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박사의 법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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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학 작성일10-12-18 14:51 조회5,62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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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박사의 법정에서
2010년 12월 17일 오후 3시 반, 안양역 하늘엔 큼직한 눈송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반코트 위에 수없이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안양법원에 들어섰다. 5.18관련 단체들이 고소한 지만원 박사님의 공판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그 5.18을 온몸으로 맞았던 사람이다. 당시 나는 광주에서 대학 3학년을 다니던 중이었다. M16을 어깨에 둘러 맨 계엄군과 울려퍼지던 총성, 충장로며 금남로에 퍼지던 매케한 최루가스를 맡으며 성장한 사람이다. 그리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차량을 몰고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인물들에 대한 의문을 오래도록 품고 살아온 사람이며, 그 후 5.18 묘역에 묻힌 무연고 묘지를 바라보며,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정체에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특히 ‘무연고 묘지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라는 의문은 과연 5.18이 북한특수부대 공작이 개입한 사건이 아닌가 라는 문제에 답을 가려주는 일이었다. 실종자 가족들과 묘지의 주인공들은 이미 유전자 감식이 끝난 상태였다. 현대 의학이 가려내는 이 시점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는다함은, 이미 대한민국에는 무덤의 주인공들과는 친인척의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없음을 뜻하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없다? 그렇다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6기의 무덤은 결국 그들은 북한에나 연고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결국 그들은 북한에서 내려온 공작원들임이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5.18의 진실을 가려줄 지만원 박사의 공판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법원 1층 로비에서 화곡 김찬수님을 만났다. 반가워서 두 손을 잡는 사이, 곧 지만원 박사님이 들어오셨다. 역시 단단한 체구의, 강직함이 엿보이는 굳게 다문 입술. 육사22기생다운 기백이 엿보이는 곧고 맑은 눈빛을 지닌 분이었다.
“오, 정재학 선생.”
반가움 끝에 두 손을 굳게 잡았다. 전교조와 싸우며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자 길을 나선 지 9년, 나는 드디어 위대한 애국자를 만난 것이었다. 우리 주위로 수십 명의 노(老) 애국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서석구 변호사님의 당부 말씀을 가슴에 담아들고 우리는 301호 법정으로 입장하였다.
“절대 법원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지난 2차 때는 5.18관련 단체 사람들이 몰려와서 늙은 어르신들을 협박하고, 심지어 어느 여성분에게는 폭력까지 가했습니다. 아예 난동을 부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애국자들입니다. 소란을 피우지 말 것이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검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참고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입니다.”
판사의 개정 선언에 이어 광주에 동원되었던 공수부대장의 증언이 있었다.
“전라도사람들을 죽이라고 경상도 사람들로 구성된 공수부대가 왔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대장 소령 한0섭은 순천, 정0선 소령은 조대부고 출신입니다. 훗날 저희는 이런 유언비어를 누가 만들어 ‘광주의 비극을 심화시켰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 5열이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서석구 변호사님의 변론은 무려 3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 진실화해위원회 이영조 위원장은 미국 해리티지 재단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습니다. '5.18은 민중반란이며, 제주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이것은 이영조 위원장의 개인 사견(私見)이 아니라 헌법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린 공식적인 결론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변론엔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의문을 품었던 일들이 낱낱이 증명되고 있었다. 검찰의 무성의한 조사며, 북한에 당시 남파된 공작원들을 추모하는 5.18 영웅 묘지들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직접 내려온 공작원에 대한 증언도 밝혀지고 있었다.
변론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광주에 북한특수부대원들이 내려와 공작을 한 것으로 인해 광주시민들의 명예가 훼손된다는 생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5.18의 진실을 캐내는 일은 오히려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보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북한이 더 이상 5.18과 같은 사건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우리 국민들을 계몽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이어 지만원 박사의 마지막 진술이 안양법원 벽면에 굵은 목소리로 새겨지고 있었다.
“오직 나라와 민족, 그리고 광주시민들의 진정한 명예를 위해 저는 이 길을 앞으로도 끊임없이 걸어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평촌역 앞 맥주집으로 갔다. 그때까지 눈은 내리고 있었다. 일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여온 늙은 노병(老兵)들이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성성한 백발 위에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정재학
(IPF국제언론인포럼 편집위원, 시인정신작가회 회장, 데일리안 편집위원, 전남자유교조 고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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