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폭동
페이지 정보
작성자 흐훗 작성일10-03-15 00:26 조회11,354회 댓글2건관련링크
본문
[출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폭동|작성자 쥬넥
출처: 시사논객 북클럽 |
===================================================================================
윤상원 등 광주 5.18 폭동 주동자들이 폭동 초창기에 세무소와 방송국에 불을 지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어디선가 읽은 자료에 의하면 시위대는 유조차를 이용해 불을 질렀으며, 만약 계엄군이 빨리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그 안에 있던 광주 시민들이 타 죽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더욱이 아직 군경 사망자들만 있었지 시민군 사망자나 부상자는 없었던 시점에 방송국들에 불을 지른 동기가 궁금해집니다.
아마, 그 이유는 일본의 조총련계 한민전과 관계하여 생각하여야 할 듯 싶습니다. 한민전은 배후에서 광주사태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광주사태 당시 폭도들이 방송국들을 불태운 후에 북한 방송을 듣는 이들이 있었는데, 광주 상황이 북한에서 실시간 방송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외국인 기자 신분으로 들어와 있던 한민전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요즘 방송국에서 짜집기 방송하며, 대학가 선동 자료로 이용된 비디오는 한국 방송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 똘마니 단체이며, 김대중이 초대 회장이었던 한민전에서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특수 장비를 가지고 있었으며, 군경과 민간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촬영 대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의도가 수상합니다. 요즘 모 방송사가 방영하는 5.18 자료는 그러고 보면 한민전이 북한에 먼저 보내 북한에서 선전 자료로 방영되었던 영상 자료들입니다.
한민전이 광주사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징후는 여러곳에서 발견됩니다.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된 그 모든 잔혹한 유언비어들을 누가 제조하였을까요? 조총련은 1975년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폭동선동삐라를 제작하였던 광주의 좌익서점 녹두서점은 조총련으로부터 북한 공산주의 서적을 입수하여 전국 운동권에 보급하고 있었으며, 폭동 주동자 윤상원이 븍한 서적을 탐독하고 있었습니다.
5월 15일 십만 명의 시위대가 모인 서울역 집회 때 시위대학생들 몇명이 갑자기 시민버스를 탈취하여 순경 5명을 깔아 몇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운전 솜씨는 학생은커녕 기사도 흉내내지 못할 솜씨였습니다. 아마 5월 20일과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김대중의 쿠데타(전국적 민중봉기)를 돕던 한민전 소행이었을 것입니다. 5월 19일 똑같은 수법으로 광주에서 순경 네명을 버스로 그 자리에서 깔아죽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생기면 나주 경찰이 광주로 출동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다가 텅빈 나주경찰서에 습격하여 수천정의 기관총, 수류탄 등의 총기를 시민군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들이 광주시민들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광주 시민이 나주까지 오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 내국인은 아무도 모르는 극비 장소에서 8톤의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하여 도청 지하에 능숙한 솜씨로 폭파 장치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광주시민들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더구나 누가 시간별로 일정을 미리 짜놓고, 어디서 장갑차를 탈취할 수 있으며, 광주 외곽 어느 지역에서 경찰서 무기를 탈취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가 시민군들을 선동했습니다. 하루 만에 그토록 중무장하는 것은 국군에게도 불가능합니다. 시민군이 단 하루 사이에 그토록 모든 무기를 다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 우연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한민전의 소행이 의심스럽습니다. 그 의혹은 5.18 희생자 중에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들이 상당 수 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짙어집니다.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북한군이 당시 광주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었는지를 증언합니다. 탈북자의 증언을 물리적으로 증명하기 어렵지만 요즘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5.18방송물 출처가 한민전이라는 사실은 한민전의 암약을 의심케 합니다.
광주사태의 진실은 폭도들이 먼저 낫과 도끼로 공수부대원들의 팔다리를 무수히 절단하여 동료 공수부대원들을 자극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실 광주사태를 점화한 것은 5월 15일의 서울역 집회였고, 그 시위 준비를 김대중이 선동하기도 했지만 당시 서울대 3학년 운동권이었던 한홍구, 유시민. 심재철 학생 등에게 괴전화가 걸려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괴전화의 발신자가 누구였을까요? 여하간 한민전의 의도는 1975년 3월 호지명이 시민군으로 민중봉기를 일으켜 월남을 공산화한 방법과 똑같은 방법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일시에 무수한 온갖 유언비어들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낫과 도끼로 공수부대원들의 팔다리를 절단한 후에 동료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비밀 카메라로 촬영하여 북한에도 보내고 여태껏 대학가 선동 자료로 활용해 왔습니다.
처음에 공수부대원들은 전혀 과잉진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전 11시부터 온종일 폭도들이 세무소 등 공공건물에 방화하고 파출서를 파괴하고 순경을 보는 대로 잡아다가 묶어놓고 개패듯 팼기에 광주경찰서장과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의 요청으로 광주향토사단 2개 대대 공수부대원들이 오후 5시 40분에 광주 사람 정웅 장군의 명을 받아 폭동 진압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전혀 과잉 진압을 하지 않았습니다. 돌맹이와 화염병을 얼굴과 가슴에 맞으면서도 대오를 흐뜨리지 않고 그들은 걸어 행진하면서 시위대를 맨손으로 해산시켰습니다.
그러나 몇몇 폭도들이 낫과 도끼로 공수부대원들이 팔다리를 절단하였기 때문에 동료 공수부대원들의 전우애를 자극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를 미리 예상하고 기다렸다가 촬영한 한민전이 있었습니다. 한민전의 공작 임무는 선동 영상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었으며, 사실 공수부대와 시위대 사이에 육탄전이 있었던 시간을 극히 짧았는데, 미리 카메라를 준비해 두고 있다가 모조리 찍었습니다. 그리고 폭동 주동자들은 방송국들을 불태워습니다. 이것은 광주사태가 오로지 한민전의 선동 자료 혹은 그들의 선동 구호로만 광주시민들에게 알려지게 하려 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분들의 증언을 들어야 합니다. 아래는 그런 증언 중 하나입니다.
[출처] 폭동 주동자들이 문화방송국을 불태운 이유|작성자 쥬넥
|
======================================================================
=================================================================================
5.18광주시민군 장갑차 동영상 이곳 노컷게시판 아그들이 박정희 전두환 못잡아서 난리부르스를 추는구나!!! 이걸 알아야지 광주5.18은 민주항쟁이 아니고 폭동이다 뇌가 한쪽만 발달돼서 한쪽편 눈만 뜬 자들이 두 눈 뜬 사람과 비교되겠나 날뛰는것도 분수를 알아야지 박정희를 빨갱이 빨갱이라고 노래하면서도 진짜 빨갱이에게는 빨갱이라고 말 못하는이들 인권탄압 이라고 하면서도 진짜 인권탄압하는 곳에는 인권탄압이라고 말 못하는이들 박정희를 독재라고 하면서도 진짜 독재하는 자들에게는 독재라고 말 못하는이들 도체 이들의 정체는 뭬야 노컷게시판 바로가기 펌글 바로가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휘하는 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인 특수전 1개 대대는 광주사태 때 장발을 하고 무장봉기군으로 위장하여 시민군 틈에 끼어 있었다고 한다. ![]() ▲ 북한군 앞잡이로 이용당하여 광주경찰과 광주군인에게 총을 쏘던 무장폭도들은 우리 눈에 생소한 군용차량들을 있는 대로 동원하였다. ☞ 동영상 주요 내용 -월남의 내부 분열, 전쟁속에서도 데모를 하던 월남인들 -날이 갈수록 심화돼가는 광주사태 -광주시가 전경(투석전, 건물 화재, 부서진 차들) -공공건물 방화, 무기고 습격, 무기 탈취, 방위산업체 습격, 군장비 탈취 -광주사태에 간첩과 공작도 연류(간첩 : 이창용 가담) -북괴, 정규방송 중단 -평양방송에서의 광주사태 보고(무장한 학생, 시민들 모습, 광주시가지 모습) -21일,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 광주 시찰 -25일, 최규하 대통령 담화 발표 -"대화로 해결하고 혼란은 국가안위와 직결되는것을 염두하고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사태를 수습해나가자"고 말함. ![]() ▲ 4륜구동 장갑차 위에 올라탄 폭도들 ![]() ▲ 광주시민으로 위장하고 유혈폭동 선동하기 위해 침투하다가 붙잡힌 간첩의 모습(북한 인민무력부 직할부대 "심리전" 대대 소속) ![]()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및 당 간부 증언 동영상 바로가기 ▣BBC 뉴스 동영상 칼럼 바로가기 ▣518 광주사태 사진전시회 바로가기 ▣북핵 관련 BBC 뉴스 동영상 모음(North Korea Nuclear Test)바로가기 |
========================================================================================
화려한 휴가는 허구
518의 의문점
이제 518에 대한 비판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을 쓰기전에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호남지역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고 있다던가, 518에 대한 의도적인 폄훼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518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한번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518 당일 날 글을 올리지 않고
지금 쓰는 이유도 감정이 앞선자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엊그제 518기념식도 끝났습니다. 이제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한번
풀어봅시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518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518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겠습니다.
1. 518은 "무장"을 했다는점에서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1)시민들의 "무장"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518과 유사한 사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안문 사태를 보겠습니다.
천안문사태는 518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망자가 많았습니다.
중국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기는 사건입니다만 중국 국민들은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419혁명은 당일날 서울에서만 100여명이 사망
했습니다. 경찰은 학생들을 향해 발포를 했고, 사망자는 518보다 훨씬 많습
니다만 시민들은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난다고 해도
시민들의 "무장"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광주시민들은 왜 거리로 뛰쳐 나왔을까?
그것은 "유언비어"때문입니다. 호남사람들이 518을 말할때 똑같은 변명을
합니다. 공수부대가 너무 과격하게 진압을 해서 광주인들의 아들 딸들이
죽어가니까 어쩔수 없이 무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자신들의 아들, 딸들이 죽어간다고 믿을 정도로
유언비어를 신임했습니다. 당시에 광주에 난무하던 유언비어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
"공수부대원이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서 태아를 빼냈다."
"공수부대원이 여고생을 강간하고 죽였다." 매우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유언비어가 퍼져나갔고 광주시민은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충분히 이해할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화가
나겠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민들의 "무장"은 불가능합니다.
시민들이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왔더라도 이들을 선동해서 먼저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즉, 어떤 불순세력이 개입해야만 "무장"은
가능합니다. 저는 이 세력을 친북좌파라고 부르겠습니다. 물론,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것입니다. 이 세력이 정말로 북의 지령을 받고 내려왔는지,
국내에서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며 오랫동안 자생한 좌파세력인지,
아니면 김대중 지지자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2. 급조된 시민군이 정규군에 비해 뒤지지 않습니다.
1)불특정다수의 시민들을 착출해서 군대를 만든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일단, 통제가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상명하복관계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이틀도 안돼서 마치 정규군처럼
조직을 만듭니다. 이렇게 하려면 직접 나서서 조직을 만드는 세력이 수십명으로
는 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큰 세력이 개입한 것입니다.
2) 시민군이 장갑차를 탈취해서 나오는 필름은 어렵지 않게 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갑차의 대오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합니다. 마치 국군의 날
행진하는 것처럼 반듯합니다. 그런데 장갑차라는 것은 승용차처럼 운전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들어가서 승용차처럼 끌고나올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공수부대도 총기사고가 가끔 발생합니다.
해병대나 공수부대처럼 훈련이 세고 군기가 강한 군대에서도 총기사고는 가끔
발생합니다. 그런데 시민군은 급조된 사람들입니다. 물론,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이겠지만 평소에 사회생활 하다가 갑자기 총을 갖게 된 사람들이
일반 군대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오발사고는 매우 많이 발생했을 것
입니다. 즉, 518당시 사망한 162명의 시민군이 모두 군인들의 총에 의해
사망했을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발사고 에 의해서도 많이 사망했을 것
입니다.
3. 군인들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1)최초의 사망자는 경찰이었습니다. 우리는 518의 발포명령자가 누구냐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민주화
됐다는 미국에서도 시위대가 과격할때는 발포를 합니다. 예전에 베트남
반전데모가 심할때 경찰의 발포에 의해서 학생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군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반응할수 밖엔 없습니다. 당시 시위대는 버스를 타고
군인들을 덥치는경우가 많았고, 군인들은 버스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시민들이 탈취한 장갑차와 버스에 깔려 죽은 군인도 있었습니다.
2) "화려한 휴가"는 허구입니다.
영화에 보면 도청앞에서 군인들이 받들어 총 자세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합니다. 시나리오상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영화를 위한 완전 허구입니다.
3)교도소 습격으로 50여명 사망.
교도소가 어떤 곳입니까? 유영철같은 각종 범죄자들, 얼마전 혜진양 유괴살인범
같은 자들이 수감된 곳입니다. 이 사람들이 교도소에서 모두 나온다고 생각해
보
댓글목록
반공인님의 댓글
반공인 작성일
5·18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순수한 의도의 시위는 분명 아닙니다.
이것은 민주화운동을 빙자한 폭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