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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폭동 유발한 박관현 사망설(1): 남민전 전사들이 양성한 전남대 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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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사논객 작성일11-07-04 20:36 조회1,5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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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8일 광주사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전 11시에 전남대생 1백 명 가량이 광주역에 모여 30분을 기다려도 학생회장이나 학생운동권 리더가 안보이자 모인 이유를 몰라 모두 뿔뿔이 흩어지려 하던 찰나 누군가가 "경찰이 박관현 회장을 죽였다"고 큰 소리로 유언비어를 외치며 학생들을 선동했다. 박관현 회장은 그때 여수로 가고 있는 길이었음에도 모두 그 유언비어에 감쪽같이 속은 것이 광주사태가 하루 앞당겨져 일어나게 한 도화선이었다. 즉, 19일에 무장봉기 일으키기로 이미 열흘 전에 거사 계획이 짜여 있었으나,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가 18일 정오 무렵부터 폭동을 유발시켜 민중봉기가 하루 앞당겨져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께 한일은행 사거리에서 재집결한 5백여명의 시위대가 곧바로 공용터미널로 향하였는데 (광주매일『正史5・18』1995, 167), 그 이유는 그 다음날인 19일로 예정된 무장봉기 거사를 위해 (전남농민대회를 명분삼아) 광주로 올라오는 전남 서남지역 운동권이 거기 모여있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대동고 고딩으로 등장시킨 영화 ‘화려한 휴가’의 줄거리는 박관현(진우)이 5월 21일 도청광장에서 계엄군 총탄에 쓰러지자 그의 형 윤상원(민우)이 복수하기 위해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박관현은 김대중이 정동년 편으로 봉기 선동 자금으로 쓰라고 전해준 돈으로 여수 돌산에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박관현은 공수부대가 광주시내에 투입되기 훨씬 전에 여수로 갔다. 1980년 5월 18일 처음 박관현 사망 유언비어가 등장하였을 때는 광주 경찰이 죽인 것처럼 말이 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공수부대에 누명을 씌웠고, 2007년에 제작된 엉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민우가 진우(박관현)의 피 흘리며 축 늘어진 시신을 어깨에 둘러멘 장면의 포스터로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거의 모든 관객이 이 거짓에 속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거짓이 진실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실제 역사에서는 사건이 어떤 순서로 전개되었었는지를 사건 진행 순서 그대로 살펴보자.  

1. 남민전 전사들이 양성한 전남대 운동권

   박형선 등 광주일고 동문들의 광주사태 31주년 작품인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이 2011년 5월에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비록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이란 명칭은 2011년 봄에 비로서 등장하였으나, 광주일고 동문들의 비리는 금년 봄에 막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박형선과 그의 처남 윤한봉 등 광주일고 동문들이 그 주동세력이었던 1980년 봄의 5.18 사건 역시 그 역사적 뿌리가 있는 사건이었다. 누가 언제 부르느냐에 따라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광주사태’ 등으로 명명되는 5.18 사건은 그 주동자들이 1980년 5월18일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던 것이 아니라, 여러 해전부터 양성되고 있었다. 즉, 광주일고 동문으로 전남대 복학생이었던 정용화와 영문과의 양강섭과 법대의 박관현 등 10여명이 이미1978년 3월부터 운동권 학습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때 박관현과 자신 등 10 여명의 전남대생들이 공산주의 서적, 즉 막시즘 원전으로 세포교육을 받고 있었음을 양강섭은 이렇게 증언한다:  “이때부터 민족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초보적인 학습을 했다. 지금은 좋은 책이 많이 나오지만 그때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전환시대의 논리 등이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원전을 구해 산장이나 증심사 등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학습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사회과학의 기초를 공부하고 있는 중에 이른바 교육지표사건이 1978년 6월 29일 발생했다” (양강섭 1989).

   광주일고 동문 정용화는 박관현 등 10 여명에게 세포교육을 시킨 자들은 이강과 김남주 등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전사들이었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때 그들은 김상윤, 윤강옥, 이강 선배들이 살고 있는 두암동에서 자발적으로 형성한 그룹 단위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김선출, 김남주 등 문화운동을 표방하는 그룹, 윤상원 등 노동현장운동을 모색하며 전단계로서 야학을 운영하는 그룹, 상대 내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몇몇 사람들의 그룹 등이었다. 나도 두암동에 자주 들르는 사이 여러 선후배를 알게 되었다......1978년 3월, 1학년에 복학을 하고부터는 점차 두암동 출입을 줄이고 문리대 1학년 중심으로 10여 명을 모아 사회과학을 공부하였다. 같은 연배로서 가깝게 지내게 된 영문과의 양강섭과 법대의 박관현도 함께 하였다. 1977년부터 자발적으로 꾸려졌다. 여러 그룹들도 심화된 학습을 통해 역량이 강화되고 있었다 (정용화 1989).

그런데 전남대 운동권이 말하는 사회과학이란 막시즘 및 좌익・반미・친북 이념이었다.  세포교육으로 운동권을 양성하던 전남대의 모든 서클들이 그런 류의 이념 서적들만을 학습 교재로 사용하였다. 김윤기는 자기가 속한 서클도 이영희의 좌익서적으로 세포교육을 받았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러던 중 밖에 있던 전남대 민청학련세대들 이 학생운동을 재건하기 위해 전남대학교에 재건그룹을 만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그룹에 열결되어 소그룹 학습을 했다. 우리 그룹은 예닐곱 명으로 노준현, 박병기 등으로 구성되었다. 숨어다니다시피 1년 동안 운동권 입문서 수준 정도의 서적을 가지고 학습을 했다. 지금이야 사회과학서적이 많이 보급되었지만 당시의 베스트셀러는 단연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김윤기 1989).

박선정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얼샘회 역시 이영희의 좌익서적과 황석영의 반미소설을 세포교육 교재로 사용하였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런데 1978년 6월 29일 전남대 교육지표사건으로 서클회장인 신일섭 씨와 학술부장인 안길정이 구속되었다...... 문우회 멤버들이 겨울방학에 다시 모여 민족의 얼과 대학의 양심을 되찾자는 뜻의 '얼샘회'를 창립했다. 곧바로 겨울에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사회과학의 원론보다는 주로 이영희의 '우상과 이성', '베트남전쟁' 등 기초적인 사회과학책과 문학책을 읽고 학습했다. 나는 열심히 활동하여 1979년 2학기 때 얼샘회 회장을 맡았다 (박선정 1989).

박선정에 따르면 이 얼샘회가 전남대 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래서 총학생회장도 인문사회과학대 힉생회장도 이 서클 회원이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이들이 민주주의 사상을 공부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그들은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주입시키는 좌익서적류만 교재로 사용하여 학습하였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로당 및 빨치산 2세대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세포교육만 받은 자들에게서 민주주의 사상이 싹트고 자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이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던가?  이들의 머리 속은 생각이 비뚤어지게 하는 좌익이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의 독서물은 공산주의 서적 내지 좌익서적에 국한되고 편협되어 있었다. 요컨대 이들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십대 후반 및 이십 초반의 연령기에 반(反)민주적 책들만 읽었다.  이렇게 의식화된 운동권은 민주주의를 습득하기가 몹시 어려우며, 설사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수십 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걸리는 법이다.  그 당시 그들은 남한 정부를 타도시키라는 구호들로 세뇌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대한민국을 대적하는 빨치산 투쟁이 빨치산 2세대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남민전 전사들이 세포교육으로 전남대 핵심 운동권을 양성하였다.  민주주의 사상을 키워주었는가? 만약 민주주의 사상을 키워주었다면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남민전의 암살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언정 결코 남민전 전사는 될 수 없었다. 남민전 투사 이재오도 남민전 전사로 승격하지는 못했을 정도로 남민전은 철저한 사상 검증을 거쳐 김일성에 대한 충성에 결코 변절이 없을 자들만을 충성 맹세와 선서의 절차를 거쳐 전사로 승격시켜 주었다. 그러기에 남민전 전사들은 자생 간첩단이 아니었던가!  북한에서 보았을 때 가장 사상이 확실하며, 또 북한방송으로 지령을 내리면 그대로 복종하던 자들이 전남대 핵심 운동권을 키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이 아니던가?  그런데, 남민전 전사들이 1970년대 후반에 전남대 핵심 운동권을 세포교육으로 키운 영향이 얼마나 크고 깊었던지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전남대 학생회관에  김일성 분향소가 설치되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유인물 4종이 발견되었다 (조선일보 1994년 7월 16일자). 이렇듯 1970년대 후반에 남민전 전사들이 세포교육으로 전남대에 핵심 운동권을 양성하였을 때 그 학습 내용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김일성 숭배 사상 및 종북반미이념이었다. 사실이 이러한데 어떻게 그들이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1980년 5월 18일 오후 1시경부터 화염병과 돌로 파출서를 파괴하는 등 갑자기 폭동이 일어난 이유에 대하여 5.18 진영이 흔히 하는 거짓말이 공수부대가 진압하였기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수부대 광주시내 투입은 오후 5시 이후의 일이요, 1980년 들어 아직 단 한번도 시위진압이 없었던 5월 18일 오후 1시경에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 발생 후 두 시간이 지난 오후 3시경에도 여전히 공수부대는 광주시내에 투입되지 않은 상태였음을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 김영택은 이렇게 확인한다:  “그러나 18일 오후 3시에는 공수부대가 광주시내에 투입되지 않은 시간이다. 다만 정웅 31사단장이 시내 출동명령을 내려놓고 있어 출동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영택 1996, 48). 그 이전까지는 광주에서는 시위진압을 한 예가 없으며, 1980년 새해가 밝아온 이후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서도 시위진압을 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는데, 어떻게 시위진압이 폭동 발생의 원인이었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심지어 19일부터 무장봉기를 일으키려 하였던 주동자들조차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폭동이 그 날  18일 점심 시간 무렵에 갑자기 일어난 이유는 유언비어, 즉 이른바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박관현이 전남대 학생회장이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밝히지 못하고 진우라는 고등학생으로 등장시킨다. 그러면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은 누구였는가?

1980년 3월 전남대 바깥에 있던 광주운동권이 학생회장 선거에 개입하였던바, 정용화는 “윤한봉의 밀항을 돕다”라는 제목의 그의 증언록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한다: “당시는 밖에 있는 우리들과 전남대 학생권과의 연계가 긴밀하여 총학생회장 후보도 우리들이 물색하였는데 한봉이 형이 법대 행정학과 3학년인 박관현을 추천하였다. 이에 전남대는 박관현을 총학생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선거작업이 한창이더니 4월 2일 박관현을 중심으로 전남대 총학생회가 구성되었다” (정용화 1989). 윤한봉은 그때 학생이 아니었기에 박관현에 대하여 잘 몰랐다. 복학생회 회장 정동년이 추천하고 윤한봉이 동의하여 결정된 것이었다. 조선일보 조광현 기자는 그의 기고문 “국회 광주특위 증인-정동년은 누구인가.”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보도한다: “들불야학의 경험담을 교내에서 강연하는 박관현을 본 정씨는 박씨와 금방 뜻을 함께했고 복학생회가 주동이 돼 박씨를 총학생회장에 추대, 80년의 운명을 함께한다” (5.18 사료편찬위원회 2009, 19:491).

정동년이  박관현에게 대준 선거운동자금에 대해서는 정동년이 말을 번복하였다. 처음에는 김대중이 대준 거라고 하였다가 나중에 복학생들이 돈을 모아주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운동권 학생들의 일거일동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당시 전남대 직원 서명원은 복학생들의 모금 활동은 모르는 일이라고 증언하였다 (5.18 사료편찬위원회 2009, 4:615). 게다가 만 37세의 나이에 복학하여 고학하여야 했다던 정동년이 단 하루 만에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천만 원에 달하는 거액을 마련하여 희사할 만한 재력가였을까?

자신이 박관현을 총학생회장에 추대하였다는 정동년의 주장과 달리 박노해는 윤상원과 김상윤이 박관현을 총학생회장에 추대하였다고 기록한다:

상원과 김상윤은 이미 「학원 자율화 추진 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괄목할 만한 지도성을 발휘했던 관현을 주시했다. 상원이 관현 에게 현 정세의 성격과 총학생회가 수행할 임무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총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것을 제시했으나 관현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 동안 온갖 정성을 기울였던 들불을 떠나기 싫었던 것이다. 상원은 계속 관현을 설득했다. 상원은 이 일이 결코 노동자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혁명적으로 강화시켜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견고하게 지켜 나감으로써 더 큰 모습으로 노동자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의 끈질길 설득에 마침내 관현은 출마를 결정했다 (박노해 1989,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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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2편 제목은 "김대중 돈으로 도피한 박관현",3편 제목은 "고의로 조장하여 유포한 학생 사망 유언비어"입니다. 이 글 전체를 http://www.study21.org/518/rumor/student-death.htm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BBC International

북한이 주도한 5.18 광주사태 사료 전시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음모 꾸몄던 광주일고 동문의 금융 비리

리비아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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