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혁명--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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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가람 작성일10-05-15 23:29 조회3,020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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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革命)이란?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우리는 두 번의 혁명을 경험하였다.
하나는 1960년의 4.19혁명이요, 다른 하나는 1961년의 5.16군사혁명이다.
그런데 현금의 학계에서는 두 혁명을 모두 혁명이라 부르기를 주저한다.
4-19는 학생의거라고 부르려 하고, 5-16은 군사쿠데타라고 한다.
혁명의 한자를 풀면 혁신천명(革新天命)의 준말로서 “하늘의 명을 받들어 세상을 새롭게 바꾼다” 라는 의미이다.
혁(革)이란 한자는 자전풀이가 “생가죽 혁”으로 되어 있는데, 털이 달려있는 가죽[皮]에서 털을 제거한 가죽으로, 혁(革)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과사전>에서 “혁명”이란 표제어를 검색해 보니, 요약된 설명은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국체(國體) 또는 정체(政體)를 변혁하는 일>이라고 풀어 놓았고,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의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기도 한다고 했다.
국어사전에서는 어떻게 설명하였나?
혁명이란 표제어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1)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2)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
어느 것이나 정치혁명을 바탕에 깔고 사회가 바뀌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정치와는 무관한 혁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혁명>아닌가?
그 밖에도 생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의미에서 <의식혁명>이란 말도 자주 사용하고, 무슨 일에서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시 혁명이란 말을 잘 쓴다.
다시 혁명이란 말을 곱씹어 보자면 짧은 기간 내에 어떤 수준의 근본적인 변화, 상승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준의 후퇴에도 혁명이란 말을 쓰나? --그러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변화는 개선이라 하고, 일부분에서의 변화는 이너베이션(Innovation)이라고 하지 혁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4-19 --
근본적인 변화는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혁명이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미완성 작품이다.
이어서 발생한 5-16 군사혁명-- 지금은 이걸 쿠데타라고 부른다.
혁명과 쿠데타는 어떻게 다른가?
우선 쿠데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백과사전>--(요약) 지배계급 내의 일부 세력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기습적인 정치활동. (원어 명 coup d'Etat)
이어지는 본문의 설명은 “동일 체제 내에서 지배자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며,
혁명과는 달리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고 하기도 하고,
덧붙여서 “쿠데타는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파의 체포 ·탄압, 정부요인의 불법납치 ·감금 ·암살, 군사력의 강압 등을 배경으로 하거나, 의회를 강점하고 주요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탈취 ·점령하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라고 설명해 놓았다.
<국어사전>---(프랑스 어- coup d’État).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지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
쿠데타 항목에서 비교하여 설명한 혁명의 의미를 유추하면, 혁명의 요소에는 민중의 지지가 필요하고, 체제 변혁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쿠데타의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지배층의 일부가 무력을 사용하여 은밀한 계획하에 기습적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일” 이다.
5-16을 되돌아 본다면 쿠데타적인 성격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성과를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혁명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5-16 이전과 그 이후를 대비해 본다면 그 차이는 확연히 들어난다.
5-16 이전-- 우리가 내 놓을 만한 것이 없다.
단군 이래의 5천년 역사?
그러나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
우리 선대의 역사라고 말은 하지만 그건 책 속의 이야기일 뿐,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일제(日帝)의 통치를 받은 식민지 경험과 좁은
국토, 하루 세끼 입을 벌리는 배고픈 입 2천만 등등.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광복절과 정부 수립 일이 겹친 것이
이제 와서 좌우 대립의 빌미가 될 줄이야…
정부수립 3년 만에 6,25 동란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었겠나?
3년 전쟁에 국토는 초토화하고 빈곤은 더 심화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민지 시절의 기나긴 어려움을 겪고 살아 남았기에 더 이상 좌절하지 않은 국민성이 아니었을까?
경제라는 말을 놓고 본다면 아무 것도 없던 암울한 시절.
무자본, 무기술, 무경험-- 그러니 더 잃을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위로 오를 일만 남은 상태에서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 이후로 우리나라는 인류역사상 그 선례가 없는
업적을 이룩해 놓았다.
경제 후진국에서 경제 선진국을 만들어 놓았고, 무경험의 민주체제를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잘 소화해 내어 훌륭한 자유 민주국가를 만들어 놓았다.
요즘은 오히려 자유의 과잉, 민주주의의 과잉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아무튼 5.16 이후,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의식이 “나도 할 수
있다” 는 적극성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와 함께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는 또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나?
8-15를 맞이하여 신문, 방송의 특집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한다.(2008년)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5-16이야 말로 우리민족이 겪은 진정한 혁명이다.
체제가 바뀌고, 의식이 변하고, 생활패턴이 바꾸며 수준이 근본적으로 상승된 것… 이게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도 5-16을 군사 쿠데타니 뭐니 하는 사람들 … 아마도 현실을 바로
보는 안목이 없거나 좌파에 물든 사람일 것이다.
댓글목록
무안계님의 댓글
무안계 작성일516을 구테타라고 하는이는 좌익 빨갱이요 혁명이라 하는자는 자유 우익이다.지금이 제2의 516혁명이 필요할때다
aufrhd님의 댓글
aufrhd 작성일
4,19는 부패한 정권을 몰아낸 학생 의거입니다. 그것을 혁명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고 여전히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과 나태한 불평불만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4,19혁명을 위하여 받혀진 그 많은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일어섰던 것이 5,16 군사혁명입니다.
5,16혁명이야 말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훌륭하게 다져 놓은 위대한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잔재한 부패 무능한 정치인들이 빨갱이들에게 속아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서 5,16을 쿠데타라고 말하게 만든 것입니다.]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옳으신 말씀에 공감합니다.
엽기정권님의 댓글
엽기정권 작성일
[ 혁명과 쿠데타 ]
http://chogabje.com/toron/toron2/view.asp?idx=&id=37146&table=TNTRCGJ&sub_table=TNTR01CGJ&c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