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종종 아버지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심정을 밝힐 때가 있다. 우리가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박근혜도 아버지의 시대를 떠올리며 아버지 시대의 단점까지 승화시킬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결국 화해로서 국민통합을 이룩해야 할 리더로서의 사명감이 매우 투철함을 반증하다. 작년 한나라당 경선 시 박근혜는 78632표를 얻어 81084표를 얻은 이명박에게 2452표 차이로 석연찮은 패배를 당했다. 원희룡은 2398, 홍준표는 1503이었다. 박근혜와 이명박의 월등한 성적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원희룡과 홍준표를 합친표가 자그만치 4000표에 육박한다는 것도 간과하면 안된다. 지금 홍준표가 원내대표임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든 잘못하든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변함없이 보내는 성원에 비해 입지가 원활하지 못한 것의 원인 중 하나가 대선때의 공에 비해 경선때의 위협이 불신을 줬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년 경선 후 박근혜 지지자들(박사모 회장 정모씨 등)이 석연치 않은 경선 결과에 불복해서 낸 이명박 대선 후보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가 이유없다고 기각했었다. 당시 재판부의 결정 내용은 ' 당내 경선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일정부분 반영한 것은 공직선거법에 어긋나지 않고, 정당한 절차와 합의를 거쳐 조사결과가 경선에 반영됐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 또, '국민참여선거인단에 선거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이중 당적을 가진 사람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여론조사에 가중치를 매겨 투표수에 일부 반영하는 경선 방식은 선거법에 어긋나고 , 국민참여선거인단에 선거권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며 경선결과를 무효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한나라당 승리를 위해 억장이 무너졌을 것 같은 감정을 삭이며 정도 정치를 지금까지 견지해오고 있으며 그런 진정성이 받아들여졌음인지 한나라당내 유력주자 중 지지율 59%로 타의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앞서 경선시의 득표수에서 얘기 했지만 지금의 박근혜의 지지율이 다소간 변동을 겪으며 지속된다 해도 다음 한나라당 경선에서 지금같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인적구성과 또 하나의 관례가 된 작년 한나라당 경선룰을 가지고는 박근혜의 시대를 확신할 수 없다. 또, 박근혜를 배제한 이합집산이 벌어진다면 원희룡과 홍준표가 획득한 4000표와 유사한 성격의 득표는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박근혜가 김정일과 김대중을 만나기도 하면서 남북 화해와 영호남 화합을 위해 들인 공, 즉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화해와 관용의 리더십은 아직은 그 결실을 거두기에는 민도가 성숙하지 못하다. 이명박이 호남에서 획득한 10%의 지지와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지지는 경제와 서울시장을 할 때의 전시 행정을 통한 대권정지 작업에 있었지 꼭 영호남 화합을 바라는 표심은 아니었다. 또 이명박의 이미지는 6.3 주역으로서 운동권 초기멤버의 요소도 있는 것이다. 이명박이 촛불집회로 곤궁에 처했을 때 보여준 아침이슬 이미지와 자신이 진보라는 발언은 보수세력보다는 진보좌파를 향한 고백이었다. 박근혜를 위해 지금 지지자들이 들이는 노력은 노무현 세력에 비해서도 미약한 것이며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지지자끼리의 이해 속에 혹여 있을지 모르는 불순한 의도는 정리가 되어 분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내부에서의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아까 재판부의 판결을 예로 들었는데, 지금의 이용훈 체제는 설사 이용훈이 임기를 그만둔다 해도 재판부의 인적 요소는 박근혜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판사 검사들의 성향이 반박정희인 인물들이 비일비재하고 좌파 단체와 던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운동권 출신들이 70%이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매우 의도적인 결과라고 하겠다. 박근혜는 자신의 능력과 지지자들의 노력만으로 꿈을 이룰 수는 없다. 호남의 지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지가 김대중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의 발견이 없이는 얻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보수세력을 배척하지만 말고 일정정도 친화적으로 포용해야만 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고통이 더 클 수가 있다. 믿는 도끼는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잘 써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투표함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투표를 할 때 투표함인지 흰상자인지 과거의 알루미늄 투표함의 위압감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집이나 회사의 금고는 아주 견고한 재료로 만든 잠금장치가 된 것을 사용한다. 지금의 투표함이 어떤 특수 가공한 종이 재료를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동하기 좋고 가벼우면 도둑들이 채가서 바다에 빠뜨리거나 태우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땅에 파묻어도 썩어버린다. 외국도 그리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외국의 예도 수집할 필요가 있고 채택하지 않는 나라의 이유같은 것은 돈이 들어도 알아봐야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데 사용하는 투표함이 가정이나 회사의 금고보다 허술하다면 그나라의 민주주의는 사기일 가능성이 많다. 사기라면 미리 뿌리를 뽑고 시작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로 가기위한 정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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