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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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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正道 작성일11-05-17 20:33 조회2,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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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

발생배경

소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는 1976년 2월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등이 결성한 조직으로 1977년 1월 남민전의 반(半)합법 전술조직으로 ‘한국민주투쟁위원회’(이하 민투)를 결성하여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및 기관지(‘민중의 소리’)를 8차례에 걸쳐 배포하는 등 반(反)유신투쟁을 전개하고, 민청학련 등 학생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청년학생위원회를 조직하여, ‘민주구국학생연맹’, ‘민주구국교원연맹’, ‘민주구국농민연맹’을 결성하고,  ‘민주구국노동연맹’의 결성시도 중이던 1979년 10월 4일 이재문, 이문희, 차성환, 이수일, 김남주 등을 비롯하여 1979년 11월까지 대부분의 조직원이 구속되고, 공안기관에 의해 ‘북한공산집단의 대남전략에 따라 국가변란을 기도한 사건’, ‘북한과 연계된 간첩단 사건’, ‘무장 도시게릴라 조직’ 등으로 발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으로 처벌 받은 사건이다.

남민전 중앙위원회 서기 이재문은 사형집행 전 1981년 11월  22일 옥중사망 하였고, 신향식은 1982년 10월  8일 사형집행 되었으며, 안재구, 임동규, 이해경, 박석률, 최석진 등은 무기징역, 김남주, 이수일 등 핵심 관련자 다수가 중형(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내용

1979년에 당국은 ‘남민전’사건의 수사진행 상황을 발표하였는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남민전은 표면상으로는 반체제를 가장하면서 베트콩 방식을 도입, 데모와 테러, 선동, 게릴라 활동으로 사회를 혼란시켜 국가반란을 기도한 적색집단이며 …(중략)…무려 78명이 지하 점조직을 만들었다는 데서 6·25 이후 불온조직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것이다. …(중략)… 북괴의 무장남파 간첩도 아니고 접선간첩도 아니며 고정간첩도 아닌 점에서 ‘코레콩’은 주목을 끌었다.  

당국에 따르면 남민전사건은 1970년대 후반 북한의 적화노선에 추종하여 비밀리에 활동한 대규모 반(反)국가 지하당 사건에 해당하고, 남민전은 1976년 2월부터 1979년 10월 적발될 때까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노선에 따라 반국가활동을 벌인 대규모의 도시게릴라 단체이며, 남민전은 1964년 인혁당사건(人革黨事件), 1974년 민청학련사건(民靑學聯事件)의 배후조종자인 이재문(李在汶)을 위원장으로 하고 주로 지식인과 학생이 중심인 74명의 구성원을 점조직방식(點組織方式)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또한 남민전사건의 구성원은 한국사회를 특권층·재벌·자본가·중산층·서민층·농민·실업자 등 7계층으로 나누어 중산층까지를 민중의 적으로 규정하고 자기들은 민중의 전위대(前衛隊)로서 일차적으로 민중의 봉기를 유발시키고 이를 인민해방군으로 발전시켜 국가전복투쟁을 전개하다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사회주의혁명을 성취한다는 기본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민주화를 가장한 대정부 투쟁의 선동, 불온전단(不穩傳單)의 살포, 도시게릴라 활동, 북한과의 접선 등의 구체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친북한 지하당 조직에 의한 적화음모로 베트콩식(式)의 투쟁방식을 도입한 자생적인 공산주의 조직이었다는 점 등이 특징이라고 발표하였다.그렇지만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김남주 시인 등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 관련자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즉 제162차 본위원회에 소위 ‘남민전’ 사건 관련 총37건(명예회복 33건, 보상 4건)을 상정하여, 심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31건(명예회복 29건, 보상 2건), 불인정 2건(명예회복 1, 보상 1), 심의보류 4건(명예회복 3, 사망 1)으로 결론났으며,   

인정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할 목적으로 소위 남민전에 가입하여 활동을 인정할 수 있다. 즉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판결문과 관련자료를 중심으로 판단하건대, 제162차 본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최석진, 박석률, 김남주 등 29명은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자 유신체제를 타파할 목적으로 소위 남민전에 가입하여 반유신활동을 전개한 것을 인정할 수 있다.   

둘째, 신청인들의 항거행위는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 즉 (1) 1977년 1월 18일 일명 ‘1월 투쟁’으로 유신체제에 반대하고 민주정부를 세우자는 취지로 ‘민주투쟁선언문’을 작성하여 배포하고, 1978년 1월  6일 가사체 4·4조로 작성한 “어화 세상 사람들아” 제하의 유신반대 유인물 2,000매를 ‘민주투쟁국민회’ 이름으로 제작하여 배포하고, 1978년 8월 9일 일명 ‘파라슈트’ 작전으로 “격! 몰아내자 박정희” 제하의 유인물 20,000매를 제작하여, 같은 해 11월에는 에드바룬에 매달아 약 17,000매를 살포하는 등의 활동을 한 행위,  (2) 1978년 8월 14일과 10월 4일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민중의 소리’ 제1호 및 제2호를 제작하여 대학가와 시내 일원에 배포하고, 1978년10월 5일  광화문 시위를 지원하기 위하여 “격 때는 왔다, 드디어 왔다”  

제하의 유인물 2만여장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1979년 2월 28일 청년학생위원회가 주관하여 일명 ‘횃불작전’으로 “기미항쟁의 불꽃을 박정희 타도의 횃불로” 제하의 유인물 2,000매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1979년 8월 28일 박정희 타도결사대 명의로 소위 ‘꽃불작전’으로 “압제자 박정희 타도하자” 제하의 유인물 5,000매를 제작하여 서울 일원에 배포한 행위 등 8차례에 걸친 반유신 유인물 제작 및 배포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소위 ‘봉화산작전’(1978. 2.5), ‘지에스작전’(1979.3.5), ‘땅벌작전’(1979.4.27) 등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한 자금마련 행위,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취득하여 보관한 행위 역시 그 궁극적 목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판단되는 바,  본 위원회는 위 항거행위를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신청인들에 대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라목, 제1호의 규정에 의거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  

역사적의의

이 남민전 사건 당시 ‘한국 민주투쟁국민위원회’, 약칭 ‘민투’와 ‘한국민주학생구국연맹’, 약칭 ‘민학련’ 등에 60년대 학생운동출신과 70년대 학생운동자들이 대거 참가하게 되어 독재탄압이 심할수록 학생운동이 지하운동화한다는 하나의 경향을 일제 이후 처음으로 보여주었으며 4·19혁명 이후 만연한 반외세 민족주의 및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을 실현하려는 한국학생운동 사상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참고자료

이재오《해방후 한국 학생운동사》형성사, 1984

민주화운동보상지원단〈남민전사건 관련 보도자료〉(2006.3.14)

법무부《법무부사》1998

집필자 현대호(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남조선 민족해방 전선(남민전)사건
좌파세력, 언론-교육-사법 장악 노려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 세미나서 주장  한국 좌익운동의 실체와 전개과정

 친북 좌익운동의 실체를 고발하고, 대한민국의 좌익 세력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를 신랄하게 파헤치는 세미나가 개최됐다. 지난 5월 출범한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친북진상규명위)와 자유민주연구학회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남민전사건 진상규명 발표회 및 좌익운동의 실체를 밝히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좌익세력의 실체를 폭로했다. 

세미나에는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와 김광동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정창인 정치학 박사 등 진상규명위 소속 위원 10여명과 프리존뉴스 강길모 부사장, 최상엽 전 법무부장관, 이동복 전 국회의원,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주천 원광대 교수, 유광호 위원 등의 참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의 앞잡이"

이주천 원광대 교수는 ‘해방 이후 한국 좌익운동의 활동상’이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한국 좌익세력들이 일제시대를 지나 한국전쟁 당시 반공의식이 철저해진 사회 속에서 지하로 숨어 들어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해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 등을 다뤘다. 이 교수는 세미나 시작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의 앞잡이라는 사실을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다”며 “김대중 노무현 친북 좌익정권의 햇볕정책으로 대한민국이 총체적인 적화위기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좌익행적을 소개하면서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비밀리에 5억 달러의 뇌물을 상납하면서까지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포옹하게 된 것이 결코 하루이틀에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며 그의 좌익행적이 치밀하게 준비되어온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5월 29일 심문 당시 밝힌 좌익단체 활동한 경력을 열거한 후 “(김 전 대통령은)광복 직후 목포의 좌익 진영 핵심 조직원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광호 한국전략연구소장은 ‘60~70년대 한국 좌익운동의 전개’를 주제로, 좌익세력들이 당시 한국의 산업발전 과정에서 노동계와 사회에 밀착해 좌익 사상을 사회문제로 발전시켜 혁명을 이뤄냈다고 말했다.유 소장은 “60~70년대는 베트남 전쟁과 중국 모택동의 집권, 유럽지역의 사회주의적인 복지주의 정책, 일본의 좌익 안보투쟁, 서구의 학생혁명 등으로 사회적으로 좌익이 주체가 되는 것이 세계화적인 추세였다”며 “한국도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노동계층에 대한 사회문제가 일어나 노동운동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좌익들은 사회적으로 민주화라는 목적으로 다가가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라며 “좌익들이 이야기 하는 민주화라는 단어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소장은 60~70년대 좌익운동은 북한과 연계를 맺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활동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특정 짓고 “4.19 의거가 일어나자, 이를 기점으로 ‘혁신계’라는 명분으로 각 분야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동했다”며 “70년대는 유신정권에 대항해 사회주의 건설목표를 은닉한 채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가치를 내걸면서 투쟁해 온 시기”라고 말했다.최진학 뉴라이트전국연합 정책실장은 ‘80년대 이후 한국좌익운동의 양상 및 현주소’라는 발제에서 80년대 초부터 92년 대선 이후 현재까지 일어나는 좌익운동의 실태와 변화에 대해 분석했다. 

최 실장은 광주민주화 운동을 '사태'로 규정하고 “80년대 광주사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좌익세력이 성장하는데 밑거름을 제공한 독버섯과 같은 사건이다”며 “광주사태의 뒤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성을 거부하는 북한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최 실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좌파정권은 1980년대부터 20여년간 투쟁해온 좌익 운동의 투쟁 성과물”이라며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사법부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방송, 언론, 문화계, 전교조와 교수들까지 장악해 좌익 이념을 세뇌시키기에 여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총련과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교조, 전민련, 평택범대위 등의 행동강령이나 결성 경위,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이나 성명서를 기본으로 그들의 좌익사상을 나열했다. 특히 최 실장은 “20여년간 역량을 축적하고 9년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쌓아온 좌익들의 철옹성을 무너뜨릴 우익의 전략과 전술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고 지적하고 “2007년 표류하는 대한민국을 구출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우익에게 있다. 이 땅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이제 대한민국은 없다”고 강조했다. 

"남민전은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친북 공산폭력혁명 조직"

이들은 세미나에 앞서 남민전사건 진상규명 발표회를 갖고 정부단체가 이 사건에 대해 편향된 결론을 내렸음을 지적했다.친북진상규명위는 '남민전사건 진상규명' 발표문을 통해 “국무총리 직속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남민전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지었고,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남민전을 반국가단체로 규정짓는 상충된 국가기관 들의 해석에 주목해 남민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했다”고 진상규명에 나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친북진상규명위는 남민전 사건에 대해 “남민전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따라 공산혁명을 기도한 조직으로서, 주체사상 등 김일성주의를 수용했고, 재벌집 강도, 소총 탈취 등 폭력혁명을 예비했던 친북 공산폭력혁명 조직으로 북한과의 연계에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이어 이들은 “민보상위는 좌익공안사건 진상규명에 있어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북공산폭력혁명조직이었던 남민전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중대한 유린이자 모욕으로서 반 헌법적, 반국가적인 결정을 즉각 시정 파기 되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수령님 전사로서 남조선 혁명할 것
남민전, 金日成에 바치는 녹음테이프 신년인사문 中...

<左翼사건실록을 통해 본 남민전의 실체>
대검찰청 공안부는 1981년 10월20일‘좌익사건실록’제12권을 발간, 남민전 사건에 대한 정리된 입장을 발표했다. 이 실록은 2200여 면에 달하는 공소장과 2024항에 이르는 공소사실 및 판결문 등을 기초로 한 것으로서 총 900여 페이지에 달한다. 당시 대검찰청은 남민전에 대해 “북한과 연계된 간첩단 사건이자 남한혁명 단체로서의 정통성을 계승한 비밀지하당 사건”이라며 “이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따른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기도하면서 그들의 전략을 교과서적 지침으로 활용한 전형적인 국가변란기도 사건”이라고 정의했다.실록에 따르면, 주범인 이재문은 조직원들에게“남민전의 조직목적은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직접 목표로 하고 있다. 투쟁에 의해 정권타도의 목적을 달성하였을 때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하기 위한 주동세력이 미리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 바 남민전은 바로 그와 같은 주동세력”이라고 교육시켰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남민전은 金日成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金日成에게 바치는 서신과 보고문을 수차례 작성했다. 주범인 이재문은 1977년 9월16일 임준열(임헌영)에게 同 서신의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했고, 임준열은 같은 해 10월2일 경 아래와 같은 내용의 초안을 완성했다.남조선 인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지식인, 학생노동자 등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세력이 모여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했으며 앞으로 굳게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아낌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이 투쟁을 당의 이름으로 굳게 유대 맺어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재문은 임준열의 초안을 기초로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신을 작성하는데, 이는 대한민국 역대 정권을 “괴뢰 내지 팟쇼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현재 美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상태인 남한을 북한의 수령 김일성이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신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이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경애하는 주석 김일성동지! 오늘 우리는 한없이 자애로우신 어버이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분단 30년이 가져온 5천만 겨레의 고통과 전 남조선 인민들의 절절한 염원과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열화 같은 신념을 담아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의 이름으로 삼가 보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의 품에 굳게 뭉친 조선노동당의 영도 하에 북조선은 일제 식민지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 사회주의적 개조와 사회주의의 건설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강력한 사회주의의 대 공업국으로 전변하였습니다...국제공산주의의 운동사에서 김일성 원수님께서 독창적으로 창시하신 주체사상으로 사상, 기술, 문화 3대혁명을 거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5천만 조선민족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조국이요 아세아동방의 사회주의의 강력한 전진기지이며 블록 불 가담 나라 반제투쟁의 영향력 있는 지도국으로 그 위광은 날이 갈수록 찬연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조선은 패망한 일본제국주의의 자리를 빼앗아 미군이 상륙한 날로부터 미제국주의자와 그들의 앞잡이에게는 지상천국으로 되었으나 모든 남조선인민들에게 그네들의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는 창살 없는 감옥으로 되어 있습니다. 점령 미군의 직접 군정이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간접통치로 지배양식이 바뀌고 신식민지 괴뢰정권이 이승만 괴뢰에서 장면으로 다시 박정희 군사팟쇼로 교체되었으나 사회적 구성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배계급의 착취와 압박은 강화되고 민생고는 가중되고 있습니다... 국제독점자본과 매판자본의 충실한 번견인 박정희 군사팟쇼는 온갖 매국매족의 죄악을 저지르며 인민대중을 들볶고 있습니다...피로 물들인 투쟁 속에서 자라온 남조선 혁명가들은 평양으로부터 울려오는 주체사상 강의에서 혁명이론을 배우고 각계각층 대중과 손을 잡고 싸우는 마당에 대중공작과 지도의 실천을 익히고 있습니다...  

투쟁의 국면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대중투쟁을 지도해 온 남조선 혁명가들은 나라 안팎에서 조성된 모든 주, 객관적 정세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1976년 2월29일 마침내 역사적인 남조선 민족해방애국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남조선혁명은 남조선인민의 힘으로라는 김일성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어 용약 결집된 남조선민족 해방애국전선 준비위원회에는 혁명가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소시민, 교수와 언론인, 문인, 군인, 여성 등 각계각층 대표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항일 빨치산 투쟁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기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전사들은 불굴의 투지와 결의 규율 인민대중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으로 남조선에서 외래제국주의자와 그들의 앞잡이를 쓸어버리고 남조선 인민들을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하고 강산을 뒤흔드는 만세의 함성과 함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조선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품 안으로 안기는 영광스러운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5천만 조선민족의 어버이시며 경애하는 우리 공화국의 주석이신 김일성 동지의 적의 탄압과 폭압 속에서 결사 투쟁하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수령님의 무한한 사랑과 교시 그리고 적극적인 지원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끝으로 어버이 수령님의 만수무강과 조선로동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무궁한 발전과 북조선 전체인민의 건강과 행복을 빌면서 저희들의 보고를 마치겠습니다.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남조선민족 해방전선승리 만세! 조국통일 만세! 1977년 11월7일 서울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중앙위원회 드림”  

남조선혁명 기지는 북반부 사회주의 조국”北찬양 일색

남민전은 1978년 1월11일 金日成에게 바치는 음성보고문을 녹음했는데, 이 역시 김일성에 대한 극도의 찬양과 숭배로 일관돼 있다. 월북한 안용웅이 녹음하고 전 모, 신 모, 안  모씨가 청취한 것으로 실록에 기록돼 있는 녹음테이프 신년인사문의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보다 큰 승리와 영광으로 빛날 새해 1978년을 맞이하면서 민족의 태양이시며 우리 5천만 민족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우리 공화국 주석이신 김일성 동지께 삼가 최대의 영예와 새해 인사의 축하를 드립니다..해방 후 30여 년간 미제와 그 주구들의 포악한 반인간적인 정책으로 말미암아 남조선인민들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처해있습니다.  

적들의 팟쇼적 만행으로 인하여 수많은 혁명동지들이 희생되었으며 오늘 이 시각에도 투사들과 애국자들이 감방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남조선 혁명가들은 주체사상의 기치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이론과 방법으로 자신을 튼튼히 무장하여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을 하루빨리 앞당길 결의에 가득차 있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로서 모든 것을 다 바쳐 조국과 인민에게 멸사봉공할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들은 지난 해 사업을 총화하고 새해 1978년의 혁명과업을 더욱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더욱더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의 조직을 더욱 확대 강화하는 것이며 반팟쇼 민주투쟁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오르도록 할 것입니다.천지를 뒤흔드는 주체의 사상은 세상이 주체의 숨결로 넘쳐흐르는 이 시대에 우리 남조선 혁명도 철저히 주체사상으로 무장함으로써만 승리할 수 있다는 혁명적 신념에 부풀어 있습니다...주체사상으로 더욱 알차게 무장하여 새해에는 혁명적 대전진의 전환점을 가져올 충분한 역량으로 키워갈 작정입니다. 

경애하는 수령님이시여. 조국의 북반부가 사회주의 나라들의 최고의 모범국으로 빛나게 건설되었다는 사실은 주체사상의 우월성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입증해 주고 있으며 특히 남조선 인민들에게 주는 혁명적 신심은 날로 달로 심화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남조선혁명의 기지는 조국의 북반부이며 북조선 인민들의 피땀 어린 사회주의 조국의 휘황찬란한 건설은 남조선 혁명의 모범적 교훈으로 되고 있습니다."  

남민전, 안용웅 월북시켜 북한과 연계

 北 지령 받아 서울에 삐라 살포      

남민전은 단체 결성 초기부터 북한과의 연계를 시급한 과제로 여겼고, 결국 안용웅을 일본을 거쳐 월북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으로 좌익사건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실록에 따르면, 주범 이재문은 1977년 7월1일 모처에서 “남민전은 투쟁목표를 현 정권 타도 남북연방제, 사회주의 통일에 두고 있으므로 북한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내란상태를 야기 시켜야한다”며 “가장 시급한 북한과의 연계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원 1명을 일본으로 보낼 계획이다.  일본만 가면 조총련을 비롯한 많은 연계선이 닿을 수 있다”고 조직원들에게 설명했다.이에 임준열(임헌영)은 “누가 일본에 가면 내가 잘 아는 교포시인인 김 모라는 사람에게 소개장을 써줄 수 있다”고 말했고, 결국 같은 해 11월 소개장을 작성해 줘 안용웅과 김 모씨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실록에 따르면, 안용웅은 도일 후 재일 대남공작원과 접선하는데 성공했고, 북한으로부터 3억원의 소위 혁명자금 지원에 합의했다. 문제의 대남공작원은 안용웅에게 남민전 조직이 활동 중이라는 것을 입증키 위해 78년 1월초 서울시내 삐라살포를 지령했고, 실제 같은 달 6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민전 조직원들은 ‘한국민주투쟁위원회(민투)’명의의 반정부 삐라를 살포했다.남민전은 78년 2월28일 안용웅에게 한화 10만원과 미화 500불을 여비조로 준 뒤 도일시켜 월북시킨 것으로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안용웅의 이후 행적은 공식적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애하는 수령 金日成 원수님.  남민전의 충성서신 中  

金日成주의 내건 ‘남민전’민주화 인정 파문 主體思想 최초 도입, 80년대 좌익확산 뿌리 공범 임헌영 氏, 출소 후 친일청산 전개 노무현 정권이 1979년 말 검거된 共産혁명조직인‘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관련자들을‘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물의를 빚고 있다. 대통령 직속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이하 심의회, 위원장 하경철)는 3월13일 제162차 심의를 개최, 남민전 사건 관련 신청자 중 29명에 대해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 받은 것으로 인정했다.심의회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 남민전 활동에 대해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민주정부를 세우자는 행위”로 각각 판단했다. 

심의위는 특히
△자금마련을 위해 고위공직자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친‘봉화산작전’(1978.12.5)
△동아그룹 최원석 전회장 집에 들어가 경비원을 칼로 찌른 ‘땅벌사건’(1979.4.27)
△금은방을 털려다 미수에 그친 ‘지에스작전’(1979.3.5)
△1978년 7, 8월경 예비군 훈련장에서 카빈 소총 1정을 군부대 밖으로 빼돌린 총기 밀반출 사건 역시 “궁극적 목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민전이 金日成 주체사상(主體思想)을 내걸고 공산(共産)혁명을 기도했던 단체였다는 점에서, 盧 정권의 이 같은 조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조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남민전 사건이 종료된 후인 81년 10월 대검찰청은 2200여 면에 달하는 공소장과 판결문 등을 기초로 ‘좌익사건실록’제12권을 발간했다. 실록에 따르면, 남민전은“주체사상(主體思想)을 확립하자”를 첫 번째로 하는 전사(戰士)생활 규범10조를 마련하는 등 金日成 주체사상을 표방한 남한 내 최초의 지하조직이었다. 조직원들의 소위 ‘교양’ 역시 평양방송을 종합한 주체사상 자료 등이 사용됐다.  남민전은 북한과 연계된 조직이었다. 남민전의 주범 중 한명인 안용웅(安龍雄)은 일본을 거쳐 월북해 金日成에게 사업보고서와 서신을 제출했으며, 이는 대남방송에 의해서도 확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민전은 공산혁명이 이뤄지면 북한군에 지원 요청할 것을 모의했었고, 혁명이 성공하면 중앙청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전선기(戰線旗)’를 준비하기도 했다. 전선기의 상부는 적색으로 해방된 지역인 북한을, 하부는 청색으로 미(未)해방지역인 남한을 상징하며, 중앙의 붉은 별은 사회주의 혁명의 희망을 의미했다.   

이 깃발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당한 도예종 등 소위 ‘8열사’가 입었던 내의를 염색한 천으로 만들어졌다.좌익사건실록은 남민전이 金日成에게 바치는 서신을 수록하고 있다.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서신은“경애하는 수령 金日成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조선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품 안으로 안기는 영광스러운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는 등 金日成에 대한 찬양과 숭배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교육

남민전은 79년 대부분의 조직원이 검거됐지만 남민전이 운동권에 미친 영향은 지대(至大)했다.

우선 남민전 잔당들은 80년대 좌익세력에게 주체사상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공산화하기 위해서는 ‘반미(反美)’라는 反제국주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남민전의 투쟁노선 역시 그대로 수용됐다.  386주사파에서 전향해 북한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동호 북한민주화포럼 간사(연세대 82학번)는 “80년대 연세대에 주사파가 확산되는 데도 노동계로 간 학생들이 남민전 잔당들과 접촉했던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며 “주체사상은 서울대 일부에서 자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북한과 연계된 남민전 조직이 학생운동권에 의도적으로 주입시킨 것이라는 분석이 옳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동권 전향자는 “남민전이 퍼뜨린 주체사상의 씨앗은 80년 광주사태라는 촉매와 함께 대학가에 급속히 확산됐다”고 증언했다.남민전에 직접 연루돼 검거됐던 이들 역시 80년 좌익세력의 큰 축을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좌익사상범에서 전향한 소설가 김정익氏는 교도소 내 남민전 연루자들과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1989년 ‘수인(囚人)번호 3179’라는 책을 쓴 바 있다.  

이 책에서 金씨는 “남민전 조직원들은 교도관 연락책까지 동원, 교도소 내외에 비밀지령을 주고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며 “남민전이 교도소 내에서 조직을 강화시켜 국내 좌익세력의 토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남민전 연루자인 시인 故 김남주로부터 공산주의 사상교육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김남주가 반복해 교육했던 내용 중 한 가지는 아래와 같다.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히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 숫자는 200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이수일, 임헌영, 홍세화, 권오헌 씨는 출소 후 각각 전교조(전 위원장) 활동, 친일청산(現 민족문제연구소장), 한겨레신문(現 시민편집인), 통일연대(현 국보법철폐특별위원장)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남민전 사건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이재오씨는 현재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일하고 있다.   

왜 이명박은 노무현의 하수인들이 거품물고 마구 추켜 세워주는 것일까? 

우선 노무현을 지탱해준 인터넷포털들의 입장 부터 보자. 노사모의 주축은 전대협출신들의 김일성 주체사상가들이다.거기에 명계남같은 친북성향과 친북활동 문익환목사의 아들 문성근이 가담하고 있다.그들의 노선은 안희정,정청래와 같은 맹렬 반미주사파들의 손아귀에 의해 변화됨을 감지한다.그런데 추석이후로 두드러진 특색중의 하나는 이들 네티즌들이 이명박지지자로 급격하게 탈바꿈한 사실이다. 

극렬할정도로 미국에 반감을 갖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무리들이 이명박을 아예 대놓고 지지하는 양태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무엇때문일까? 그 한예로 안희정의 거취가 주목받고 있다.안희정이 8.15사면으로 해금되면서 그의 활동반경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그동안 무엇을 하였을까에 포인트가 맞추어 진다.안희정은 고려대 최장집교수가 주제하는 동아시아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동아시아 연구소는 한국일보의 의뢰에 따라 종종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회 여론조사학을 다룬다는 것도 드러났다.안희정은 사회여론조사방법을 터득하고,이의 분석을 토대로 여론조사기관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분석이 나온다.앞서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작품을 안희정이 출시하였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뉴스메이커등에서 거론한 사실이다.안희정은 노무현의 정책기획통으로서,노무현앞에서도 담배를 피울수 있는 몇안되는 실세중의 실세라고 한다.그런 그의 위세는 어느 누구도 거역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안희정이 여론조사방법에 심도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안희정은 추석전에 이명박시장의 형인 이상득과 만남을 가졌다고 언론에도 보도되었다.이를 근거로 해서 노명박연대론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하여튼,현재의 정황을 살펴보더라도 노사모의 이명박지지는 분명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아울러 친노그룹의 네티즌들도 역시 이명박지지로 돌아선 것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이명박의 무엇을 보았기에 이런 흐름이 형성된 걸까?  

이명박은 6.3사태당시 고려대 상대학생회장으로서 총학생회장의 권한대행역을 맡아서 ‘민족자주사상’의 원칙하에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시위에 앞장섰다고 한다.5.16혁명이후 가장 큰 시위였으며 김지하,김중태,김도현등이 6.3사태의 주역이었다. 이재오,김근태,손학규는 그 다음세대인 ‘삼선개헌 반대’시위 세대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명박은 시위에 연루되어 감옥에 구금되었다가,현대건설에 입사한 후 경제계에 몰두하게 된다.이명박은 운동권출신임이 분명하고 사상적으로도 개방형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이명박의 주변을 보면,남민전사건에 연루된 이재오,삼민투사건과 일심회사건주동자가 친구인 정태근,민청학련 관련 인명진,반체제출신 김진홍목사,80년 서울역시위주동의 심재철,진보성향의 정두언,한나라당내 반박모임인 수요모임의 지원아래 당내 운동권출신들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형성하고 있다.따라서 열우당내의 운동권출신들과도 그리 큰 거리감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내려진다.열우당의 희망 박원순 아름다운재단에다 4년치 월급마저 갖다바친 상태이다. 열우당내의 운동권출신들은 비운동권출신에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시키고 있으며,한나라당내의 운동권출신들도 역시 박근혜에 대해 거부감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상황이 반박근혜라는 분모로 결집하게 되는 모습을 나타나게 하고 있다. 

이명박의 지지확대 배경에는 열우당과 한나라당의 운동권출신들을 중심으로 반박근혜라는 귀결점에 맞추어져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며 상승곡선을 띄운다는 논리이다. 즉, 운동권출신이 다음대권에도 올라서야 한다는 운동권정권수립 이라는 목표하에 이명박의 지지율상승이 전개되고 있다는 논리이다.이제서야 왜 이명박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였으며,지난 추석때 북한 핵실험이후로 운동권공멸의 위기상황에서 운동권들이 어떻게 소생의 길을 찾게 되었는지 의문이 하나씩 풀려가는 열쇠가 될것이다. 이명박이 운동권맏형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아 열우당,민노당내의 운동권세력들로 부터  지지를 받아내었고,기존 한나라당내의 운동권출신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이명박지지율 급상승의 원인이자,대세론으로 기울어가는 흐름이다. 

이명박은 결국 운동권정권 제3기를 창출하는 근원이 되어 친노세력 뿐만아니라 운동권세력들의 생명력을 소생시키는 숙주역할을 하고있다는 사실이다.이것을 우파는 캐치하지 못하고 여태까지 구호로서만 노명박연대니 우파분열이라느니의 헛손질을 한것이다. 박근혜 전대표는 순수우파이며,또한 개혁적인 우파임에도 운동권출신들은 이를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 박근혜의 진로가 앞으로 가시밭길임을 보여주는 이명박대세론은 반드시 해결해야될 우파의 숙제이다.  

우파는 절대로 분파주의적인 행동이나 바른 한국당등의 샛길로 삐져나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힘을 모아도 운동권세력에게 당해낼 재간이 부족한 시점이다. 우파의 개혁적인 변신에 앞장선 박근혜를 필두로 다시금 전열을 재정비하고 이론무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우파의 자신감회복은 국민들에게 파고들어 우파의 정신과 이념에 동조하도록 하는것이 제일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의 안목과 이념적 정체성을 분석한다.>

우익인사는 보통 우익임을 느낄 수가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때문에, 자연스럽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좌익은 그런 명확한 느낌 대신, 자꾸만 색깔이 의심되며 그 색상이 쉽게 파악이 안된다. 우선, 필자가 보는 좌익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하나는 사상적 공산주의 계열, 또하나는 친김정일 반역세력, 이 두가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명백히 드러난 좌익이나 골수 뻘갱이는 이 나라에 없다.  

드러내 놓고, 나 공산주의자요. 하는 사람 한 명도 없고, 나는 김정일주의 반역세력이요. 라는 사람 없으며, 그들은 자기 자신을 철저히 감추기 때문에 선별이 어려운것이다. 때문에, 여간해서는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단지 그들이 걸어온 행적들과 이력, 주변에 포진한 측근들의 성향 등을 통해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이명박의 이념적 정체성을 문제삼는 글에 대해, 혹자는 이명박이 좌익이라는 명백한 증거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명박이 우익이라는 증거 있느냐 라고 물으면 그들은 대답 못한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인이다, 종교인이다,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등인데, 정치인이 되어 필요에 따라 발언한 말 몇마디가 우익의 증거가 될 수 없으며, 기업인과 종교인임도 우익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기업인 출신의 간첩이나, 종교의 탈을 쓴 좌익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이념적 성향은 그의 말이 아닌 걸어온 길과, 이력, 주변 인사들의 색깔을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노무현이 좌익이라는 명백한 증거 있었는가? 김대중이 좌익이라는 명백한 증거 있었는가? 명백한 증거는 없이, 단지 색깔이 의심되기만 했었는데, 집권하고 보니 본모습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명박도 그럴 개연성이 크다. 색깔이 의심되는 면들이 과거의 노무현 보다도 훨씬 더 많다. 이명박의 사상성이 의심되는 근거들을 대충 열거해 보면... 

이명박의 과거의 체제전복 좌익경력, 전향한적 없고, 반성한 적도 없고, 과거의 체제부정 좌익행각(6.3동지회)을 오히려 기념하고 기리는 모임을 갖고 있다는 점. 국가보안법 폐지 찬성건, 4대악법 지지건, 이명박의 최측근 이재오의 국가보안법 폐지시도와 이라크파병 반대건, 전향한 적 없는 골수친북좌익출신의 측근들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점, 애국우익세력에게 골통보수니 극우니 하며 비난한 점, 정체성 확립 노력을 비난하고 사상검증마저 방해한 점,  

반미친북 의식화교육을 시키는 전교조에 대한 투쟁을 돕지는 못할 망정 뒤에서 총질을 한 점, 200억 싸들고 김정일 면담 대기한 점, 북핵위기에도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무개념, 북핵실험에도 금강산과 개성등 대북현금지원사업 중단을 요구하지 않는 무개념, 자유민주세력을 위해 한 일이 전혀 없는 점, 청계천을 만들어 가공된 좌익의 로고 전태일거리로 만든 점, 각종 부정과 부패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후 적장인 김대중으로부터 사면을 받은 배경의 의혹, 좌익단체와 그 세력들을 비판하지 않는 점, 등등...너무 너무 많다.  

이명박의 이념적 정체성과 가치관 등을 의심할 만한 근거들은 이보다 훨씬 많으며, 이 모든 것이 일관되게 친북좌파적 성향, 즉 이적행위로 귀결되고 있고, 그래서 우려하는 것이다. 만약 이명박의 사상과 이념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치더라도, 그의 행적과 측근들의 성향등으로 보아, 최소한 대북정책이나 이념과 정체성에 대해 아무 개념 없는 <개념상실 증후군>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니 땐 굴뚝에 이토록 많은 연기가 나지 않는 법이다.  

노무현과는 비교도 안되게 붉은 연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다. 어떤 명.빠는 이명박이 북한을 비판했던 말 한마디를 찾아 와서 보물을 캐낸 것처럼 감격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의 행적과 측근들을 비롯한 기본 바탕이지, 쉽게 뱉어 낼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때문에, 이명박이 필요에 따라 보수우익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아무리 쏟아낸다 하여도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표를 얻기 위한 방편일 가능성이 크며, 이명박의 본질과 본 모습은 지금껏 걸어온 길과 행보와 그의 측근들의 성향 등을 통해 읽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것이다.  

과거에 이명박이 주도했던 6.3사태를 좌익과 무관한 민주화 운동이라 주장하는 명.빠들이 있는 것 같아, 잠깐 살펴보자. 6.3사태는 5.18(광주 인민봉기 기념일)과 함께 북한에서 "남조선 청년학생봉기 기념일" 이라 불리는 기념일이다. 이명박과 그의 최측근 이재오가 주도했던 6.3사태는 간첩 김영춘이 국내 인사들을 포섭하여 지하당을 만들어, 배후조종한 사건이다. 1962년 1월, 간첩 김영춘이 국내인사들을 포섭하여 지하당 인혁당(인민혁명당)을 창당했고, 1964년 에 발생한 소위 6.3사태는 인혁당이 한일회담 반대 이슈를 선동하여 배후조종함으로써 제2의 4.19를 재현하여 무정부 상태를 조성하고 남침의 기회로 활용하여 대한민국 전복을 기도한 사건이었다.  

사회 불만의 이슈를  크게 증폭시키고, 순진한 군중들의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폭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공산폭동의 기본 전략이며, 6.3사태는 김일성이 간첩을 보내어 박정희를 증오하는 세력들을 포섭하여 조종한 사건이었다. 만약, 이명박이 단순 가담 정도라면, 순수한 의도일 수 있어 크게 문제되지 않으나,  이명박과, 그의 최측근 이재오는 6.3사태의 핵심 멤버였기에, 그들이 단순히 이용만 당한 게 아닌, 저들과 연계된 골수좌익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설령, 몰라서 이용만 당했다 하더라도 문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반성의 기미가 없이, 그 날을 기리는 모임과 행사를 갖고 있으니까. 

이명박은 또한 아직도 골수좌익 출신의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끊임 없이 색깔을 의심 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명박의 최측근 이재오는, 김일성과 연계된 공산혁명조직 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활동 및 간첩단 사건인 민중당(남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 활동으로 투옥된 바 있고, 이명박의 최측근 정태근은 삼민투, 등등의 골수좌익 출신들이며, 간첩과의 접선 의혹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정태근은 고진화, 김민석, 허인회(부여간첩접선)와 함께 삼민투 운동(간첩단 일심회의 주축은 삼민투 출신임), 일심회 간첩 손정목과 함께 운동했고, 통일연대 소속 친북단체인 민가협의 간사, 범민련 소속단체와 함께 6.15 이행추진위에 참여한 운영위원이다.  

또한 이명박의 킹메이커로 알려진 김진홍은 이해찬,정동영,장영달 등과 함께 민청학련 출신의 현역 회원이며, 북한 공민증 소유자이다. 또다른 킹메이커로 알려진 인명진은, 해방신학(카톨릭+공산주의)에 바탕을 둔, 악명높은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의 계급투쟁을 전개하여 기업체들을 말아먹던 전력이 있다.

상식적으로도 우익 인사가 골수좌익 출신들의 인사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사람은 코드가 맞아야 같이 일할 수 있다. 사고의 베이스가 다르면 같이 지내기 힘든 법이다. 그런데, 측근들이 하나같이 이념과 정체성이 의심되는 사람들 일색인데, 어찌 그 우두머리를 우익인사라 확신할 수 있겠는가? 아니 땐 국뚝에 왜 이토록 엄청난 연기가 나는가?  

이명박이 6.3사태로 반대를 주도했던 한일회담을 한번 살펴보자. 박정희는 미국·일본과의 유대를 통해, 실질적 자주와 안보의 기틀이 되는 경제발전의 길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 때문에 일본과의 국교정상화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현실적인 국가 발전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감정에 앞선 분별 없는 반대여론을 뚫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수교를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경제가 너무나 취약하고, 북한보다도 크게 뒤져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감정에 매여, 국가의 미래를 망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박정희와 이명박의 안목의 차이였다. 결국, 박정희는 이명박 등의 극렬 반대운동을 결연히 차단하고, 소위<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해 명분보다는 국익을 선택하였고,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의 성장동력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장은 굴욕이었는지 모르나, 멀리 내다본 박정희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보통 좌익들은 명분과 이상을, 우익은 현실적인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기준으로 본다. 만약 박정희가 이명박과 이재오 등의 극렬시위에 굴복해 물러섰었다면...만약 박정희가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여 드러눕는 김대중 등의 시위에 굴복했었더라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했을까? 지도자는 안목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과 같아서는 안된다. 넓게 세상을 못보고, 아직도 개념을 못잡고, 반성하기는 커녕 6.3동지회 기념 모임이나 갖고 있으니...제발 운동권 좌익들의 손에서 벗어나자. 왜 이 나라는 아직도 운동권 좌익들에게 놀아나는가? 좌익들에게 얼마나 또 당해야 정신을 차리려는가?  얼나마 더?..... 

미래포럼 성명. 여론조작 공작정치는 민주주의의 공적이다.  

미래포럼 2007.4.13.성명. 여론조작 공작정치는 민주주의의 공적이다.
서석구. 변호사. 미래포럼 상임대표.
미래포럼은 비민주적인 독재정권이 여론조작 집단최면으로 불의한 권력을 유지강화해온 역사적 경험을 한국에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누누히 강조해왔다. 2007년은 하나님이 한국에 주신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독재정권의 강화와 연장을 위해 여론을 조작한다.  

게르만 민족이 세계를 제패해야 한다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선동한 나치는 여론조작으로 독일국민을 집단최면을 걸어 독재를 유지강화했다. 모택동과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인명을 죽인 살인정권이나 집단최면이 걸린 살인적인 독재자를 영웅으로 착각한다.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공적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여론을 조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조작하는 범죄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한미 FTA가 타결되자 언론은 FTA 특집으로 노무현을 영웅화한다. 물론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한미 FTA 타결은 6자회담과 빅딜한 것에 불과하다. 한미 FTA와 빅딜한 6자회담 타결을 남북정상회담, 평화협정, 종전선언, 개헌으로 좌파정권을 연장하려는 공작정치로 악용한다면 노무현정권은 하나님과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론조작으로 좌파정권을 연장하려는 음모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여론조작과 공작정치로 6자회담을 좌파정권연장을 하려는 음모를 저지해야 한다.  

미국의 레이건은 임기 2년이 지난 여론조사가 최악이었으나 재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했다. 영국의 대처도 여론조사가 박빙이었으나 압승했다. 미국과 영국의 좌파여론조사기관은 레이건과 대처를 기피하였기 때문에 엉터리 여론조사를 한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이명박의 인기가 갑자기 수직상승한 이유가 없다. 한겨레신문은 그 이전에도 유난히도 이명박을 대선후보 1위로 압도적으로 지지해왔다. 노무현정권이 기금 2백억원을 지원하려는 한겨레신문. 이명박은 그런 한겨레신문 2006.7.5. 대대적인 인터뷰에서 이재오의 전력을 비판하는 한나라당 보수파를 수구보수와 색깔론을 매도했다.  

6.25이후 최대의 무장간첩단 사건인 남민전 사건과 연루하여 징역형을 복역했고 교도소를 들락날락 반미친북 범죄로 무려 10년 6개월 형을 복역한 지독한 반미친북자 이재오. 노무현과 열우당에 극도로 아부하고 국가보안법폐지와 이라크파병반대 투쟁을 벌린 이재오를 한나라당 대표로 민 이명박이가 북한핵실험이후 갑자기 인기가 수직상승할 이유가 없다. 이명박의 인기가 여론조사대로라면 이명박과 이재오와 김진홍의 뉴라이트가 위장된 보수세력과 연대한 서울시청광장 3.1 대회가 김홍도 금란교회 신자를 제외하면 극소수에 불과한 초라한 대회로 전락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 대회를 위하여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등 언론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었으나 하나님은 초라한 대회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아무리 대대적인 언론홍보를 해도 이명박과 이재오와 김진홍 뉴라이트와 서경석을 비롯한 위장된 보수세력의 3.1 대회가 실패한 것은 이명박의 인기가 조작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등 보수언론마저 한겨레신문에 동조한 것인지 이명박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이재오의 경선불복을 마치 영웅처럼 미화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이명박 지지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야당동지 박근혜와 이회창을 매도하고 지만원을 고발하고 노무현에 아부한 이명박,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을 벌리겠다고 협박하는데도 북한개성공단에 다녀온 이명박이 북한핵실험이후 갑자기 인기가 수직상승할 이유가 없다. 북한핵실험이후 대북지원 중단여론이 70%대 80%대에 비추어 정체성이 위험한 이명박의 인기는 떨어져야 하는데 왜 수직상승하는지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갤럽과 야후는 휴대폰인증제로 여론조사 공신력을 대대적으로 선전해놓고 왜 갑자기 여론조사를 중단하고 결과를 발표하지 않기로 하였는지 수상하다.  

케니스 폴락은 그의 저서 위험한 폭풍(THE THREATENING STORM)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1938년 독일을 침공해서 히틀러를 제거했더라면 2차 대전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나 평화를 구걸하다가 나치침략을 받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공적에게 평화를 구걸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공적이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공작정치를 물리쳐야 한다. 한미 FTA와 빅딜한 6자회담이 좌파정권 연장용 개헌, 남북정상회담, 평화협정, 종전선언, 미군철수, 여론조작,  

정치테러등 공작정치로 악용될 것이 뻔한데도 평화를 구걸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적과 동지를 혼동하고 이적행위를 해 국민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역사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이회창, 지만원, 박찬성, 자유민주주의 보수단체들은 좌파정권연장용 신당, 개헌, 남북정상회담, 여론조작, 평화협정, 종전선언, 정치테러등 공작정치를 물리쳐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할 것을 호소한다.

자료출처;文件發送 : 國家中興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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