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해외로 출장 나온 평양 출신 엘리트와 전화통화를 했다.
현재 중앙기관에 근무하는 그는 나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믿음직한 소식통이다. 최근 북한 상황을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첫 마디가 “ 평양은 지금 심리적인 무정부 상태다. 더는 위엄 있는 정부도 복종하는 시민도
없다.” 고 답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하자 불쑥 이렇게 말했다. 평양의 지방화가 이미 시작됐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사실이냐고 거듭 물어보기까지 했다. 아마 남한의 북한학 학자들은 “ 평양의 지방화” 라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를 것이다. 북한에서 살아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도, 그래서 아무 감흥도
못 느낄 말이다.
북한에서의 배급제란 통제를 넘어 정권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다.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그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도인 평양시민에 한해서는 반드시 배급을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 평양만은 배급제도를 유지하여 그 정치지역 모델로 전국에 이념명분과 충성질서를 세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김정일정권은
평양정권으로 전락됐다.
배급소들이 이미 다른 용도의 창고로 방치 된 지방들에선 중앙의 지시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군량미를 바치라면 자기들은 배급받는 평양시민이 아니라고 항의했고, 당 강연회에 모이라면 당장 먹을 쌀이 없다며 시장으로 출근했다. 배급이 전부였던
주민들이어서 복종의 식량이던 쌀이 항거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결국 지방부터 시작된 생존 시장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상징적으로만 존재하던 평양의 계획경제를 점령했고. 심지어는 수도시민의 자부심마저 붕괴시켰다. 반면 배급의 수도였던 평양은 상대적 속박감과 함께 그만큼 삶의 질도 떨어졌다. 평양의 지방화란 이런
무정부적 혼란과 민심이 평양에도 옮겨졌다는 뜻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후 대북지원이 끊기면서 평양시가 거의 2 년 동안 시민들에게 배급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직장에서 주던 배급표가 휴지처럼 되고, 화폐개혁 실패로
월급까지 무의미해면서 무너진 댐 마냥 기관이탈 인원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평양에서 추방시키겠다고 협박해도 어디가나 돈만
벌면 되지 하는 반발의식에 좀처럼 먹혀들지 않는다고 한다.
간부들까지도 제 살 구멍을 찾느라 중앙기관이 밀집된 평양은
그야말로 부패와 비리의 아성이 됐다고 한다. 평양까지 이 정도 와해되니 김정일은 독재자라고 하기엔 무색할 만큼
초라해졌다고 한다.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평양시민들은 돈 벌 개인궁리만 하고 앉아 있는데 김정일의 지시들은 아직까지도 수도건설, 군대지원, 혁명정신과 같은 옛 말 같은 집체주의를 강요해서 더욱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더욱이 김정은 3 대세습 선언은 장기정권에 익숙 된 주민들에게 정권변화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주어 충성도를 크게
추락시킨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김정일은 숙청도 예전처럼 제 멋대로 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한다. 얼마 전 보위국장 류경을 숙청 할 때에도 과거 같으면 그의 연고자들까지 찾아 싹쓸이 했겠는데 국장 외 1 명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평양시 배급이 중단되면서 기관 자체 식량 해결을 허용한 결과, 그 사이 기관이기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의 결속력이
생겨서라고 한다.
얼마 전 통일부가 북한은 남북대화 중단으로 매해 5 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했는데 내 생각엔 50 억 달러가 더 넘는다고 본다.
북한체제가 얼마나 취약하면 이명박 정부 2 년에도 이렇게 휘청거린다. 대북지원 단체들은 대북지원 중단으로 대량아사 현상이 다시 발생한다고 하지만 이는 북한 실정을 왜곡하는 것이다.
시장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북한 상황은 전혀 다르다.
한 달 내내 출근해서 배급을 받느니, 차라리 시장에서 2, 3 일 뛰면 그 돈으로 쌀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국민의 대북지원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대북지원 쌀은 주민식량이 아닌
통치식량이다. 외부지원이 차단되면 오늘날의 아사자는 북한 주민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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