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세력과 백범기념관, 도대체 무슨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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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반도 작성일12-11-07 13:13 조회2,9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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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北단일화 추진세력은 왜 백범기념관에서 만났나?
1. 종북좌파의 면죄부 장소 백범기념관?
종북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과 무소속 대선후보 안철수가 후보단일화 도토리 키재기 회동장소로 백범기념관을 골랐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상징이자 법통을 가지고 38선을 베고 누워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대한민국 단독 건국을 결사 반대하고 민족통일국가를 염원하다 죽음을 맞았던 백범 김구를 기리며, 백범의 남북화평정신의 계승자가 자신들임을 중도층 유권자에게 은연중 각인시켜 후보단일화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뜻이리라. 자신들은 종북주의자가 아니고 백범처럼 민족평화주의자이며 문화민족주의자라고 강변하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종북주의자들이 이념적으로 수세에 몰릴 때마다 면죄부를 받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종북의 원조 박헌영이 정전과 더불어 북한에서 미제의 간첩,종파주의자로 내몰려 처형당한 마당에 마땅히 내세울 인물이 없어 이념적으로 우익인사지만 가해자 없는 백범에 기대는 것이다. 김대중도 걸핏하면 백범을 들먹였다. 국민들이 백범을 여전히 나라의 선생으로 떠받들고 있는 정서를 철저히 이용해먹고 있는 것이다.
김구선생을 내세우기만 하면 종북언행에 대해 면죄부가 주어지고 국민들의 시선이 따뜻하게 바뀌는 걸까? 과연 그럴까? 이제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국민적 존경에도 불구하고 해방공간 백범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역사적 평가를 내릴 때가 도래했다. 누구나 功이 있으면 過도 있기 마련이다.
2. 해방공간 백범의 의문의 행적
우리는 해방공간에서 백범의 행적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철두철미 반공우익 인사였던 백범이 대한민국 건국반대운동의 방조자 역할을 하는가 하면, 뜬금없이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살지 않겠다며 형님 형님하던 이승만박사를 만고의 역적 취급을 하더니 지지자들의 간곡한 반대를 무릎쓰고 느닷없이 월북하여 남북협상 연석회의에 참가하고 더 나아가 김일성의 노선(단정반대 민주기지론)을 정당화시켜 주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백범을 따르던 많은 국민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추앙받던 국민지도자가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스스로 뛰어내린 격이었다.
북한당국의 선전에 따르면 백범은 내가 반공우익인사인데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물으며 선처를 호소하는가 하면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니 통일이 되면 고향에 과수원이나 운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백범의 뜻이 그렇다면 북에서 김일성을 도와줄 일이지 또 남하하여 험악한 여론을 자초하다 안두희 총에 사살되고 말았다. 왜 이와 같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만 것일까?
해방공간에서 백범의 민족주의는 우유부단하고 몽롱하기 그지 없었다. 스탈린의앞잡이 김일성의 깡통민족주의의 정체 하나 파악하지 못하고 부화뇌동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백범의 의문의 행적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손바닥 뒤집기처럼 순식간에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서울대 이영훈교수 : 이화장에서 최근에 발견된 문서의 내용
이화장 개보수를 위해 문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최근에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백범의 행적과 관련된 충격적 내용이 있다. 공산당에 대한 백범의 애매모호한 행동을 두고 자유중국에서도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상해 임정시절부터 백범의 아들 김신과 친하게 지냈던 유어만 대사가 장졔스 총통의 명으로 이 문제와 관련하여 김구를 직접 만났다. 유어만 대사는 당신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독립운동에 몸바친 반공우익인사인데 요즘 왜 이러시냐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당신 정체가 뭐냐? 당신 공산당이 된 것이냐? 라고 물었고 백범은 이에 대해 대답을 다음으로 미루며 유보했다고 한다.
대신 백범은 묻지도 않은 자신의 한반도 정세분석을 털어놓았다. 백범은 예전부터 한일합방, 만주사변, 상해사변, 일제패망 등을 정확히 예측했다며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반도 정세는 이대로 가면 전쟁으로 가는 정세이다. 그런데 인민군은 잘 훈련됐으며 무기도 최신식이고 사기도 충만하다. 국군경비대는 비루하기 그지없는 오합지졸이다. 전쟁나면 순식간에 인민군이 밀고내려와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싸우고 말 것도 없다. 이것이 눈에 훤하게 보이는데 금새 망해 없어질 대한민국 정부에 내가 왜 참여하겠는가? 유어만 대사는 어이가 없어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말았고 이 내용은 자유중국정부와 이승만 박사에게 보고되어졌다. 이승만 박사도 엄청 충격을 받고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범 김구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명백한 것은 백범 김구는 독립유공자일지언정 건국유공자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4. 백범은 간첩 성시백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 1997 노동신문 성시백 특집 중에서 -
성시백 동지는 4월 남북련석회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 의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극단한 반동분자로 있던 김구선생을 돌려 세우는 사업 체에도 큰 힘을 넣었다.
성시백 동지와 김구선생은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그 사연인즉 <상해림시정부>의 간판을 달고 프랑스 조계지안에 있던 김구선생을 비롯한 <림정>사람들이 프랑스 총영사의 지시에 따라 조계지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때 성시백 동지가 그들을 구원해준 것이였다. 만약 그 때 조계지 밖으로 나간다면 일제 특무놈들이 그들을 즉시 체포하여 처형할 수 있었다. 당시 상해일보의 기자로 있었던 성시백 동지는 이 사실을 알고 프랑스 총영사가 조선망명자들을 자기들의 불행처럼 여기면서 성심성의로 보호해 주고 있다는 글을 써서 신문에 소개하였다.
이렇게 되자 총영사는 <림정>계 인사들을 더는 조계지에서 나가라고 하지 못하였다. 김구선생은 이 때 성시백의 소행을 고맙게 여기었으며 그를 출중한 인물로 까지 보게 되였다. 이런 관계로 하여 성시백 동지는 김구선생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 제 생각에는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오신 분인데 김일성 장군님을 직접 찾아 뵈옵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북에서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 자주력량으로 조국을 통일하기위한 대표자들의 련석회의를 개최할데 대한 제의를 내 놓았는데, 이 거사가 성사되기만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우리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입니다>.
김구선생은 그의 이 말을 듣고 한숨을 푹 내 쉬더니, <자네말에는 반박할 여지가 하나도 없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무조건 경원시하며 적으로 규정한 이 김구를 북의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반가워할 리야 없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시백 동지는, <바로 그것이 선생님의 고충이시겠는데 오늘 나라가 영영 둘로 갈라지느냐, 아니면 통일이 되느냐 하는 시국에서 지나 간 일을 두고 중상, 시비할 것이 있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선생님이 결단을 내리시어 북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미국 사람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리승만과 손을 잡겠습니까? 아니면 북에 들어가서 김일성 장군과 마주 앉겠습니까?> <음, 그러니 군은 김일성 장군을 신봉하고 있군 그래. 알겠네. 내 알아서 용단을 내리겠네>.
성시백 동지는 이러한 실례를 인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 드리였다. 그의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 수령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할 각계 민주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김구, 김규식에게 보내는 초청장만은 성시백 동지가 직접 전달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선견지명의 지략에 탄복하면서 성시백 동지는 즉시 김구선생의 서기에게 김일성 장군의 특사가 곧 찾아간다는 것을 알리고 그의 집으로 가게 되였다.
간단한 인사 말이 오고 간 다음 성시백동지는 김구선생에게, <선생님은 전번에 북의 공산주의자들이 과거를 불문에 붙인다는 것을 무엇으로 담보하겠는가고 물으셨지요?>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그리고는 <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선생님의 애국충정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고 지나간 일들을 모두 백지화할 것이라고 담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 장군님의 의사를 전달할 뿐입니다>.
그러자 김구 선생은 <아니, 뭐, 뭐라고? 김일성장군님께서?> 그렇게 말하며, <그런데 자네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고 물었다. <내가 바로 김일성 장군님의 특사입니다>
김구선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문과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던 김구 선생은 <아니 자네가?,,, 그렇다면 임자가 오늘 오신다고 하던 김일성 장군님의 특사란 말씀이시오?> 하고 물었다. 이렇게 김구 선생의 말투도 대뜸 달라졌다.
성시백 동지가 일어나서 김구선생에게 엄숙히 초청장을 전달하였다. <우리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범선생에게 보내시는 남북련석회의 초청장입니다>. 이 순간 과묵하고 고집스럽던 김구선생의 얼굴이 감격과 흥분으로 붉어졌다. <김일성 장군님께서 그처럼 믿어 주실줄은 내 미처 몰랐습니다. 장군님께서 불러 주셨으니 기여이 평양으로 가겠습니다. 내 이후로는 다시 일구이언하는 그런 추물이 되지 않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92년 12월 어느 날에 이때 있은 일을 회상하면서 1948년 4월 남북련석회의때 성시백의 활동이 컸다고 하시며,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신 후, <나는 앞으로 회고록을 쓸 때 해방후 남북련석회의 대목에 성시백의 활동내용을 적어 넣으려고 합니다>라고 하셨다.
백범기념관 ! 종북세력들이 그곳에 모여 단일화 요담을 가졌다니 그들은 이 모든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갑자기 머릿털이 쭈볏 서고 피부에 소름이 돋아 오싹해지는 느낌을 가지는 것은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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