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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중 1인 김영옥 대령. 메이지윌리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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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제지자 작성일15-08-23 17:51 조회2,80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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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롭게 죽어 승리하는 것이 겁쟁이로 싸워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낫다'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국가최고무공훈장, 미국특별무공훈장 등 수많은 상의 수훈자. 미국 전투교본을 다시 쓰게 한 전설적 작전장교, 미군 역사 최초의 비(非)백인 야전대대장,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아들, 한반도 휴전선을 60km 올린 북상의 주역, 미국 최고 전쟁 영웅, 국경을 초월한 인도주의자, 여성·아동·빈민등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 그리고 아름다운 영웅. 그를 지칭하는 단어는 굉장히 많다. 하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 김영옥. 이제부터 그의 아름다운 인생을 살펴보겠다.

<MSN선정 미국 전쟁영웅 16인, 출처: MSN >


지난 2011년 5월30일 미국의 현충일(메모리얼 데이)을 맞아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명을 선정했는데요. 16명의 인물중에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MSN에 따르면 김 대령은 191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한국계 이민2세로 탁월한 군인이며, 이번에 선정된 전쟁영웅 가운데 유일한 소수계였다.


MSN은 “김영옥은 2차 대전에 참전하고 예편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재 입대했고, 한국전쟁 당시 한국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 통역장교가 되는 대신 보병부대에 들어갔다”며 “여러 차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전투대대장이 됐다”고 김영옥 대령을 소개했다.

1.2차 세계대전 참전.

김영옥 대령은 1919년 미국으로 망명한 독립 운동가였던 김순권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3년 미국은 하와이에 거주하던 일본계 2세들로 100대대 [속칭 ‘니세이 부대(二世部隊)’]를 창설하였고, 뒤에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442 연대전투단의 1대대로 편입되었다.

김영옥 대령은 100대대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이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던 대대장의 전출 제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곳에 머무르기로 결정하고 100대대 B중대 2소대장을 맡았다. 임관 이후 2차 세계대전지인 이탈리아로 갔고, 바로 이곳 이탈리아부터 그의 전설적 행보가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3년.

미국·영국·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이탈리아 남부를 장악하고도 이듬해까지 로마에 접근하지 못했다.

독일 전차부대가 로마 남쪽에 주둔하며 방어선을 구축해 연합군의 발을 묶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총공격 작전을 세우려던 미군에게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독일 탱크 사단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정보 없이 섣불리 공격했다간 탱크사단의 화력에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독일군 포로를 잡아 이 정보를 구해야만 했다.

이 무렵 구스타프 라인에서의 뛰어난 지휘능력을 인정받은 김영옥은 대대 정보 참모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때 김영옥 대령 자신이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서 적군을 생포해 오겠다는 작전 계획을 제출한다.

대령의 작전은 적군의 경계를 뚫고 침투하여 독일군을 생포하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대한 많은 논란 끝에 '자살행위이지만 자원한다면 가도좋다' 는 허가를 받게된다. 즉, 군사적 측면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으나 그렇게 죽고 싶다면 한 번 해 봐라' 라는 의미였다.

이 작전 계획을 듣고 자원한 아카호시 일병과 김영옥 대령은 일일이 손으로 지뢰를 제거하며 무인지대를 통화한 뒤 독일군을 생포하며 작전을 성공을 하게 된다. 김영옥 대령의 이 작전은 마치 영화속에서 볼 수 있는듯한 작전이었다. 이로 인해 연합부 진영이 뒤집어지고 이후 대령은 특별 무공 훈장을 받게 된다.

김영옥이 잡아온 포로를 심문해 독일 탱크 사단 위치를 확인한 연합군은 5월 23일 '버팔로 작전'으로 명명된 총 공격을 개시해서 포위망을 뚫고 6월 4일 로마를 해방시키게 된다. 이와 함께 앞, 뒤로 전선이 형성된 독일군의 구스타프 라인은 급격히 무너지게되며 김영옥의 작전 성공으로 이탈리아 전선의 판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이 기적 같은 작전으로 이탈리아 정부는 전쟁 후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인 십자무공훈장을 김영옥 대령에게 수여하였으며, 김영옥 대령은 이 상을 받은 유일한 한국인이다.


이후 남프랑스에 투입되었으며, 브뤼에르와 비퐁텐느란 두 마을의 해방에 앞장섰으며, 이 중 남프랑스의 비퐁텐느의 교회 벽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이 마을에서는 “까피텐 김”(김 대위)으로 불린다.


김영옥 중위가 1943년 11월 이탈리아 남부 전선에서 세운 무공으로 이탈리아 주둔 미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준장) 5군사령관으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는 모습.

2.미국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하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영옥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대위 계급으로 군에 복귀했다. 한국인 유격대인 배내대 유격대를 지휘하며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했다. 배내대 유격대는 흥남 철수 때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 중에서 선발한 유격대였다. 이 임무를 마친 후 김영옥 대위는 7 보병사단 31연대의 정보참모가 되었다.

1951년 4월, 31연대가 소양강을 건너 17연대와 임무 교대하자마자, 중국군의 춘계 공세가 개시되었다. 31연대는 다시 소양강을 건너 철수했는데, 김영옥 대위에게 미군 및 한국군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인제군 계운동 계곡의 다리를 지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전차 1개 소대를 이끌고 완전히 후퇴할 때까지 최소한 몇 시간을 버티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차 소대를 다리 남쪽에 세워 놓고 김영옥 대위는 후퇴하던 중대급 한국군 보병들을 멈춰세운 후, 그들과 함께 임시 방어선을 구축하여 후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51년 10월, 김영옥 대위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1대대 대대장이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아시아계로 백인 병사들을 지휘하는 보병대대장이 된 사람은 미군 역사상 김영옥 소령이 최초였다. 그만큼 김영옥 소령이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31연대장 맥카프리 대령의 지시로 5월 23일부터 실전 경험이 없던 대대장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이 조치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1951년 5월 무렵, 31연대의 사기는 최악이었다.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해병대와 함께 흥남으로 철수하면서 연대장까지 전사하는 등 큰 패배를 당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김영옥 대위가 대대를 실질적으로 지휘하게 되면서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병사들의 사기 고양이었다. 구만산·탑골 전투에서는 전진하기를 주저하던 병사들을 권총으로 위협하기도 했고, 금병산 전투에서는 총탄이 빗발치는데 팔짱을 끼고 태연히 돌아다니며 엄폐물에 숨어 총만 높이 들어 마구잡이 사격을 하는 병사들을 독려하는 등, 자기 목숨을 내놓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부대 사기는 다시 올라갔고, 그가 담당한 구역은 처음과 달리 5월 31일 이후 다른 대대들과 달리 북쪽으로 불쑥 솟아오른 형태가 되었다.

같은 해 6월, 철의 삼각지대에서 아군의 오인 포격으로 중상을 입은 김영옥 대위는 일본의 오사카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8월 27일에 다시 전선에 복귀했다. 그 후 10월에 소령으로 진급하고 은성무공훈장 동성무공훈장을 수여받고, 정식으로 1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연대장이 병사들을 무리하게 전투에 내모는 것에 반대했고, 그 때문에 1952년 9월에 미국으로 귀국했다.

<1951년 31연대 1 대대장 김영옥 소령의 모습. 출처: MBC스페셜영웅 김영옥 대령 >




▲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장 김영옥 소령이 1952년 2월2일 동부전선 문등 계곡 일원 장군봉 꼭대기에 설치한 OP에서 탱크병 로버트 위그먼 상병에게 탱크 포탄을 건네주며 격려하고 있는 모습.

<중부전선에서 북으로 밀려 올라간 모양의 지금의 휴전선. 출처: 아름다운 영웅 >

김영옥은 한국군의 명장 채명신과도 깊은 전우애를 맺었으며, 김영옥의 31연대 1대대 왼쪽에 자리를 잡은 것이 채명신이 연대장으로 있는 한국군이었다. 이렇게 맺어진 이들의 전우애는 12년 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와 수도 방어 체계를 놓고 오랫동안 계속된 한·미 양국 간의 첨예한 외교적 마찰을 잠재우고 오늘날 청와대 경호와 서울 방어 체계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공헌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원한 인도주의자

잠시 한국을 떠났었던 김영옥 대령은 1963년 군사고문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찾았다.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한국군 최초의 미사일 부대를 창설하며 한국 방어계획을 현대화하고자 노력하였따. 그러면서 한국이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군사적 방패를 마련을 하였다. 김영옥 대령은 6·25전쟁에서 입은 중상의 후유증으로 큰 수술만 약 40차례 받았고, 1972년 대령으로 예편되었다. 김영옥 대령은 전역 후 입양아·장애인·노인·청소년·빈민·가정폭력피해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2005년 눈을 감았고, 그의 묘지는 호놀룰루에 있는 미국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최고의 전쟁영웅이자 위대한 인도주의자였던 김영옥 대령을 기억하고자하는 움직임은 현재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초등학교 5학년1학기 국어교과서에 김영옥 대령의 이야기가 실리게 되었다.현재의 기성세대가 세종대왕·이순신·안중근 등을 한국이 낳은 영웅으로 배우면서 자랐듯이 이제 한국의 학생은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을 배우며 자라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에서는 최초로 한국인의 이름을 딴 ‘김영옥 중학교’도 생겼다.


<미국 LA의 김영옥 중학교와 로고 출처: MBC스페셜영웅 김영옥 대령 >

'알렉산더대왕 이후에 최고의 군인이다'-존 코백 미 육군 예비역 중령
'내 휘하에 있던 500만 군인 중에 최고의 군인이다'-마크 클락크 前 유엔군 총사령관
'미 보병학교 시절 한국계인 김영옥 대령 덕에 어깨가 으쓱했다'-채명신 前파월한국군 총사령관
“제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그 분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저자 한우성

중부전선을 형성에 큰 일조를 한 그에 대해 정작 우리는 잘 기억하지도, 알지도 못하고 있다.

뛰어난 군인이자, 휴머니스트였던 故김영옥 대령의 진심어린 한 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내 이야기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故김영옥 대령, 1919. 1~2005. 12

대한민국 무공훈장

프랑스 무공훈장

이탈리아 무공훈장

미국 수훈십자훈장 , 은성무공훈장 등등


천조국에서 무공훈장 추서되면 4개국 무공훈장.





댓글목록

천제지자님의 댓글

천제지자 작성일

유튜브(www.youtube.com) 에서  "김영옥 대령"  검색하면,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천제지자님 좋은글 올려주셨습니다.
최근엔 한우성 작가의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으로 여러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영문판도 나왔습니다.

우리 국방일보에서도 수년전에 한우성씨의 연재로 119회에 걸쳐 자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네이버에서 국방일보/ 기획연재/완결/전체보기/아름다운영웅 김영옥/ 클릭하면 연재끝인 119회가 나오며 역으로 읽어가거나  페이지 12 맨끝으로가서 1회부터 순서대로 읽어나올수 있습니다.
유튜브와 병행해 읽으면 더욱 이해와 존경이 가게 됩니다.

일지님의 댓글

일지 작성일

사진이 잘 안나오고..

글에 푸른색을 덧칠해 올리니, 글자가 잘 안보입니다. (거의 안보임) ..

그냥, .. 색을 벗겨내고, 글자만 보일수 있게 올ㄹ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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