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善心보다 결단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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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나무 작성일09-11-23 09:35 조회4,675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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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善心보다 결단하는 자리
내외적 도전과 위기극복 결단이 국가보위와 헌법수호 책무 완수의 길
대통령의 역할은 일상적인 아이디어나 내고 잡다한 보고나 받고 편한 사람이나 골라 쓰고 만만한 각료나 닦달하는 일이 아니며, 비리 수사 중 자살한 노무현을 관례를 깨트려가면서 국민장을 치러주고 유족과 야당이 떼를 쓴다고 국장까지 치러주는 생색(生色)내기 식 ‘善心’이나 쓰라는 자리는 더 더욱 아니다.
대통령이 할 일은 현명한 결정을 하고 가장 큰 국가적 위기 시에 가장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전쟁이냐 평화냐, 동맹이냐 단교이냐 같은 국가존망의 기로에서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 책무이며, 편 가르기가 아니라 국민통합과 국론통일 단결의 중심이 되는 것이 대통령 고유의 역할이다.
미국의 대통령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다음날인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시급을 오욕(汚辱)의 날(Day of infamy)이라 부르면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하여 전세를 역전시킴으로서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이태리, 일본의 전체주의 침략과 정복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내는 결단을 내렸다.
루즈벨트에 이어 제 33대 미국 대통령이 된 해리 트루먼은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결단으로 2차 대전을 조기에 종식시켜 수백만의 인류를 전쟁 참화에서 구해내면서 미국이 명실상부한 초강대국 지위에 진입 했다.
트루먼은 이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5년도 안 된 1950년 6월 25일 소련군 앞잡이 김일성의 남침을 즉각 격퇴하는 결단으로 “한번 가본 적도 없고,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작은 나라를 위해서” 178만 명의 미군을 참전시켜 45,116명의 전사자와 92,134명의 전상자를 내는 일대 희생을 치름으로서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존속토록 하였다.
제 35대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는 소련과의 정면충돌을 각오하고 1960년 10월 쿠바 해상봉쇄 결단으로 흐루시초프 소련 수상을 굴복시켜 미국의 안보를 지켜 냈다.
한국의 대통령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으로부터 불과 1년 5개월 10일 만인 1950년 6월 25일 T-34 소련제 탱크로 중무장한 김일성의 6.25기습남침을 당하여 중화기는커녕 변변한 소총 한 자루 없는 민병대 수준의 빈약한 국군으로는 전쟁을 치룰 수 없다는 냉철한 판단을 하였다.
이승만은 이러한 상황판단을 기초로 1950년 7월 15일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맥아더 UN군 사령관에게 이양하는 결단으로 현대장비로 무장한 미군을 주축으로 한 UN군에게 대한민국 방어책임을 지워 ‘초강국 및 국제기구’와 전략적 결합으로 9.15 인천상륙작전 여세를 몰아 38돌파 북진통일의 계기를 맞기도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의 호기(好機)를 잃게 된 대한민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전교섭이 무르익자 1953년 6월 18일부터 21일까지 2만 7092명의 반공포로를 석방시켜 세계를 놀라게 하고 미국의 조야를 경악케 함으로서 휴전직후 1954년 12월 13일 대한민국의 방위를 미국이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비준서를 교환 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 인도교를 건너 서울에 진입한 혁명군 지도자 박정희 장군은 백척간두에 놓인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결단을 내린데 이어서 1964년 9월 이동외과 병원과 태권도 교관단 파병에 이어 1965년 1월 8일 전재복구를 위한 비둘기부대, 7월 2일 전투부대 파병 결정으로 청룡부대와 맹호사단, 백마사단의 파병으로 월남참전 결단으로 대한민국 국가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소모적인 무력대결에서 평화체제로 전환을 위해서 1970년 8.15 평화통일구상 선언을 한데 이어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적지(敵地)에 밀사로 파견하여 김일성과 담판을 시도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린 또 하나의 숨은 결단은 닉슨독트린과 월남전과 닉슨독트린 영향으로 한반도 안정과 대한민국 안보가 위기에 처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힘에 겨운 자주국방과 “핵 개발”에 눈을 돌렸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사후에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1983년 10월 9일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아웅산 폭파 국제테러의 앙금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84년 8월 31일부터 4일간의 집중호우로 인한 수도권 대홍수시 김일성이 대남심리전 차원에서 제안해 온 ‘수해지원물자’ 접수를 결단하여 북으로 하여금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게 하여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북의 경제파탄을 가속시켰다.
김영삼 대통령도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결단을 내렸으나 임기도 끝나기 전에 물 타기를 하여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허물어 버리는 ‘愚’를 범했다는 허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헌법을 위배 해 가면서” 대한민국을 위한 결단이 아니라 김정일을 위한 반역적 결단으로 6.15와 10.4 정상회담에 나선 결과 대한민국 정체성과 국가안보를 근본부터 뒤 흔들어 놓는 대역죄를 저질렀다.
李 대통령의 결단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져야하는 헌법적 책무는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가보위와 헌법수호에 대한 내외로부터 도전을 극복하고 위협을 제거하고 위기를 돌파 하는 것이 대통령 책무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이에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매달려야 할 첫 번째 책무는 ‘북 핵 위협의 완벽한 제거’이며, 북을 압도 할 군사력을 건설하고 북의 직 간접적인 침략과 도발을 억제 격퇴할 전쟁억제력의 완비에 있으며 이를 위한 국력배양과 정신전력 고양이 필수적 과업이다.
이 대통령은 세종 시에 매달리고 4대강에 집착하기 보다는 국가존망의 및 국익의 요체(要諦)를 재정비하고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결심과 결단을 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 자신과 이명박 정부의 성패는 물론, 대한민국의 존망 성쇠가 달려 있다.
1. 헌법 제3조 영토조항 수호 및 NLL과 국가보안법 고수 천명
2. 위헌적인 6.15선언 ‘무효선언’과 위법적인 10.4합의 폐기
3.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 기조 후퇴나 수정 불가방침 유지
4. 북 핵전력을 능가 압도할 군사력 건설 및 국방태세 완비
5. 제도권에 침투 기생하는 미전향 반국가친북경력자 색출 추방
6. 노무현 e 지원시스템 밀반출 수사, 김대중 해외도피 재산 환수
7. 2007년 대선직전 북 김양건 남 김만복 밀사사건 진상규명
8. YS와 DJ간 황장엽 리스트 담합 및 김대중 김정일 핵 메모 공개
9. 민노당 민노총 전교조‘진보연대’등 공공연한 친북활동 엄단
10. 전공노,‘우리법연구회’등 제도권에 침투한 반역세력 색출처단
11. 한총련, 범민련, 6.15공동선언실천연대 등 ‘반국가단체’ 해산
12. 북 주체사상과 폭압독재를 압도 할 사상이념체제 및 국민통합
5000만 국민과 7000만 동포,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 촌 200여개 나라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그 어느 것 보다도, 전근대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 핵 무장 폭압살인집단을 말살 해 버리겠다는 “위대 한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댓글목록
엽기정권님의 댓글
엽기정권 작성일
옳으신 말씀,,
이건 그냥,,,
YS말기에 금융실명제가 흐려지게 된것은 개대중이 놈 때문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