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원의 최후(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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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펑그르 작성일16-06-30 23:14 조회2,1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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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원의 최후(3부)
1763년 인도점령 경쟁을 벌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전투를 하면서 영국이 승리하여 인도의 정치를 지배하였고. 1857년 이후 부터는 영국정부의 권한으로 인도를 직접 통치하였다.
1919년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시작했고. 그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영국으로부터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독립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인도는 국민들의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특별법을 만들지 않았다.
1980년 5월 18일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는 민주화라고 부르는 전라도 무장폭동이 일어 났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국가였으며. 그리고 대한민국을 무력 통치하는 독제자도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시위대에 갑자기 나타난 500명 이상 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 시민군들이 나타나서 계엄군인들을 기습해서 군용차량과 기관총 같은 중무기를 탈취하고. 무기고를 습격해서 총 5천 정과 수류탄으로 무장을 해서 전라도 시민들과 군인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그 시민군들 때문에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고 경찰과 군인들이 전사했으며. 좌익죄수들이 있는 교도소를 습격하고. 도청을 폭파하기 위해서 폭약을 설치하였으며... 그리고 5월 26일 이 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미스테리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서 대한민국 애국 국민들이 시민군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밝혀 내고 있는데.이에 대해서 국회의원인 박지원의원과 정치인들이 전라도 5.18 특별법을 만들어서 자유 언론을 억압하고 국민들을 죄인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강대국인 미국에도 51구역. 911테러. 케네디 대통령 암살 .... 이런 미스테리한 일들을 파해치려는 미국 국민들이 있지만 미국정부나 미국 국회의원들이 언론 자유의 권리를 억압하는 특별법을 만들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는 국민들의 정당한 자유를 억압하는 위법을 만들려고 하는 민주화도 문제이지만. 전라도 5.18 무장폭동에 대해서 침묵을 하면은 더 큰 일이 벌어지는 음모가 존제 한다면은 더 큰일이 아니겠는가 ?
그 거대한 음모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욕을 먹고. 죄인이 되고. 테러협박과 법정테러를 당하면서 지만원 박사님과 애국우익의 국민들이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1980년 5월 18일 전 후 역사로 돌아가서 그 무서운 음모의 정체를 알아보자.
김대중의 경호담당 비서 함윤식씨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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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윤식씨 증언 : 김대중씨는 80년 5월 민중운동의 결정적 시기로 보고 조성우. 심재권. 장기표. 이현배씨 등 학생운동 출신자들에게 매달 20만원씩 활동비를 지급하고.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한 후. 그 결행시기를 5월 중순경으로 결정한 뒤 정부전복 후 과도 내각 역활을 맡게될 '한국민주제도연구소'를 구성한 후 소장에 이문영. 이사장에는 예춘호씨를 임명하고 일부 인사들로부터는 서둘러 전문위원 취임 승낙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명인 기자 : 일설에는 그 당시 중앙정보부도 김대중씨가 간첩 정태묵과 만났다는 걸 알았으나 김형욱 중아정보부장이 뒷날을 위한 포석으로 이를 덮어두는 바람에 그냥 넘어 갔다는 말도 있던데...
함윤식씨 증언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씨는 그 후로도 고려연방제 등을 주장하는 등 북한을 찬양. 고무하는 발언을 여러차례 했고....... 간첩 서경원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아온 돈 중에 1만불을 김대중씨가 받았다느니 안 받았다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그 당시 서경원이 북한에 다녀온 사실을 그의 주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당총재인 김대중씨가 과연 몰랐을까 하는 점을 생각하면은 석연찮은 점이 있어요....
이명인 기자 : .... 그러면은 이렇게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이 만약 집권을 하게 된다면 국가경영에 어떠한 차질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신적 있으십니까 ?
함윤식씨 증언 : 국가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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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이 후 전라도에서 정부가 파견한 계엄군이 약간의 저항에 밀려 지방행정의 상징인 도청을 포기 한다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는 중앙정부가 그 지방에 대한 통치권이나 영토권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으로 당시의 집권자로서는 커다란 불명예가 되는 것이다.....(김영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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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군이 "꿈에도 소원인 통일" 혈서를 쓰고.통일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했다.
(비봉출판사.역사로서의 5.18 중에서.북한도서 조국통일사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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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에서 ... 5.18이 터졌고......많은 북한주민들이 저녁마다 텔러비전 앞에 모여 앉아 새로운 소식을 접하느라고 난리였다. 그런데 5.18 관련 영상물을 시청하던 한 여인이 무릎을 탁 치며 환호하는 것이었다. 와 ~ 우리 아들이다..... 우리 경철이가 잘하고 있네... 함께 TV를 보던 마을 사람들도 놀랐다. 맞네 ~ 배나무집 경철이가 맞네.... 광주 5.18 관련 영상물에서 차량에 탄 청년이 소총을 난사하면서 한 쪽 발로 자동차 핸들을 조종하는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 탈북자 정수반씨 증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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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특수부대원 장교 임천용씨 증언 내용
"김일성은 광주사태로 인한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비하여 .... 루마니아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1980년 5월 13일 귀국하였다.... (김일성이가 없었던) 5월 10일 북한군 정찰국 소속의 황해북도 신천군 주둔 제 1321부대 (일명 신천복수대대)의 인원 300명이 폭풍명령을 받고 남포시 와우도 인근 지역에 집결하였다......
신천보구여단 300명을 포함하여 남파된 특수부대인원 총 600명이..... 이날 환송에서 김정일은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그 자료는 현제 평양시 룡성구역 롱추 2동 대남 사적관 지하 전시실 2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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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북한은 신의주에 전라도 광주를 모방한 건물을 짓고 '님을 위한 교향시' 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 당시 '님을 위한 교향시'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상급 당간부가 내려와서 대한민국의 전라도 5.18 무장폭동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를 연설했다.
" 조국통일의 귀중한 기회를 놓쳤다. 이 영화를 잘 만들면은 남조선 사람들이 보고 제 2의 광주가 곳 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 북한군 특수부대원 장교 탈북자 임천용씨 증언 )
내용이 길어져서 중요하고도 많은 증언들을 다 기록을 못해서 다음편에 올리기로 하고. 이런 증언들을 보면은 전라도 5.18 무장폭동이 단순한 데모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께서 북한 특수군에 희생을 당한 전라도 5.18 무장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좋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에서도 계속해서 전라도 5.18 무장폭동을 선동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제 2의 5.18 무장폭동을 예고 하는 것이며. 노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북한과 좌익들은 대한민국을 점 점 더 사회를 불안정 하게 만들 것이고. 더욱 치밀하게 계획을 한 어느 순간에 데모와 무장폭동의 시민군들이 갑자기 나타나면은 대한민국 운명은 어찌 될까 ?
만약에 이 거대한 5.18 무장폭동의 음모가 다시 발생할 경우 모든 분야에서 좌익들에 의해 마비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이 과연 방어 할 수 있을까 ?
피끓는 자유 민주주의 애국우파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대한민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진데. 구국의 애국우파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박지원의원의 최후는 어찌될까 ?
<내용 추가중>
2016년 6월 30일
펑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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