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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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참전용사 작성일15-10-25 22:05 조회2,4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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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독재공산주의
광명천지(光明天地) 21세기에 옛날의 왕조(王朝)세습을 뺨치는 대를 이어 세습을 계속하는 북한의 김 왕조 독재집단은 대한민국의 적화(赤化)를 그들의 지상과제(至上課題)로 선정(選定)하고 어제도 오늘도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면서 광란(狂亂)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한의 분열을 촉진시키고저 화전양면(和戰兩面)의 전략을 절묘(絶妙)하게 구사(驅使)하고도 있습니다.
깡패들이나 즐겨 쓰는 협박과 공갈을 자행하는 그들은 때로는 ‘우리민족끼리’를 운운(云云)하면서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역설하고도 있습니다.
필자는 1931년 북한에서 출생하였으며 1950년 12월 말 북한을 탈출하였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종북도당들에 의한 방종(放縱)과 역사왜곡(歷史歪曲)을 더 이상 수수방관(袖手傍觀)할 수 없어 80 노구(老軀)를 달래면서 이 글을 쓰고 잇습니다.
역사왜곡은 공산주의자 노 무현의 대통령직 재임중에 시작되었습니다.
남한의 기성세대나 북한의 무력에 의한 공산통일이 불가는함을 뒤늦게 인지한 노 무현은 눈을 돌려 자라나는 2세들에 대한 왜곡된 역사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호응한 빨갱이 역사학자들은 김 일성이 선두에서 지휘한 6.25 남침을 오히려 남한이 시작한 북침이라고 교과서에 서술하고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 입니다.
1950년 늦은 봄부터 전차와 대포 기타 군수물자들을 만재한 기차와 군용트럭들이 이른 새벽과 늦은 밤중에 장사진(長蛇陣)를 이루고 북한 전역에서 38선 쪽으로 남하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남침준비를 완료한 김 일성은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교활하게도 6.25 개전 3일을 앞두고도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역설하면서 그들이 평양에 억류중인 민족주의자 조 만식 선생과 국가반란죄로 남한의 형무소에서 복역중인 이 주하 및 김 삼룡과의 맞교환을 제안하면서 3일 후에 그가 시작하는 남침전쟁을 음폐(陰蔽)하였습니다.
8.15 해방후 매국노(賣國奴) ‘이 승만과 김 구를 타도하자’는 프래카드(Placard)가 북한의 모든 도시는 물론 산간벽지(山間僻地)에도 나붓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48년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포스터를 포함한 그들의 모든 선전 선동(煽動)문에서 김구’라는 두 글자가 삭제되어 있었습니
다.
알고 보니 김 일성이 주최한 남북한 정치연석회의에서 월북한 김 구 선생이 어리석게도 소위 김 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한바, 김 구의 이성을 상실한 이 경거망동(輕擧妄動)에 감동받은 김 일성은 김 구에 대한 보상(報償) 차원에서 그들이 선정한 악당 반동분자(反動分子) 명단에서 김 구의 이름을 삭제하였든 것입니다.
북한의 노림수는 절대로 공산당을 용인하지 않았든 위대한 지도자 이 승만 박사에 대한 견제(牽制)구 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남한 정계(政界)의 양대 거두(巨頭)인 이 승만 박사와 김구 사이를 갈라 놓는 이간질에 그들이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구 쏘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중공의 괴수(魁首) 모 택동의 원조와 격려(激勵)에 고무된 김 일성은 1950년 6 25일 동족간의 혈육(血肉)이 상쟁(相爭)하는 가공헐 남침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노래하며 평화무두에 잠기고 있었던 대한민국은 부산과 대구를 제외한 남한 전역을 개전 2개월 여만애 북힌 침략군애 넘겨주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패전을 거듭하던 우리에게 혜성(彗星)같이 출현한 미국의 걸(출傑出)한 명장 맥아더 장군의 위대한 전략, 전투력을 회복한 한국군,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16개 참전국들의 은덕으로 대한민국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구출되었습니다.
적화통일 일보 직전 미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그들의 야망이 좌절(挫折)되어 천추(千秋)의 한을 품은 북한 독재자들이 대를 이어 한반도에서 미군의 철수를 계속 절규(絶叫)하고 있는 연유(緣由)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으나 그렇다고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전 그나마 가동되고 있었던 소규모 산업시설과 대부분의 가옥과 들판 그리고 산야가 소실되고 파괴됨으로 식량의 결핍(缺乏)과 생필수품의 고갈에 따르는 불안하고 어려운 나날 속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 허우적 거리면서 살아야 햇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고 있으며 마음대로 말도 할 수 있으며 자유로운 의사표시로 찬성은 물론 반대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용공으로 평생을 살아온 김 대중과 공산주의 신봉자인 노 무현이 자유대한의 대통령으로 당산되는 희극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연평도 근해에서 자행한 북한군의 도발로 우리 해군의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수도육군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김 대중은 2002년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었던 서울 상암돔 월드컵경기장으로 직행학고 축구를 과전하고 계셨습니다.
북한에서 소위 김 일성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창시(創始)한 황 장협 산생은 후일 그 사상의 허구성(虛構性)과 위험성을 깨닫고 자유세계에 이것을 알리기 위해 서울로 탈북하였습니다. 그러나 김 대중 휘하(麾下)의 국정원이 추진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암살음모로 한 때 미국에 재 망명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노 무현의 장인 권 오석 이라는 자는 6.25 동란중 북한의 앞잡이로 날뛰면서 양민 10여 명을 단지 놀고 먹는 지주와 유산자라는 이유로 칼과 창으로 학살한 자입니다.
이런 반역자의 사위가 후일 다수결에 의한 국민들의 선택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는 그 선거결과를 현실로 받아 들일 수 밖에는 별로 딴 도리기 없었습니다.
노 무현은 대통령 재임중 우리의 생명선인 북방한계선(NLL)을 김 정일에 양보하였고 북한이 오매불만(寤寐不忘) 주장하는 한반도에서의 미군철수를 실현하기 위해 그럴사 한 명분인 자주국방을 내 걸고 소위 전시작전권을 미군애개서 회수하여 전쟁 재발시 미군의 개입을 차단시켜 대한민국의 몰락(沒落)을 기도한 장본인 입니다.
노 무현의 반역은 계속됩니다. 북한을 위해 남한의 양민 10여 명을 학살한 인간백정(人間白丁) 권 오석의 사위답게 그는 미국을 증오하고 비아냥거리더니 6.25 당시 인해전술로 우리의 통일을 무산시킨 중공군 괴수(魁首) 모 택동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찬양한 바도 있습니다.
필자는 오레 전에 폐지된 연좌(連坐)법을 몹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연좌법이 건재(健在)하고 있었다면 이런 종북도당들의 준동(蠢動)이 사전에 봉쇄(封鎖)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1953년 휴전 후 1960년 초반까지 근 10년간 우리는 극심한 물자부족에 불안하고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을 앞에서 서술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불안한 정세를 이용하여 북한과 그들의 주구로 전락한 남한의 종북도당 빨갱이들은 휴전후 탄생한 유약한 한국정부들을 전복하기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소요와 난동을 일으키고 았었습닏니.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대신 우리에게 큰 선물을 하사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박 정희 장군의 출현입니다.
종북도당들은 그를 독재자로 매도하기 시작하였으나 나라를 위한 그의 헌신과 봉사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박 장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 날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종북좌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박 정희 대통령은 오랜 기근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첩첩한 난제(難題)를 탁월한 지도력(독재?)을 발휘하여 낙후한 우리의 기간산업을 육성하여
한강의 경제기적을 이룩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정쟁(政爭)에만 몰두하고 있었든 김 대중은 박 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하자 ‘가난한 나라에서 고속도로는 무슨’ 하고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인 한남대교 북단 도로에 들어 누워 치사한 1인 시위를 벌인 사람입니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를 방불(彷佛)케 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다시 엄청난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이 위기의 근원(根源)은 김 대중과 노 무현 두(2) 종북 대통령의 10년에 걸친 용공정책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10년 동안 이 석기를 포함한 근 4000 명의 빨갱이들을 사면복권(赦免復權)한바 이자들이 지금 남한의 정치, 노동계는 무론 교육, 입법 등 모든 분야에 고루 침투하여 대한민국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호남인들이 신으로 모시는 김 대중은 위대한 인물도 아니며 그렇다고 깨끗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노 태우 전 대툥령의 정치자금을 수취한 더러운 행적을 남긴 일도 있습니다.
박 원순과 안 철수의 혹세미민에 애국가 봉창(奉唱)을 기피하는 박 원순이 서울시장에 두 번이나 당선되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싫어서 나라의 국가(國歌) 조차 부르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이재는 가소롭게도 차기 대권을 넘보고도 있습니다.
엣 러시아의 볼세비키(Bolshevik)들이 서민층에 파고 들었듯 박 원순을 비롯한 일부 좌파시장 맟 교육감들도 자신들의 지지율를 높이고저 복지를 내 걸고 서민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복지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됩니다. 한 때 서구라파 제국에 유행처럼 만연(蔓延)되었던 과도한 복지비 지출로 대부분의 나라들이 재정파탄으로 국가부도(Default)에 몰려 서민들의 고통은 오히려 가중되었습
니다.
좌파들은 국가부도에 내 몰려 허우적 거리고 있는 오늘의 그리스 사태를 주시하시기 바랍니다.
남한의 종북 빨갱이들은 고모부까지 기관포로 처형하는 참담한 북한 인권문제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래도 남들 보다 많이 배웟따는 한 흥구 라는 자는 오래 전 용도폐기된 소위 김 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국민들에 홍보하는 일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애숭이 노 길남 이나 신 은미 따위 등은 먼 나라에 살고 있어 몰라서 그랬다 치고 소위 지식인을 자부하는 자들이 조국의 하늘 아래서 천지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꼴들이 가증스럽기만 합니다.
6.25 동란중 600만 이상의 북하주민들이 김 일성의 학대에 시달리다 못해 자유대한으로 탈북하였습니다, 당시 2000만 미만의 북한 인구중 6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교전하던 피아(彼我)간의 총포탄이 하늘을 뒤덮고 그것도 엄동설한이 휘몰아치는 한겨울에 이루어진 것을 고려한다면 독재자를 따르는 상위 1%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이 탈북에 가담하였을 것으로 필자는 자금도 확신합니다.
모세에 이끌린 수십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애급 탈출을 Exodus(대탈출)이라고 역사가들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6.25 당시 600만 이상의 사람들이 북한을 탈출한 우리 민족의 대이동을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Great Exodus?
그런데 이북 동해안 흥남 부두에서 어쩌면 필자와 같은 배에 승선하였을지 모르는 새민련의 문 재인 모친은 어떻게 자식을 교육하였기에 아들인 문재인이 공산주의자 라는 낙인(烙印)이 찍혀 고생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6.25 당시 북한은 엄청난 탈북자 군중속에 그들의 첩자를 잠입(潛入)시켰습니다.
문 재인의 모친이 북한의 스파이 일 수도 있습니다.
상호 의가투합(意氣投合)으로 공산주의자인 노 무현 정부에서 공산주의자 문 재인이 비서실장을 역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필자는 새민련의 정체(正體)에 대하여 다시 의문을 제기합니다.
좌익 신부(神父)에 이끌려 불법으로 밀입북한 임 수경 이라는 여자가 평양에서 김 일성의 소매를 붙잡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서 김 일성장군님 만세를 연호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어째서 이런 발칙한 반역자가 새민련 소속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국민들의 혈세를 공공연하게 뜯어 먹고 사는지?
종북도당들은 북한 세습 독재자의 인권탄압에는 단 한마디의 쓴 소리도 못하면서 어재서 민족중흥(中興)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박 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고 있는가?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이 아닌 남한의 북침이러고 주장하고 있는 종북도당의 왜곡된 역사교육을 옹호하는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문 재인과 새민련 종북도당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닏다.
문 재인과 종북도당들에 다시 질문합니다.
수 많은 주민들을 기아선상에 내 몰고 자신만의 호화생화을 위해 가렴 구(苛斂誅求)를 서슴치 않고 자행하는 북한의 세습 독재자 김 정은의 어느 대목에 매료(魅了)되어 당신들은 오늘도 반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습니다.
조선공산당 당수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박 헌영은 6.25 동란중 자진 월북하여 김 일성에 갖은 충성을 다하였으나 김 일성은 전쟁이 끝나자 박 헌영과 그를 따라 월북한 모든 공산주의자들을 미국의 스파이로 몰아 총살하고 말았슴니다.
영리한 김 일성은 후일 박 헌영이 그의 유력한 정적(政敵)으로 등장하는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종북도당 선생님들에 다시 고합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주도하여 성취한 공산주의 통일에 대한 공로(功勞)로 북한 독재자의 반대급부를 노리고 지금도 반국가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면 그것은 크나 큰 오산임을 알려 드립니다.
박 근혜 대통령님!
국기를 흔드는 종북도당들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우선 국정 역사교과서의 조속한 실현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내 나이 이제 80을 훨씬 넘었으나 총 들고 6.25 전쟁에 참여하였든 대통령님이 원하는 그 어떤 일에도 지지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끝
2015년10월25일
이한혁
탈북한 6.25 참전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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