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예산 사용처를 보면 율곡사업의 제1목표가 방산업체에 돈을 부어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전력증강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목표가 애매하기 때문에 결국은 차린 것 없이 돈만 많이 썼다.
서울은 남한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백서는 가장 큰 위협이 [서울불바다]용 무기와 남한 전역에 살포될 화생무기라는 것을 잘 지적해 놓았다. 따라서 율곡투자의 최우선순위는 이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증강 사업을 보면 이러한 무기는 거의 들어 있지 않다.
과거까지의 개발사례는 예외없이 모두가 코미디였다. 조립품이 납품되고 나면 그 다음해부터 수리부품을 구할 수 없었다. 해외에는 희귀부품을 찾아내는 데 발빠른 공급자들이 있다. 이들은 부품을 예를 들면 수만 원에 사가지고 수천만 원에 팔아왔다. 이런 바가지 줄마져 끊기면 몇대의 장비를 분해해서 부품을 뽑아 정비용으로 사용했다.
구태어 이러한 과거 사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F-16기의 국산화 내용만 보아도 국산화의 허구성을 실감할 수 있다. 120대중 72대만 국산화 대상으로 돼 있다. 어느 한국업체가 매 부품당 72개를 납품하고 페기시키기 위해 [부품제조용 특수방산설비]에 투자를 하겠는가.
결국은 모든 하청업체들은 [부품]을 해외에서 직구매해다가 [구성품] 단위로 조립해서 삼성항공에 납품하고, 삼성항공은 이 [구성품]들을 받아서 항공기 단위로 조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찌기 1975년도에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수출 없는 방위산업은 시작하지도 말라는 확실한 지침을 주었다.
항공기는 30여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각 부품단위 마다 오파상들이 끼어든다. 하청업체와 삼성항공은 조립마진을 챙기게 된다. 지금의 원가규정에 의하면, 오파상이 부품을 비싸게 구입해 올수록 하청업체의 마진은 약 2배로 올라간다. 직접비 납품가가 100불이면 업체는 간접비와 이윤명목으로 200불을 보상받고, 직접비 납품가가 200불이면 400불을 보상받게 되어 있다.
삼성항공의 마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 군이 전투기 한대를 도입하게 되면 그 가격은 직구매비의 약 3배로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조립에 참여했던 모든 하청업체들은 그후 단 한개의 부품도 국산화해 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도대체 어디에 무슨 기술이 쌓인단 말인가.
G사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군용 전자기술업체다. 불과 3년전에 해안 전자장비를 국산화로 120대나 납품했다. 이 장비는 불과 100개 정도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는 하급기술 장비다.
그런데도 정해진 물량이 납품된 이후 지금까지 수리부속이 제대로 조달되지 않고 있다. 100%의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만 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장비를 왜 최고의 업체가 조립밖에 할 수 없는가. 한마디로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부품수는 몇개 안돼도 그 부품들을 만들 수 있는 하청업체들이 없는 것이다.
첫째,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 하청업체에는 이에 대한 부품기술이 거의 없다. 둘째, 120대 정도의 물양으로는 부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업체가 없다. 셋째, 업체가 부품을 만들어낸다 해도 한국엔 그 부품의 성능을 증명해줄 수 있는 시험평가 능력이 없다.
증명되지 못하면 팔 수가 없다. 누가 팔 수 없는 물건을 만들어 내겠는가. 역대 대통령이 국산화를 독려해왔지만 국산화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시험평가 능력부터 마련해 놓아야만 되는 것이다. 항공산업 육성의 당위성에 대해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한국엔 아직 [인프라]가 없는 것이다.
이 매우 간단한 원리를 모르고 역대 대통령은 과욕과 당위성만 앞세워 항공기와 같은 첨단 맘모스 장비를 만들어내라고 강요했다. 그 결과 그 엄청난 율곡예산은 밑빠진 독에 부어져 버렸다. 그 대가로 군이 얻은 것은 수명이 잛고, 값비싼 장비들 뿐이다.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업체가 기술축적을 명분으로 고가의 장비를 국산화했지만 남아있는 기술은 말 그대로 [제로]였다.
군은 지금 전투기, 헬리콮터, 중형수송기, 초등훈련기, 고등훈련기들과 같은 수많은 고가장비들을 줄줄이 국산화할 예정에 있다. 이는 세계적인 코미디이다. 미국의 년간 국방비는 한국의 GNP에 버금가는 2,700억달러다. 이 예산을 가지고도 미국은 그 간단한 대공 유도탄마저 유럽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미국군의 초등훈련기 소요는 711대이다. 그 많은 국방비와, 그 많은 소요를 가지고도, 미국은 개발비가 없어 스위스에서 실용중인 훈련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물며 지금 한국은 불과 100대 미만의 소요를 위해서 모든 종류의 대형사업을 줄줄이 국산화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예산을 이렇게 업체에 나눠주고 있으니 무슨 돈으로 북한의 [서울불바다] 위협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군은 지금 몇개의 방산업체에 대한 자금줄로 전락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 방위산업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 첫째, 최첨단 장비를 완성장비 위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미국이나 유럽국가들과 손을 끊고 러시아와 공동생산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장비라 해도 시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공동으로 생산한다는 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반드시 공동판매까지 보장돼야 한다.
러시아는 지금 많은 기술장비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자본이 고갈돼 있다. 서방에서는 금값보다 더 비싼 기술료를 따로 지급할 필요도 없다. [공동생산-공동판매]까지의 방위산업 라이프싸사이클이 완결되지 못하면 절대로 최첨단 완성장비 조립생산은 중지돼야 한다.
그런데 세계에서 이러한 협력체제를 수용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러시아 뿐이다. 러시아와 공동으로 생산해서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해외시장에 공동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옛날엔 부자 나라인 유럽국가들도 이렇게 무모한 조립생산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도 이렇게 무모한 일은 하지 않는다. 미국의 눈치를 극복할 수 없는 뱃장이라면 방위산업 육성을 포기해야 한다. 만일 대규모 조립사업을 지금처럼 미국업체들과 계속한다면 국민세금만 업체의 잔치돈으로 날라가고 방위산업도 전력증강도 모두 제자리 걸음을 면치못할 것이다.
둘째, 핵심기술을 연마하고 싶으면 미국장비에 대한 모방조립생산을 중지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 체코 등으로부터 가장 훌륭한 핵심기술을 찾아 그것을 소화하고 발전시켜 독자적인 부품업체로 발돋음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미국이나 유럽등에서 제조하는 완성품 생산에 협력업체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방산업체는 아직 없다.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업체도 없다. 1970년대 초기에 화포와 탄약등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 냈던 방산업체를 제외하고 이제까지의 방산업체는 거의가 다 이권 따먹는 업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혹자는 정비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조립생산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동차를 정비하기 위해 자동차 생산공장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적인 항공기 정비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해외 선진국에마다 정비공장을 차려놓고 정비용역을 팔고 있다. 이들중의 그 누구도 항공기 조립공장을 차리지는 않았다.
기술도입 조립생산비는 직구매비의 3배다. 이러한 비용을 치르려면 이 비용으로부터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태리를 제외하고는 유럽 선진국들도 미국으로부터 기술도입 생산을 해오지 않았다. 단지 이태리만 미국의 유도탄과 헬기에 대한 기술을 도입했다.
그러나 미국제품을 그대로 생산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미국제보다 더 훌륭한 무기를 만들어 중동에 수출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될 때에만 그 비싼 기술도입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군은 [그래도 방위산업은 육성돼야 한다]는 막연한 당위성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이 국가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확실하게 다시 설정하고, 어떻게 해야 방위산업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육성될 수 있는지를 분석해야 할것이다.
방위산업 정책에 대한 리엔지니어링 노력이 지금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방위산업 정책에는 목표가 있다. 한마디로 독자적이고도 자주적인 전력증강 목표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목표가 이렇게 애매했기 때문에 율곡예산이 모래위에 부어져 온 것이다.
2000.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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