정관념의 벽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SONY의 신화를 창조한 아키오 모리타 회장이 들려준 말이다.“아이디어의 질은 수많은 참여에서 나오는 것이지 계급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아이디어를 의미하는 것이다”GE 회장이었던 잭 웰치가 들려준 말이다. 훌륭한 경영에는 학문이 동원돼야 하고, 모든 사원들의 새로운 지혜가 동원돼야 한다는 이른바 지식경영(Knowledge Based Management)을 강조하는 말들인 것이다.


그러면 지식과 지혜는 어떻게 동원하는가? 우리 속담에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지혜를 자극하고 수렴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의는 명령을 하달하는 판에 박힌 모임이고, 분임토의를 하면 좌충우돌 감정들만 상해가지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일본은 어떻게 지혜를 동원하는가? 모든 사원이 스스로를 사장의 입장에 세워 올코트 프레싱을 한다. 경영자들은 근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이 기술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원들의 기술능력을 향상시키고, 사원들은 분임토의(QCC)의 생활화를 통해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상하 계급의 벽을 허물고 이웃 부서간의 벽을 허무는‘벽 없는 경영“(Boundaryless Management)을 함으로써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게 하고 벽이 없는 토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창조했다. 시간경쟁에 이기기 위해 그는 문제를 연구과제로 돌리지 않고 각 조직으로부터 간부-실무자들을 모아 토의를 하게 함으로써 즉시 시행할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 그는 이를 work-out(미루지 말고 바로 해버리자)이라 불렀다. 이처럼 경영의 에너지는 지혜를 시스템적으로 동원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위 일본과 미국에서와 같이 지금은 전 사원이 경영자여야 하는 세상이 됐다. 매일 매일 스스로를 경영자 입장에 세우는 사람이 많아야 시너지가 발산되고 미래의 경영자들도 양성된다. 매일 매일 스스로를 사장에 입장에 세우면서 일하는 평사원.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유능한 경영인을 향해 성장할 것이다. 이러한 사원이 많은 기업이 가장 이상적인 기업일 것이다.


이 책은 최고경영자로부터 스스로를 CEO의 자리에 세우고 싶어 하는 평사원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모든 식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자가 연구한 시스템 이론들을 정리하고, 기업진단 등을 통해 경영현장에서 관찰했던 사례들 중 진수만을 골라 정리한 것이다. 모쪼록 모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9.5.

저자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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