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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 의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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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8 20:50 조회14,2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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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이야기


환자에게 훌륭한 의사의 존재는 가장 존경스럽고 성스러운 것이다. 실력 없는 의사, 사명감 없는 의사는 수많은 생명을 잃게 한다. 두뇌가 부족하거나 자기 생활을 버릴 수 있는 사명감을 갖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든 다 해도 좋으나 의사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인생관과 사명감은 결여됐고 돈은 벌고 싶고, 그래서 의사가 된 사람에겐 환자가 귀찮은 존재다. 그래서 많은 의사와 간호원은 불친절하고 환자의 아픔과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

어느 한 꼬마가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서울대학병원을 위시해서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의사들의 행태는 한결같이 신뢰할 수 없었다. 의사는 꼬마의 귀에 옛날 주머니 시계를 좌우로 번갈아 이동시키면서 소리나는 쪽 손을 들어올리라고 했다. 센스가 있는 꼬마는 잘도 알아 맞췄다.

미국 군병원을 찾아갔다. 병장이 꼬마를 청력 테스트실로 데리고 갔다. 데리고 가면서 온갖 말로 그 꼬마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병사가 실험 결과를 부모에게 설명했다. 상당한 수준의 청력이 상실됐으며 의사가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부 시스템에는 이상이 없고 외부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란다. 미군 병사가 한국 의사보다 훨씬 훌륭했다.

담당의사가 인체구조가 그려진 그림을 가지고 부모에게 나타났다. 병이 생기게 된 동기, 성격, 수술절차 그리고 수술에 뒤따를 수 있는 부작용 및 위험에 대해 친절하고 정중하게 설명했다.

첫 번째 의사가 수술을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수술이 잘못됐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다른 의사가 똑같은 매너로 두 번째 수술을 했으나 그 역시 실패했다. 이 두 의사는 매우 정중하게 사과를 한 후 자기들보다 우수한 의사를 다른 곳에서 초청해다가 병을 고치겠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새로 온 권위자는 현미경을 환부에 고정시킨 후 다른 의사들에게 환부의 진단결과에 대해 강론을 했다. 그는 행정 책임자에게 수술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가장 빨라야 한달 후였다. 그 꼬마의 부모는 한달 이내에 귀국해야 했다.

첫 번째 집도의가 이 사정을 말하자 그 권위자는 화를 냈다. "나는 이 아이 이외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아이의 병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한 내 손을 떠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나는 한국의사들과 같이 근무한 적이 많습니다. 이 아이를 그들의 손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첫 번째 집도의가 보호자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이 아이를 내게 맡기고 한국으로 돌아가시요. 내겐 사내 아이가 다섯이요. 이 아이는 셋째 아이 또래니까 잘 어울릴 거요. 마무리 치료까지 충분히 해서 서울로 보낼테니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 말을 듣고 있던 권위자는 날짜를 다음날로 조정해 주었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 꼬마가 불안해하자 보호자로 하여금 덧신과 모자를 쓰게 한 후 수술실까지 들어가 마취될 때까지 수술대 옆에 있도록 배려해 줬다. 수술이 두 시간 동안 계속되자 간간이 여의사가 자동문 밖으로 나와 보호자에게 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지어 보이며 윙크를 해 주었다. 잘돼간다는 뜻이었다.

회복실이었다. 간호사들은 아이에 대한 시중을 보호자에게 맡기지 않았다. 자기들의 고유 임무라는 것이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에게 밤새내 자식을 맡기자니 안심이 안됐다.

나는 꼬마가 밤새에 필요로 할만한 것들을 생각해서 통역 카드를 만들었다. 왼쪽에는 꼬마가 필요로 할 요구사항들에 번호를 붙여 한국말로 써놓고, 오른 쪽에는 영어를 써놓았다. 목이 마르다, 소변을 보고 싶다. 춥다, 배고프다 등 등.

그 카드의 사용법을 꼬마에게 설명해주고 나왔다. 이튿날 병원엘 갔더니 간호사들이 무척이나 반기며 나를 화제로 삼았다. 벨을 눌러 가보니, 꼬마가 필요한 사항 앞에 매겨진 번호를 가리키더라는 것이다. 그 카드가 없었다면 밤새내 말이 안 통해 난처했을 것이라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에게 아들이 딱 하나 있었다. 의사가 되어주기를 바랬지만 아들은 극구 저항했다. 선배부부는 그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아들을 그의 방으로 데려갔다.

"너 의사 되고 싶지 않지. 그치?"

"네"

"그럼 부모가 아무리 권해도 절대로 가지마. 알았지?"

". . . . . . "

그 녀석은 내가 그를 의사가 되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취지의 말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가 허를 찔렸다. 이제는 그가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나는 미국에서 있었던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뇌가 모자라거나, 자기 생활을 버릴 만큼 사명감을 갖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미국에서 보니까 의사들은 밥을 먹다가도 호출을 받으면 달려가더라. 한밤중에도 달려가고. 자기생활이란 정말로 없더라. 다급한 환자가 실력있는 의사를 만나는 건 구세주를 만나는 것이더라. 그런 의사는 평판이 나있고, 누구나 다 존경하더라. 그렇게 되려니 얼마나 희생이 크겠니. 하필이면 네가 왜 그런 희생을 해야 하니. 그러니까 너를 위해서나 미래의 환자를 위해서나 절대로 너는 의사가 되지 마라"

몇 년 후에 알아보니 그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2000.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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