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승만박사의 독립항쟁 사실 자체가 방송되는 것을 싫어한 좌익의 방송 방해
역시 좌익은 진실을 두려워 한다. 그들의 거짓말은 진실 앞에선 항상 무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익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싫어한다. 이번에 좌익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다큐프로그램 방송을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9월28일(수)~9월30일(금) 밤 10시에 3회 연속으로 KBS1에선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이라는 프로를 방영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에 대한 다큐프로이다. 이 프로는 원래 지난 8월에 방송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좌익단체에서 '독재자 이승만 美化반대'라는 슬로건을 걸고 KBS에 대해서 압력을 행사하였다. 결국 8월 방송은 하지 못했다.
28일 1회째 방송은 구한말 청년이승만시절부터 일제시대와 해방순간까지의 이승만 박사의 일생을 조명했다. 내용은 인간 이승만에 대해서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잘한 점과 잘못한 점 모두 그 내용을 다큐형식으로 방송했다. 그런데도 좌익은 이 방송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화라고 왜곡했다.
그동안 좌익들은 이승만대통령은 친일파라고 떠들고 매도해왔다. 그런데 이번 방송에선 이승만 박사의 독립투쟁의 역사가 그대로 방송되었다. 좌익에겐 이승만박사의 독립투쟁사실이 국민들에게 노출되는 것 자체가 싫었을 것이다.
2. 결단력의 청년 이승만
구한말 청년 이승만은 고종폐위운동으로 투옥되었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反체제 인사였다. 이 사실 자체를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른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과거제이며 이런 과거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청년 이승만은 생각했다 |
1894년 과거제가 폐지되자 청년 이승만은 그것은 영어와 서양문물을 배우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십수 년동안 논어 대학 맹자 등 漢學에 매진하였던 청년이승만은 서양 新학문을 배우기로 결심하였다. 이것은 청년 이승만의 수많은 결단력의 시발점이었다.
상해임시정부의 수립과 그과정에서 애국지사들간의 알력과 이합집산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방송했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당시 애국지사들간의 알력이었다. 목적은 대한독립이지만 그 추진과정에서의 노선차이로 서로 반목하는 모습이다. 오늘날의 우파 애국단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대일무장투쟁노선의 박용만, 인재양성론의 안창호, 외교노선의 이승만의 노선차이는 당시 독립운동단체들간의 암투로 발전되었다. 특히 해외 독립운동의 거점인 하와이에서의 박용만과 이승만의 헤게모니 장악과정은 지금까지 그 어떤 다큐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내용이다.
3. 독립운동가들의 갈등
1913년 이승만은 구국활동을 하다가 함께 투옥된 적이 있는 박용만이 정착한 하와이로 건너갔다. 거기서 이승만은 한인기독학원과 한인기독교회를 운영하면서 <태평양>이라는 잡지를 발간했다. 잡지를 통해서 한국이 독립하려면 서양열강, 특히 미국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외교노선을 주창하였다. 그 때문에 무장투쟁노선을 주장하던 박용만과 심한 갈등을 빚은 것이다. 대립은 이승만의 동지회와 안창호의 국민회 사이에서도 일어났으며, 두 사람의 갈등은 1925년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에서 이승만이 먼저 지내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용만의 대일무장투쟁은 당시 일본의 군사력을 감알할때 현실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점이 이승만박사와의 갈등요인이었다. 물론 러일전쟁부터 1차세계대전을 전후한 기간까지 미국과 일본은 동맹관계였다. 따라서 이승만박사의 미국 정부에 대한 독립외교도 한계점은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박사에겐 한가지 능력이 있었다. 바로 국제적 감각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지지를 얻는 순간은 미국과 일본이 적대적 관계에 놓이는 시점임을 알았다. 그것이 바로 2차 대전의 태평양 전쟁이다.
4. JAPAN INSIDE OUT
이승만박사의 예지력이 증명된 책이 있다.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는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하기 전에 발간된 책이다. 이 책에서 이승만 박사는 일본군국주의의 정책은 필히 미국과 전쟁으로 귀결될 것임을 예측하였다. 이 책이 발간될 당시엔 미국내 반전주의자들에 의해 무시되기도 했지만 일본과의 전쟁은 이승만 박사의 명성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도 되었다.
4. 일제 독립투쟁에 거의 모든 분야에 관계했던 이승만
만민공동회,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 美OSS와 광복군의 한반도 진공작전. 모두 일제 강점기 독립활동의 일부다. 이런 독립운동의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이승만박사는 미OSS부국장인 굿펠로우대령과 협력하여 일본군국주의에 맞섰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을 이번 KBS에선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 이승만'을 통해 방송하였다.
미 OSS요원으로서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에 이바지 한 대표적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