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죽이기의 진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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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박사 작성일11-06-29 10:42 조회1,54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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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는 대한민국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의 공식행사의
심볼(symbol)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애국가가 흔들리고 있다?
애국가의 애국적작곡가인 안익태선생의 친일논란에 이어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로인한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는 우후죽순격으로 애국가 교체론까지 고개를 들고 일어나고 있다.
우울하고 어두운 멜로디가 왠지 싫다는 사람들과 해묵은
불가리아 민요의 표절설에 이어 최근에는 독일에서 유학한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은
일련의 음악학자들이 결사적으로 안익태 선생 까대기 작전에 돌입하였다.
이런사실은 허왕된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죽이기 작전인것이다.
한번 "애국가"죽이기 ,"안익태"선생 죽이기의 진실을 파헤처보자.
먼저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백과사전 위키페디아에서 안익태(Ahn_Eak-tai)의 항목 영어(표준판)을 보자.
여기에 보면 그의 전기(biography)와 작품 ,활동사항,업적,기타 관련지식이 적혀있다.
http://en.wikipedia.org/wiki/Ahn_Eak-tai맨위에 참고
그려면 한국어판을 보자(왼쪽에 있는 외국어 번역판에 각국 언어로도 조회가 가능한 란)
마치 친일주의자로 일본을 위해 태어나고 충성한 작곡가로 묘사되고 있다.
이 번역판은 한국인 자원 봉사자에 의해 꾸며지는 항목으로 번역과 내용을 올리는 자들이
하나같이 안익태의 어두운 친일행각에만 초첨을 ㅤㅁㅏㅊ춘듯한 인상을 준다.
영어판 원문보다는 친일행각에 집중된 공정성을 잃은 지식에 어린학생이나 앞으로
안익태에 관한 인식,지식,이미지(image)에 치명타를 입힌다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누가 이런 글들을 올렸을까?소위 진보,민주,연합을 내세우는 용공세력들인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짓들을 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안익태라는 인물을 친일(親日)로 몰아 쓰레기통에 처넣는것이다.
그러면 안익태의 역작이자 분신인"애국가"도 같이 장례를 치루게된다.
자동적으로 애국가가 흔들리고 국가정체성(identy)의 상실과 혼란을 야기시킨다.
꼭 물리적으로 촛불을 켜고 난동을 부려야 되는것은 아니다 .
소위 인민해방전술(People liberation tactic)의 한 분야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고도의 계산된 심리전 작전(Psychological warfare) 인것이다.
.
애국가는 1935년 센프란시스코에 유학차 도착한 안익태선생이 한 한인교회에서
아일렌드 민요인"오드랭 사인(페로디곡인 찬송가336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참조)에 맞춘 곡을 부르는
것을 보고 현 애국가의 멜로디를 스케치해서 주었고 당시 미주교포와
연계 되어있던 상해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 애국투사들에게 전하여졌고 새 국가로 불리워졌다.대한
민국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과 정통성을 이어받은 나라이다.
자유와 조국해방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자와 싸운 나라이다.
하지만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는 어떠한가?
그는 조폭이다.당시의 무장 조직 범죄자(organized crime)들이다.
그는 마적단 출신이다. 이후에 도피처로 소련의 군대에 들어간 정통성이 없는 인간이다.
물론 일본군과 조국의 광복을 위한 싸움을 한적이 없다
.
단지 마적단 시절 민가를 털어먹고 도주하다 조우하여 몇번 일본군과의 전투를 하였다.
이걸 떠벌이고 과장하여 마치 민족의 영웅처럼 행세한다.
이것은 당시 공권력이었던 일제와 범죄자의 전투였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애국가를 부를 자격도 부를수도 없는 처지였던것이다.
더우기 1945년 해방이후 애국가가 우익인사들과 정부에 의해 공식 국가(official anthem)로 지정되게 된
다.광복의 염원과 애국지사들의 한(恨)이 담겼던 눈물겨운 노래였던것이다.
(펌)
북한 <애국가>는 북한의 상징깃발이 만들어지기 전인 1947년 6월에 이미 만들어졌으며, 착수는 훨씬 이전이다.
김일성은 1946년 9월 27일, 『우리는 빨리 <애국가>를 지어서 불러야 하며 머지않아 창건될 우리 군대의 행진곡도 지금부터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라는 말로써 국가제정을 지시하였다.
김일성은 <애국가>를 새로 제정하게 되는 이유로서 지금까지의 <애국가>는 가사가 『인민의 감정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며 곡도 "남의 나라 것을 따다 만든 것인데 곡 자체가 시원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은 사랑받는 노래, 나라 사랑하는 정신을 <애국가> 창작 방향으로 지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시인들과 작곡가들은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심의회에 올려진 여러 개 가운데서 박세영(朴世永) 작사, 김원균(金元均) 작곡의 작품이 김일성에 의해 최종적으로 선택되었다.(펌)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의 나라 것을 따다 만든 것인데 곡 자체가 시원치 않다"
라는 김일성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1964년 안익태선생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연주를 하였던 불가리아 출신의 작곡지휘자인 피터 니콜
로프 의 폭탄선언과 주요 일간지신문기자 초청하여 폭로로 이어졌다.
강직한 성격의 안익태선생과 불화를 운운하며 북한의 지령을 퍼트린것이다.
"애국가는 불가리아 민요인 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도브루자 땅이여의 카피이다."
(펌)
1964년 제3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대된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서울에서 받
은 대우가 좋지 않다고 불평하고 음악제를 추진한 안익태를 상대로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서 애국가의 가
락이 도브리치 시의 시가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불가리아어: 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도브루자
땅이여")와 많이 닮았다고 주장했다.[9] 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불가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부른다면, 한국인들은 일어날 것입니다!
(If Bulgarian singers came to Korea and sang O Dobrujanski Krai, Korean audiences would stand up!)
두 곡은 첫소절이 서로 비슷하지만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가 약박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 〈애국
가〉는 강박으로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가락의 분위기가 다르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
이고, 그가 처음으로 유럽에 간 것은 이듬해인 1936년이었기 때문에 그가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
성은 낮다.(펌)
그러나 1960년대 북한과 불가리아의 정치,문화등의 연계를 보면 서로 공산형제국으로
북한의 많은 유학생들이 소련의 위성국가인 동유럽과 불가리아에 유학하고 친선 동맹관계
를 맺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는 가제편이 아닌가?
당시 냉전(cold war)체제의 긴장감을 이해하면 휠씬 수궁이 가는 이야기다.
북한이 더 영양가가 있으면 있었지 굳이 국교가 없는 상이한 체제의 우리나라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더우기 피터 노콜로프의 주장대로 불가리아 민요의 모방곡인 카피(copy)라 한다면
한번 음악에서 모방.카피의 정의를 내려보자.
일반적으로 모티브나 테마를 이루는 8마디정도가 같으면 창작이 아닌 모방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애국가와 불가리아 민요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한마디에 못미치는 3박자정도가
같은 음으로 시작된다.
숫자로 따지자면 4/4박자 기준으로 보면 4x8=32 박자이다.
그려면 3박자와 32박자는 약 10%에도 이르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안익태 선생이 이곡을 의도적으로 모방하였다 하여도 카피인 저작권에 해당치
않는다는 유권해석이 나온다.
반론
1. 불가리아 민요의 후반부는 단조(minor)로 전조되지 않는가?
2,1935년애는 안익태 선생은 불가리아나 유럽에 가본적이 없다.
3.그 당시 교통이나 방송등의 구조로는 불가리아의 음악을 들을수도 볼수도 없었다.
4. 앞마디의 3개음의 일치는 우연의 일치이이다.
모은 음악은 장조(major)와 단조(minor)로 분류 할수 있다
.
수학적으로 보면
장조는 도(1).미(3.)솔(5)의 한음으로 시작된다.다시 말하면 3개의 원소(element)를 가진셈이다.
여기에 7개의 음인(도1.레2.미3.파4.솔5.라6.시7.)음과 조합할수 있는 숫자는 수열이나 수학에 조예가 깊
으신 분들은 한번 분석해 주시길 바랍니다.(지만원 박사님의 전공분야?)
결론적으로 피터 니콜로프의 애국가 모방설은 불가리아 주제 북한외교관,공작원들을 통한
김일성의 음흉한 대한민국 정통성을죽이기 위한 사주였던것이다.
오늘은 제 1편을 올립니다.다음2편은 2000년대의좌파정권의 애국가 죽이기 작전을 올리겠습니다.
참고화면 애국가의 원곡이라 주장하는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르 쟌스키 크라이 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댓글목록
벽파랑님의 댓글
벽파랑 작성일
오오! 상당히 좋은 글입니다.
제 블로그에 퍼가도록 하겠습니다.
너덜님의 댓글
너덜 작성일
감사합니다. 2편 기대하겠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000년대 저작권 운운하면서 스포츠 경기등에 미리 허락 받고 사용료 저작권협회에 내고 불러야만 했던 일이 있은 것 같은데.... 아마도 자세한 말씀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