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반역의 전향자를 쉽사리 믿어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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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반도 작성일12-12-30 17:44 조회2,5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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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반역자들의 轉向을 쉽사리 믿어주지 말라!!
그들은 여차하면 또 다른 반역을 꿈꾼다!!
1. 남로당 출신 남파공작원 김남식의 경우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출생하였다.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고, 미군정 하에서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하면서 좌익 활동에 뛰어들었다. 당시의 구체적인 활동 내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남로당 충청도당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전쟁 이전에 월북한 상태였고, 전쟁 중에는 특수 임무를 받아 고향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후퇴하는 조선인민군과 함께 다시 북조선으로 들어가 송도정치경제대학을 졸업했다. 1962년 12월에 공작원으로 남파된 직후 이듬해 1월 대전에서 검거되었다.
이후 전향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조선로동당 전문가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대한민국 통일부 국제문제조사연구소 평화연구원 등에서 근무하였다. 《북한 총감》(1968), 《남로당 연구 자료집》(1974), 《북한개요》 (1978) 등의 저서를 발표했다.
특히 1984년 출간한 《남로당 연구》는 남조선로동당이 대한민국에서 불법화 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낮게 평가되면서 그동안 크게 왜곡되거나 축소되었던 남로당의 활동을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분석한 첫 연구로 호평을 받았다. 이밖의 저서로 《박헌영 노선비판》(1986), 《한국현대사 자료총서》 (1986) 등이 있다. 마지막 저작이 된 《21세기 우리민족이야기》(2004)의 일본어판 출판 문제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사망했다.
김남식의 초기 연구는 대한민국에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이었다. 이때의 연구를 본인은 ‘노예의 언어’로 말하고 써야 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부가 약화된 1980년대 이후로는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좀 더 자유롭게 저서를 발표하면서 "민족 문제의 해결 없이는 계급 문제 또한 해결될 수 없다"는 민족 해방적 관점을 분명히 하여, 보수주의 단체로부터 친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후 김남식의 묘지에 '통일애국지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이유로 보수단체가 묘소를 훼손한 일도 있었다. 김일성의 찬양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김남식을 민족사관의 스승으로 부르기도 했다.
2. 진보당 조봉암의 경우
공산주의자였으나 해방후 박헌영과 갈등으로 전향하여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내고 대통령후보로 출마까지 했던 조봉암의 경우를 보아도 이 점은 명백하다. 조봉암의 진보당사건은 이승만에 의한 용공조작사건이 결코 아니다. 이 점은 통혁당의 김질락의 수기에도 잘 나와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평양 조국통일사, 1982)의 185~191쪽에는 왜 조봉암이 애국열사릉에 모셔져 있는지에 대해 그 근거가 제시돼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남조선 혁명가들은 혁명 역량을 하나로 굳게 묶어세우며 투쟁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당을 내올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었으며, 그 실행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의 줄기찬 투쟁의 결과로 그리고 남조선 혁명운동 발전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하여 1955년 12월에 남조선 혁명가들의 합법적 정당으로서 진보당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김일성 저작집 5권, 제2판, 480~481페지)
남조선 혁명운동 발전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하여 1955년 12월에 진보당 결당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남조선 혁명가들의 합법적 정당인 진보당이 나오게 되었다.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애국적 역량을 묶어세우고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기 위하여 진보당은 기성 보수정당에 대립하는 새로운 혁신정당을 표방하면서 발족하였다. 이것은 당의 합법적 지위를 전취(戰取)하며 광범한 애국역량을 묶어세울 수 있는 넒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남조선 혁명가들은 진보당을 내오면서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에 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방침을 구현해 나가기 위하여 몸과 마음 다 바쳐 싸워나갈 굳은 충성의 맹세를 다지었다. 진보당의 당수인 조봉암은 당을 내오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충성의 편지를 올리었다. 충성의 맹세를 다지며 적어나간 편지는 첫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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