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현장답사에 참여한 강원 통일교육 위원의 연수 기행과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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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1-11-16 07:40 조회1,34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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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현장답사에 참여한 강원 통일교육 위원의 연수 기행과 유감>
강원도 통일교육 협의회 위원 김찬수
2011년 10월 21일부터 22일까지 1박 2일간 강원 통일교육 협의회 위원들은 강원통일교육 협의회(회장 박용수)가 주최한 전방 DMZ 시찰과 연찬회에 참석하였다.
연찬회 교육시찰 일정의 전반부는 함광복 부회장의 진행으로 이루어 졌고 후반부는 한상룡 위원의 진행으로 행해졌다.
우리일행은 정해진 교육 일정에 따라 새벽 일찍 춘천 KBS 옆 광장에서 집결 출발하여 춘천의 오월교를 지나 화천의 사창리, 철원의 금화와 와수리, 한탄강 유역의 “승일교” “고석정” 과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이후 곧 남과 북으로 대치된 66년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양갈래로 찢어진 국토분단의 아픔안고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통일을 염원하는 일정에 참여한 것이다.
회고해 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김일성의 준비된 불법남침은 전국토를 초토화 시켰고 해방이후의 분단의 아픔은 휴전이란 고착상태로 61년 동안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생생하게 안고 우리남북의 국민들은 오늘날까지 첨예한 각기 다른 사상공방과 각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막연하리만큼 확실치도 않는 통일이란 염원을 안고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남북이 DMZ(군사분계선)란 장치하에 하나의 국토 아래에서 달라지지 않은 분단의 아픔을 확인하며 막연하게 그리고 미련스러울 만치 양갈래로 우둔하게 갈라서서 통일을 바라며 신음하는 현장의 생생한 모습들에 가슴속까지 찢어지는 아픔속에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 또 확인하는 이번 일정이 되었다.
전방에서 국방임무에 충실한 우리국군의 위용은 날카로웠다. 와수리 백골부대 산하 예하 부무대 부대마다의 영내 밖으로 긴 담벼락에 굵직하게 씌어진 고딕체 글자 구호는 조국수호와 우리국군의 용맹을 다잡는 용감한 통일 의지가 긴박하고도 절실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나타났다. 우리국군 최전방 현지 백골부대 장병의 구호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표호의 "멸북통일(滅北統一)" 함성이었다. 그때 서해교전, 천안함 동료 전우들의 장렬한 전사앞에 그리고 연평도 국토피격의 수모 앞에 전방의 전우들은 이렇게 무섭게 우리국민들의 통일의지가 집결된 최일선 통일대열에서 국군들은 그들의 위용을 울분으로 달래고 있었다.
"멸북통일(滅北統一)....!
침략목적의 흉한 땅굴의 현장과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전망대에서 지척에 놓였음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는 천년 역사전 태봉국의 궁예의 옛 모습까지 생생하게 다시 돌아보며 공산주의자들이 또 아리를 틀어 음흉하게 차고 앉아 있어 눈짐작으로 보아도 그 악독한 공산체제하에서 이북주민들이 고통을 이기려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기에 세계 속에 우뚝한 자유민주주의 우리국민들인 우리모두가 그래도 염원하는 통일의 따사한 마음들과 슬픈 생각들은 분계선 저 저넘어 평강고원 평원아래 신음하는 3대 세습이 민주주의라는 체제하의 이북동포의 쓰라림을 대책없이 바라보는 공허한 마음으로 남아 모두들의 슬픈 가슴에 쥐어 뜯는 아픔을 사시 한번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늦가을의 광활한 철원평야 한가운데 서있는 통일위원 우리들을 스스로 확인하며 아름답다하기보다 왜 여기가 슬픔을 자아내는 곳인가 하는 억제할 수 없는 몸부림에 아름다워야 할 철세도래지에서 철새 그들이 오가며 날아도는 평화로운 모습들이 단순하게 평화롭게만 보이지 않음을 모두들 한탄하였고 허공에 퍼지는 공허한 마음들을 쓸어 담기조차 뿌리치고 싶은 마음들 뿐이었다.
우리 국문학에서 “문장강화” 저술로 이름난 월북작가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의 고향이기도 한 금학산 바라보는 철원역 신축터 닦는 현장 근처에 자리한 이태준을 기억하기위해 마련한 기념비앞에 다다르니 또 한번의 분단의 고집들에 마음만 아팠고 철원노동당사에 이르르니 그때의 이북치하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의 북한체제 학정으로 인한 고통을 다시한번 확인 하기에 이르렀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일행은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DMZ 역사 해설가 함광복 부회장의 마무리로 화천에 이르러 내일일정을 담당할 또 한분의 해설가 한상룡 통일교육 위원의 영접을 받으며 소련의 코르바초프가 머물렀다 하는 기념가옥 중심으로 춘천호수 상류에 놓인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는 “팬션”에 여장을 풀고 첫날 일정을 정리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이튿날 우리일정은 한상룡 통일교육 위원의 해설로 시작되었다. 화천에 위치한 우리나라, 북한, 중국, 미국의 4개국의 기운이 얽힌 “구만교”의 유래와 묘한이름 “꺼먹다리”에 얽힌 생생한 이야기와 흐르지 않는 강이라 명명된 화천댐 아래의 널따란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며 우리일행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명명의 중공군을 격멸했다는 호수의 뜻이 담긴 명필휘지의 파로호(破虜湖) 친필 휘호가 비석으로 새겨 져 고고히 서 있음에 6.25 당시 화천호에 얽힌 전사를 생생히 확인하게 되었다. 기쁘고도 기쁜 것은 대한민국 우리국군과 연합군의 승전이었고 애석하고 가련한 것은 참전 중공군의 이북지원 발자취 흔적이었다. 참전으로 넘어온 중공군 1개군단의 전멸과 동해에서 항공기로 공수된 해군몫인 어뢰의 육지 내륙에서 댐 폭파목적의 폭격으로 전투기 공격으로 기록된 세계전사상 최초의 기이하고도 기이한 화천댐에 서린 전사 이야기들은 남의 애환이 아니었다.
한상룡 동일교육위원의 명 해설을 들으며 나는 여기서 6.25 그때의 상황을 되새기려 "파로호(破虜湖)라는 자작시조를 통일교육위원들 일행 앞에서 즉흥적으로 읊어 응답하였다.
"파로호(破虜湖)"
구만리 돌아드는 장엄한 내륙바다
산새도 쉬어가고 운무조차 멈춰이네
수륙이 끌어 안고 도는 깊은 저골 승전함성.
댐위로 걸으며 댐이 축조되어 완성되는 1944년당시를 회고해 보면서 중간지점에 놓안 “대붕제(大鵬堤)”와 “대명제(大䳟堤)” 댐 명명에 얽힌 해설에서 일본인들의 간악함과 비열함도 나라잃었던 그 당시를 회고해 보며 다시 확인 하였고 이어서 딴산의 인공폭포 해설로 우리 여정 앞에는 잠시 가을의 자연풍광도 느낄수가 있었다. 풍산리 “처녀고개”의 전설과 평화의 댐에 얽힌 두차례나 걸친 대역사(大役事) 축조로 국방의 의지들은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항상 비어있는 평화의 댐 위용은 이북 금강산 임남땜과 이에 얽힌 지형적 전술의 이야기들은 여기에도 전쟁억지력의 의지가 생생하구나 하는 통한의 회상을 되뇌게 되었다.
이틀간의 DMZ 명해설가인 두분을 만난 우리 강원도 통일교육 협의회 위원들은 다시 한번 고질적인 남북분단의 아픔이 피부와 뼛속까지 스며든 우리 국민들의 고통임을 생생하게 확인 하였고 통일교육위원들이 앞으로 해야할 국민대상으로 진행될 통일교육 당면과제와 세계만방에 드러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체성확립으로 그래서 성공한 우리나라 주도로 우리앞에 서서히 다가오는, 국토와 국민들의 한마음 되는 통일로 매진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지니며 이틀간의 귀한 강원도 통일교육 위원 협의회 통일교육 현장 답사 교육 여정은 마감되었다. 이 교육을 세심하게 준비한 관계자 모든분들과 특히 강원도 통일교육위원 협의회 박용수 회장님의 간절하고도 간절한 대한민국의 통일의 의지가 담긴 세심한 배려에 머리숙에 존경의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다.
P.S : 다음은 이번여정 첫날 철원 노동당사앞에서의 나타난 아주 꺼림직한 현장의 한가지 사례이다. 그 장본인은 일과성이 아니고 그 장소 집요하게 진행되는 역사왜곡 전담인 운동권 좌파들의 음흉한 남남 갈등을 획책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라 할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지금 대한민국 나라안 곳곳에서 전후방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고 특히 학교 현장 교실내에서도 계속되는 사례들이라고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안보면에서 심각한 문제점들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대한민국의 내일을 책임질 우리의 어린 학생들은 이렇게 학교의 전교조와 사회에 스며든 프락치들로 인해 자신들도 모르게 몸살을 앓고 노출되고 있음을 위정자들과 국민 모두는 확실하게 께닫고 이런 유형의 뻥뚫린 전방의 민간 안보태세를 다시한번 확실하게 확인하고 반드시 이에 대처해야 하겠다.
사례 : <뻥 뚫린 전방의 안보교육 현장을 신고합니다.>
2011년 10월 21일 오후 3시 30분 ~4시 30분 경 나는 강원도 통일 교육협의회 일원으로 전방시찰을 하던 중 철원군에 있는 "북괴노동당사" 앞 광장에서 이상한 현상을 보았다. 이에 모든 목격 사실을 서술하여 관계당국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여과없이 신고합니다.
우리일행이 탄 버스가 철원노동사앞 광장에 들어서려 하니 마침 전방견학 학생들 일원이 노동당사 앞 광장 입구에 모여 안내자라고 인식되는 특이한 복장의 한 민간인에 우루루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우리의 안내자는 그 현장을 보고 우리 일행이 저곳에 가면 너무 복잡할 것으니 마침 여기 근처에 있는 상허 이태준(尙虛 李泰俊)이란 이의 태생지에 설치된 설치물을 살펴 본 뒤에 북괴 노동당 당사를 들러보겠다며 우리일행이 탄 버스를 그곳으로 향하게 하였다. 멀리엔 우뚝한 금학산이 보이고 그 못미처 새로 터를 닦는 철원기차역을 가까이 바라보며 목적지 철원군 묘장면 산평리에 도착하였다.
이태준은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건국이후 6.25때 월북한 작가이며 그의 저서 중 문장강화(文章講話)는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금서(禁書)로 되어 있었는데 오늘날 까지 특히 국문학 분야의 저명한 저술로 평가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태준의 행적을 남긴 돌비석과 그 주변을 돌아보고 우리가 탄 버스는 조금 전의 "철원 북괴 노동당사" 를 들렀다. 그런데 아직까지 당사 앞 넒은 광장에는 한 묘한 행색의 인사에 둘러싸여 학생들이 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는 남자인데도 한 40대 중반(?)인데 약간 희끗한 머리를 길게 길러 뒤꼭지를 묶었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길러 마치 흔히들 인식되는 "도인"같은 행색이었고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노동당사를 한 바퀴 빙 둘러 보았다. 그런데 내가 처음 목격했던 1974년부터 1977년까지의 환경과는 매우 달랐다. 건물 밖으로는 건물 붕괴위험이 있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검정색 페인트로 칠한 철제 울타리가 삥 둘러 사각으로 싸여져 있었고 뒷쪽으로 한복판 지하실로 내려가는 복도가 자갈모래로 매몰되어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가 없게 변형되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철원에서 당시 그때를 증언한 사람들의 경험이야기를 토대로 알려진 것은 그 지하층은 복도 양 옆으로 되어 있고 그곳에서 내가 목격한 좁은 방 하나 하나에서는 북괴 노동당 공안 요원들이 우리대한민국 인사들을 납치해 잔악하게 고문했던 장소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 교육위원 한분이 그 수염 기르고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말하던 광장 입구 모인 장소엘 갔다 오더니만 "저 사람이 학생들에게 잘못 설명하는 것 같다"라고 하며 매우 당황하는 기색으로 우리에게 말하였다. 이 말은 들은 우리일행 중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급히 그곳에 가보았다.
그 개량한복 입은 사람이 놀랍게도 학생들에게 사실과 다르게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학생여러분! 저 건물은 6.25 전쟁 전에 북쪽의 통치자 김일성 때 건축한 건물입니다. 건축구조가 매우 단단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아직까지 반듯하고 또 견고합니다. 남한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독재정치를 할 때에 저 노동당사에서 이북 공산주의 정부가 대한민국 인사들을 고문했다고 선전했는데 그것은 잘못 꾸며진 이야기 입니다. 건물의 반듯한 모양을 보십시오. 어떻게 저런 반듯한 건물이 고문의 장소가 되겠습니까? 우리학생들은 모든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저 건물처럼 김일성시대는 고문이나 하고 비뚤어진 만행의 장소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학생들은 이북에 대한민국 독재자들 정치에서 잘못 구며진 선전에 절대로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이북 정부는 평화를 원하는 정부인 우리민족이 사는 순박한 그런 곳입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 개량복의 사람의 표정은 다정하였고 말씨 또한 아주 정다웠다. 그러나 그의 가르치는 내용이 전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들 우리가 아는 그런 내용이 아닌 거짓으로 꾸며진 무섭게 새빨간 전달 내용이었다. 지금 전방견학 우리학생들이 이렇게 영문도 모르는 사람에 둘러싸여 매일같이 엉뚱한 교육을 최전방의 철원노동당사 건물현장에서 받고 있는 것이다. 너무 화가 난 나지만 나는 모르는척 하며 몇가지를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내가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학생들로 둘러싸인 그에게 질문을 하였다.
"나는 1974년부터 몇 년 간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엔 저 건물 안을 들어가 볼 수가 있었고 그 안 지하층 좁은 장소는 이북 공안 요원들이 대한민국 인사들을 납치 해 고문했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건물 안으로 들어 갈수도 없고 또 지하로 내려가서 확인할 현장이 자갈모래 흙으로 매몰되어 있어 들어가 볼 수 없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는 그때 이후 1999년까지 교사신분으로 여러 차례 학생들을 인솔하고 와서 아래 좁은 지하실도 여러 차례 목격한 당시 인솔 교사인 신분의 사람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건물구조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참 이상하네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요?!
남 여 학생들이 다시 나의 말을 듣는 앞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그 개량한복 주인공은 어물거리며 당황하기 시작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래요? 잘모르겠는데요. 금시초문인데요. 지하실이 좁았지요? 왜 지하실을 막았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런 지하실이 있었단 말입니까? ....
그의 말의 내용은 왔다 갔다 했고 갑자기 횡설수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일행중 한 통일 교육위원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어 그와 학생들의 모습을 뚜렸하게 찍었다.
그는 당황하여 다른 곳으로 갔고 학생들은 종전과 다른 분위기가 되어 그 사라지는 개량복 이상한 젊은 도인을 갸웃둥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은 오랜 동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원봉사자들처럼 처신하며 또는 관계 문화당국에서 파견된 것처럼 그곳에 상시로 접근하여 우리학생들이 가정에서 부모에게서 들은 반공정신을 운동권 좌파 전교조 방식으로 희석시키고 또 옳은 인식을 뒤엎어 가르치는 최전방 사례의 사실이 된 것이다.
특히 2002년 이후 철원 군청당국이나 경찰계통에서 그 개량 한복 주인공 같은 사람들을 월급 주어가며 붙박이 전문적인 해설사로 파견하거나 임명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볼 때 나는 그가 스스로 접근하여 "간첩소행"을 닮은 행동을 한다 라고 단정하여 말했고 버스에 탄 강원도 통일교육협의회" 모두들도 그렇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공감하는 표정으로 거들며 다음 일정 예정지 화천으로 출발하였다. 한 위원이 덧 붙 혀 말하였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중도를 표방하는 이명박 대통령 지금까지 이어오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엎는 해괴한 현상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통리안보교육 강화는 나라지도자의 실천의지에 달렸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잇다.
이 사실 목격으로 의미 있는 시찰 일정의 하루 끝이 개운치 않은 통일교육위원의 전방 DMZ 현장교육 중 일부사례가 나타나기도 했었다. 이 사실로 현실을 유추해 보면 나라 안에서 후방에서의 전교조들의 학교교육 현상을 다시 생각해 볼 때 여기저기에서 뻥 뚫린 안보 통일 교육 현장을 다시 목격한 2011년 10월 21일 오후 한때의 사례로 남게 되었다. 앞으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좀 더 관찰하여 관계당국에 그의 행적을 신고 조사의뢰 해야 된다는 의견이 참가한 통일교육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 2011. 10. 23. 전방 춘천에서 화곡 김찬수.
<정리하는 글> : DMZ는 우리국민들이 자연의 경관만을 감상하는 그런 장소가 절대로 아니다. DMZ는 분단의 아픔이 영구히 고착되려 하는 역사적 아픔을 지닌 장소이다. 여기에 우리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민들 모두는 너도나도 다시와 확인해 보며 우선 대한민국 우리나라 안에서 모든 국민들이 일치된 하나의 통일의 의지로 똘똘뭉쳐 3대세습의 마수아래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북 동포를 대상으로 통일염원을 불태우며 성공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된 한반도 통일의 역사의 장으로 매섭게 불붙이며 이룩해 나아갈 평화완성 실현의 현장교육의 장(場)이어야 한다. 우리국민들 모두는 통일의 구체적 실천의지가 하나로 표출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즉 통일에 대한 염원은 개개인 다를 수 있다 하겠으나 국가적으로 볼때 통일방식은 반드시 하나로 일치된 전략으로 접근되어야 목표정한 방향으로 대과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겠다.
댓글목록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
이제는 도처에 빨갱이가 대놓고 선전을 하는 세상!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화곡선생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