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의 풍요를 만든 전직대통령의 5방울 눈물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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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마리노 작성일13-01-18 20:54 조회2,9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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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땅의 학생들 참 정의롭게 잘 자랐구나 장하다 ---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당시 서대문 병원으로 문병가는 장면
측근들이 대통령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부정선거로 인하여 일어난 4.19로 시위중 경찰에 다친 학생들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문병할 때 눈물을 흘리며 한말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바로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경호원도 없이 걸어서 이화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에피소드 두가지
(1)이승만 그 사기꾼 하고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 도대체 얼마를 뜯어가는거야? 이스라엘보다 한국에 퍼준게 더 많지않아? - 미국 대통령 헨리 투르먼 : 툭하면 찾아오거나 전화로 미국 원조의 당의성을 설명하는 이승만에 질렸다며 측근에게 한말
(2)“여보, 북풍(北風)이 매섭습니다. 이웃들도 다 힘들어하네요. 시장에 나갔더니 우리 장갑은 구경도 할 수 없고 미국제 장갑만 몇 켤레 걸려 있더라고요. 그게 500환이나 한답니다. 열흘치 땔나무에 8000환은 줘야 합니다. 석탄을 좀 구하긴 했지만 너무 비싸 아침에만 잠시 피우고 만답니다. 지난 사흘 동안은 오후 5시 이후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촛불을 켜고 저녁을 먹고 있어요”
시장에 나갔다가 미국제 장갑 값에 겁을 먹고, 석탄이 아까워 온종일 오들오들 떨면서, 촛불 아래서 혼자 저녁을 먹는 이 부인이 누구일까.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다. 1946년 12월에 쓴 편지다. 해방되고 나서 1년 4개월이 흐른 뒤의 서울 생활이 이랬다. 이승만은 미군정(美軍政)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어찌어찌하여 미군 수송기의 한자리를 얻어 타고 워싱턴을 방문 중이었다 - 강석천의 이승만을 기억하자 중
2.“나라가 못 살아 이국 땅 지하 수천 미터에서 여러분들이 이런 고생을 합니다.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 “각하 우리는 언제 잘살아 봅니까?” - 1964년 12월 10일 박정희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눈물
광부들도 사실은 100대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사람들이다. 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려들었다. 상당수가 대학졸업자와 중퇴자들이었다. 당시 남한 인구 2400만명에 정부공식 통계에 나타난 실업자 숫자만도 250만명이 넘었다. 이런 시절이니 매월 160달러의 직장에 지원자가 밀려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루르탄광 지하 1000m와 3000m 사이 막장에서 1m 파들어갈 때마다 4~5마르크를 받았다
독일 땅에 도착한 한국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알콜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작업이었다. 70년대 중반에는 서베를린에만 한국 간호사가 2000명이 넘었다. 66~76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가 1만30명, 광부들은 63~78년까지 7800여명이 건너갔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이돈을 종잣돈으로 우리는 조국 근대화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3.임자..저 젊은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센 선원의 손 봤어? 그물처럼 갈라져서 굳은살이 박혔더군...나라가 가난해서..우리 젊은이들이 저고생을...내가 죄인이야...
- 1968년 9월 23일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의 유명한 '내가 죄인이야'라는 이야기로 유명한 장면 당시 원양어업은 일이 위험하고 거칠어서 웬만한 나라에서는 잘 안하려는 대표적인 3D 업종 요즘 조선족이나 인도인들이 많이 하는 직업을 저당시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했음.
서사모아 총독에게 고생하는 대한민국 선원을 잘 보살펴 달라면서 환영식에서 한연설-
이곳에 우리 국민이 많이 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이들중에 누군가가 귀하 나라의 법을 어기고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다 해도 귀하의 국민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들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 나의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저들의 잘못은 바로 나의 잘못입니다. 나를 대하듯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총독 각하,
우리 국민이 잘 살고자 이역만리 이곳에 와서 불철주야 와화획득을 하는 우리 선원들과 일일이 손을 잡아 보고자 하오니 시간을 좀 주시기 바랍니다
4.님이 고이 잠든 곳에 방초만 우거졌네 - 1974년 8월 19일 박정희
북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이 저지른 이사건을 계기로 대북한 안보의식이 전국민 사이에 고취되었으며 우리나라는 더욱더 산업화에 매진
박정희 대통령의 사부곡
님이 고이 잠든 곳에 방초만 우거졌네
백일홍이 빵긋 웃고 매미 소리 우지진네
그대는 내가 온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무궁화도 백일홍도세월이면 찾아오고
무심한 매미들도 여름이면 또 오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한번 가면 못 오는고
님이 잠든 무덤에는 방초만 우거지고
무궁화도 백일홍도 세월 찾아 또 왔는데
님은 어찌 한 번 가면다시 올 줄 모르는고
5.제발 경거망동 하지마 전쟁이 필요하면 내가 최선두에서 직접 지휘해서 밀고 올라갈게...
1983년 10월 국가 안전기획 전략회의 중 전두환 대통령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17명의 국가 핵심요원이 순국하자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한 전두환 대통령이 곧바로 연회의에서 당시 육사 11기생이 주축이된 군단장 군사령관 모두가 북한에 전면전을 주장하자 울먹이면서 한말
“지금 우리나라는 겨우 가난에서 탈출해서 86년 아시안게임, 88서울 올림픽을 순조롭게 개최해서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경제를 더욱 발전시켜 중진국으로 나아가야해... 지금 북한과 전쟁을 하면 이기던 지던 우리나라의 패해도 클텐데... 그렇게되면 우리나라 다시 예전의 가난한 나라로 돌아가야 되잖아? 안그래?
지금은 경제통인 김재익도 없는데 경제가 안정되도록 최선을 다할 시점이야..임자들은 북의 도발에 대비해서 최선을다해줘..필요하면 내가 직접 최전선에 설게...
지금까지도 독재자다 학살범이다 말은 많지만 저순간 만큼은 나라를 위해 큰 결단을 한 자랑스러운 대통령이라 확신함.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뒷면에는 조국을 위해 눈물을 흘렸던 전직 대통령의 아픔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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