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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인격 실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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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8 17:51 조회12,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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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실명제

어느 한 중견업체가 제조업체에 자동화기계를 맞춤복식으로 설치해주고 있었다. 이 업체가 설치해준 기계에 고장이 자주 발생했다. 클레임도 걸려오고 A/S비용도 많이 들었다. 이 회사 사장이 모 일간지 기자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를 듣고 있던 기자가 사장에게 지혜를 일러주었다. 기계 설치에 참여한 사원들의 이름을 그 기계에 새기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신문기자가 자기 이름으로 기사를 쓰지 않는다면 기사의 질은 떨어질 것이라는 작은 지혜를 응용한 조언이었다. 이 조언은 적중했다. 설치자들의 이름이 기계에 새겨지자 이들의 자세가 갑자기 달라졌다. 기계의 품질이 파격적으로 향상됐고 A/S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부실 시공 문화를 청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건설물에 10평이나 20평 정도의 미니박물관을 만들어 그 안에 건설물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인적 사항과 사진 그리고 각자가 맡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영구적으로 보존케 하는 방법이다.

미장이 일을 맡았던 사람에 대해서도 정중하게 기록을 남겨주고, 감리자들과 사업부서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서양에는 마을 옆에 납골당이 지어져 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찍은 사진과 간단한 이력들이 그 곳에 새겨져 있다.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가끔 들려 장미 한 송이씩을 꽂아준다.

후손들에게 납골당을 찾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바로 이 미니 박물관을 찾는 일일 것이다. 후손이 자랑스럽게 찾아줄 그 시설물을 함부로 다룰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분적으로나마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업체가 있다. 건설물에 이름을 새기기 시작하자 작업자들의 자세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한다.

법률, 제도, 규정, 정책들도 인격화될 필요가 있다. 이를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발표된다면 품질이 달라지게 좋아질 것이다. 비밀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무책임하게 만들어진 제도와 정책들로 인해 우리사회는 점점 더 망가져 가고 있다.

공무원 명부가 시중에 판매된다면 공무사회가 금방 달라질 것이다. 모든 공무원들의 사진과 인적사항들이 부처의 계단위로 나열되고 각 계가 담당하는 업무를 기록한 책이다.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질 때마다 국민들은 그 책에서 장한 공무원들의 얼굴을 확인하게 될 것이며,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면서도 그의 사진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열 그루의 나무와 열 조각의 돌을 정원사에게 맡기면 훌륭한 정원이 가꿔진다. 그러나 이를 공무원에게 맡기면 나열만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을 모두 공무원이 해왔다.

YS 정부가 가장 자랑했던 엑스포도 그랬다. 엑스포는 시설물의 나열에 불과했을 뿐 돗대기 문화의 상징이었다. 시설물만 설계하고 문화를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포공항의 구석구석은 먼지로 찌들어 있지만 싱가포르 공항청사의 구석구석은 예술적으로 가꿔져 있다. 화초가 있고, 앙징 맞은 분수가 있고, 조각품들이 놓여져 있고, 잔잔한 음악이 스며 있다.

공항 운영시스템도 싱크탱크가 설계했다. 공항방송을 통해 손님 수만큼의 택시가 들어온다. 승차대가 일곱 개여서 손님이 짜증스럽게 기다리는 일이 없다. 이처럼 건물을 설계할 때에는 기능과 예술과 문화를 다 함께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공무원이 검은 돈에 관심을 갖다 보니 설계는 최소한의 안전요소 마저 충족시키지 못할 만큼 부실했다. 최저가 낙찰제와 먹이 사슬 때문에 설계는 언제나 부실하게 변경됐고, 이를 숨기기 위해 대부분의 설계도는 파괴되고 없다. 이러한 정부가 문화를 설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인생에서도 태교가 중요하듯이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다. 설계에 소요되는 돈의 절대 액은 건설비와 일생간 총 보수비를 합친 소위 수명주기비용의 불과 1-3%를 차지할 뿐이다. 그러나 설계 하나에 의해 수명주기비용의 85%라는 엄청난 운명이 결정된다. 따라서 일본은 설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설계가 이렇듯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설계에 관여한 사람들의 인격은 언론매체를 통해서라도 노출될 필요가 있다.

옛날 거리에는 "말 탄 인격"이 있었지만 지금은 "차 탄 인격"이 있다.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엔 사람의 신체부위가 모두 노출됐다. 노출된 신체부위 만큼 인격도 노출됐다.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안 하지만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 매너를 다듬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체부위가 모두 차 속에 감춰져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격이 없는 것이다. 만일 차의 문짝에 주인의 얼굴이나 가족사진을 크게 새겨 놓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격적인 운전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기업의 인격을 코멘트 하는 사설연구소가 있다면 기업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하청업체를 함부로 대하는 업체, A/S에 무성의한 업체, 해외에서 남이 따놓은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 그리고 냉장고 제조 업체이면서도 냉장고를 수입 해다가 폭리를 취하는 업체들에 대한 인격들이 노출될 것이다.

200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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