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 악몽에 가위눌린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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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나무 작성일11-01-04 08:27 조회5,57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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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 악몽에 가위눌린 김정일
CVID원칙에 입각한 가시적 변화 없이 6자회담도 남북회담도 불가
1월 1일자 소위 북 신년사에 대화를 내비치자 南 언론이 앞 다투어 ‘평화타령’을 하는 가운데, 전근대적인 3대 세습과 연평도포격 도발로 할 말을 잃고 있던 남한 내 친북반역세력들이 일제히 반전평화 구호를 앞세워 김정일이 요구대로 대화 및 교류협력에 나서라고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 했다.
한편 중국은 덩치만 큰 어린애처럼 천안함과 연평도포격도발에서 일방적으로 북괴를 편들고 비호하여 강대국의 자격을 의심받을 정도로 국제적 신망을 잃게 되면서, 6자회담 속개로 외교주도권을 회복하고 실추 된 위상을 만회하려고 대국 흉내 내기 외교적 결례를 거듭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드러냈다.
잇따른 도발의 대가로 궁지에 몰린 北은 남북대화로 핵개발에 필요한 $를 끌어들이고 질 좋은 군량미를 공급 받고, 6자회담으로 1.2차 핵실험에 충분한 시간을 버는 등 꿀맛보다 더 단 경험을 살려, 재차 위장평화공세를 펼침으로서 세계의 이목을 속이고 친북세력이 나서라고 충동질을 하는 것이다.
소위 신년사에 나타난 골자는 경공업과 인민소비 생산을 독려하면서 “농업전선은 인민생활문제해결의 생명선”이라며,“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기어이 해결하려는 당의 의도를 받들라”고 실질적인 대책 없이 구호만 남발하면서 다그치는 것으로 폭발직전에 이른 민심을 어르고 달래기에 급급하였다.
특히 식량문제와 관련, 종자혁명, 두벌농사, 감자농사와 콩 농사 혁명을 들먹이는 것으로 가축사료만도 못한 잡곡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게 된 현실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됨으로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60년간 속여 온 이밥에 고깃국 마법은 더 이상 통 할 수 없는 누더기 구호로 전락했다.
그러면서도“우리식사회주의”타령과“자력갱생”잠꼬대를 여전히 늘어놓고, CNC라는 신종 마술로 주민들을 미혹하려지만, 북 주민들도 1990년대 죽음의 행진을 거치면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이제는 알 만큼 알게 된 이상 그 따위 떫은 수작이 먹혀들어갈 리가 만무한 한계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래저래 다급해진 김정일이 중국을 두 번씩이나 드나들며 구걸행각을 벌였지만, 동냥을 주는 대신에 쪽박을 깨듯‘개혁개방’이나 서두르라는 핀잔을 들은 것 말고 식량100만t을 중국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 어림도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파렴치하게 대화와 교류협력을 앞세워 南에 손을 벌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1일자 영국 텔레그라프 지에 굶주림의 왕국 후계자 김정은이 김정일 집무실 곁에 1억 파운드(한화 약 1천734억 원)을 들여 초호화저택 건설에 흥청망청한다고 비꼬는 내용이 현장 사진과 함께 폭로됨으로서 北 주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게 할 金부자의 행태가 세계적 조소 거리가 되었다.
“사흘만 굶으면 (도둑질이라도 하기위해서) 남의 집 담장 안 뛰어 넘을 놈 없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굶주림과 악에 바친 주민 눈에 김정은 따위가 보일 리 없고 신년사 넋두리가 귀에 들릴 까닭이 없어 민란이 나거나 쿠데타나 측근모반 등 3대 세습독재 멸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봐야한다.
따라서 北은 저승 문턱을 오락가락하는 김정일이 매일 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처럼 군중에게 처형당하는 악몽에 가위 눌리고 세상물정 모르는‘청년장군’ 김정은이 역시 김일성광장에 세워진 교수목(絞首木)에 매달릴지 총살대에 세워질지 모른 채 천방지축 날뛰며 운명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 南에서 급할 것은 없기 때문에 가시적인 변화가 없는 한 北의 대화요구는 아예 묵살하는 게 약이다. 만약 검증 가능한 변화가 없는 가운데 6자회담에 복귀하거나 남북회담에 미련을 갖는다면, 중국의 입지만 넓혀주고 북에서 노예상태로 신음하고 있는 북한동포의 고통만 연장시킬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크고 작은 실정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 기본노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한가지만은 크게 평가할만한 일이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북괴의 연평도포격을 계기로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과 자세에도 변화가 있는 것 또한 다행이며 단합된 국민적 모습이 필요하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주부관광객 저격피살 사건에 대한 미온적 대처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참사를 불렀고 천안함참사 처리에서 갈팡질팡 한 이명박 정부의 행태로 인해 11월 23일 연평도포격도발로 이어졌다면, 敵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술수에 걸려들면 더 큰 도발과 재앙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박광자주부 피살 현장조사 및 배상, ▲천안함어뢰공격피침 시인사과 및 책임자처벌, ▲연평도포격 책임자 북괴군 4군단장 김격식과 총참모장 이영호 처단, ▲북괴군총사령관 김정일의 공개사과로 北의 진정성이 입증되기 전에는 어떤 대화도 거부해야 한다.
다급해 질대로 다급해 진 김정일이 CVID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폐기)원칙에 입각하여 NTP복귀 및 핵 전면사찰 수용, 핵 시설 폐쇄 및 프로그램 폐기, 완성된 핵탄두 국제기구에 이관 등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이 없으면 6자회담이고 남북회담이고 그 어느 하나라도 있어서도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서둘러야 할 일은 대한민국 내에 침투 암약하는 북괴 간첩색출과 북괴와 연계된 친북반역세력 소탕으로 내우(內憂)를 도려내어 외환(外患)에 대비할 전선을 정비하는 일이요 국가안보태세와 국민의 총화단결을 공고히 하는 일이지 퇴임 후나 염려하고 레임덕을 우려할 때가 아니다.
[참고] 차우셰스쿠의 최후(위키백과)
군중봉기로 권좌에서 쫓겨 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1989년 12월 유일한 동지김일성이 지배하는 ‘조선인민공화국’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헬기조종사와 차량운전사의 거부로 시골 농장에 숨어들었다가 농부의 고발로 잡혀 1989년 12월 25일 구국전선의 군사 법정에서 사실상의 인민재판을 통해 반역과 살인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정에서는 변호사마저 “당신 편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지만, 당신이 이 나라에 해 놓은 짓을 보시오. 편을 들어준다고 해결될 문제요?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오.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아무리 당신에게 유리하게 설명해도, 당신이 이 나라 루마니아를 멸망으로 몰고 간 것을 부인할 수가 없소. 내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담당했지만, 당신 같은 최악의 경우는 처음이요. 나도 당신을 포기했소." 라고 차우셰스쿠를 비난했다.
그리하여 같은 날 17시 30분 터르고비슈테(Târgovişte)에서 총살되었는데, 독재자에 대한 총살형 집행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수십 명의 사병들이 서로 자기가 총살형 집행을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무차별적 발포를 막기 위해 차우셰스쿠의 사형을 집행할 군인을 3명만 선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대위 1명, 상사 1명, 하사 1명이 차우셰스쿠 부부를 총살할 사형집행관으로 선발되었으며, 차우셰스쿠 부부는 무려 160여 발 총탄 세례를 받고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댓글목록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작성일
차우세스크보다 김일성이 먼저 당했어야 하는데 바로 노태우가 구해 주었지요.
1989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