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여 총장실을 폭력으로 점거한 자들의 행태를 두고 같은 학교 이영훈 교수(사회과학대 경제학)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글을 한 신문에 기고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실태"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거나 조정을 하는 일이 대학 내에서조차 심히 어렵다는 사실.
둘째, 불가피하게 결론을 내려야 할 단계가 되면 소수의 집단이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
셋째, 폭력 사태가 발생해도 공권력이 이를 방관한다는 점.
물론 "서울대 학내 사태"라는 한정된 사건을 두고 지적한 것이지만, 이는 지금 한국이 처한 전반적인 민주주의 위기를 대변하는 지적이기도 하다.
지금도 부산에서는 한진중공업 사업장을 무단 점거한 무리들이 있다. 당사자들인 회사와 근로자들은 합의를 보았으나, 이에 불만을 가진 일부 노조원들과 외부 세력들이 사업장을 점거한채 "한진자본 박살"이란 현수막을 내 걸고 말 그대로 회사를 박살내려 하고 있다. "노동해방"이란 문구도 보인다.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으면 그냥 집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남들조차 벌어먹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게 바로 깽판인 것이다.
또 다른 외부 세력들은 야권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희망버스"를 타거나 개별로 부산역 광장에 모여 사업장을 향해 행진을 하며, 일개 사업장 문제를 정치사회적으로 쟁점화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내 눈에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비친다.
그래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그들이 말 하는 민주주의의 민(民)은 누구를 말 하는 것인가? 나 같이 이래서는 안된다며 안타까워 하고, 더러는 분노하는 국민들이 절대다수인데 이들은 또한 어느나라의 民이란 말인가? 절대다수 국민들의 의사가 무시되는 이 현실을 두고 어떻게 민주사회라 할 수가 있는가?
이 교수는 한 편, "모든 폭력은 소방관이 불을 끄듯이 현장에서 진압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은 소외당하고 억눌린 소수 집단의 도덕적으로 정당한 폭력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민주주의를 하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다. 곧 法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지켜지지 않는 현실은 분명 민주주의의 위기임에 틀림없다.
폭력이 난무해도 이를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고 눈치나 살피는 공권력은 또한 어느 民을 위한 공권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도 뭐도 아닌 총체적 깽판에 다름 아니다.
이 교수는 "민주주의는 시비를 분별하는 인간 내면의 공정한 심판자로서 명예심, 아무리 억울해도 다수결에 승복하는 공공심, 편견과 증오의 폭력에 맞서는 지도자들의 용기와 같은 덕목을 먹고 자란다."고 끝을 맺었다.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지금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편견과 증오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용기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진정한 명예심과 공공심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다만 지난 20년 가까이 민주팔이들의 깽판으로 대신 얻게 된 잘못된 가치관에 기초한 편견과 증오, 그리고 폭력이란 고질병을 과감히 고쳐나갈 시대적 소명의식이 투철한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바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와 깽판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참민주의 세상을 열어야 할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금 작지만 분명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도 이제 본색을 분명히 드러내라. 어떻게 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내고 난 다음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