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체제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몇 가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의 통일 정책을 포기하는 일이다. ‘통일’을 목표로 했을 때 정부는 ‘교류 협력’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북한이 눈치채지 못하게 북한 사회를 야금야금 개방시켜 보려는 속임수를 써왔다. 이를 모를 북한이 아니었다. 결국 정부의 이러한 통일 정책은 북한에게 불신감과 감정만 증폭시켜 주었다. 이는 보복을 불러들일 만큼의 엄청난 불장난이었다. 따라서 정부의 현 통일 정책은 즉시 폐기돼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의 통일원은 평화원으로 바꿔져야 한다. 한국에 해외 수입부를 만들어 보라. 해외 수입부 공무원들은 그들의 업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열심히 수입원을 찾아 수입을 증가시킬 것이다. 지금의 통일원을 그냥 두어 보라. 통일원 공무원들은 그들의 존재 가치를 돋보이게 하려고 통일의 목소리를 점점 더 키울 것이다. 북한을 개방시켜 보려고 갖가지 술수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결국 통일원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은 남북한 간의 긴장만 더욱 고조시키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통일원’ 이지만 실제 역할은 ‘긴장원’이다. 통일을 목표로 하면 평화가 깨진다는 사실이 바로 통일원의 역할에서 증명되어 왔다.
따라서 북한을 개방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중단돼야 한다. 남한이 설치면 설칠수록 북한은 문을 더욱더 굳게 걸어 잠글 것이다. 북한을 개방시켜 보려는 얄팍한 생각 때문에 우리는 북한에게 40억 달러어치의 경수로와 2억5천만 달러어치의 쌀을 지원해 주고도 모욕만 당해 온 것이다.
북한을 개방시켜 달라고 우리는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 다니면서 아쉬운 소리를 많이도 했다. 많은 돈도 길에다 뿌리고 다녔다. 그것을 부탁하느라 국가적 실리도 많이 양보했고 빈 가방만 들고 다니다 체면도 많이 잃었다. 이 모든 노력에 의해 북한은 지금 얼마나 개방되고 있는가. 개방은커녕 문만 더 굳게 잠기고 긴장만 고조돼 있지 않은가. 구도는 잡을 줄 모르면서 발로만 뛰어다닌 것이다.
쌀을 보내 준 YS에게 북한은 욕설의 수위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간첩을 남파하고 휴전선에 공격용 중무기를 증강 배치하면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에 남파된 간첩은 어떤 간첩이었는가. 남한의 주요 전략 목표에 북한의 대구경포를 유도하는 임무를 띤 관측용 간첩에게 사전에 묻어 두었던 무전기를 배분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이 아니던가.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정부가 북한을 살금살금 개방시켜 보려고 시도했던 행위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평화를 바라려면 우리는 북한을 가만히 놔둬야 한다. 남북한 관계의 구조 자체를 바꿀 능력이 없으면 북한의 말초 신경을 건드리는 못난 행동은 즉시 중지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에게 교류와 협력을 강조했지만 솔직하게 따져서 교류의 물결은 일방 통행일 뿐이다. 지금처럼 휴전선이 존재한다면 누가 그 휴전선을 넘어 다닐 수 있는가. 남한에서는 기업인들이 경제협력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다지만 북한에서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남한을 방문한단 말인가. 우리는 북한에 자동차를 타고 간다지만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무엇을 타고 온단 말인가. 우리는 1달러만 가지면 북한에 가서 잘 지내고 올 수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얼마의 돈을 가져야 남한에 와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단 말인가.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앞이 캄캄할 것이다. 시각이 뒤집히고 혼란과 봉기가 일시에 확산될 것이다. 지금의 상태에서 교류를 하자는 말은 북한을 일방적으로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말이 된다. 북한이 어떻게 이를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북한이 왜 화를 내지 않겠으며 왜 남한을 불신하지 않겠는가.
만일 북한이 지금의 위기를 대남 도발 쪽이 아니라 개방 쪽으로 풀어 나가기를 바란다면 남한은 숨을 죽이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한다. 자존심에 관한 한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예민한 나라가 아니던가. 이제까지 남한이 북한을 향해 던진 말들 중에서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은 말이 단 한마디라도 있었는가.
그 자존심 범위 내에서 그들은 개방의 위험수위를 적당히 조절해 가며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점진적으로 개방할 것이다. 일부 언론들은 미국과 일본이 북한 땅을 선점하고 있는데 한국을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통일원을 조급하게 만들곤 했다. 바로 이러한 근시안적 시각이 긴장을 고조시켜 온 것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조건은 오직 값싼 노동력뿐이다. 이는 임가공 업체에게나 매력일 수 있다. 그만한 노동력은 북한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사회 간접 시설이 전혀 없는 불모지에 어느 나라 대형 업체가 막대한 투자를 하려 하겠는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업체들은 당과 군이 경영하고 있다. 이들에겐 L/C 개념도 없다. 이러한 업체들을 어느 나라가 신뢰하며 거래를 트겠는가. 남한이 막대한 투자를 해서 사회 간접 시설을 건설해 놓아야 비로소 외국 업체들이 북한진출을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다. 북한보다 훨씬 더 조건이 성숙된 중국에도 아직은 진출하기를 꺼리고 있지 않은가. 만일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을 선점한다면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