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과 광주사태의 6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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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의천황 작성일17-11-26 12:19 조회2,6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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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이후 국민들은 민주적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될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재야진영이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치 행보에 주목했으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부의 실세로 떠오른 정치군인들의 정권 장악에 반대해서 5월14일과 15일 서울지역 대학생 10만명 정도가 계엄령 상황임에도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사람이 더불어 민주당 20대 국회의원 심재권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유시민 이었으며 계엄군이 시위 진압에 투입 된다는 소식에 심재권은 자진 해산을 결정했으나
강경파 유시민은 끝까지 저항 할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결국 대부분 시위 학생은 자진 해산하고 끝까지 저항을 고수한 학생이 60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자진 해산한 대부분의 서울지역 대학생은 벌갱이들과 정권욕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의 선동에
의해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다가 계엄군이 투입 된다는 말에 자진 해산하고 끝까지 남아서
저항을 결심한 600명 정도가 북한에서 몰래 시위에 침투시킨 북한 특수 부대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서울에서 과격 폭력 시위를 주도하고 전국으로 확대 하려 했으나 대부분 학생들이 자진 해산 함으로써
서울의 봄 반정부 시위는 실패로 돌아가고 끝까지 저항을 다짐한 북한 특수 부대 출신 600명이 광주로 내려가서 5. 18 광주 폭동을 주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서울의 봄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 중 끝까지 저항을 다짐한 600 명 정도가 북한 특수부대 일 가능성은
몇 가지 있다.
1. 시위의 목적이 반정부 , 친 김대중 시위 였다는점
2. 시기적으로 1980년 5월1일에 발생해서 5월 17일에 까지 했다는 점
3. 5.18 광주폭동 폭력 시위를 주도한 북한 특수군 600명과 정확이 숫자가 일치 한다는 점
4. 5.18 광주 폭동 당시 서울에서 연고대생 600명이 왔었고 환영식 까지 열었다는 증언들
5. 해방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모든 반정부 폭력 시위는 북한이 개입하고 주도 했다는 점
위에서 열거한 5가지 이유로 봤을때 서울의 봄 시위에 참여했던 10만명의 학생 시위자 중 600명 정도가
북한이 몰래 침투 시킨 북한 특수부대 였으며 그들이 끝까지 저항하기 위해 해산을 거부하다 결국
실패하자 곧바로 전라도 광주에 내려가서 5.18 광주폭동을 일으켰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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