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대마도=조선땅' 국제공인 지도 은폐-조작
일본제작 대마도=조선땅 지도 미국에 제시,
프랑스-영국 지도도 "대마도는 조선땅" 인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과 1949년 1월 7일 두차례 연두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공식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우리 지식인 중 일제 식민지 역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서양에서 서양 역사를 통해, 구한말 우리 역사와 일본의 한국 영토침탈 과정을 공부한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이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래된 해상 경계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이대통령의 발언에 나온 '오래된 해상경계'는 과연 어디일까?
이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11일 열린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주최 제3회이승만 포럼에서 “이 오래된 해상경계는 대마도와 일본 본 섬 사이의 현해탄”이라고 밝혔다.
'오래된 해상 경계'가 현해탄이라면, 대마도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가 된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93)는 1832년, <삼국접양지도>를 만든다. 이 지도의 해설서가 <삼국통람도설>이다.
하야시 시헤이는 이 책에서 당시 일본과 그 주위 3 개국, 즉 조선, 류쿠국(오끼나와), 하이국(북해도)과 무인도였던 오가사와라(小笠原, 일본 남부 태평양 1000km지점의 80여개 군도)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해놓았다. 아래 사진의 지도는 하야시 시헤이가 만든 <삼국접양지도>를 독일인 클라프로토(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대마도-독도가 모두 우리 영토로 기술된 국제법상 공인지도인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가 1832년 제작한 지도를 Klaproth가 번역 제작한 것ⓒ자료사진
일본인이 만든 바로 이 지도가 대마도가 명백한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것도 색으로 구분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프랑스어 판 지도의 국제적 가치는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 독도연구센터 소장)의 일본어 논문(<三國通覽與地路程全圖> と‘伊能島’の 中の 獨島. 독도 창간호, 영남대 독도연구소, 2008)과 조선총독부 문서(1924년 일제하 발간된 일본천황 열람<삼국통람도설>)에 잘 기술되어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당시 일본 정부가 이 지도를 국제공인지도로 활용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 개국을 요구한 미국의 페리는, 오가사와라를 미국령으로 할 목적으로 이미 미국인을 군도에 살게 하였고, 이 사실을 들어 막부에 오가사와라를 미국령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막부 측은,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통람도설>과 그 삽입지도인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삼국접양지도)’를 제시하였는데, 이를 미국이 인정하지 않자, 그 프랑스어판을 제시하여 겨우 미국의 영유권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즉 일본은 1861년 2월과 1862년 4월 미국의 해리스(Harris)대사, 영국의 알코크(Alcock) 대사 등 당시 열강 대사들에게 이 지도를 제시하면서, 국제적인 영토 분쟁의 공식 자료로 활용한 것이다.
김 대령은 “이 같은 미-일간의 오가사와라 영토분쟁을 해결한 하야시 시헤이에 대해, 1924년 조선총독부가 다시 발간한 <삼국통람도설>에는 '모든 일본인은 하야시 헤이시 선생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함. 광격천황께 바쳐져서 원본을 친히 열람하셨음.'이라는 표현이 있어 이 지도를 일본이 공식으로 인정한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김 대령은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기록된 삼국접양도를 이토오 히로부미도 알고 있었다”면서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자 증거자료를 없애고, 사실과 다른 자료를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다량 배포함으로서 우리를 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마도는 일본 영토로 표기된 위조 지도.@자료사진
▲일본 극우단체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조 프랑스어판 삼국접양지도.@자료사진
김대령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박물관에 소장된 일본어판 <삼국접양지도>(구글에도 있음)는 물론, 심지어는 일본 극우단체가 제시한 프랑스어판 <삼국접양지도> 조차도 모조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 대령은 또 미국 국가기록보존소에 보관돼 있는 미국 페리제독의 1865년 일본 지도를 함께 제시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미 의회 지시로 미-일 조약체결(1858년)에 따라 페리제독의 정찰결과를 토대로 일본의 지도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미 국가기록문서소(NARA ;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당시 기록과, 1862년 미-일 영토협상 후 미국에서 작성된 1864~68년 일본 지도 역시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영국지도에도 대마도를 우리의 영토로 표기하고 ‘대마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지도에 직접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현해탄 위치를 대마도 아래 이끼섬 남단으로 표기한 1855년의 미국 지도.
김 대령은 “한-일간의 해상 국경선은 일본지명사전에도 ‘고래로부터 일본과 한국,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현해탄(玄海灘), 일본은 겐카이나다(玄界灘 )으로 부르고 있는 곳, 즉, 대마도 남단 한참 아래인 이끼섬과 일본 본토 사이”라며 “일본이 현재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의도는 대마도의 진실을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는 아직도 유효하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11.05.11 19:36:49
www.newdaily.co.kr
"'대마도'는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
written by. 이영찬
김상훈 육사 군사훈련처장, 이승만포럼서 '대마도영유권' 정당성-근거 제시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60여 차례에 걸쳐 일본에 대한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던 근거를 확증할 수 있는 국제사회 공식문헌 자료가 제시돼 독도는 말할나위 없고 진전여하에 따라 대마도 영유권 주장 재조명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11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승만포럼'에서는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관련 주장이 이어졌다. 김상훈(육사 군사훈련처장) 대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350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라며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주장했던 내용과 관련해 이를 확증할 수 있는 국제공인 영토지도 자료를 제시했다.
▲ 11일 오후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는 이승만 연구소 주최로 '이승만 포럼'이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김상훈 육사 군사훈련처장이 "이승만 대통령 당시 일본에 대마도 반환요구를 주장했던 내용은 정당성이 있다"며 근거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konas.net | |
김 대령이 이같은 자료를 발표하게 된 데는 2008년 미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정책 연수를 위해 1년간 머무를 당시 이 대학 도서관에서 1907년에 쓰여진 이승만 대통령의 영문 저서 ‘Japan Inside Out’을 발견하고 부터이다.
김 대령에 의하면 이 저서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오래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이에 김 대령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시절, 이 ‘한-일 간의 오래 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어디를 의미 하는지,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한뒤 기회만 주어지면 “대마도를 불법 점거한 일본은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수십차례에 걸쳐 주장했던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수 년 간의 집요한 연구와 추적 끝에 이승만 대통령이 제기한 ‘대마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의 명백한 근거를 찾았다"며, 대마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확증 하는 자료로 1862년 프랑스어판으로 제작된 동북아시아 국제공인 영토지도(삼국접양지도)를 제시했다.
이 지도는 일본인 임자평(1738~93)이 작성한 '삼국접양지도' 지도로, 이의 해설서가 '삼국통람도설'인데 이는 당시 일본과 그 주위 3국인 조선국, 류쿠국(오끼나와), 하이국(북해도)과 무인도 였던 오가사와라(일본 남부 태평양 1000km지점의 80여개 군도)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독일인 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 대마도, 독도가 모두 우리 영토로 기술된 국제법상 공인지도인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이다.(1832년 독일인 Ki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konas.net | |
김 대령은 이 지도의 국제적 가치를 내세우며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 독도연구센터 소장)의 일본어 논문에 게재된 내용을 사례로 제시했다. 논문 내용을 보면, 일본에 개국을 요구한 미국의 페리가 오가사와라를 미국령으로 할 목적으로 이미 미국인을 군도에 살게 하였고, 이 사실을 들어 막부에 오사가와라를 미국령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하자 이에 대해 막부측은 임자평의 '삼국통람도설'과 그 삽입지도인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삼국접양지도)'를 제시하였는데, 이를 미국이 인정하지 않자 그 프랑스어판을 제시하여 겨우 미국의 영유권 주장을 물리쳤다며 당시 일본 정부가 이 지도를 국제공인지도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된 것과 관련해 "결론적으로 오가사와라는 일본 영토인 점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한 임자평의 '삼국통람도설'과 그 삽입지도(삼국접양지도)는 동시에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국제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기에 임자평의 '삼국통람도설'과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삼국접양지도)'만으로도 독도의 영토문제는 충분히 해결 될 수 있는 소지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저서에서 언급한 '한일간에는 오래된 명백한 해상경계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료를 통해 1855년 미국지도에 나타난 현해탄, 대마도 남단 이끼섬 하단에서 일본 본토 사이의 해역이 한일간의 오랜 전통적인 해상경계지역이였음을 제시했다.
김 대령은 발표 말미에 "이번에 제시된 '삼국접양도 프랑스어판 원본'이 극동지역에 주는 지정학적, 역사적 의미는 국제사회에서 처음 인정한 가장 보편적인 한국과 일본의 영토구분이자 일본 영토 팽창직전의 본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근세부터 현재까지의 한일간 영토 문제 해결의 기본 자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독도의 영토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아야 하며 1948년과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수십여 차례에 걸쳐 대마도 영유권을 일본에게 주장한 것이 지금까지 유효하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음을 모두의 관심사로 새겨줄 것을 당부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객원기자
2011-05-11 오후 11: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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