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직접 경험한 상쾌, 통쾌, 아슬아슬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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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12-03-21 01:52 조회3,7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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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전화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직후 그 지역의 북한 고위층 사람들이 KEDO 캠프 내에 있는 “신포교회”를 시찰하러 와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조사하고 같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교회를 방문하러 왔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와서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느냐? 그리고 주로 무슨 설교를 하느냐? 남측에는 이런 교회들이 얼마나 있느냐?” 라고 묻고 집사님의 답변을 듣고 그냥 갔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KEDO영내에 있는 남측 교회에 대해서 간섭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 궁금한 사실들만 물어보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필자는 귀국 전날까지 꿋꿋하게 그 일을 계속했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이 다녀간 사실을 저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그 교회 집사의 입을 귀국 직전까지 막아 주셨던 것 같다.
그 집사와는 상당히 친하게 지내며 많은 교제가 있었는데 귀국 직전에서야 필자가 전화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그리고 전화로 복음 전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며 나중에라도 그렇게 복음을 전해 보라고 권유했는데 그때에서야 그 집사가 북측 고위층들이 다녀간 사실을 말하면서 그들이 왔다간 이유가 거기에 있었음을 깨닫고 그 동안 필자에게 얘기 안한 것이 자신도 신기하다고 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악조건 속에서도 지혜를 주셔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했었고, 그야말로 짜릿하고, 통쾌했었다.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그들이 듣는데서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차분하게 복음에 대해서 묻고 답할 수 있었던 그때가 얼마나 귀한 기회였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많은 방법으로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람이 살다보면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왜, 그리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지... 그곳에서 행했던 일들이 어떠한 열매를 거두었는지 또는 앞으로 거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님만 아시고 하늘나라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귀중한 시간과 돈(국제전화 요금)을 들여서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께서 헛되게 하시겠느냐는 믿음이다. 빵을 물에 던지면 여러 날 후에 그것을 찾을 것이라고 했으므로 생명의 빵을 물에 던진 것이다.『너는 네 빵을 물 위에 던지라. 이는 여러 날 후에 네가 그것을 찾을 것임이라』(전 11:).
그러다 기간이 되어 함경남도에 있는 양화 항을 통해서 귀국하게 되었다.(입국할 때는 비행기로 입국해서 숙소까지는 버스로 그리고 귀국 때는 배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출국 심사 과정에서 가슴을 졸여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알고 보니 복음을 전할 때 필자의 이름을 목사님들께 매번 밝혔기 때문에 이들이 필자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고 특별 관리를 해 왔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다 가방도 뒤지지 않고 무사히 통과하는데 오직 필자의 이름을 부르며 따로 조시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필자의 소지품만을 모두다 꺼내놓고 이중 삼중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성경을 한 장 한 장 펼쳐가며 조사를 하고 가지고 있는 파일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또다시 이번에는 복음에 관한 내용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읽으면서 복음을 접하게 되었다.
네 명이 조사를 하는데 한사람이 읽고 나면 다음에 두 사람이 같이 읽고 마지막 사람이 다시 한 번 읽는 독특한 방식으로 조사를 했는데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중얼중얼 하면서 읽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에 앞서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가방 안에는 교회에서 준 인증서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KEDO 요원 중에 어느 누구도 종교지도자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만일에 그 인증서가 발견되면 필자는 법을 어긴 죄로 그곳에 억류 될 수 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걸고 늘어지면 그들의 특성상 문제를 삼으려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에 가슴을 졸이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실재로 당시에 미국에서 건너간 한국목사 한분이 억류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몇 년 후 영양실조로 감옥에서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몇 년 후 들었다.)
그런데 다행이도 조사관이 파일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필자의 눈에는 인증서가 눈에 확 들어 왔으나 그냥 덮는가 싶더니 미심 적은지 다시 한 번 파일을 넘겼는데 이번에는 다른 페이지에 겹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하나님께 감사하고 두근두근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어렸을 때 본 “유관순 누나”라는 영화장면 중에 독립군의 소지품을 조사하던 일본순사가 연상되기도 했다.
한참동안(약40분)을 조사를 벌이던 사람들 중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어느 교파냐고 묻고 어떻게 이렇게 기독교 관련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들어 왔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선덕공항에서 그냥 조사도 안하고 들여보내 주어서 그냥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태연하게 말했더니 그때는 VIP들하고 같이 입국 심사를 받았기에 가능했었다고 말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처음에 죄인처럼 취급하던 태도를 바꿔 고분고분하게 대해줬다.
알고 보니 입국 때도 주님께서 지켜주셔서 무사히 성경과 책들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열매를 거두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 하지만 당장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열매로 인해서 잠시 동안이었지만 곤욕을 치러야 했다.(처음 소양교육을 받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현재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곳에서도 차츰차츰 복음 전하는 일에 간섭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에 의하면 연방정부의 복합문화주의에 위배된다며 시민권 선서식 때 자연스럽게 배포해주던 성경을 더 이상 배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 시켰다.
한마디로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음의 문 닫히기 전에 더 많이 전하고, 아직 구원을 모르는 사람들은 빨리 구원받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떤가? 복음 전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에서 외치는 것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관대하다. 물론 모 단체처럼 복음도 없이 피켓이나 들고 “예수 천국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며 소란이나 피우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겠지만 조용히 개인 구령의 길도 많이 열려 있다.
서양 속담에 “햇볕이 있을 때 건초를 말리라”는 속담이 있다. 잠시라도 환경과 여건 때문에 구령의 열정이 식어 있다면 이 귀한 환경을 다시 생각하고 감사하며 다시금 회복해야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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