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콤에게 습격당한 부부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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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12-02-15 07:28 조회5,8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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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콤에게 습격당한 부부의 명암
박재권 / 캐나다 주재 기자
이 세상 우화 중에는 곰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대표적 이야기는 친구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로 길을 걷다가 곰을 만나 친구 하나는 나무로 올라가고 다른 친구 하나는 죽은 척 하다가 살아난 장면을 그린 우화이다. “곰과 두 여행객”이라는 이 이야기 줄거리는 아주 절친한 두 친구가 함께 산길을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이 다정히 얘기를 나누며 길을 가고 있는 그때에 갑자기 곰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이때 약삭빠른 친구는 쏜살같이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으나,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다른 한 친구는 엉겁결에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자 곰은 땅에 엎드린 친구의 냄새를 맡아보곤 죽은 줄 알고 그냥 가버렸다. 그래서 둘 다 무사히 목숨을 구했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 이야기의 핵심은 우정을 다루는 내용이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25년 만에 등산객이 곰에게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현장에 함께 있던 희생자의 부인은 “죽은 체”하고 엎드려 있었던 덕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미 언론에 따르면 “한 등산객 부부가 국립공원 내 ‘와피티 레이크’ 오솔길에서 북미산 회색 큰곰과 이를 따르는 새끼들과 마주쳤다. 남편이 부인에게 ‘뛰어 도망가라’고 소리치자, 곰은 곧바로 남편을 공격했다. 그때 부인은 배낭을 맨 채 죽은 척하고 누워 있었다. 그러자 곰은 여성을 들었다가 놓은 뒤 가버렸다. 그 때 주변 등산객들은 여자의 비명을 듣고 휴대전화로 신고했다. 이후 공원 관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숨져 있었고 부인은 무사했다. 공원 측은 ‘암컷이었던 회색 큰곰은 등산객 부부를 새끼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남자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참으로 간담이 서늘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쩌면 살아난 부인은 위에서 살펴본 이솝 우화를 읽고 그것을 현장에서 직접 적용했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남편이 기사도를 발휘해서 아내에게 도망칠 것을 외쳤지만 정작 자신은 곰에게 희생을 당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아쉬움은 그가 성경에서 새끼 잃은 암콤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읽고 이솝우화를 기억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련한 짓을 행하는 어리석은 자를 만나느니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니라』(잠 17:12).
물론 갑자기 닥친 일이라 경황이 없었겠지만 차라리 조용히 곰의 눈을 마주하면서 동태를 살피고 뒷걸음으로 살살 도망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참고로 개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으르렁거리는 개의 눈을 피하고 목을 감싸 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당시 그 곰은 새끼들이 있었고 혹시라도 새끼를 건드릴까봐 어미 곰이 미리서 선수를 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자신도 부인처럼 죽은 체하고 엎드려 있었다면 화를 면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생각나는 것은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죄에게 죽은 것으로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롬 6:11).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 죽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관점인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늘 자신이 살아서 움직이며 이 말씀에 역행하는 삶을 산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성경의 원리인데, 우리의 실제 삶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고 죽으신 것처럼 그분과 함께 죽은 자들이다(물론 그분과 같이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죄에게 죽은 자들인 만큼 죄로부터도 해방되었기 때문에 죄에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죄에 대해 죽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으로 하나님께는 산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 지상 삶에서 하잘것없는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꾸만 살아 있다고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화를 내고 죄에 반응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는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겨지는 것이 더욱더 영광스럽지 않은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가운데서 군림하는 죄가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고 절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산 자로 발견될 것이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롬 6:2)
이와 같이 죄에 대해 죽은 것으로 여기며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죄에 대해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죽은 척하고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육신이 살아서 반응하면 죄는 더 강력하게 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죽은 척하고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 앞서서 살펴본 대로, 이 세상의 죄가 마치 암콤처럼 물려고 달려들 때 우리가 죽은 체하고 숨죽이고 있으면 그 죄는 시체로 알고 곧 떠나갈 것이다.
실제적으로 곰을 만났을 때 곰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하는 전문가의 조언은 “곰을 만나면 자극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즉 크게 소리 지르기, 돌 던지기, 사진 찍기 등 곰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멀리서 곰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곰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고 뒷걸음질로 천천히 물러나야 한다.”며 지혜롭게 대처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우리가 죄와 맞닥뜨렸을 때도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이와 같이 지혜롭게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살전 5:22).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25년 만에 등산객이 곰에게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현장에 함께 있던 희생자의 부인은 “죽은 체”하고 엎드려 있었던 덕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미 언론에 따르면 “한 등산객 부부가 국립공원 내 ‘와피티 레이크’ 오솔길에서 북미산 회색 큰곰과 이를 따르는 새끼들과 마주쳤다. 남편이 부인에게 ‘뛰어 도망가라’고 소리치자, 곰은 곧바로 남편을 공격했다. 그때 부인은 배낭을 맨 채 죽은 척하고 누워 있었다. 그러자 곰은 여성을 들었다가 놓은 뒤 가버렸다. 그 때 주변 등산객들은 여자의 비명을 듣고 휴대전화로 신고했다. 이후 공원 관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숨져 있었고 부인은 무사했다. 공원 측은 ‘암컷이었던 회색 큰곰은 등산객 부부를 새끼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남자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참으로 간담이 서늘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쩌면 살아난 부인은 위에서 살펴본 이솝 우화를 읽고 그것을 현장에서 직접 적용했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남편이 기사도를 발휘해서 아내에게 도망칠 것을 외쳤지만 정작 자신은 곰에게 희생을 당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아쉬움은 그가 성경에서 새끼 잃은 암콤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읽고 이솝우화를 기억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련한 짓을 행하는 어리석은 자를 만나느니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니라』(잠 17:12).
물론 갑자기 닥친 일이라 경황이 없었겠지만 차라리 조용히 곰의 눈을 마주하면서 동태를 살피고 뒷걸음으로 살살 도망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참고로 개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으르렁거리는 개의 눈을 피하고 목을 감싸 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당시 그 곰은 새끼들이 있었고 혹시라도 새끼를 건드릴까봐 어미 곰이 미리서 선수를 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자신도 부인처럼 죽은 체하고 엎드려 있었다면 화를 면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생각나는 것은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죄에게 죽은 것으로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롬 6:11).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 죽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관점인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늘 자신이 살아서 움직이며 이 말씀에 역행하는 삶을 산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성경의 원리인데, 우리의 실제 삶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고 죽으신 것처럼 그분과 함께 죽은 자들이다(물론 그분과 같이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죄에게 죽은 자들인 만큼 죄로부터도 해방되었기 때문에 죄에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죄에 대해 죽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으로 하나님께는 산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 지상 삶에서 하잘것없는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꾸만 살아 있다고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화를 내고 죄에 반응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는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겨지는 것이 더욱더 영광스럽지 않은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가운데서 군림하는 죄가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고 절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산 자로 발견될 것이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롬 6:2)
이와 같이 죄에 대해 죽은 것으로 여기며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죄에 대해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죽은 척하고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육신이 살아서 반응하면 죄는 더 강력하게 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죽은 척하고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 앞서서 살펴본 대로, 이 세상의 죄가 마치 암콤처럼 물려고 달려들 때 우리가 죽은 체하고 숨죽이고 있으면 그 죄는 시체로 알고 곧 떠나갈 것이다.
실제적으로 곰을 만났을 때 곰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하는 전문가의 조언은 “곰을 만나면 자극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즉 크게 소리 지르기, 돌 던지기, 사진 찍기 등 곰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멀리서 곰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곰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고 뒷걸음질로 천천히 물러나야 한다.”며 지혜롭게 대처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우리가 죄와 맞닥뜨렸을 때도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이와 같이 지혜롭게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살전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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