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장세동에 항변,호소한(전사모 게재) "김피터""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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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학포 작성일11-05-26 19:40 조회2,485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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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장세동은 역사 앞에 침묵을 깨라
김피터(재미)
전두환 전대통령,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역사의 심판대에 바른 증인이 되라.
나는 지금까지, 해외에서 36년을 살아 온 재미 교포입니다.
몸은 비록 해외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조국 대한민국을 향해 있고, 조국이 번영하고, 잘되고, 바로 서고, 국제 사회에서 그 위상이 계속 신장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산 자동차들이 미국의 하이웨이를 씽씽 달리고, 삼성 TV, 냉장고가 백악관에 들어가고, 우수한 'Made In Korea' 상품들이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것 등을 볼 때.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또 G-20 의장국이 되어, 서울에서 "세계 정상"이 개최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정말 가슴 뿌듯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라나는 후세대들에게 한국 역사에 대한 교육을 소홀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서 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역사의식'이 결여된 국민들은, 결국 자기들의 국가를 사랑하거나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여러 나라에서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역사를 '왜곡'하거나, 역사 해석을 잘못해 놓으면 그것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혼란하게 만드는, 더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5 18 광주 사건'의 역사적 실체는무엇입니까?
또 그것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합니까?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1) '5 18'은 과연,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순수한 시민들이 일어난 '민주화'운동입니까?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법적으로 공인하고 있는, 그에 대한 '해석'이 올바른것입니까?
(2) 탈북자들, 지만원 박사 등, 여러 5 18 사건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들의 주장, 즉 '그배후에는 북한이 개입되어 있고, 북의 무장 특수부대가 그때 광주에 침투해 들어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다"며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며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3) 광주의 망월동 묘지에는 '신원 미상자'들의 묘소가 있다는데, 한국의 발달한 과학 수사 체계에서, 왜 그 신원들은 밝혀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4) 정상적인 국가에서, 총을 들고 국가의 경찰이나 군대에 대항했다면, 그것은 '반란'인데, 왜 그들이 '민주화' 인사가 되었으며, 그 때의 사상자들에게는 왜 많은 보상금 및 연금이 국가에서 지급되고 있는 것입니까?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과거에 흑인들. 'Black Pander' 들이 총을 들고 국가 공권력에 대항하여 어떤 지역을 장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폭탄 투하까지 하며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반란은 철저하게 진압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장 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5 18의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당시의 '전두환 대통령'은 왜 침묵만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당시 국가정보의 수장인 장세동 안기부장은 왜 이 문제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그런 정보를 모를 리 없지 않습니까? 나는, 해외에 살고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당시의 국가 정보 총책임자와 대통령은, 북괴군이 정말 침투해 있었다면, 그러한 정보를 모를 리 없는데, 그들은 왜 오늘까지 계속 이 문제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어떤 '개인적인' 사적인 이유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대대적인 '서명 운동'이라도 벌이고, 여러가지 수단으로 압박하여, 그들이 역사에 정직하게 증언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터넷의 여러 싸이트에는, 계속, 그 당시에, 광주에, 북괴군이 침투해 있었다고 하는데, 달력에는 5월 18일을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라고 적혀 있고, 그 날에는 각 곳에서는, 5 18 기념식이 거행되어지고 있으니, 이런 혼란이 어디 있습니까?
5 18에 대한 국가적, 역사적 바른 규명 및 정확한 해석이 나오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계속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전수할 것입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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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김피터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위해서 한마디 첨언합니다. 1980년 5월에 장세동은 육군 대령이었고, 안기부장이 된 것은 그로부터 4~5년 후의 일입니다. 1980년에는 안기부를 중앙정보부라고 불렀으며, 김재규의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공석이었습니다. 광주사태 당시 전두환 장군도 이제 막 정보부장 서리로 취임하였는데, 장세동 대령이 정보부 수장이라는 것이 가능할 리 없겠지요.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사시논객님의 사실관계지적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군요!
어떤 경우에도 사실은 진실로 표현됨이 매우 중요하겠습니다.
저도 김피터님과 같이 생각 하고 있었는데 착각이였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 시혜사건 이후 권력상황의 흐름은 모든 언론에서 보도한바 대로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장군과 장세동에 쏠려 있었습니다.
힘이 있으면 정보도 많이 소유하리란것은 상식이니 사전이던 사후던 이분들이 그 진상을 밝히는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 생각합니다. 시사논객님의 지적,감사합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아닙니다. 국민은 1980년 6월 이전에는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를 전혀 들은 적이 없었슴니다. 모든 언론은커녕 그 어느 언론도 전두환에 대해서 보도한 적이 없었어요. 그 당시 국민은 보안사령관이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1980년 4월 말 중정 서리 취임 기자회견 때 아주 조그맣게 나왔을 뿐인데, 이름이 한자로만 나와 국민이 읽지 않았습니다. 장세동이란 이름도 5년후 장세동이 안기부장에 취임한 후에야 국민이 처음 들었습니다.
통일은님의 댓글
통일은 작성일
장학포님의 퍼온글을 읽었습니다. 36년이란 오랜세월을 미국이라는 낮설은 곳에서 보낸 김피터님의 글과 시사논객님의 바른 지적 모두 모두 아름답습니다. 답답한 최근의 이곳 지만원 박사의 시스템크럽이 있어 매일 새벽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기에 일과가된 지금 한광덕 예비역 중장(육사 20기)의 고언이 생각납니다. 육사 총동창회 홈페이지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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