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성직자'의 청치,사회참여'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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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1-11-28 23:45 조회4,906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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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 ‘성직자’의 ‘정치, 사회, 참여’
- 법륜 승려(僧侶)의 정치 언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김 피터 (박사)
최근,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의 기획자이며 멘토인 ‘승려’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이 ‘제3 신당론’의 한 진원지로 지목되고, 그의 정치적 언동이 종교인으로서의 도를 넘고 있어서, ‘종교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비판이 또 제기되고 있다.
그 자신은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그는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의 국회 초청 강연회에 참석했던 국회의원들도 그에게서 ‘정치적 내공이 느껴졌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는 전국순회 강연 및 언론 인터뷰에서 “현 정치권이 ‘평화통일’과 양극화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 “제 3신당이 필요하고 안철수 교수가 하면 가능한데..” 등의 정치적 발언을 하면서, ‘제3 신당’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래도 그가 정치적 언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을까?
그는 과거,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합법화를 위한 민주사회단체 지도자 1천인 선언’에 참여하여 이적 단체인 한총련을 칭송하며 합법화를 촉구했다. 또한 평화재단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헌법에 위배되는, 남북 헤처모여식 ‘9도(道) 연방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친북’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났을 때도 북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오히려, 남한의 ‘대북 응징론자’들을 비난했다. (또한 북의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탈북자 강제송환, 영아살해 등 김정일 정권의 온갖 악행과 비참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했다. 그리고 ‘청춘 콘서트’, ‘희망 세상 만들기’등 전국 순회강연자로 변신했다. 한 매체는 이런 강연회가 ‘정치 토크쑈’로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자, 이 정도면 그는 ‘종교인’ 이나 ‘승려’라기 보다 하나의 사회운동가, 정치 운동가라고 불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는 과연 ‘종교인’, ‘성직자’인가?
그러면 법륜 승(僧)의 행보가 보여주듯이, ‘종교인’들의 ‘사회 참여’ ‘정치참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개신교 목사들이나 천주교 신부들이 ‘반정부 운동’을 많이 했었다. 그때 그들중 일부는 ‘신앙’의 범주를 넘는 과격행동도 하였다. 또한 ‘산업선교’라는 이름 아래 노조운동을 많이 주도하였다. 개중에는 체포되고 고문받고, 옥고를 치른 성직자들도 많았었다. 그러나 그때, 그들에게는 ‘반 독재, 민주화’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불교 승려들 중에는 이런 ‘사회 참여’ 활동에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과거 반체제 운동을 하던 성직자 그룹에서 일부가 ‘평화 및 통일 운동’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친북, 반미, 반한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천주교의 소위 ‘정의구현 사제단’ 소속 신부들 및 개신교의 진보적 신학을 가진 목사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런 친북, 반미 활동을 하는 신부, 목사 중에 문규현 신부, 한상렬 목사 같은 사람이 있다. 그들의 언행은 이미 ‘성직자’의 도를 넘는 ‘사회 참여’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교 쪽에서, 친북, 반미 활동, 내지 반정부적 경향을 띄는 불교 승려들이 많아졌다. 그런 경향의 불교 이름을 가진 단체들도 많이 생겨났다. 왜 그런가? 한 유명한 ‘컬럼니스트’ 스님에 의하면, 오늘날 친북 승려들이 많아진 것은 과거 좌익 활동하던 자나 그 친속들이 불교에 많이 입문한 결과라고도 분석했다.
조계종 등 일부 종단은 ‘반정부적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종교편향’에 항의한다며 데모도 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항의나 데모는 ‘반 독재’같은 명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종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독교 장로이기 때문에 ‘종교차별’을 한다는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비처ㅤㅈㅓㅆ다.
그런데 최근 승려 법륜은 현정권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분명히 승려의 도를 넘어서는 활동이다. 과연 종교인, 성직자들의 사회 참여, 정치 활동은 바람직한 것인가?
‘종교인’들의 할 일과 사명은 무엇인가? ‘정교 분리’ 원칙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종교인은 어디까지나 종교의 가르침, ‘신앙’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salvation)’에 이르게 하고,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가르치는 ‘사역’을 행해야 한다.
물론 국가와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면 종교 지도자들이 나서서 그것을 비판하고 ‘정의’의 목소리를 낼수는 있다. 과거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위로부터 ‘계시’를 받아 왕과 집권자들, 사제들, 백성들을 향해 ‘정의’의 소리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인, 성직자는 절대로 ‘사회 활동가’나 ‘정치운동가’가 아니다. 만일 어떤 종교적 지도자나 성직자가 사회 운동가가 되거나 혹은 정치 활동을 하려면 성직자의 까운이나 승려의 법복을 벗고,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가서 해야할 것이다.
버젓이 신부님, 스님, 목사님의 신분 및 호칭을 지닌채 정치 활동을 하거나 사회 운동가 가 되어서는 안될것이다.
유명한 캐도릭의 개혁 신학자인 한스 큉 교수는 “성직 안수, 서품(ordination)은, 어떤 개인에게 주는 ‘학위’(degree)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명’(mission)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 말은 어떤 개인이 한번 ‘목사안수, 서품을 받고, 혹은 승려로 입문했다고 해도, 그 본래의 종교적 ‘성직’, ‘사명’을 일탈하여, 사회 활동이나 정치활동가가 된다면, 그는 그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 되고,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성직자나 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 유명한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라는 분이 있다. 그의 이름에는 언제나 ‘목사’라는 칭호가 붙어 다닌다. 그러나 그는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해도, 그는 현재 ‘목회’나 ‘종교 사역’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 어떤 교단의 ‘성직 적(籍)’ 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다. 오직 ‘인권운동가’로만 활동하고 있다. 이런 경우 그를 더 이상 ‘목사’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매체에 의하면, 법륜 승(僧)은 현재 ‘승적’이 없다고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고, 또한 그가 승려로서의 사명은 하지 않고 오직 사회활동가, ‘희망세상 만들기’등 순회강연자, 환경운동가 및 정치 운동가로 만 활동하고 있다면, 그는 ‘세상과 인연을 끊는’ 상징인 ‘삭발’을 한 승려의 본분을 떠난 것이 되고,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승려’가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이회창 전 총재가 법륜 승의 정치적 언동을 비판하며 말했다는, “ 신부는 성당에, 스님은 법당에, 목사는 예배당에 있어야 한다. 라고 한말은 대단히 올바른 지적이라 아니할수 없다. 신부 및 목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성당, 교회’이고, ‘스님’이 지켜야 할 자리는 바로 사찰, ‘절’이어야 할것이다.
댓글목록
청곡님의 댓글
청곡 작성일
정치인이 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인 및 성직자들 자체에 있다.
한 종교가 자체의 교리나 신학적 구원의 교리를 지켜내지 못하고, 자체의 종교적 자정능력도 없다면 어찌 인간을 구원한다 할 수 있겠는가.
교세확장을 핑계삼아 정치권도 기웃거리고, 종친초에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하려는 성직자들 및 종교인들을 해당 종교자체에서 파문 결정을 과감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종교인 및 성직자들의 맹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님의 댓글
개혁 작성일정연수려한 말씀 감사합니다. 신학을 하신 목사님 같으십니다. 이회창 할아버지도 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시는 패라그라프, "신부 및 목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성당, 교회’이고, ‘스님’이 지켜야 할 자리는 바로 사찰, ‘절’이어야 할것이다"와 같은 맥락의 말씀을 요 얼마전에 하셨지요. 폴리페써, 폴리패스터, 폴리몽크들... 염불할 자리, 글읽을 자리, 기도할 자리들을 두고 외도하는 영적간음들을 바르게 지적하는 분들이 있어야 될 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