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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의 추억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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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雲井 작성일11-12-20 07:00 조회5,237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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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효자동 이발사 박수웅씨가 말하는 박정희대통령, 

『영화에 나온 건 다 엉터리그분은 아들뻘 되는 나에게 반말도 안 한 사람』



「효자동 이발사」의 실제 모델
朴秀雄(박수웅·67)씨를 만나기 전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영화를 봤을 때, 영화 속의 대통령은 이미지와 이미지로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대통령이라는 공인은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로 부각되는 반면, 개인적으로는 이발사를 술자리에 초대하여 술을 권하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씨는 지난 5월 「효자동 이발사」가 개봉된 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빗발쳤으나 모두 거절했다.

영화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고 한다.

『영화에 나온 게 다 엉터린데, 거기 나오는 이발사가 내가 아닌데 만날 필요가 없지요. 내용이 순 엉터리라』

『영화에 보니 효자이발소를 썩은 이발소로 만들어 놨데요. 효자이발소는 경무대와 같이 지은 최고로 좋은 이발소였는데, 2층이었고 타일을 다 붙여서 얼마나 좋았다고』

朴秀雄씨는 처음부터 영화에 대한 불만을 가득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해 여름 「효자동 이발사」 제작사 청어람의 관계자를 만난 일이 있다고 했다.

기사를 읽고 영화 만들겠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했지요.

시나리오를 갖고 와서 한번 읽어 보라고 하기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서 읽었어요.

 

내용이 순 엉터리여서 이상한 부분에 표시를 해 지난해 1026대통령 기일 때 朴槿惠 한나라당 총재 비서 중의 한 사람에게 전했어요. 그러면 그쪽으로 전해지겠지 하고. 그러고 나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영화가 나왔데요』


」자만 나와도 우는 사람

朴秀雄씨는 1964년부터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하여 1979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崔圭夏 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하다가 1980 8대통령이 하야할 때 청와대를 떠났다. 朴秀雄씨는 그동안 청와대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1026, 청와대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朴槿惠씨와 朴志晩씨를 만났고, 朴正熙 대통령 생각에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영화에서 대통령이 이발할 때 경호실장이 뒤에 버티고 서서 이발사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잘못됐다는 것이다.
朴秀雄씨는 『이발하는 데 뒤에 왜 서 있어. 영화를 얄궂게 만들었다』며 개탄했다.

대통령이 이발할 때 가끔 陸英修 여사가 와서 물을 떠줄 때는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대통령 혼자 왔다고 한다. 영화에서 이발사의 아들이 대통령의 아들을 넘어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일이 생길 소지는 아예 없다고 한다. 영화라곤 하지만 억지스러운 장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두 사람의 의견이었다.

영화에서 이발사 성한모가 대통령과 술을 세 번이나 마시는 장면에 대해,
朴秀雄씨는 『그런 게 어디 있어, 택도 아닌 소리지』라며 한심해 했다.

『이발하는 놈이 어데서 술을 마셔. 그 앞에서 물도 한잔 못 먹는데. 내가 수차 어르신을 따라다녔지만 항상 바깥을 돈다고. 사진에 혹시 비칠까 싶어서』

朴秀雄씨는 朴正熙 대통령이 지방 나들이를 할 때면 가 보고 싶어서 기자들 차에 동승하곤 했다.

영화 후반부, 이발사가 점쟁이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 초상화의 안구 부분을 면도칼로 긁는 장면에 대해
朴秀雄씨는 『말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기가 막히는 설정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작년에 박지만 사장을 만나자마자 손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어요. 이분은 대통령」자만 나와도 우는 분이에요. 충성심이 나보다 더한 분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요.

올해 초
朴지만씨 EG 금산공장에 연락도 안 하고 불쑥 나타났어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우는 겁니다. 그저 대통령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사실에 감격해서. 대통령에 대해 100%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분입니다』

」자만 나와도 울고 아직도 100% 충성심을 갖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반 말을 하지 않는 朴대통령』



TV 드라마 등에서
대통령을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그리고, 말도 딱딱 끊어서 하는 것처럼 연기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회의를 할 때 소리지를 때도 있지만 보통 때의 모습은 진짜 경상도 시골의 어른처럼 다정다감한 모습입니다.

제가 27세에 청와대 부속실에 들어가서 33세에 나왔어요.
대통령 마지막 집권 시기에 제가 모셨지요. 대통령과 저의 나이가 서른 살 정도 차이 났는데 한 번도 반말을 안 하셨어요. , 이것 좀 해주게」라고 하셨죠. 아주 젠틀하고 인정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항상 손을 잡아 주면서 말씀하셨죠. 「바쁘다고 핑계대지 말고 공부 게을리 하지마」 라고 하셨지요. 집안의 어른이 자녀나 손주에게 하듯 다정다감한 말투였어요』

『인정이 많아서 뭐 있으면 자꾸 주셔요. 자식에게 주듯이 주고 싶은 거예요. 손에 들고 와서 「이거 한번 써 보게」 하면서 브라운 전기면도기를 주셨는데, 아직도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 전기면도기가 나오지 않았을 때, 외국 갔다 온 사람들이 선물한 걸 나에게 주셨어요. 만년필도 주시고 볼펜도 주셨어요. 매일 새벽 6시에 인터폰하셔서 「운동하자」 그러시면 빨리 단장하고 나갑니다.
배드민턴도 하고 뛰기도 했지요. 나와 체격이 비슷하셨어요. 하루는 팔에다 뭘 걸고 내려오셔요. 「이거 내 입던 건데 자네 한번 입어봐 맞을 거야」 하시며 청색 트레이닝복을 주셨어요. 참 인정이 많았어요』

 

『청와대에 근무할 때 「이 순간 이 어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그건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심정으로 일했어요. 「새마을 운동을 통해 조국 근대화를 이루는 역사의 한 부분에서 일했다는 게 내 생애와 내 家門의 영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朴志晩, 『우리 아저씨』

최근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독일광부 간호원 이야기'의 [육사교장] 편지를 자녀들에게 읽어 주다가 목이 메어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朴
대통령과 서독 광부들, 간호사들이 그렇게 고생한 걸 대학생인 아들들이 몰랐다고 하더군요. 나에게 「아버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라고 했습니다.

당시 모두들 순수한 충성심을 갖고 일했어요. 이권개입을 하거나 밥 얻어먹은 적이 없어요. 밖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도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게 충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이 종이 한 장을 아끼고 절대 돈을 못 쓰게 하니 다들 본받아서 그랬지요. 근검하고 소박한 분입니다』

대통령이 언제나 모범을 보였고, 자신은 일거수 일투족을 배우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장조카 박재홍씨 외에 어떤 친인척도 못 오게 했어요. 박재홍씨에게 집안의 모든 것을 보고받은 뒤 밥 먹고살기 힘든 사람을 도와주라고 지시했죠.
대통령이 친인척 관리를 철저히 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을, 2010년의 잣대를 놓고 평가하면 안 됩니다. 그 당시 국민소득과 정치·문화·교육 수준을 감안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지요. 필요에 따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대통령을 평가하면 안 됩니다』 「효자동 이발사」가 코미디물이긴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실미도」라는 영화를 1000만 명이 봤습니다. 완성도가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많이 봤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 실정을 잘 모릅니다. 그러니 그 영화를 보고 「진짜 저랬구나」하고 믿더군요. 영화를 보니 결정적 순간에 아닌 게 많았습니다. 「효자동 이발사」를 보고 젊은 사람들이 「아, 저때 저랬구나」 하고 믿어 버릴까 봐 걱정이죠』

다음날 朴秀雄
씨를 광화문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효자동 이발사」 때문에 여전히 심기가 불편했다. 그가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은 『택도 아닌 이야기』, 『얄궂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1937
년생인 그는 고향 경남 김해에서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제주도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8개월 동안 이발 기술을 배웠다. 서울에 올라와서 이발소에 취직하려고 여러 군데 다녔지만 도통 자신을 받아 주는 데가 없었다.

경무대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청와대 근처에 왔다가 청와대 코앞에 있던 효자이발소에 들렀고, 그곳에 취직이 되었다. 1960 4·19가 일어나기 직전의 일이다. 이발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국민대학교 야간부에 다니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할 요량으로 이발사로 일했다.


志晩 어린이 이발하다 청와대와 인연

1964
년에 朴正熙 대통령이 청와대로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효자이발소 직원들에게 흰가운을 입혀 연도에 도열시켰다. 그날 그는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후 어떤 아이가 보호자와 같이 머리를 자르러 왔다. 머리를 자를 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그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외워서 얘기해 주었고, 아이가 이야기에 열중할 때 순식간에 머리를 잘랐다. 그때 종로경찰서 경사가 데리고 다녀 부잣집 아이로만 알고 있다가 어느 날 『뉘집 아이입니까』라고 물었고, 그제야 그 아이가 경복유치원에 다니는 朴대통령의
아들 志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1964
5월쯤, 지프차가 한 대 오더니 이발할 사람이 있다며 청와대로 가자고 했다. 데리러 온 사람은 陸英修 여사의 운전기사인 구인서씨였는데, 청와대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준 일이 없다고 한다. 그저 높은 사람이 머리를 자르려나 보다 생각했다. 청와대 2층의 작은 사무실에 가니 경대 하나와 허름한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경대에
美製 중에 가장 싼 로션과 스킨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朴대통령이 들어왔고 그는 「각하」라는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얼떨결에 『안녕하십니까』라고만 인사했다.


머리 감는 물을 데워 준
여사

영화에서 경호실장이 『용안에 상처를 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장면이 나오던데 떨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 한 사람도 없고 옆에 지키고 있는 사람도 없었어요. 순 엉터리라. 대통령께서는 워낙 동작이 빠르셔서 순식간에 자리에 앉으셨고 일절 말씀이 없으셨어요. 나도 한번 하는 건데 뭐 떨 것도 없고 해서 재빨리 잘랐지. 내가 뱃심이 얼마나 좋은데. 내 이발의 특기는 속성으로 자르는 거라. 영화에 보니까 목을 베서 피가 나오던데 그런 게 어딨어. 면도를 속성으로 잘했지요』

머리를 자르고 나자 비서실에서 돈을 받아가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 이발을 한 것만 해도 영광인데, 돈은 무슨 돈이냐』면서 그냥 돌아왔다. 하지만 대통령이 외상이발을 할 수 없다며 청와대에서 사람을 시켜 돈을 보내 왔다.

그날로부터 열흘에 한 번 정도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대연각 호텔의 여자 이발사가 대통령의 이발을 했었다. 하지만 여자 이발사가 드나드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은 陸英修 여사의 작전에 의해
朴秀雄씨가 청와대에 입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이발사들이 많은데, 실력이 있으니 청와대까지 가신 거 아닌가요.

『실력은 무슨.
志晩 어린이를 잘해 주니까 그냥 부르신 거지. 내가 좀 못 해도 사모님이 이발사를 바꾸기 위해 「아저씨 참 이발 잘하신다」고 하셨어요. 2층 사무실이 간이 이발소가 된 거라. 사모님이 더운물과 찬물을 섞어서 머리 감도록 가끔 도와주셨지. 내 신원조회도 안 해보고 부르셨다니까요』

청와대에 자주 가게 되자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됐다. 그래서 효자이발소 고객인 농림부 차관 출신의 김종대씨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분이 「그 안에서 어르신하고 얘기했던 거 남들에게 말하지 말고, 그 안에서 들었던 이야기 밖에 나와서 하지 말고, 그 안 사람들에게 그 안의 사정을 묻지도 말게. 그저 맡은 일만 묵묵히 하게. 참 어려운 일을 맡았네」라고 하시더라고. 그분이 말씀하신 걸 늘 가슴에 새기고 그대로 지켰지요』

朴秀雄
씨는 김종대씨의 조언처럼 밖에서 자신이 청와대 이발사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고, 청와대에서 일어난 일도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

朴秀雄씨는
朴正熙 대통령을 「각하」,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陸여사는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청와대 안에서는 다들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곱슬머리 朴대통령, 『너무 자르지 마래이』

 


朴秀雄씨가 처음 청와대에 갔을 때 朴正熙 대통령은 이마의 머리카락이 목 뒤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곱슬머리여서 그런 머리 스타일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씨는 갈 때마다 조금씩 짧게 잘랐다. 그러면 대통령은 『머리 너무 자르지 마래이』라고 주의를 줬다.

대통령 내외분이 워낙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이발할 때 가끔 여사가 와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어느 날 여사가 『결혼할 때는 곱슬머리가 아니었는데 왜 그동안 곱슬머리가 됐느냐』고 의아해했다. 대통령이 여사가 곱슬머리인 줄 몰랐던 비결을 말해 주었다고 한다.

『옛날에 「찌꾸」라는 게 있었어요. 소기름처럼 시커멓고 냄새도 안 좋은데 예전에 포마드가 없어서 그걸 발랐어요. 대통령 되시기 전에 군대에서 찌꾸를 바르고 참빗으로 머리를 뒤로 싹 빗어 넘겼답니다. 그러니까 머리가 쫙 펴졌지. 얼마나 당겨 빗었던지 눈썹이 막 딸려 올라갔답니다. 각하께서 그 얘기를 하시자 사모님이 웃었지요』

朴秀雄씨는陸英修 여사가 저기서 오시면 복도가 다 환해질 정도로 기품이 있었어요. 그런 인물이 없지. 근혜 총재도 인물이 좋지만 엄마 못 따라가요』라고 회상했다.

朴秀雄씨는 고향에 다녀오면서 시골집에서 딴 단감을 비서실에 선물했다.

『두 접이 넘었을 겁니다. 며칠 후에 사모님이 나를 보시더니 시골에서 가져온 감을 잘 먹었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더니 중국 담배하고 술하고 해서 한보따리를 집으로 보내 주셨어요. 내가 마치 단감을 선물한 것처럼 되었어요. 나는 그냥 비서실 직원들 먹으라고 준 건데』

씨가 청와대 이발사가 되자 효자이발소 주인 신모씨는 청와대에서 번 돈을 나누자고 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받는 돈의 액수를 공개할 수 없어서 아예 효자이발소를 그만두고 1965년에 인근에 북악이발소를 차렸다.

朴秀雄씨는 청와대에서 일하면서부터 다니던 국민대학교도 그만두었다. 일국의 대통령 이발사가 되었으면 성공했는데, 다른 걸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서였다.

청와대에 드나들 때 깔끔하게 차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사동 가구점에서 가방까지 맞추었다. 오동나무에 옷칠을 하고 자개를 박아 만든 007가방 형태의 나무 가방을 1만원을 주고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5000원에 사 입는 흰가운도 1만원을 주고 맞추었다.

朴秀雄씨는 북악이발소를 1년 정도 운영하다가 청와대의 부름에 전념하기 위해 처분해 버렸다. 朴正熙 대통령은 보통 열흘에 한 번 정도 이발을 했으나 울산에 비료공장을 건설할 때는 29일 만에 朴秀雄씨를 찾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한번은 밤에 이발을 하러 갔는데 대통령이 이발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울산에 한비 사카린 사건 났을 때였는데 너무 피곤하셨던 거라. 이쪽을 다 잘랐는데 깨울 수도 없고 난감하더라고. 근데 조금 있으니까 알고 고개를 돌려 주셨지요.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셨다고』

처음에는 면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나 나날이 면도하는 것이 민망했다고 한다. 게다가
대통령은 수염이 한쪽으로만 난 게 아니라 엇갈려서 나는 스타일이어서 면도하기가 힘들었다.

『어르신도 수염이 깎기 힘들게 났다는 걸 아셔요. 갈수록 어려워서 안전면도라는 걸 구해서 「이걸로 직접 하시지요」라고 말씀드렸더니 혼자 해보시더라고. 안전면도라고 일회용 면도기였는데 그때만 해도 국산은 그런 게 없었지요』


『길은 좋게 되었다만 인부들이 많이 죽었다』

朴秀雄씨는 청와대에 들어갈 때마다 가방을 검열당했는데, 긴 면도칼과 가위는 보기에 따라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다.

1969
년에 청와대 안에 이발소를 개설하면서
朴秀雄씨는 아예 청와대에 근무하게 되었다. 총무처 별정직 직원으로 청와대에 파견 나가는 형식을 띠었다. 이발사 1명과 면도사 2, 머리감는 사람 1명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朴秀雄씨는 아무 심사도 받지 않고 청와대에 들어갔지만, 그 외 이발소 직원들은 비서실에서 엄선했다고 한다. 청와대 직원들은 그를 「실장」, 씨」 등 내키는 대로 불렀다. 그는 청와대에 근무할 때 직원들에게 은근히 괄시를 받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통령은 이발소 직원들을 친근하게 대했다. 당시 면도사 중에 박순옥씨가 있었는데 朴秀雄씨는3씨가 잘 통했다』며 웃었다. 대통령은 가끔씩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얘기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농촌에 오토바이도 많이 생기고, 반찬도 많아졌다는 얘기를 했지요. 그전에 먹고살기가 힘들었거든. 한창 산림녹화를 한다고 지방관리들이 소를 산에 못 올라가게 했어요. 「촌에서 노인들이 소를 산에 못 올라가게 한다고 수군거리는 얘기를 들었다」는 보고를 드리니까 각하께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면 밑에 내려가면서
針小棒大(침소봉대)가 된다. 소가 산에서 소나무를 뜯어 먹는 것도 아니고 풀밖에 안 먹는데 왜 못 올라가게 하나」고 하시더군요』

朴秀雄씨는 고속도로가 개통된

댓글목록

雲井님의 댓글

雲井 작성일

이번회는 내용이 좀 길어서 '퍼온글'란에 다 올라가지 않아서 이곳에 올렸습니다.

한글말님의 댓글

한글말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고맙습니다.

gold85님의 댓글

gold85 작성일

雲井님, 좋은 내용 글 감사합니다

최고봉님의 댓글

최고봉 작성일

읽는내내 박대통령님의 따뜻하신 인간애에  눈물이 글썽 했습니다 늘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산머루님의 댓글

산머루 작성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신뢰 관계는 그냥 이루어 지는것이 아닙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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