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어느 날. 당시 애플의 청년 창업자이던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밸리의 한 지중해식 레스토랑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테이블에 넉넉한 팁을 남기고 일어서자 식당 주인이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잡스는 흔쾌히 응하고 식당을 나섰다. 그것이 둘의 마지막이었다. 주인의 이름은 압둘파타 존 잔달리, 잡스의 생부였다.
‘인간 잡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24일(현지시간) 전 세계 동시 출간되는 스티브 잡스 전기의 일부를 발췌해 20일 보도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이다.
췌장암에 걸린 잡스는 대안치료 방식을 고집했다. 2003년 10월 암진단을 받고도 9개월이나 수술을 거부했다. 대신 채식과 침술, 온라인에서 찾은 약초 요법에 의존했다. 심령술사를 찾기도 했다. 가족은 애가 달았지만 그는 고집불통이었다. 병이 악화된 이듬해 6월에야 수술을 받았다. 그의 마지막 카드는 DNA연구였다. 그는 “이 방법으로 암을 이긴 첫 번째 사람이 되든, 암 때문에 죽은 마지막 사람이 되든 둘 중 하나”라고 다짐했다. 스탠퍼드·존스 홉킨스·하버드·MIT 대학의 의료진이 총동원됐다. 잡스는 10만 달러에 자신의 암 유전자와 정상 DNA 염기서열 정보 전체를 구입하기도 했다.
전기에는 ‘독설가 잡스’의 면모도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오바마 대통령 면전에서 “당신은 연임 못해!”란 말도 했다. 지난해 산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백악관에 초청받았을 때다. 잡스는 자신이 인정하는 예닐곱 명만 초청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악관이 참석자 수를 늘리자 매우 불쾌해했다. 그가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초청해야 가겠다”고 심통을 부리는 바람에 아내 로런이 한참을 달래야 했다. 잡스는 대통령에게“미국은 규제 때문에 중국보다 공장 세우기가 어렵다”고 불평했다. 또 “교사 노조가 없어질 때까지 미국 교육엔 희망이 없다. 1년 중 11개월간 매일 오후 6시까지 학교를 열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최고의 독설은 구글의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향했다. “구글은 날강도이고 안드로이드는 훔친 물건”이라고 흥분했다. 2010년 HTC가 아이폰과 닮은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자 분노는 극에 달했다. 잡스는 아이잭슨에게 “내가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애플 은행 잔액 400억 달러의 마지막 한 푼을 다 쓸 때까지, 핵전쟁을 벌여서라도 안드로이드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에게 대놓고 “50억 달러를 준대도 안 받아. 내 아이디어 가져다 쓰는 것 좀 그만해!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야”라고 퍼부어댔다. 그는 애플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아이잭슨에게 “(HP 창업자) 휼렛과 패커드는 위대한 회사를 세웠지만 지금은 쇠퇴하고 있다”며 “애플엔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더 견고한 유산을 남겨주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최대 경쟁자였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젊은 시절 잡스를 “근본적으로 이상하고 인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나중엔 “뭐가 먹히는지 놀라운 본능으로 포착해내는” 능력에 존경을 품게 됐다. 반면 잡스는 생전 한 번도 게이츠를 인정하지 않고 “상상력 없는 인간”이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잡스가 죽기 전 둘은 꽤 오래 추억담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특히 “우린 결혼 잘한 행운아”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잡스가 “로런 덕분에 내가 반쯤이나마 제 정신으로 살고 있다”고 하자 게이츠는 “멀린다가 지금 내 상태를 유지해주고 있지”라며 웃었다. 잡스는 아이잭슨에게 “빌은 자선재단 만들고 난 지금이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