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국인의 북한 여행기 1시간 반 동안 인간이 연출한 LED화면… 저학년 초등학생들의 童音에 마음이 아팠다"
한 중국의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북한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8월 14~17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 네티즌은 당시의 여행 소감을 블로그(http://blog.sina.com.cn/renyingqi)에
연재했고,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번 여행노선은 베이징(北京)→단둥(丹東)→신의주→평양→판문점→묘향산→신의주→
단둥(丹東)→다롄(大連)→웨이하이(威海)→베이징(北京)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베이징 역에서 15분 정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북한에는 1년 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아리랑을 보기 위해서다.
북한은 정말 신기한 국가다. 길거리에는 모르는 글자가 자주 보였다.
당시에는 북한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지금은 뉴스의 내용 정도는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을 보니(개혁개방 전에) 중국이 생각나면서 과거로시간여행을 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3박 4일의 여행 일정동안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단둥(丹東)에서 북한 여행에 관한 광고가 많이 걸려있는 국제열차를 탔다. 신의주까지는 5분정도 걸렸다. 북한의 비자 발급은 단체로 이뤄지고, 중국에 들어갈 때 다시 회수했다. 여권에는 오직 단둥 출국(出丹東), 단둥 입국(入丹東) 도장만 남는다.
압록강을 건너가는 중조우호대교다. 중국 쪽에는
높은 빌딩이 많이 있었지만 북한 쪽에는 낮은 건물만 몇 채 있을 뿐이었다.
신의주에서 몰래 찍은 사진이다. 기관차 앞에는 '3대혁명만세'라는 구호가 붙어있었다.
기차 대기실이나 내부, 북한의 전역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김일성 부자(父子)의 사진을 걸려 있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북한 출신 가이드가 "위대한 수령 xxx주석의 령도 하에서"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마다 이러한 느낌은 더 강렬해졌다.
이 사진은 열차 화장실에서 몰래 찍은 것이다.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동안에는 촬영이 금지됐다. 이 사진은 평양으로 가는 길에 지나가는 기차역이다. 사실 이 사진에는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그냥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평양의 모습만을 외부사람들한테 보여줄 뿐이다.
평양역을 떠날 때 찍은 사진이다. 평양에서 신의주로 가는 열차는 하루에 한 대밖에 없다. 이 국제열차에는 두 개의 귀빈 칸이 있는데, 북한의 고위 인사하고 우리와 같은 외국
관광객들만 탈 수 있다. 그렇지만 녹색으로 도색된 '귀빈열차' 안의 시설은 중국 열차의 상등석 정도였다.
북한에서 기차를 탈 때에는 국가기관 혹은 당 차원의 소개편지(허가증)를 받아야 한다. 열차에 승차한 이후에는 승무원에게 소개편지와 기차표, 신분증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만 관광객을 직접 관리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내 옆자리에는 북한 가이드가 두 명이나 같이 앉아 있었지만 말이다.
열차의 출입문 앞에서 여러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귀빈열차를 타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일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배웅하는 사람들의
딱딱한 모습을 보니 예전에 봤던 역사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기차역 대기
로비다. 여기에는 관광객이 많았고, 북한 사람은 조금밖에 없었다. 북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서는 큰 소리로 얘기하면서도 관광객들에게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김정일의 어록들이 적힌 카드도 있었다. 카드에는 어록에 대한 설명글과 소감문이 적혀 있었다.
평양역의 사진이다. 실은 건물의 정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가이드에게 저지당했다. 평양역은 무척 당당한 건물이다. 김일성의 초상화가 건물 한가운데 걸려 있다. 김일성의 찬란한 웃음이 아직도 북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에 북한을 여행하면서 몰래 찍은 사진이 많다. 중국에 돌아왔을 때 메모리 카드 두 장이 꽉 채워졌다. 대부분의 사진은
작은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쓸 기회는 없었다. 가이드로부터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의주를 떠날 때에는 갑자기 국경심사가 엄격해졌다. 북한의 직원은 대학교 입학시험의 감독관처럼 내 바지까지 샅샅이 검색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메모리 카드를 숨겼다. 감독관은 내 가방을 털어서 사진기 안에 찍힌 합법적 사진도 검색했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가 담긴 전용가방은 검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감독관은 아마 이 가방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북한 아리랑을 보고 싶은 지 이미 1년 되었다. 이 공연 연출은 8~10월까지다. 그래서 내가 이 기간에 북한에 여행으로 왔다. (비용 중국 위안화 800원) 나는 '하루 종일 사회주의특색'이 있는 열차를 하루 타고 평양의 5·1체육관에 도착했다.
내가 북한에 가기 전에 이 연극은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킬 수 있는 연극이라고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직접 현장에 가야만 이런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초중등 학생들과 다른 연출자를 합쳐서 무려 공연자가 10만 명이다.
뒤에 문자는
LED모니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봤을 때 LED인 줄 알았다. 그 '색채 판' 뒤에는 300여 명의 학생이 있다. 1시간 반 동안의 연출에서 이 '색채 판'들이 다양한 화면으로 바뀌었다. 몇 초 동안에도 그림이 하나 둘 바뀌었다. 그림을 바꾸었을 때 "서~서" 소리가 나와서 등이 시릴 정도다. 수천 명의 학생이 책장을 넘기면서 LED화면 버금가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느낌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다.
아리랑은 평양 5·1체육관에서 진행됐다. 이 체육관은 15만여 명의 관중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연출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10만 명이다. 그리고 북한 가이드가 아리랑을 설명해줄 때는 항상 큰소리로
이야기하면서 '10만 명의 연출은 조선의 자랑'이라고 강조했다.
배경화면이 바뀌는 사이에 연출자들의 고생스런 표정이 너무 잘 보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화면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있는 (김일성)
웃음이 나온다. 이는 북한 여러 곳에서 다 볼 수 있는 화면이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아마 저학년 초등학생인 것
같다. 그 아이들이 나오면서 어린 목소리(童音)가 들려서 마음이 슬프다. 그림에서는 다시대국(大國)의 꿈을 그리고 있다.
이 연출을 보고 나서 이 '비료폭포'라는 말을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느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나한테 그 한글의 뜻을 번역해줘서 내가 많이 놀랐다. 왜냐하면 그 말의 뜻은 '비료가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말이라고 한다.
공연장 밑에서 요소(尿素 비료의 주요성분), 요소, 요소라고 계속 이어졌다. 그만큼 비료가 절실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을 보고 표현방식이 너무 착실하다고 생각했다. 이 비료가 없는 국가에서 그들은 간절히 비료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부분은 충족한 생활을 표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지만 색깔이 좀 어둡다. 그런데 연출에서 보면 어두운 그림인 것 같다.
위 사진은 다양한 잡기 공연의 연출사진이다. 2012년은 김일성탄생100주년이다. 100주년은 북한사람들의
마음속에서 2012년의 목표는 매우 거대한 것 같다.
화면 중에 높이 그려진 것은 바로 길이 170m의 주체사상탑이다. 그 후에 나는 평양에서 실제로 이 탑을 관람했다.
다음은 태권도 공연이다. 올해에는 아리랑 속에서 많은 중국식 특색이 나왔다. 이는 독자 스스로 추측해보라.
(역주: 김주석은 20년 동안 만주의 폭설에서 투쟁했다.)
여러분들이 다 잘 아는 중국어다. 외국에서 중국어를 보면 친밀감이 느껴졌지만 감각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이 연출 장면에서 박수 소리가 계속됐다. 왜냐하면 여기 관광객들은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역주: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중국혁명세대 그리고 령도자께 최고의 경의를 표하자!)
여기 화면은 중국어가 먼저 나온 다음에 조선말이 나온다. 이를 보면 배경화면에 있는 3만 명의 어린이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역주1: 중조우호관계 이어진다 역주2: 평화 되고 발전한 사회를
구축하자)
이 중국어문자가 처음 나왔을 때 현장에서 유명한 음악 '아리랑'이 나왔다. 그리고 북한사람들이 이 노래를 중국어로 불렀다. 계속 힘들게 춤을 추고 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나는
아리랑을 끝까지 봤지만 조선어가 있는 부분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연출내용을 보니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직 있다. 공연자 10만 명의 꿈은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 공연을 봤을 때 관중석 뒤에 유럽 사람이 있다. 표정은 모두 피곤해 보였다. 옆에 있은 아이도 이미 엄마의 품속에 잠을 자버렸다. 이 아이는 아마 이 아이들의 꿈을 이해 못하는 모양인 것 같다. 이 아이의 아름다운 금색머리, 조용한 얼굴을 봤을 때 이 아이가 현장과 잘 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공연 출연자들이 그 아이 옆에 지나갔을 때 자주 몰래 아이의 얼굴을 훔쳐보곤 했다. 그들은 모두 신기해했다.
◆판문점에서 바라 본 한국 혹은 남조선
북한 여행 첫째 날에는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밤에는 평양에서 아리랑을 관람했다. 우리는 밤 10시쯤 호텔에 도착해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6시쯤 호텔의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깼다. 두 시 간 동안 관광버스를 타고 판문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는 북한의 가이드가 학교 수업만큼이나 열심히 설명했지만 우리는 모두 잠을 자버렸다.
시멘트로 만든 중앙선을 건너가면 바로 한국이다. 판문점에 오니 '一步之__(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깝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아! 그런데 북한에서는 '한국'이라는 명칭 대신 '남조선'이라고 말해야 한다.
관광객은 이쪽 문을 통해서 건물에 들어간다. 이 건물에 들어가면 분계선의 제한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긴 세월이 지나면서 분계선 양쪽에 있는 사람들 간 세계를 보는 시각에 얼마나 차이가 생겼을지 궁금했다.
건너편은 바로 한국이다. 안내를 맡고 있는 인민군 장교는 "오늘은 관광객이 없어서 저쪽(한국 측)의 군인이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