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대로 북괴 두목 김정일에게 이길 수 없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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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오 작성일11-08-15 14:55 조회1,358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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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내 나이 스물 일곱살이던 그 해 2월 어느날,
당시 어느 건설공병단의 육군 이등병이었던 나는, 오기에 찬 정의감으로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김계원 대장 각하'께 겁도없이 "우리는 절대로 북괴 김일성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는 건의서를 올린바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교무과 직원으로 근무하던 입장이었는데, '군에도 못간 청년이라면, 출세는 커녕 장가도 못 갈 것으로 여겨 그 나이에 지원하여 육군 이등병이 됐고, 그리하여 그 부대에 배치됐던 것이다.
그러자, 당시 육군본부 헌병대에서는 김종오 이등병을 묶어갔음은 당연지사였고, 바로 그 며칠 뒤 나는 육군본부 정훈감실을 거쳐 국방부 정훈국 전우신문 기자가 되어있었고, 그 신분으로 3년만기의 육군병장 계급으로 병역의무를 깨끗이 마친 것이다.
그로부터 40 여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위의 제목과 같은 글을 써야하는 실의에 빠져있었다.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이 왜 이지경에까지 무너져 내렸단 말인가?' 하고 분통이 터져서 하는 얘기다.
오늘은, 8.15 광복 그 66주년의 아침이라,
06시에 창밖에 태극기를 내다 걸고는 아침 산책길을 1시간여 다녀왔다. 그리고 07시, 그 시간까지 아파트단지 8개동의 700 여세대라지만 우리집 창가에서만 태극기가 외로이 나부끼고 있었을 뿐, 그 외엔 어느 창가에서도 태극기가 보이지 않았다. 허탈했다기 보다는 차라리 분노 스러웠다.
이곳은 충북 음성,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출생지이자, 마침 어제(8/14) 그가 금의환향했다며 이 지역사회가 온통 시끌벅적 거렸음은 당연지사였었지만, 오늘 새벽 그 반기문로의 양편엔 가로등이며 가로수마다 밤새 비맞은 태극기가 늘어져 있었지만, 불과 30 여미터 곁에 나란히 선 우리 아파트 단지에선 8.15의 광복 기념일인데도 태극기 게양은 이시간 현재 거의 제로상태였다는 얘기다.
마침, 8.15를 기념하는 오찬 모임에 나갔다가 돌아온 오후 2시 무렵,
다시 동료 한 분과 같이 아파트단지 8개동을 둘러 봤다. 각 동(棟)마다 두 서너 창가에서 태극기들이 펄럭이고 있었고, 내가 거주하고 있는 104동엔 10층의 내 집 창가에서만 나를 반기고 있었다. 105동엔 그나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제헌절(7/17) 때도 그렇더니......
나는 여기쯤 해서 거의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국경일에 태극기 게양을 잊어먹는 국민들, 그러고도 당연지사로 여기는 국민의식,
거기다가 거꾸로된 태극기를 흔드는 대한민국 대통령(베이징 올림픽때의 이명박) 이고 보면,
내일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어찌 염려치 않을 수 있으랴!!
만약,
북괴가 그들의 국경일이나 경축일에 그들의 인공기를 게양치 않는 인민이 있었다면 어떻게 처리 했을것인가는 미루어 짐작을 하고도 남지 않는가?
그렇다면,
8.15 광복 경축일에 태극기를 게양치 않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의 국민의식이,
9.9절에 100 %의 인공기를 게양하는 북괴집단의 대남 야욕을 무슨 수로 감당해 낼 것인가는 그 해답이 자명할 것이 아닌가 이말이렸다.
11.08.15.
김종오.
당시 어느 건설공병단의 육군 이등병이었던 나는, 오기에 찬 정의감으로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김계원 대장 각하'께 겁도없이 "우리는 절대로 북괴 김일성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는 건의서를 올린바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교무과 직원으로 근무하던 입장이었는데, '군에도 못간 청년이라면, 출세는 커녕 장가도 못 갈 것으로 여겨 그 나이에 지원하여 육군 이등병이 됐고, 그리하여 그 부대에 배치됐던 것이다.
그러자, 당시 육군본부 헌병대에서는 김종오 이등병을 묶어갔음은 당연지사였고, 바로 그 며칠 뒤 나는 육군본부 정훈감실을 거쳐 국방부 정훈국 전우신문 기자가 되어있었고, 그 신분으로 3년만기의 육군병장 계급으로 병역의무를 깨끗이 마친 것이다.
그로부터 40 여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위의 제목과 같은 글을 써야하는 실의에 빠져있었다.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이 왜 이지경에까지 무너져 내렸단 말인가?' 하고 분통이 터져서 하는 얘기다.
오늘은, 8.15 광복 그 66주년의 아침이라,
06시에 창밖에 태극기를 내다 걸고는 아침 산책길을 1시간여 다녀왔다. 그리고 07시, 그 시간까지 아파트단지 8개동의 700 여세대라지만 우리집 창가에서만 태극기가 외로이 나부끼고 있었을 뿐, 그 외엔 어느 창가에서도 태극기가 보이지 않았다. 허탈했다기 보다는 차라리 분노 스러웠다.
이곳은 충북 음성,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출생지이자, 마침 어제(8/14) 그가 금의환향했다며 이 지역사회가 온통 시끌벅적 거렸음은 당연지사였었지만, 오늘 새벽 그 반기문로의 양편엔 가로등이며 가로수마다 밤새 비맞은 태극기가 늘어져 있었지만, 불과 30 여미터 곁에 나란히 선 우리 아파트 단지에선 8.15의 광복 기념일인데도 태극기 게양은 이시간 현재 거의 제로상태였다는 얘기다.
마침, 8.15를 기념하는 오찬 모임에 나갔다가 돌아온 오후 2시 무렵,
다시 동료 한 분과 같이 아파트단지 8개동을 둘러 봤다. 각 동(棟)마다 두 서너 창가에서 태극기들이 펄럭이고 있었고, 내가 거주하고 있는 104동엔 10층의 내 집 창가에서만 나를 반기고 있었다. 105동엔 그나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제헌절(7/17) 때도 그렇더니......
나는 여기쯤 해서 거의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국경일에 태극기 게양을 잊어먹는 국민들, 그러고도 당연지사로 여기는 국민의식,
거기다가 거꾸로된 태극기를 흔드는 대한민국 대통령(베이징 올림픽때의 이명박) 이고 보면,
내일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어찌 염려치 않을 수 있으랴!!
만약,
북괴가 그들의 국경일이나 경축일에 그들의 인공기를 게양치 않는 인민이 있었다면 어떻게 처리 했을것인가는 미루어 짐작을 하고도 남지 않는가?
그렇다면,
8.15 광복 경축일에 태극기를 게양치 않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의 국민의식이,
9.9절에 100 %의 인공기를 게양하는 북괴집단의 대남 야욕을 무슨 수로 감당해 낼 것인가는 그 해답이 자명할 것이 아닌가 이말이렸다.
11.08.15.
김종오.
댓글목록
황룡님의 댓글
황룡 작성일맞씁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도 10%도 안되네요.
기린아님의 댓글
기린아 작성일그 어떤 언론사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슬픈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