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재해예방 및 사후처리 능력이 바닥났다. 그래서 국민의 생명은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확률에 의해 우연히 생존해갈 뿐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끔찍한 사고를 많이 당했다. 그 사고들은 모두가 인재였고, 반복된 사고였다.
지혜로운 민족은 사고를 당하지 않고서도 예방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남의 사고로부터고 교훈을 추출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고를 수없이 반복해서 당하면서도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진국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분석해서 지혜와 교훈을 추출하고,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한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누가 잘못했는지만을 따졌다. 처벌을 피하려고 공무원들은 문제를 은익하게 되고, 그래서 문제는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줄 모르는 것이다.
사고 및 재난 처리에 대한 미국의 예를 보자. 1980년도, 미육군은 3백 마리의 양을 산속에 몰아넣고 포탄을 쏘았다. 상처의 부위에 따라 양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죽어가는가를 측정했다. 이 자료는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얼마나 빨리 후송해야 하며, 부상 부위별로 치료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부여해야 하느냐에 대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사용됐다.
같은 기간에 미국 의료계는 "현장의사"라는 새로운 의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나가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환자에게 무슨 수술과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병원에 알리는 의사다. 어느 병원이 가용한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마련됐다. 환자가 후송되는 동안 병원이 선정되고 병원은 현장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술준비를 완료했다. 이들의 자세와 한국인들의 자세를 비교해보자.
삼풍참사를 당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근본 대책은 간곳 없고 사고를 이용해 공무원들이 자리만 늘렸다. 행정자치부에 재난관리국이 생겼고 지방자치단체에까지 공무원 수가 늘어났다. 이들은 팔다리는 없고 머리만 있는 조직이다. 많은 예산을 들여 구호장비를 샀지만 그 장비들은 창고에 방치된채 해당 공무원들은 작동 방법 조차 모르고 있다.
안전이라는 간판을 내세워 얼마나 많은 공조직들이 난무하고 있는가? 도로교통안전협회는 행자부 퇴직공무원들이 가는 곳이다. 천이백명의 공직자들이 먹고 사는 곳이다. 교통안전공단도 있다. 건설교통부 퇴직공무원들이 가는 곳이다. 여기에도 천사백명의 공직자들이 수용돼 있다. 산업안전공단, 전기안전공사, 개스안전공사, 시설안전공단 등 수 많은 정부산하기관들이 각기 천여명씩의 공직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문성도 없고 시스템도 없기 때문에 사고가 날 때마다 자기 부처의 책임이 아니라는 논리를 개발하는 부서들에 불과하다. 해마다 주민들이 사고 예상지점을 관할관청에 탄원해도 관청은 이를 묵살해왔다. 정부에 "사고가 나야만 쓸 수 있는 예산"은 있어도 "사고예방"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없다. 사고가 나기를 기다리는 식의 행정이다.
수많은 종류의 사고를 예방하거나 처리하려면 각종 사고에 대한 분석과 교훈이 체계화돼야 한다. 사고유형 별로 예방법과 처리법을 찾아내고 이를 행동절차로 체계화해야 한다. 이는 엄청난 전문성과 연구능력을 요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대통령 직속으로 연방비상관리처(FEMA)를 두고있다. 이 하나의 기구가 소방을 포함한 모든 재난을 관리하고 있다.
현대적인 사고는 복잡한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사고의 에방과 처리는 수백개 분야의 전문 지혜들의 결합을 요한다. 이 분야야 말로 수만명의 비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수 정예 전문가들과 시스템 현대화가 요구되는 곳이다. 공무원들의 이기주의를 위해 우후죽순 처럼 산재한 우리의 안전기구들은 다른 선진국들 처럼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