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맹특공대 장교의 증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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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1-10 09:09 조회2,20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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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 특공대 장교의 증언
주 월 한국군이 월남에서 철수한 지 약 2 년여 만인 1975년 4월30일 10시 20분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월남군은 월맹군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월남공화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월남공화국이 패망한지 약 17년이 지난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과 우리나라는 수교에 합의했다.
대한민국 MBC-TV방송국에서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국교 수교를 경축하는 기념으로 월남 전사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 로 불렀던 638고지 현지에서 특집 방송을 방영 했을 때였다.
지금도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치가 떨리다.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생각하기조차 두렵다.
수많은 젊은 목숨을 빼앗아 간 원혼이 서린 한 많은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638고지의 낯설지 않은 풍경이 TV화면에 뜨는 것을 보는 순간,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죽어가던 전우들의 모습들, 시신들이 쌓이고 피로 물들여 졌던 그 전쟁터,
몸서리 쳐졌던 한 많은 앙케 패스 638고지,
그 악몽 같은 꿈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우들의 모습이 새삼 클로즈업 되어 왔다.
약 40 년 전 그때,
‘피의능선, 죽음의고지’ 라 부르던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 참호 속에 엎드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절망과 공포에 떨며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전우들의 마지막 숨져가는 모습들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다.
고국에 계신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피맺힌 절규가 생생히 떠올라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당시의 절박한 순간을 생각할 때,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 월 한국군은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많은 피를 흘리며 공격을 감행하였다.
반면에 월맹 특공대들은 638고지를 사수하기 위해서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와 참호 속에서 방어 작전을 펼쳤다.
그 당시 적이었던 월맹군 특공대 장교가 638고지 정상에서 MBC. TV 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국군(따이한)들은 쓰러지고 쓰러져도 끈질기게 인해전술작전으로 계속 밀고 올라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 증언하고 있었다.
“주 월 한국군 병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 병사보다 용감하고 강했지만 앙케 전투에서의 전략 전술작전은 월맹군이 한국군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적군으로서 서로가 총부리 겨누며 죽고 죽이며 싸웠던 사이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는 그 월맹군 특공대 장교에게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하지만, 맹호 기갑연대 수색중대의 앙케 작전에서 작전기록(전투상보)을 완전히 누락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앙케 작전을 지휘했던 주 월 한국군 지휘부는 앙케 작전의 진실을 왜곡하였다.
반면에 그 당시에 서로 싸웠던 적이었던 월맹군 특공대 장교가 앙케 전투에서 수색중대가 펼쳤던 작전을 진실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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