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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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반도 작성일12-11-10 22:30 조회3,0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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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요동치는 대선정국, 간첩 성시백은 부활했다!!
소용돌이치는 대선정국에서 조선노동당의 간첩들이 벌이는 정치공작, 언론공작의 범위와 내용은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에 대하여 애국세력들의 철저한 감시와 견제, 가차없는 폭로와 비판이 요구된다.
다음은 해방공간에서 활동했던 공화국 영웅 1호 간첩 성시백의 활동내용 중 일부이다.
1. 해방공간에서의 일명 <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 또는 성시백 조직>
해방직후 <림정>계렬의 반일 독립운동자로서 남조선에 귀국한 성시백 동지는 서울 장안에서 여러 상사를 움직이는 부유한 <상인>이 되여 활동하였다. 그는 팔자수염을 기르고 고급 중절모를 썼으며 양단저고리 우에 진세루 조끼를 바쳐 입고 앞섶에는 회중 금시계 줄을 늘이고 다녔다. 외모는 이런 차림새였으나, 그는 언제나 마음 속으로 자기를 <김일성 장군님의 특사>로 간주하고 있은 성시백 동지는 준엄한 통일혁명의 첫걸음을 조직을 꾸리는 사업으로부터 시작 하였다.
그리고 정력적인 투쟁과 비상한 노력으로 그는 빠른 시일 안에 우익 및 중간정당, 단체들, 미 군정청과 적의 통치수뇌부, 괴뢰경찰과 첩보대, 괴뢰군부, 심지어는 괴뢰 재외대표부들에게까지 산하조직을 꾸려 놓았다. 이리하여 성시백 동지는 적들까지도 후에 비명을 치며<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라고 불렀고 일명 <성시백 조직>이라고도 한 지하혁명조직을 미제 식민치하의 남조선 땅에 깊숙이 뿌리를 박게 하였던 것이다.
성시백 동지는 조직이 꾸려지고 공작 거점들이 도처에 마련되자, 먼저 선전 공작 에 힘을 넣었다. 그는 <조선 중앙일보>를 창간한데 이어 <광명일보>를 비롯한 10 여종이나 되는 신문들을 경영하여 선전공작에 리용하였다. 그는 서울 한복판 에서만 아니라 보란듯이 영어, 중어, 프랑스어로 된 화보 <해방조선>과 <조국 통신>을 발행하여 국제우편을 통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 배포함으로써 경애하 는 수령님의 위대성을 해외에까지 널리 선전하였으며 분렬주의자들의 매국적 죄행을 만천하에 고발하였다.
성시백 동지는 그 어떤 새로운 공작을 시작할 때나 사업을 전개해 나갈 때마다 김일성 장군님의 특사인 나에게는 수행 못할 그 어떤 임무란 있을 수 없다 하군 생각하였다.
성시백 동지가 통일전선 공작을 벌리던 시초에 있은 일이었다. 남조선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중간세력을 쟁취하는 문제는 통일혁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 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 되었다. 미제와 그 주구들은 어떻 게 하나 중간세력을 저들 편으로 돌려 세우기 위해 온갖 책동을 다하고 있었다.
성시백 동지는 이에 대처하여 중간 정당, 단체들을 반미 자주통일을 위한 통일전 선 대오에 결속시키기 위한 사업에 모를 박았다. 그는 당시 남조선의 중간 정당, 단체들 가운데서 제일 영향력이 강한 근로 인민당을 비롯한 5개 정당을 포섭하기 위한 데 힘을 돌려 4개 정당을 통일전선에 합류시키게 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 개 정당이 문제였다. 그것은 이 당의 한 상층 인물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었다. 형세에 따라 여기에 붙고 저기에 붙는 그를 두고 적지 않은 조직원들이 도저히 돌려 세울 수 없는 인물이라고 했다. 생각을 거듭하던 성시백 동지는, 어느 날 그 인물을 찾아가 진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사실 나는 일구이언하며 표리부동하게 행동하는 당신이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려 했소. 더구나 나라를 동강내려는 반역의 무리들을 찾아다니는 당신과 같은 사람하고는 두 번 다시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댔소. 그러나 오늘은 나 개인의 자격으로가 아니라 <김일성 장군님의 대표>로 당신을 만나러 왔소>. <아니 그러면 항명씨가?,,,> <그렇소, 나는 김일성 장군님의 대표요>
그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다음에는 경탄의 눈길로 성시백 동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날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나라와 민족 앞에 큰 죄를 지을 번 하였던 자기의 행동을 심각히 반성하고 자기가 반미 구국투쟁에 전심할 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이렇듯 성시백 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적극적인 통일전선 공작을 벌려 처음에는 5개 정당을 다음에는 10개 정당과 그 산하 14개 단체들 까지 통일전선에 망라시켜 13개 정당협의회까지 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1947년 10월에 미제는 우리 인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조선문제를 유엔에 상정시키었으며 11월에는 <유엔 림시 조선위원단>이라는 침략도구를 조직하였다.
성시백 동지는 새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우선 미제의 <유엔 림시 조선 위원단>의 범죄적 책동을 신문과 출판물들을 통하여 폭로 단죄하는 한편 서울에 기여든 <유엔림시 조선위원단>을 분렬과 혼란으로 빠트려 맥을 추지 못하게 하는데 힘을 넣었다.
그는 부유한 상인의 신분으로 아세아의 몇 개 나라 대표들을 초대하여 능란한 외교수법과 류창한 영어로 그들과의 대화를 생활풍습과 력사로부터 점차 반제 정신을 고취하는 방향에로 유도하여 나가면서 그들이 외세에 의하여 분렬된 우리 민족의 불행을 자기들의 불행으로 여기게 함으로써 우리의 지지자로 나서도록 하게 하였다.
성시백 동지는 그 외 몇 개 나라 대표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어 <유엔 림시 조선위원단>안에 우리의 지지자, 동정자 그룹을 형성함으로써 회의 때마다 의견이 대립되고 그 어떤 문건 하나도 전원 찬성으로 가결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13개 정당협의회>에서 <유엔 림시 조선위원단>문제를 토의 규탄하고 <유엔총회>의 의장 앞으로 항의문을 보내어 유엔의 헌장에 맞게 국제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할 용의가 있다면 조선 인민의 일치한 요구대로 <유엔 림시 조선 위원단>을 지체없이 끌어내 가야 한다는 것을 단호히 요구함으로써 국제적인 여론과 규탄을 불러 일으키게 하였다.
결과 미제의 <유엔 림시 조선위원단>은 밖으로부터 얻어맞고 내부로부터 와해되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존재로 되었으며 미제의 골치거리로 되고 말았다.
위대한 수령께서는 성시백 동지의 이러한 투쟁소식을 들으시고, 그를 높이 평가해 주시면서 성동무가 이번에 큰 일을 하였다고, 그는 재간도 있고 무슨 일이든지 결심하면 꼭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라고 거듭 치하해 주시면서 못내 만족해 하시였다.
2. 대선공간에서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 일명 <백락청 조직>?
2012 대선 D-40, 부활한 조선노동당의 간첩 성시백은 누구인가?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내용
으로 갈음한다.
(1) 동아일보 [사설] ‘원탁회의 세력’은 어떤 나라 만들겠다는 것인가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가 그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 후보 측은 “원로들의 주문을 깊이 유념하고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안 후보 측은 “우리 사회 원로들의 기대와 걱정에 대해 이해하고 깊이 새겨듣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탁회의 원로들의 면면과 활동 전력을 살펴보면 과연 두 후보가 경청할 만한 책임감과 무게를 지녔는지 의문이다.
원탁회의의 핵심 멤버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청화 스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는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의 단일화를 중재했다. 단일화의 대가로 두 사람 사이에 2억 원이라는 큰돈이 오간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곽 씨는 후보자 매수죄로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고 교육감 직을 상실해 재선거를 치르게 됐다. 원탁회의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중심이 돼 2011년 7월 ‘2012년 선거에서 이겨 2013년 정권을 교체하자’며 만든 조직이 지금의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다. 원탁회의는 올 4·11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를 중재했다. 통진당은 야권 연대가 이뤄진 덕분에 13석의 의석을 얻어 제3당으로 도약했다. 그 와중에 당내 주사파 세력이 경선 부정을 통해 의회에 입성했으니 주사파의 의회 진출 길을 닦아준 셈이다.
원탁회의는 주요 인사의 전력이 친북(親北)과 종북(從北)을 오가는 집단이다.청화 스님은
2005년 경기 파주 보광사에 간첩과 빨치산 묘역 조성을 주도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상임고문이다. 함세웅 신부와 김상근 목사는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 철수, 남북연방제 통일을
주장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지도위원을 지냈다. 전면에 나선 이들 종교인 뒤에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 고문 같은 골수 종북주의자도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2013년 체제’란 무엇인가. 백 교수가 남북 분단 모순과 자본주의 체제 모순의
동시 극복이라는 현학적인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북한의 연방제와 유사한 남북
연합체제다. 원탁회의는 단일화를 중재할 만큼 중립적이지도 않다.
한때 이해찬 민주당 대표, 문 후보도 원탁회의 멤버였다. 이런 원탁회의가 주선하는 단일화는
오히려 동기의 불순함 때문에 국민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
(2) 조갑제닷컴 左派단체 행사에서 “나도 북한공작원 접촉했다” 시인
백낙청은 2010년 8월12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공개적인 自首(자수)를 선언하며 공안당국을 기만했다.
2010년 8월13일자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백낙청은 “한충목 대표가 北의 공작원, 김지선, 리창덕, 양철식과 접촉했다고 구속됐는데, 전부 제가 아는 이름이고, 저도 접촉을 많이 했다. 공개적으로 자수한다”고 말했다.
백낙청이 언급한 한충목은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指令(지령)을 받고 맥아더 동상 파괴 난동,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벌인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회합 등)로 구속 기소된 인물이다.
한충목은 북한의 指令(지령)에 따라 좌파단체들과 연계해 2005년 9월 인천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를 열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반미집회를 주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특히 북한 공작원들은 한충목에게 ▲ 김일성 수령님을 본받아 대중사업을 강화하고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을 발동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나설 것 ▲김영삼·황장엽 역적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 ▲미군철수공대위를 결성할 것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채택에 심각하게 대처할 것 등의 지령을 내린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공작원들은 또 “FTA, 평택 미군기지 등 공감을 같이하는 투쟁, 大衆(대중)이 참가할 수 있는 투쟁을 통해 각계각층을 반미투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면서 “시민·環境(환경)단체 등 새롭게 합류하는 단체들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고 지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백낙청은 당시 행사장에서 “자진해서 혐의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위에 있는 무서운 공작원이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같다. 저는 그분도 여러 번 만났다. 그분한테 ‘이래라저래라’ 주문도 많이 들었다. 물론 제가 다 따른 것은 아니지만, 검찰 표현대로라면 지령이 될 수도 있겠다”고 자백했다.
당시 행사에는 백낙청을 비롯, 김상근 6.15남측위 상임대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함세웅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정희 민노당 대표, 최병모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 이사장,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배우 권해효 등이 참석했다.
3. 맺음말
한상대 신임총장은 취임사에서 "북한을 추종하고 찬양하며 이롭게 하는 종북세력을 방치하는 건 검찰의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만큼 이를 송두리째 뿌리뽑아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종북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 총장은 또 "북한 추종세력들과의 싸움에서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것"라고 지적하고,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공안당국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북좌파세력들에게 우롱당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검찰은 직무유기를 해서는 안된다. 종북세력 척결은 선거 중립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사실을 검찰 스스로 주장해야 한다. 더 이상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더 큰 출혈을 요구하게 되거나 대한민국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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