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춘천대첩 재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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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1-10-10 10:38 조회1,594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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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춘천대첩 재현행사
2011년 10월 8일 12:00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변 수변공원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바로 우리국군이 6.25 전쟁발발 최초로 공산적군 2군단을 격멸한 이름하여 "춘천대첩" 재현 행사였다. 나는 대한민국 국군 베트남 참전유공전우중앙회 안보교육위원장 자격으로 베트남 참전 유공전우회 강원지부(지부장 박희창)의 임원들과 이 행사에 함께 참석하였다. 전체적 행사는 12:00시 부터 17시 30분 까지 진행되었다.
우리육군 1군사령부 산하 2군단(군단장 육군중장 박선우)의 주관으로 군단장의 직접 진두 지휘아래 훌륭하고도 성대하게 치러졌다. 2010년 봄 6월 24일과 25일에 9월 16, 17일에도 이 행사가 치뤄졌고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계속되는 군. 관. 민이 일치되는 안보국방 정신고 취의 최대 라 할수 있는 행사이다. 각계의 인사가 다 모인 이날 의암호반 수변공원(중도선착장 옆)은 춘천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김일성 불법남침의 새벽 4시 서해 옹진반도에서 동해 양양 기사문리에 이르기까지 전역에서 야욕에 찬 김일성이 소련의 사주를 받고 이에 힘 입어 2년 6개월 전쟁준비 끝에 기습 감행된 남쪽으로의 불법남침이 곧 우리대한민국의 뼈아프고 통곡 할 수 밖에 없는 6.25 전쟁의 역사이다. 이로 인해 3년동안 전국토는 피로 물들었고 3년이 지난 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을 맞은 뒤 장장 6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과 첨예하게 대치하는 준전시 체제에서 이루어진 춘천에서의 국민 교육의 효과가 크게 담겨진 "춘천대첩" 재현 행사였다.
6.25 당시의 우리국군과 그리고 춘천농고생들과 춘천사범 학도병들과 경찰과 우두동 제사공장 여직공들과 시민 모두가 혼연일제가 되어 3일 동안이나 최전방 요새지 춘천지구를 사수하였다. 이미 서울은 북괴군에게 의해 점령당하였고 함락되지 않은 춘천지구로 양수리 홍천을 거쳐 북괴군들은 춘천지구를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처절한 전쟁 지연 저항속에 낙동강 최후 저항 교두보가 구축되는 계기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춘첩대첩이었던 것이다. 춘천대첩의 영향받아 드디어 낙동강 전투 특히 다부동 전투에서 적을 분쇠하는 우리 국군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군의 사기는 다시 살아나 10월 1일 우리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한 것이다. 최초 38선 돌파! 이날을 기념하여 10월 1일 우리나라 "국군의 날"이 제정되었다.
이번 2군단 주최의 춘천대첩 재현생사는 바로 이런 역사를 담고 있는 행사였다. 심일 중위(당시 소위)가 이끄는 육탄 5용사가 적의 자주포를 맨몸으로 막아 기세를 높이는 장면은 눈물겨웠고 장렬하였다. 시민들은 그때 저렇게 자기 목숨내 놓고 나라구하는 모습에 놀라워 하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삼지어 내 옆의 여학생들 까지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춘천농고학생들이 하얀 우리의 무명바지저고리 한복을 입고 거기에 너나 모두가 지게를 지고 춘천사범 남여 여학생들이 머리에 우리국군을 도울 물건들을 이고 수레끌고 우두동 제사공장 여직공들이 빗발치는 총성을 뚫고 적을 막느라고 우리국군들이 밥해주는 식사병도 없는 마당에 아침밥도 지어 먹지 못고 진지에서 적을 향하여 사격하는 우리국군들의 허지긴 배를 채워 주려고 주먹밥을 이고 날라 우리국군을 지원하였다. 경찰들이 이리피하고 저리피하는 피난민 대열을 보호하며 시민의 질서지키키에 안감힘을 쓰며 보호하여 이미 시내로 일부 침투된 적의 간첩 푸락치들 색출과 그리고 우리 육군을 지원 사격하는 모습과 혼란속에 군. 관. 민의 일치되어 갑자기 밀어닥친 국난을 막으려는 춘천고장 국민들은 혼란가운데 빠진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이렇게 구국의 열정을 드높혔던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참으로 이대목은 엄숙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회고이다. 춘천대첩의 한장면 또 한장면을 상상해 보아도 참으로 춘천시민의 가슴속에 스며있는 나라지킴은 이렇게 위대한 역사를 지금도 6.25 전쟁발발 최초의 우리국군의 승전고 울리는 장면을 기리기리 안고 있다. 3일간 이라지만 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우리나라를 지키려하는 절박한 시간 시간들은 너무나 숨가쁜 애국대열 안에서 길고도 길게 지켜진 혼연일체의 대한민국 국난위기 극복의 3일간이었다 할 것이다.
생존하신 참전노병들이 탄 차량 다섯대가 사열대 앞를 지나 우리국군이 정렬한 연병장을 돌때 시민들은 당시의 구국용사들에 눈물 흘리며 박수를 쳐 감사함을 표했고 당시 춘천대첩이후 춘천지구에서 목숨걸고 도와준 유엔 참전군 에디오피아 출신 노병들이 탄 짚차가 지날 땐 춘천시민들은 열광적으로 감사박수를 쳐 드렸다. 면면의 전투 장면들은 처절했고 무시무시한 포성과 총소리에 어린 학생들은 숨도 제대로 내 쉬지 못하는 무서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국군이 적들을 육탄적으로 섬멸할 땐 놀랍고 눈물 흘리는 가운데서도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모두들 감격스럽게 벌떡 일어나 행사에 참가한 학생과 모든 춘천시민이 든 양손의 태극기를 휘두르며 "대한민국 만세" 를 하늘에 치 닿을 기세로 목청높혀 외쳤다.
살아 생전에 목숨걸고 나라지킨 이들의 영령께 눈물흘려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는 시민들의 가슴은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보는 애국의 열정과 감사하는 표정으로 이어졌다. 이 행사를 친히 주관하신 2군단 군단장 육군중장 박선호(朴宣宇) 장군과 진행과정에서 혼연일체된 장 사병들 모두에게 머리숙여 깊은 마음으로 경의를 표한다. 또한 우리국군의 철통같은 국방의무 수행 수호 자세를 감사하며 후방의 국민들이 각자 위치한 자리에서 맡은 바 자기일을 열성으로 다하는 애국정신 고취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2011. 10. 8(토) 화곡 김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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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여섯번째로 추천을 올립니다.
그리고 추천합니다.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의 기획씨리즈 그때 그이야기 제2화 최갑석 당시 상사의 제2화話 장군이된 2등병 씨리즈중 152화 6사단 7연대 장 임부택 중령의 춘천방어전투와 16포병대대 대대장 김성소령의 활약과 춘천중학교(당시 중고 분리전) 춘천여중 춘천농중 춘천사범 학생들의 헌신적 협력의 역사를 상세히 알수 있습니다.
춘천대첩의 주인공들이 기억되어야 합니다. 너무 재미있어 한번잡으면 끝까지 다 봐야 합니다.ㅎㅎㅎ..
http://kookbang.dema.mil.kr/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화곡 김찬수 선생님 춘천대첩 재현행사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일소위등 적 전차파괴의 특공용사들이 기억된것은 참으로 뜻이 깊습니다.
주제넘은 사족 같습니다만 내년행사에는 전군이 다 밀릴때 당시 춘천방어전을 담당했던 6사단 7연대(당시 연재장 임부택중령)와 16포병대대(당시 대대장 김성소령) 방어전투가 가능하도록 치밀하게 준비한 보급관이며 춘천시민동원에 헌신한 최갑석상사(2등병에서 장군까지 진급)등 가 기억되고 초청되어 동참 했으면 합니다.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송석참술님 참으로 소중한 제언을 해 주셨습니다. 님의 말씀을 내일 당장 춘천대첩현양회의 명예회장님 김동기(金東基) 선생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